지난 이틀간의 사투

전에 태환이형 외장형 ODD를 추천해 줄 때의 일이다.

브랜드도 없는 저가형은 내가 내키질 않고, LG는 괜찮긴 하지만 슬림하지가 않았고, 그나마 삼성께 가장 나은 선택 같아 보였다. 주저없이 그걸 권했는데, 형은 내게 꿀밤을 먹이고선 감히 ‘삼성 제품’을 권한다며 나무랬다. 아, 맞다. 삼성꺼. 일단은 맘에 안드는 회사, 게다가 램 빼고는 컴퓨터 관련 제품군에서 내세울게 없는 회사, 후진 품질을 막강한 A/S로 떼우는 회사…

잊고 있었다. 썅노무거 삼성 하드. 삼성 하드 후진거 벌써 예전 일이라고 속단해버린 내가 잘못이었다. 어제 분당까지 가서 서버를 뜯고 하드를 교체하고 OS를 인스톨하고 하는데, 케이스를 닫으니 잘 돌아가던 서버가 하드를 찾다가 뻗어버리는게 아닌가. 뭐지… IDE 케이블이 문젠가… 메인 보드가 어디서 쇼트 되는건가… 갖은 삽질 끝에, 상면 공간 관리 업체 직원까지 불러서 심도깊은 토론(?)을 하다가 결국 알아낸거, 3년이나 지난 시게이트 하드는 뻥뻥 아직도 잘 돌아가는데, 이노무거 삼성 하드는 2시간 만에 틱틱 하는 정체불명의 소음과 함께 맛이 가버린 것이었다. 갑자기 눈 앞이 아득해지는…

이것 때문에 작업이 하루 더 늦춰졌다. 오늘은 아침에 겨우 일어나 용산엘 갔다지. 돈 더 줘도 되니까 다른 회사 하드로 바꿔달랬더니 삼성 하드 밖에 없단다. 환불 해달라고 했더니, 지마켓 통해서 하란다. 이런 썅노무거, 그럴 시간 있었음 용산 오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엔 제발 잘 돌아가길 바라며 새 삼성 하드로 교체하고 다시 분당으로 ㄱㄱ씽. 다행히 교환한 하드는 그럭저럭 문제는 없는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분명 내 소유의 서버인데, 어제 처음 실물을 봤다. 인터넷으로 사고 업체에서 알아서 관리해주니 IDC에 갈 일이 있나… 예상외로 작고 외소한 블레이드형. 주위에 괴물같은 HP나 Compaq, 삼성 (썅 또 삼성), 썬 등이 포진한 가운데, 이름도 없는 조립품 내 서버가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짜식, 나보다 낫네…
사용자 삽입 이미지흉한 속을 드러내 보인 서버.
사용자 삽입 이미지파티셔닝 하고 있는 동안 음악 들으면서.

(사진 찍기는 더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보안상 찍으면 안된다고 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진만 올린다. 내가 간 IDC가 어딘지 얘기도 안했는데 보안이 어쩌구먼 어쩔꺼야.. -_-;;)

정식 IDC는 처음인데, 대학 서버실은 좀 돌아다녀 봤고, 전에 근무하던 회사 서버실은 내가 관리했었다.
대학 서버실들은 얼마나 추우냐면, 들어갔다 나오면 안경에 김이 서릴 정도였다. 뭐 서버가 몇천대씩 있는 것도 아니니까. 그래도 한 여름에 거기 들어가면 시원하고 좋았다. 회사 서버실은… 사실 서버실이라고 하기 뭐하고 사무실 구석 창고에 대충 만들어 놓은거였고, 서버실이라기 보다 비품 창고였다. 아무튼 정식 IDC라고 해서 “야 (소음은 좀 나겠지만) 얼마나 쾌적할까!” 싶었는데, 왠걸… 바깥보다 약간 낮은 정도 였다. 몇천대씩 서버가 돌아가니 그 열기를 다 감당하긴 힘들겠지 뭐.

아무튼 다신 가고 싶지 않은 (너무 멀어서;;) IDC였다.

사진으로 말한다!

의문의 스포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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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서 화질이 좀… 어쨌든.
의문의 스포츠카다. 그것도 메르세데스 벤츠. 두어 달 전부터 내가 사는 동네 골목에 종종 주차되어 있던 것을 목격, 어제야 사진을 찍었다.
영 어색하다.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가서 된장찌개를 시켜 먹는 기분이랄까. 이 동네는 벤츠는 커녕 각그랜져도 없는 곳이다. 자주 주차되는 것으로 보아 친구 집에 놀러 (아니 이런 차를 모는 사람의 친구가 우리 동네 살 리가 없어!) 오는 것 같지도 않다.

이 차를 볼때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일본 청년이 떠오른다. 그는 페라리를 너무 좋아해서 그걸 갖는게 소원이었다. 그러나 페라리는 커녕 지하철도 못타고 다닐 정도의 가난한 신세. 그래서 결국 그는 자위대에 입대하게 된다. 30년 할부였나.. 로 페라리를 구입하고, 자위대에 복무하면서 다달이 받는 월급의 거의 전부를 할부금으로 넣고 라면으로 끼니를 이으면서도 그는 행복했다나 뭐라나.

설마 진짜 그런 새끼가 우리 동네에 사는거 아닐까? 산다면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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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노 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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ㄷㄷㄷ. 드디어 오고야 말았어. 교보문고에서는 2만 5천원에 바로 배송이 되는데, 그놈의 포인트 때문에 3만원의 해외 주문으로, 그것도 14일이나 걸려서 예쓰24에서 주문하고야 말았어. 그래도 난 행복해. 주리를 이렇게 가까이서 고화질로 볼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 이건 내 평생 가보로 간직할꺼야. >_<)/

고래의 삶과 죽음

엊그제, 였나, 그그제였나 꿈 속에서 동네 헌책방에 갔더니 평소 열심히 구하던 책들을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이건 왠지 길몽인 것 같아서, 어제 일보러 밖에 나간 김에 헌책방에 들렀다.

(당연히) 개꿈이었다. 그래도 우연히 발견한 한 권. 고래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것만 가지고 나오기 뭐해서 추가한 몇 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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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밤에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와 낮에 보다 만 다큐멘터리를 보다. BBC의 살아 있는 지구 (Planet Earth) 란 작품인데, 그 가운데 바다에 관한 테마 두 편이었다. 고래의 이야기가 나왔다. 19세기에 비해서 현재의 고래의 수는 고작 3% 밖에 되지 않는다거나, 여름이 되면 수천킬로미터를 헤엄쳐 극지로 이동한다거나 하는 이야기들은 왠지 먼 나라의 방언 같은 느낌이다.
예전엔 상업포경에 강력히 반대한 적도 있었다. 노르웨이와 일본은, 그때 내가 가장 싫어하는 국가이기도 했지. 그런데 이재훈님 사이트에서 고래고기로 만든 햄버거 이야기를 했더니, 왠지 고수의 톤으로 ‘그런데 고래고기로 만든 햄버거 맛이 어떤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하더라. 고수는 정말 다르다.
고래를 사랑한다고 해서, 나는 고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알려는 노력은 분명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 가운데 하나겠지.

국’까’보안법

본인, 국’까’보안법 잘 모른다. 왠지 무서운 법이야, 하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또 신문이나 방송을 보다 보면 국’까’보안법과 항상 함께 곁들여 나오는 단어가 있는데, 그게 ‘이적’행위다.
사실 국까보안법 잘 몰라도 된다. 중요한건 ‘이적’행위를 하면 국까보안법으로 잡혀간다는건데…

‘이적’이 밤에 문 걸어 잠그고 와이프 몰래 하는 그 행위가 ‘이적’행위냐, 하면 이 글을 쓰는 나조차도
싸르르 한 유머가 아닌가 싶어서 살짝 발그레 부끄러워지는 그런거 아니겠냐. 이건 농담이고, 이적행위는
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다 해서, 거의 국가배신죄에 해당하는 무거운 죄다 이 말씀이다. 그리고 요거 읽다보면
군대 다녀오신 분들은 대뇌변연계 구석탱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기억 하나, 있으시겠다.
그래, 우리의 ‘주적’ 북괴!

자, 다시 상콤하게 정리해보자면

1. 우리의 소원은 통일, 우리의 주적은 북괴!
2. 우리의 주적을 이롭게 하는 행위하면 나뿌운~ 놈~
3. 그래서 국까보안법에 잡혀가욘! >_<)/

이정도 되시겠다.

근데 말이지… 대한민국 법전 어디를 뒤져봐도 우리의 적은 누구다! 라고 맹랑하게 까발려 놓은게 없다는거다.
알아, 알아.. 법전에만 없다 뿐이지, 한반도는 현재 정전상태고 그렇게 보자면 우리의 주적은 북괴일 수 밖에
없다는거. (근데 니들 북한과 북괴가 어떻게 구분되고, 북괴는 또 뭔 얘긴지 아니? 네이버에 물어봐~)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일본이나 중국도 우리 주적이고, 나아가서는 미국도 주적 아니겠어?
문제는 과연 이러한 다양한 잠재적 적국을 어느 정도로 수용할 것인지, 또 외교적 노력으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모색하는 건데… 또 이렇게 보자면 사실 북괴도 잘 얼르고 달래서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거잖아. 그래서 이 ‘주적’이란게 참 애매모호한 개념이란 말씀이지.

한 사백만번쯤 양보해서 북괴가 대한민국의 공식적인 주적이라고 치자. 그럼 이적행위는 북한을 이롭게 하는
모든 행위를 일컫는게 되는데, 그럼 씨바 현대아산도 이적행위중이고 (지금은 중단), 개성공단에 공장 돌리는
사장님들도 다 이적행위중이고, 국제 적십자사나 유니세프도 (대한민국 입장에서) 이적행위중이겠네?
일자 드라이버에 맞게 홈이 파인 나사에다가 억지로 십자를 들이대는 것처럼 뭔가 잘 안맞지?

국까보안법도 사람이 만든 법인데, 좀 잘 해보자고 만들었겠지 니들 씨발 좃돼봐라 하면서 만들진 않았겠지.
근데 이 단 한마디 ‘이적행위’란 것때문에 지난 수십년 동안 국까보안법은 눈에 걸면 눈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된거였어. 또 우리는 북괴를 사실상의 적국으로 지정 하면서도 겉으로는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니
평화니 하면서 모순된 태도를 갖고 있었지.

나 사실 초능력자야. 생각만으로도 누군가의 심장을 멈추게 할 수 있지. 그래 너, 지금 이 글 읽고 있는 너 말야.
나 지금 너 죽일꺼야. 열심히 시도중이야. 이제 곧 네 심장은 멈출꺼야.

라고 했는데 네가 죽지 않으면 난 살인 미수일까? 조까는 소리지. 내가 진짜 식칼을 들고 네 앞에서 흉악하게 위협하면 몰라도 말야. 자, 난 법을 잘 모르지만 어떤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내가 정말 죄를 저지르려고 준비하고 실행에 옮기는 것 이외에 내가 충분히 그 죄를 저지를 수 있을 만 한 능력이 있어야할꺼야. 63빌딩을 무너뜨리기 위해 오늘부터 하루에 열번씩 빌딩 벽에 정권지르기를 한다고 해서, 뭐 경비아저씨한테 욕 좀 먹겠지만 그게 죄가 되겠어?
말하자면 그런거야. 이적행위고 자위행위고 간에 다 좋다 이거야. 근데, 씨발 이 빌어먹을 남한 사회에서 그 빌어먹을 ‘이적행위’를 통해 실질적으로 국가가 전복하는 일이 발생할까, 하는거 말이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08/08/26/2008082601169.html

일부러 좃썬일보 기사를 구해다가 달았어. 훠이훠이, 소금 좀 뿌리고. 솔직히 좀 무섭기도 했어. 집회때 뜬금없이 사노련 깃발이 휘날려서 예전 ‘사노맹’의 후신인가 하기도 했고 (맞나?), 아 만약 그렇다면 이것은 무섭다… 했는데, OO형님도 첨 듣는 단체라고 하시니 그건 아닌가보다 했지. 어쨌든. 대체 저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 중에 무엇이 우리의 적을 이롭게 했는가. 아니, 이롭게 할 힘이나 가진 자들인가. 아니, 그 이전에 과연 진짜 우리의 적은 누구인가? 이런거 먼저 야그해봐야 하지 않겠어?

위 기사 댓글에 달린 것처럼 사회주의가 이미 머리 속에서만 가능한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린 그걸 무서워 할 필요도 없을꺼야. 또 위 기사 댓글에 달린 것처럼 북한이 붕괴한 이후에도 ‘이적행위’가 존재한다고 감히 씨부려 쌓는 새끼가 존재한다면, 그때의 국가의 적은 바로 너란걸 꼭 이야기해주고 싶어.

아 씨발 경찰은 아무나 하나부다… 나도 공무원 시험이나 볼까. 답답해.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길은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눈 쌓인 둔덕들이 자그마한 음영을 만들어 내다가 이내 흰 빛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었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흰색 포드 승용차가 보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 차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는 나를 지나쳐 조금 더 달리다가 멈춰서더니, 다시 후진해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까지 갑니까?”
“그냥… 다음 마을에서 내려주시면 고맙겠어요.”


..

“멀더, 정말 그 신부의 말을 믿는거에요?”
“왜 믿지 못하죠, 스컬리? 그는 우리의 속임수를 단번에 알아차렸어요.”

멀더는 그 말을 마치더니 뒤를 돌아보며 내게 물었다.

“당신은 ‘영매’를 믿습니까? 그러니까… 초자연 현상 같은 것들을?”
“글쎄요… 적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현상들은 믿는 걸로 해두지요.”
“허, 참. 그런걸 어떻게 판단합니까? 왜 솔직하지 못하죠?”
“단지 난 그런 것들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 뿐이에요. 그런 당신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나요?”
“멀더, 그만해요. 미안해요. 이 남자는 어딘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하거든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근처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요? 갑자기 영매라니…”

멀더와 스컬리는 서로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별 일은 아닙니다. 어떤 남자가 환영을 본다고 해서 말이죠.”
“계시 같은거 말이죠?”
“네.”

눈보라는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했고 엔진 소리만 요란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런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요.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수사관에 관한 이야기였죠. 외계인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유령도, 혹은 그 이상의 설명 불가한 사건도 나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런걸 보는걸 즐겨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내가 그걸 수년간 계속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흥밋꺼리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인 두 수사관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해 가면서 ‘믿음’ 그 자체를 믿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사실 뭘 믿느냐는 중요한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린 모두 서로의 믿음을 갖고 있고 또 그런 믿음들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다는 행위 그 자체인거죠. 나는 정말 끊임없이 희구하고 경탄하고 싸워서 지켜내며 소중하게 여길 만 한 어떤 것들을 갖고 있을까…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을까… 온 세계가 나의 믿음에 대해 적대적일 때에도 나는 믿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멀더 그리고 스컬리, 그래서 말이죠.”

나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당신들은 지난 십년 간 수많은 멸시와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고 있군요. 멀더,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믿기를 바래요. 스컬리, 나는 아직 자기의 꼬리를 무는 뱀을 기억해요. 피해자가 멀더를 의지하고 멀더가 당신을 의지한다면, 과연 당신은 누굴 의지하고 있나요?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단 한 번 흔들리지 않았던 당신의 믿음 또한 나는 존경해요.”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길의 끝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린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덕분에 따뜻하게 올 수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멋적게 쳐다보았다.

“멀더, 할 말이 있어요. 핸드폰 잘 챙겨요.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스컬리에게 연락해야 해요. 그리고 스컬리. 포기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과 멀어져 갔다. 뱃 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서 길을 걷기가 수월해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눈보라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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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자들의 기록
스프는 있습니다. (김진혁PD)

그러고 보니

지금 막 플레이어에서 키스 쟈렛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맞다.), 언제였더라, 사당동 DJ가 권해서 듣게 된 그의 퀠른 콘서트 공연 실황은 정말 먹어주는 앨범이다. 이 앨범을 두고 공전절후의 즉흥 연주라던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아름다운 인간 승리라던가 (그의 ‘만성 피로 증후군’을 두고 하는 이야긴데, 사실 이 앨범하고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하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듣기만 하면 이게 얼마나 위대한 정신의 발현인지 단박에 알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압도적인 곡으로 스타트를 끊었으니, 왠지 그의 다른 앨범들은 시시해서 못듣겠다는 등의 불상사가 생겨버렸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맘 속에 고이고이 간직한 첫사랑의 짜릿한 기억처럼, 이건 정말 나만 (적어도 내게 이 곡을 소개 시켜준 두세명만 빼고) 좋아하는거야, 나만 알고 있는거야, 나만 이 아름다움을 즐기는거야 하고 있었는데, 지난 학기 ‘역사철학’ 수업 시간에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강의실을 나서려다가 후배 하나가 선생님 곁으로 가더니, ‘선생님 이 앨범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하며 내미는 앨범이 바로 이 키스 쟈렛의 퀠른 콘서트 공연 실황이 아닌가!

야, 정말 맘 한 편으로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헤어진 첫사랑이 배가 남산만해져서 왠 남자랑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처럼 아릿하고 답답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니 이 녀석이 이걸 알아? 하며 뭔가 뿌듯하달까, 으쓱하게 된달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

몇 번의 퇴짜를 맞고 난 뒤로 나는 이제 누구에게 음악을 잘 권하지 않게 되었다. 블로그에야 누가 알아보던 말던 내가 좋아서 글쓰고 하는거니까 상관은 없는데,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권했다가 그가 별로라는 표정을 지으면 정말 마음이 상한다는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당동 DJ를 만나 그에게 음악을 전수(?) 받는 그 순간, 나의 내면에 숨겨진 이 롹 스피릿을 발견해 내고 그와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확률이었지 않나 싶다. 그 놈은 얼마전에 결혼했지만 (그러니까 이젠 이야기해도 된다는 거), 사실 우린 한때 “왜 넌 여자가 아니냐?”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더랬다. 이렇게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참 힘든 일인데, 만나 놓고 보니 이게 동성이라 뭔가 더 이상 발전이 없는거다. ㅋㅋ

참, 얼마전에 월드 뮤직에 빠져 있다는 선배에게 모 사이트를 알려줬더니 정말 좋아라 하더라. 내가 그에게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것을 선물한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흐흐.

내가 무섭니?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비가 오다가 버스에 타니까 거짓말처럼 그치더라. 옌장. 낮게 먹구름 깔린 하늘을 무지무지 좋아해서 그냥 위안삼고 음악을 들었다.

등촌동 무슨 건물 5층이 사무실이어서 일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려는데 3층에 엘리베이터가 선다. 문이 열리니까 내 허리에도 오지 않는 유치원 여자 꼬맹이들이 우글우글하다. 유치원 마치고 집에 가는 모양이다. 선생님이 뒤에서 아이들을 인솔하고 있다.
그런데, 애들이 엘리베이터에 안탄다. 다들 눈 크게 뜨고 나만 보고 있다. 선생님이 “왜 안타니? 빨리 타~” 한다. 왜 안탈까? 설마 나 때문에? 바람이 불어서 머리가 흩날리는게 거슬려서 머리를 묶고 있었더니 좀 위압(?)적으로 보였나부다. 가급적 적의가 없어보이는 표정으로 보이길 기대하며 씽긋 웃어준다. 이거, 몇몇 아이는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이다. 옌장.
아무리 꼬맹이라도 숫자가 많으니, 엘리베이터 안이 아이들로 바글바글하다. 제법 시끄럽게 굴 만도 한데 조용하다. 그나마 나와 멀리 있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조그만 목소리로 뭔가를 소근거리는데, 당장 내 옆에 있는 애는 잔뜩 긴장해 있다. 야! 내가 잡아먹냐!
아무튼 쪼그만 애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으니 이것도 나름대로 너무 귀엽다. 병아리가 생각났다. 노오란 병아리. 아우 깨물고 싶어!

1층에 내리자마자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밖으로 탈출한다. 우다다다 막 뛰어간다. ㅜ.ㅜ

다시 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온다. 여전히 하늘은 먹구름이 낮다. 이어폰에서 닉꾸 드레이크 동생 (4년 전만해도 형님이었으나 이제는 동생인) 의 노래가 나온다. 이거, 절묘하게 이런 날 어울리는 목소리와 멜로디다.

그러고보니 며칠 전에 로이 부캐넌의 기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블로그에 공지 때려서 얼굴을 알던 모르던 다 함께 신림동 레드 제플린이나 가서 주인형님 욕할때까지 로이 부캐넌 신청하기, 였는데 지난 주는 한참 아파서 그러질 못했다. 옌장. 올해가 30주년인데.

잠자리

뭘 검색하다가 2002년도 출시된 케빈 코스트너 주연의 ‘dragonfly’란 영화 사이트에 들어갔다. 아, 케빈 코스트너… 이 아저씨는 뭐하고 지내는가. 니콜라스 케이지엉아는 요즘 날아댕기더만.

아무튼 2002년도 출시작인데도 아직까지 공식 홈페이지가 운영되고 있다. 들어갔더니, 사이트를 보기 위해서는 7가지 질문에 답해야 하며, 질문에 모두 답하게 되면 자신의 ‘영성’을 알려준단다. 아무튼 내 결과는 이렇다.

While your are a believer, there is a part of you that is unsure about the supernatural. You can appreciate the idea of life after death, near death experiences and the paranormal but aren’t ready to fully accept these theories. Among your peers, you’re on the fence: Not a quite a believer, but open to all possibilities.

어라, 그럴싸하지 않은가? 경계에 있다는 것. 언제까지나 양 영역 모두에게 이방인이며, 정처할 수 없다는 것. 이토록 시리게 설레이는 일이 또 어딨겠는가.

사이트 주소는 알아서…

나는 살아있다

이걸 정신적인 문제라고 하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육체적인 문제라고 하면 사실 요즘 좀 많이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한 일주일 동안을 딱히 어디가 심하게 아픈 것도 아니면서 또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만큼 주저앉아 있었다. 광복절 전날엔 조금 나아져서 일때문에 밖에 나갔다가 술을 조금 했는데, 이제 몸이 맛이 가려는지 다음 날 피를 한바가지 토했다. 정말 맛가겠더군. 집엔 아무도 없는데, 병원엔 가야 할 것 같고 몸은 움직이질 않고… 간신히 인터넷에서 검색해봤더니 ‘심신 안정’ 하라고 해서 일단 아무 것도 안하고 가만히 누워만 있었다. 이틀을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결국엔 병원 안갔음.)

몸이 이러니 기계도 보조를 맞추려고 하는지 이번엔 핸드폰이 갑자기 고장나버렸다. (기존 번호에서 앞부분만 010으로 바뀌었음.)

지금은… 정신이 멍하다. 자동으로 하이버네이션 모드로 들어간다. 언젠가 누가 내 덮개를 열면, 그제서야 난 또 움직이겠지. 잠깐만 좀 멍하니 있자. 그래도 아직 살아 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