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치고 부자증세! 닥치고 기본소득! 용산철거민살인진압규탄

오랫만에

카테고리:서울나기 날짜:2009/09/23 18:59 작성자:kirrie
오랫만에 블로그를 찾는다. 내가 최근 블로그를 찾는 경우는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하기 위한 것을 빼고는 거의 없다. 트위터도 가끔 하는데, 예상외로 생각을 140자 내로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지난 일요일에는 워냉과 워냉 회사 대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낚시를 다녀왔다. 바다 갯바위 낚시였는데, 나는 반팔에 모자도 없이 가서 새까맣게 타버렸다. 덕분에 이번주 사무실 개발팀은 내내 나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더 몇 주 전에는 사랑니를 뽑았다. 뽑는 도중이나 마취가 풀리고 난 직후라던가, 그로부터 이삼일까지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소독을 위해 그 후에 한번 더 치과를 방문했었고 의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당연한 일이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게 기분 나쁠 정도라는 표정으로 '당연히 안아프게 뽑아드려야죠. 그리고 사랑니가 곧게 잘 나서 수월했어요.' 하더라는.
사랑니를 뽑고 솜뭉치로 지혈하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이제 사랑같은건 다신 못할꺼야.' 하고 되뇌여봤는데, 사랑니를 뽑았다고 사랑을 못하게 되는건 아닐테고 그냥 있던게 사라져서 허전한 것일테다. '앓던 이 빠지듯'이란 속담, 누가 처음 생각해낸 것인지는 몰라도 참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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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좀 깎아요, 그 잘생긴 얼굴 가지고 왜 그런데.'

하고 에밀리는 톰에게 질문한다. 톰은 웃으며

'예술가의 마음에 대해서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이 만화를 먼저 보세요.'

한다. 두컷짜리 짧은 만화인데, 주인이 자신의 개 '진져'에게 야단을 친다. '너 이놈 자식 쓰레기통 뒤지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어!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그 위에는 '당신이 말하는 것' 이라고 쓰여 있다.
다음 컷에는 '당신의 개가 듣는 것' 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개는 'XD#@$DFG 진져 #$DFSFD!!...' 라고.

역시 사람 (예술가나 사람이나) 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다. 톰은 '당신의 모든 질문 가운데서 "그 잘생긴 얼굴" 밖에는 안보이는군요.' 하고 웃는다.

뭐 그렇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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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23 18:59 2009/09/23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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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졸라

카테고리:서울나기 날짜:2009/08/18 23:14 작성자:kirrie
문득 고개를 돌리니  BBC 월드 뉴스에서 김대중 서거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술집 안은 시끄러웠고 애초에 화면만 보는 텔레비젼이었으므로, 게다가 뉴스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한마디 알아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하고 다시 떴다. 이번에는 티아라 쇼 시즌 4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그가 그녀의 쇼에 출연했을 당시를 회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여섯, 열넷, 열여섯살의 미국 애들이 나왔다. 타이틀로는 '(오바마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미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열여섯살의 데이비드' 뭐 이런 것이었다. 티아라는 그 중에 열여섯살 먹은 흑인 소녀에게 대통령 선거 당시 가족이 참여했던 오바마 선거 유세에 대해 물었다.

"할아버지가 '내가 죽기 전에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다니 참 감개가 무량하다'고 하셨어요."

티아라의 눈물이거나 열여섯살 흑인 소녀의 감회 같은건 사실 우리가 자본을 소비하는 새로운 양태라고 생각한다. 체의 티셔츠이거나 자서전 같은게 '소비'되는 것처럼. 그런데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가 있을까. 에이 씨발, 그런게 어딨어. 사는거 자체가 다른 존재를 씹어먹는 죄악의 연속인데, 소비는 죄다 나쁜거지. 어쨌든.

그래도 그 눈물을 믿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순도 구십구쩜구퍼센트의 개뻥이겠으나, 그래도 영쩜영일퍼센트 정도의 진실이란게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거다. 삼성카드로 엘지데이콤이나 아이엔아이, 모빌리언스 같은 결제대행사를 통해 대략 결제당 이퍼센트에서 사퍼센트 사이의 수수료를 물고 저 머나먼 나라의 머나먼 가난에 기부하는, 쪼금 아이러니컬한 상태를 인정하고 싶은거다.

이런 상황에서 당위를 말하는건 정당하다. 왜냐하면 당위가 당위가 아니니까. 아무도 선하게 살지 않는데, 선하게 살자는 당위를 말하는건 혁명을 하자는거다. 혁명을 하자는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씨발 그럼 애새끼들도 바꾸게?), 내적으로는 보수지만 외적으로는 진보의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라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부터가 원자수준에서 변하하자는거다. 이제 제발 '유년기의 끝'을 보자는거다. 꼰대들이 아무리 졸라게 세상을 부여잡아도 애들은 점점 더 이해 불가능하게 변한다. 어른들을 능가한다.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란 이야기다.

테드 창이 그랬다. 니가 인정하건 인정할 수 없건 간에 우리는 이미 변화의 도중에 있으며, 오직 환상 속에서 귀환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세상을 이전 상태로 고정시키려고 시도한다. 나는 그걸 정치적으로 (누가 뭐라든!) 읽었으며, 그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제도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다.

술 좀 먹어서 말이 자꾸 꼬리를 문다.

나는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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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8 23:14 2009/08/18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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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kirrie
    2009/08/28 16:09 PERMALINK M/D REPLY

    아 티아라가 아니라, 타이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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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quor shot to le guin!

카테고리:원맨쇼/책 날짜:2009/07/14 23:47 작성자:kirrie
르귄에 대한 감회를 짧게 트위터에 올렸더니 @jaeyun 님이 바로 리플을 달아주시는데 내용이 이랬다.

'liquor shot to le guin! liquor shot to all the dragons in Earthsea!'

최근에 재출간된 르귄의 '어둠의 왼손'을 오늘 다 읽고 나서야, 나도 같은 감회에 충분히 젖을 수 있었다. 나 역시 르귄에게 한 잔을! (맥주긴 하지만...)

르귄여사, 하면 꼬리표처럼 따라오는 '장르문학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온다면 단연코 첫번째 수상자가 될' 이란 수식어에 피식한 적도 있었는데, 이상하게 예전에 잠깐씩 훑고 지나갔던 르귄은 당최 가까워지기 힘든 작가였기 때문이다. 그 말랑말랑한 수사며, 미몽에 찬 세계를 방황하는, 실존적 고뇌에 가득찬 주인공들은 심정적으로야 공감이 가지만서도 도무지 머리로는 이해 불가능한 작자들이었다.

어둠의 왼손을 읽어나가면서도 은근슬쩍 짜증이 나기도 했다. 대체 왜 지들끼리 (행복하게?) 지지고 볶아대는 게센 행성의 인민들에게 에큐멘의 동맹이 되기를 강요해야 하는가? 자기 신념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외부세계로 확장될때 그것이 얼마나 큰 폭력이 되었던가는 우리가 이미 역사를 통해 절실하게 통감하고 있던 것 아닌가. 에큐멘은 결국 멋지게 포장된 서구 열강의 식민주의에 지나지 않는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그러나 일단 다음 문장을 만났을때 나는 지하철 안에서 부끄러움도 잊고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 앉을뻔 했음을 고백한다.
'아니오. 제가 말하는 애국심은 사랑이 아닙니다. '공포'입니다. '타인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것이지 결코 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증오와 분쟁. 침략, 이 모든 공포가 우리들 안에 있습니다. 우리 안에서 매일같이 자라고 있습니다. 해마다 깊어져 가고 있습니다.'
- '어둠의 왼손' p39
그리고 앞부분의 이 문장은 한참 뒤에 가서야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으로 성찰된다.
'오르고린 사람들은 요리하는 방법을 모르거든요. 그런데 제가 오르고린을 싫어한다고요? 아니오,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어떻게 한 국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티베는 물론 그런 말을 합니다만, 제게는 그런 재주가 없어요. 나는 그 나라의 사람들을 알고 도시들을 알고, 농장과 언덕이며, 강과 바위들을 알고, 가을이 되면 구릉에 태양이 어떤 모양으로 지는가를 알고 있지요. 그런데 그런 것에 경계선을 긋고 이름을 붙인 다음, 이름이 붙여지지 않은 곳은 더 이상 사랑해선 안 된다니 대체 그 이유가 뭐지요? 그리고 자기 나라를 사랑한다는 건 또 무슨 말입니까? 자기 나라 아닌 곳은 미워하고 증오해야 한다는 말인가요? 그건 결코 바람직하지 않지요. 오히려 자기중심적인 사랑이 아닐까요? 물론 그것도 중요한 것입니다만 미덕이 될 수는 없지요. ...... 인생을 사랑하는 만큼 나는 에스트르 영지의 언덕들을 사랑합니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사랑에 증오의 경계선은 없어요.'
- '어둠의 왼손' p 271
현미누나는 오히려 후반부로 갈 수록 주제의식이랄까 하는 것들이 희미해지는 바람에 (겐리와 아스트라벤의 엑소더스가 그리도 지루했다는) 생각했던 것만큼 후한 점수를 주기는 힘들 것 같다고 했지만, 나는 오히려 피상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도 있는 게센과 에큐맨, 개인과 사회, 국가와 국가 간의 복잡하게 얽힌 이해 관계들에 대한 르귄의 주장이 후반부의 두 남녀(?)가 오르고린을 탈출하며 겪게 되는 개인적인 체험들로, 즉 이해 가능한 모습으로 녹아드는게 아닌가 싶었다.

뭐, 게센인의 독특한 생리적 특징들에 대한 알레고리를 더욱 적극적으로 살려내려는 시도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서도.

아무튼 어둠의 왼손을 읽고 단숨에 르귄의 팬을 자처하게 되었고, 헤인 시리즈를 구매목록에 넣어두었다. 어스시 시리즈는 일단 좀 두고 봐야 할 것 같다. 퍼언 연대기나 테메레르를 (이것도 구매 목록에 넣어 두었다. 르귄 작품은 아니지만.) 다 읽고 난 다음엔 어스시도 읽고 싶어질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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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23:47 2009/07/14 2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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