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다시 깐 바람에, 이전에 종종 기분전환용으로 즐기던 게임들과 완전히 바이바이 해버리고 말았다. 길드워는 누군가의 말처럼 유료화 되자마자 길드워는 어떻게 먹으면 맛난 음식인데?가 되어버렸고, 워록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잔인해서 하기가 싫어졌고, 잠시 좌백과 진산 부부가 공동으로 개발에 참여했다는 가십때문에 시작했던 구룡쟁패도 일주일만에 초단순반복형 레벨링이 지겨워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별로 미련도 없고 미련하게 다시 게임들을 다운받아 인스톨하는 것도 귀찮아서 죠이스틱을 사서 동생이랑 비행기 슈팅게임이나 하고 그랬다.
lunamoth님의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관한 글을 보다가, 그럼 이거나, 하는 심정으로 클로즈드 베타테스터에 신청해서 이틀 전인가 당첨(?)이 되었고 클라이언트를 다운받아 잠시 플레이해본다.
이제 뭔들 ‘억!’ 한게 없다. 육개월 전이었으면 아마 식음을 전폐하고 달려들었을텐데, 지금은 모든게 시들하다. 차라리 멍하니 음악 들으며 가을로 깊어지는 맑은 공기를 감상하는게 오히려 더 즐겁다. 어쨌든.
롤플레잉 게임이란게, role playing game이다. 역할극 놀이. 게임 내에서 나는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창조된 새로운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 보는 것이다. 시금털털한, 대한민국 이십대 후반의 청년으로 살아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벗고 다른 ‘내’가 되어본다.
어떨까? 즐겁지 않나? 나는 그래서 빈약한 진실을 더 사랑하게 된다. 결국 사람든 돌아와야 할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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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라는 지평의 확대. 16세기 초 대양항해기술의 발달. 성공, 부와 명예. 확장, 정복. 편가르기. 발견하면 그야말로 모두 내것이 되던 시절. 그러나 발견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재앙의 시작이었던, 또 그런 시절.
리스본 뒷골목에서 태어난 kirrie. 태어난 직후 부모에게 버려져, 당시 리스본의 실력자였던 바스톨로뮤가 지원하는 성당 직할의 고아원에 맡겨진다.
매사에 무기력하고 항상 희미한 예감의 냄새를 따라 불투명한 스테인드 글라스 저 편, 푸른 바다만을 그리워하는 나날이 계속되다가, 그녀 나이 십칠세에 고아원을 탈출하여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는 배에 밀항한다.
… 그리고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십년 후. 그녀는 리스본에, 왼쪽 눈가에 생긴 긴 흉터 그리고 얼마의 돈과 함께 돌아온다.
“십년.”
십년. 입밖에 내어 보지 않으면 그녀 자신이 세월을 실감할 수 없을 것 같아 내뱉은, 짧막한 첫마디. 부둣가의 소음 사이로 곧, 십년은 묻혀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굉장히 불쾌한 묘사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폭풍우 뒤 많은 모래가 쓸려간 해변에 삐죽히 드러난 난파선 조각같은 지난 십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 부둣가에서 그녀가 산 럼주를 단 한잔이라도 마셔 본 뱃사람이라면 한달이나 두달쯤 계속해서 토해내도 다 토해내지 못할 만큼 방대한 그 이야기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찬찬히 듣고 기억하며 가슴 아파해야 한다. 우선은, 그 흉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어디서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 그녀를 거쳐간, 혹은 그녀가 거쳐간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나 우린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웅크려 있거나 주점에서 매우 취해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시시컬컬한 농을 주워섬기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많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 이 부두의 누구나 조금씩 손대본 밀교역도 하지 않고 (사실은 재주가 없어 항상 손해를 본다.), 그저 가끔 주점을 찾는 의뢰인들로부터 들어오는 해역의 조사나 소문의 진상을 파해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제법 일처리가 꼼꼼해서 단골로 그녀를 찾는 의뢰인도 몇몇 생겼다.
그녀의 꿈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무인도를 발견하는 것과 고아원에서 헤어진 동생 세나를 찾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동생과 함께, 고원과 같은 무인도에서 살아가려는 것 같다.
몇몇 남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지만,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만큼 가까워지진 않았다.
자주 하는 말은 ‘너나 잘하세요.’다.
리플레이 소설! 멋집니다. / 하루정도 항해하고 그대로 항구에 도크네요… 아직까지 2D에 익숙한지도 모르겠고요…
소설.. 은 아니고 그냥 대항해시대 내에서의 kirrie란 캐릭터에 대한 제 나름의 설정 자료랄까, 하는 기분으로 끄적여 본거에요. ^^;;
전 패키지로 대항해시대를 해본적이 없어서 처음에 적응하기가 좀 어려웠는데, 의외로 항해하는 재미가 좀 있더라구요. 해거름에 수평선으로 해가 지는 모습도 장관이고. ^^
난 대항해시대 1을 xt시절에 진짜 열심히 했었어. 용산에서 중고로 구입한 애드립카드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신기해서 더욱 빠져들었었나봐. 히히. 나중에 알고보니까 그 음악중에 칸노 요꼬가 만든것도 있더군.
사실 이 대항해시대 온라인을 시작하게 된 것도 음악에 힘입은 바가 크다. 거기 넷마블 사이트에 들어가면 배경음악이 나오는데, 뭐랄까, 난 이런 음악들에 약한가봐. 전에 테일즈 위번가 하는 것도 배경음악이 좋아서 잠깐 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