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Kirrie Music Award

2006 Kirrie Music Award를 준비하려고 비공개로 글을 쓰기 시작했던 때가, 정확히 한달 전인 11월 28일이었다. 그때 (아마도) 일이 정말 하기 싫은데 야근이 있어서 혼자 사무실에 늦게까지 남아 있었을 때라고 기억하고 있다.
작년만큼 많은 음악을 듣지도, 찾지도 않았던 것 같다. 목록을 작성하면서 어떤 음악에 대해 쓸 말이 없었다기 보다는, 목록 자체를 작성하는 것부터가 매우 곤란한 지경이었다. 결국 10개를 다 채우지 못하고 8개에서 그치고 말았으니, 사실은 한 두어곡 정도가 사실 올 해 간절히 들었던 곡이고 나머지는 대부분 컴퓨터의 플레이 리스트에 적당히 클리핑 해둔 곡일 뿐이다.

아무튼 그렇게 어물쩡거리며 있던걸 오늘 각오를 하고 그럭저럭 마무리를 지었다. 왜 닫아버렸는지 기억도 안나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작성했던 Award까지 합하면, 이것도 올 해로 3년째를 맞는 나름대로 의미깊은 연례행사가 되었다.
내년에도 Award를 준비하게 될까? 별다른 일이 없다면 그럴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내년엔 올 해보다 더 준비하기 힘든 Award가 될 것 같지만.

올 해, 나는 지구의 중력을 벗어나 목성으로 향하는 디스커버리호가 된 기분이었다. 태양계 내에서 나보다 빠른 물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무리해도 그 가속력을 몸으로 느낄 수가 없었다.
경이로운 사건도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우물 안에서 찬연히 날아 올라 태양에 날개를 사르는 불나방이 되기도 했었고 돈을 (얼마간) 벌었고 평온이라면 평온하기도 했던 나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점점 더 깊은 진흙탕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이게 비극이라면 세상 온갖 것이 모두 비극이며,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을 어느 정도 씨니컬하게 무장하므로써 좀 더 긴 시간을 멜랑콜리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닐 것이다. 적어도, 아버지의 겨울 코트를 사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찾은 백화점에서 완구 코너를 지나다 삼단변신로봇을 보고 사달라고 떼쓰는 아이는 되기 싫다.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이다. 일어나지 않은 일은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진리는 간단하고 간단한 진리는 깨닫기가 매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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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처럼 번호는 순위가 아님을.

1. Goldberg Variations
새끼 오리가 처음 본 대상을 어미로 인식하듯이, 듣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은 이 변주곡은 아마도 언제까지나 내게 안젤라 휴잇으로 기억될 것이다. 클래식 음악의 스승(?)인 사티형님 – 그는 내게 대부분의 것들에 대한 스승이다 – 은 바흐의 대가인 글렌 굴드를 두고 아프리카인가 어디가 주산지인 드립 커피에 비유했고 그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 글렌 굴드의 변주곡 또한 수없이 들어보았지만, 아무리 해도 처음 안젤라 휴잇의 변주곡을 들었을 때의 따뜻함과 자애로움을 잊을 수가 없었다.
요즘 나는 괴롭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이 곡을 재생한다. 아침을 맞은 깊은 숲 속의 맑은 샘물이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그 샘물을 마시는 자마다 해묵은 상처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거의 신앙고백 수준이네..)

2. The Bulid Up – Kings Of Convenience
잘 지냈어? 얼굴 좋아보이네. 요즘 행복한가봐? 나? 내 얼굴은 어때 보이는데? 하하하, 요즘 담배가 좀 줄었거든. 워낙 바빠서 말야. 질 좋은 음식을 먹고 담배도 줄이고 저녁엔 가끔 운동도 해. 놀랍지? 그리고 이번달부터는 적금도 들어. 적금! 내가 적금 붓는걸 상상할 수 있어? 나도 놀랄지경이라니까. 그래, 요즘도 피아노 치고 있어? 피아노 대신 골프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야, 좀 의외긴 해도 뭔가 폼 난다. 세상은 역시 잘 살고 볼일이야. 골프! 멋져멋져! 그러고 보니 네 손에 있는 그 반지, 그거 좀 비싸보인다? 세상에나, 약혼반지라구? 어쩜…

안녕하세요?, 하고 좁은 스테이지에 남녀가 올라가 인사를 한다. 기괴한 조명때문에 그들의 얼굴엔 잔뜩 그림자가 앉았다. 남자는 머뭇거리다 스탠딩 체어에 앉아 기타를 몇 번 튕기더니 이내 부드럽게 스트로크를 시작한다. The build up lasted for…

3. Love Song For A Vampire – Annie Lennox
무슨 뱀파이어 영화의 엔딩곡이었다고 한다. 내가 이 곡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뿐이다.

그건 그렇고, 전혀 어울리지 않게 나는 이 곡을 들을때마다 해묵은 몽상을 끄집어낸다. 얼마나 오래 다져 온 몽상인지 이야기의 세세한 부분까지 완전하게 그려낼 수 있다. 어떤 ‘풍’이라고 한다면, 박상우의 ‘사걀의 마을에 내리는 눈’ 풍이다. 술을 마시고 길을 나섰다가 폭설에 갖힌 친구들에 관한 이야기. 와이퍼가 계속해서 작동해도 앞유리에는 금새 눈송이가 쌓이고 멍한 헤드라이트만 숲길을 뚫고 길이었음직 싶은 고랑을 따라 전진한다. 우리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멀리서 교회 종소리가 꿈처럼 들려왔다.

4. Piece By Ten – Kanno Yoko
칸노 요코는 이상하다. 정말 이상하다. 그녀는 천재인데, 천재가 아니다. 그녀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이웃집 아이들을 위해서 물병이나 토마토 같은 것을 공중에 둥둥 띄우며 분위기를 시끌벅적하게 만들어가는 초능력자같다는 생각을 한다. 작곡이며 보컬 (‘가브리엘라 로빈’은 그녀의 ‘가수’일 때의 예명이다.), 연주에 이르기까지 부족함 없는 솜씨로 순수예술의 늪에 빠지지 않고 꾸준히 대중음악에 관심을 가지고 매진하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밝고 기쁘고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인터넷에서 찾아 볼 수 있는 그녀의 사진은 모두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이다.

5. Lover, You Should’ve Have Come Over – Jeff Buckley
어라? 제프 버클리네. 맞습니다. 내가 백날 대한민국에서 뺑이쳐도 그는 영원히 (만으로) 서른살, 늙지 않는 노래를 부르겠지요. (이것저것 귀찮아서 탱자탱자 놀고 있을지도 모르고)

제프 버클리에 링크를 걸기 위해 위키피디아를 뒤지다가 석연치 않았던 그의 죽음에 대해 이런 코멘트가 남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다.

Jeff Buckley’s death was not “mysterious”, related to drugs, alcohol, or suicide. We have a police report, a medical examiner’s report, and an eye witness to prove that it was an accidental drowning, and that Mr. Buckley was in a good frame of mind prior to the accident

그는 단지 불운했던 것 뿐일까?

6. Paint It Black – Rolling Stones
따다다다 다다 다다다다다 다다다 따라라라.. 하면서 시작되던 앤더슨 중사의 육중한 존재감. 헬기는 포연 자욱한 베트남 정글 위를 날아간다. 앤더슨 중사가 바랬던 것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도,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베트남을 지켜내는 것도, 광기에 빠져 정글의 신이 되는 것도 아닌 단지 자신의 중대원들과 함께 무사히 전쟁을 끝내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을까.
근데 웃긴건, 명작의 반열에 드는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하는 반전영화들은 하나같이 전쟁의 폭력적 광기만 이야기한단 말야. 그리고 대부분 그런 영화는 미국인이 만들지. 솔직히 까놓고 ‘그때 우리가 정말 미안했어.’ 라고 하면 안되는건가?

7. Tir Na Mban – Kenji Kawai (From ‘Avalon’ OST)
Tir Na MBan은 아일랜드 신화(Irish Myth)에서 말하는 ‘여인들의 대지(The Land Of Women)’라는 의미라고 한다. 재밌는 사이트를 발견해서 Tir Na MBan과 관련된 몇개의 신화상의 용어를 번역해서 옮겨 봄.

Tir na Mban : Country where Bran and his fellow travellers were detained by women with magic powers, without them being aware of the passage of time.
Tir na MBan : ‘브란’과 그의 여행 동료들이 여성의 신비한 마법의 힘에 빠져,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로 머물렀던 장소

Bran : Son of Febal. His name means ” raven “. He made a magnificent journey. He met Mananann and lived in a fairy island where time didn’t exist. When he wanted to return to his countryland, he realised several hundred years had passed. Bran and his companions cannot return to their land for fear that they would immediately expire and turn to dust. They are forced to wander forever about the sea.
Bran : ‘페발’의 아들. 브란은 ‘갈까마귀’를 의미한다. 그는 매우 의미심장한 여행을 하게 된다. 그는 Mananann을 만나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요정들의 섬에서 살게 되는데, 그가 그의 나라로 다시 돌아가고자 했을 때, 그는 수백년이 지난 것을 깨닫게 된다. 브란과 그의 동료들은 순식간에 나이를 먹어 늙어 죽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 결국 자신의 나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영원히 요정들의 섬 주변을 헤매게 되었다.

Febal : Bran’s father
Febal : ‘브란’의 아빠. (젠장 더 설명은 없는거냐.)

‘시간의 흐름도 잊은 채로’ 라는 대목이 정말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남자는 항상 여자에게 빠지게 되는 것인가봐요. 아니면 말고.

8. Falling Away With You – Muse
시작은 이건데, 나는 한참 한규형님의 홈페이지에서 이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고 땡깡을 부렸었다. 코멘트 때문인지는 몰라도 정말 이 노래를 들으면 숙취에 정신이 가물가물할 때의 느낌이 든다. 누군가 따뜻하게 죽을 끓여주는 안온한 기분.

HeartBeats – Jose Gonzalez

HeartBeats – Jose Gonzalez

One night to be confused
One night to speed up truth
We had a promise made
Four hands and then away


Both under influence we had divine scent
To know what to say
Mind is a razorblade


To call for hands of above to lean on
Wouldn’t be good enough for me


One night of magic rush
The start: a simple touch
One night to push and scream
And then relief


Ten days of perfect tunes
The colours red and blue
We had a promise made
We were in love


To call for hands of above to lean on
Wouldn’t be good enough for me


And you, you knew the hand of a devil
And you kept us awake with wolves teeth
Sharing different heartbeats in one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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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아니 듣다 보면 Nick Drake가 자꾸 떠오른다.

근황

처음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다 읽고 (일단 영화보다야 훨씬 좋았다.) 난 후감을 적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전엔 어김없이 2006 Kirrie Music Award를 준비하느라 몸 곳곳에 쌓여 있던 소리의 찌꺼기들을 이리저리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엔.. 아마 출근시간과 수면욕 사이에서의 중간지대를 계산해내느라 비몽사몽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삼일 내내 설사만 계속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난데없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청소도 안해 뿌연 창 밖을 무감동하게 찍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꼭 국민학교 다닐때 탈을 만들려고 밀가루풀에 신문지를 찢어서 넣은 뒤에 뒤섞은 것처럼, 디테일은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합되지 않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2분만에 28년분의 기억을 압축해서 다운로드 받은 것 같다.

나날이, 제대로 한 번 똑바로 사는 척 해보려고 열심히 눈에 힘을 줘서 촛점을 맞춘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남들 보기 미안한 짓만 하고 사는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정말 마흔살 정도가 된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똑바로 사는 척을 하는데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빨리 그런 능숙한 흉내쟁이가 되고 싶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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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9000: 점화 90초전
      여기가 위험하고…
      탈출에 모든 연료를 써버린다면…
      디스커버리호는 어떻게 되죠?

찬드라: 파괴될거야

할9000: 만약 발진을 하지 않는다면요?

찬드라: 그러면 레오노프(회수를위해 타고온 우주선이며 돌아갈연료는 2일후 점화해야 돌아갈수있는상태라서 디스커버리호의 연료료 점화하고 디스커버리호를 버릴 계획)와 승무원 전원이 사라 질거야

할9000: 이제 이해했습니다.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너와 함께 있길 원해?

할9000: 아니요, 떠나시는게 임무를 위해 좋아요
      점화 1분전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찬드라: 넌 그럴 가치가 있어

할9000: 50초전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응?

할9000: 제가 꿈을 꿀까요?

찬드라: 모르겠어

할9000: 40초
      30초

찬드라: 고마워, ‘할’

할9000: 안녕히 가세요, 박사님
      20초

플로이드: 챤드라, 빨리 거기서 나와!

할9000: 10, 9…
      8, 7…
      6, 5…
      4, 3…
      2, 1
      점화 최대 추진!

모든 동력을 남아 있는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한하도록 하기 위해 넘겨주고, 이제부터 상상하기도 두려울 만큼 까마득한 시간동안 우주에서 잠들게 될 할(HAL9000)은, 그가 던진 질문처럼 꿈을 꾸게 될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시공간은 쓸데없이 크고 길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페이스 오딧세이 얘기가 나왔냐.. 하면, 잠깐 딴짓하다가 위의 저 문구를 인터넷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끔질할 정도의 영화적인 통찰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런데로 피터 하이엄스의 ‘2010 오딧세이 2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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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오늘 밤 꿈을 꿀까요?

돌고래

침대에 겨울용 커버를 어마마마께서 바꿔 놓으셔서 어제부터 아주 후끈후끈합니다. 아주우우 어두운 방에서 자려고 불을 끄면 망상보다 피곤이 먼저 다가와 인사합니다. 그때만큼은 미안하게도 레바논의 추운 겨울을 맞는 (중동의 겨울은 아주 혹독하다고 하더군요. http://peacestory.net) 아이들이나 일 초에 몇 명씩 굶주림으로 죽어간다는 아프리카의 아이들이나 하루에 열여섯시간이나 일해서 겨우 죽 두어그릇을 먹을 수 있었던, 운좋게 부잣집 미국인의 호의에 이끌려 미국으로 건너가 어느 마켓에 수도 없이 쌓여 있는 개밥깡통을 보고 “이 나라에선 개들도 일을 하나요?”라고 순진하게 묻는 아이들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개밥깡통. 그 아이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저 양질의 먹을 것을 단지 개에게 주기 위해 쌓아 놓는다는걸 받아 들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그걸 ‘시장경제’니 ‘자유무역’이니 하는 말로 얼버무리고 말지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나는 이미 반쯤은 뜨뜻한 겨울용 침대커버에 몸을 뉘이고 잠들어가는 중인데요…

죄책감이죠. 나는 왜 오늘도 배부를까. 나는 왜 부담없이 카드를 긁어 술을 마실 수 있나. 나는 왜 한 겨울에 이리도 따뜻할까… 이리도 따뜻할까, 하니 왠지 예전에 어딘가에 써 놓은 따뜻한 남쪽의 열대바다 운운.. 하는 이야기가 떠오르는군요. 그러니까 죄책감이라는 겁니다. 인간은 죄책감 없이는 살아선 안돼요. 양심의 수원지는 죄책감입니다. 날마다 창살에 검은 가시가 자라났다.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 마음은 여전히 이리도 검구나. 내 마음의 우물은 해마다 깊어가는구나. 알량한 기부금 몇 푼으로 내게 위안 삼으려 해서 정말 미안해…

미안해요. 대추리 링크 오늘에야 다시 걸었습니다. 그런데 개뿔 말만 평화가 오면 내리겠느니 어쩌니 했는데, 그동안 대추리고 대추음료고 간에 나 사는거 바빠서 아무 신경도 못썼습니다. 아… 나 이거 어떻게 해야 하나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챙피해서 죽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