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황

처음엔 로버트 A. 하인라인의 ‘스타십 트루퍼스’를 다 읽고 (일단 영화보다야 훨씬 좋았다.) 난 후감을 적던 중이었다. 그리고 그 전엔 어김없이 2006 Kirrie Music Award를 준비하느라 몸 곳곳에 쌓여 있던 소리의 찌꺼기들을 이리저리 그러모으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전엔.. 아마 출근시간과 수면욕 사이에서의 중간지대를 계산해내느라 비몽사몽 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혹은 삼일 내내 설사만 계속 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느 날은 난데없이 카메라를 들고 와서 청소도 안해 뿌연 창 밖을 무감동하게 찍기 시작했던 것 같기도 하다. 기억이, 꼭 국민학교 다닐때 탈을 만들려고 밀가루풀에 신문지를 찢어서 넣은 뒤에 뒤섞은 것처럼, 디테일은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합되지 않고 도무지 일관성이 없다. 2분만에 28년분의 기억을 압축해서 다운로드 받은 것 같다.

나날이, 제대로 한 번 똑바로 사는 척 해보려고 열심히 눈에 힘을 줘서 촛점을 맞춘다. 나는 계속 나이를 먹을 것이다. 남들 보기 미안한 짓만 하고 사는건 아닌가 걱정되기도 한다. 정말 마흔살 정도가 된 사람들이 부럽다. 그들은 똑바로 사는 척을 하는데 더 이상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나도 빨리 그런 능숙한 흉내쟁이가 되고 싶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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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9000: 점화 90초전
      여기가 위험하고…
      탈출에 모든 연료를 써버린다면…
      디스커버리호는 어떻게 되죠?

찬드라: 파괴될거야

할9000: 만약 발진을 하지 않는다면요?

찬드라: 그러면 레오노프(회수를위해 타고온 우주선이며 돌아갈연료는 2일후 점화해야 돌아갈수있는상태라서 디스커버리호의 연료료 점화하고 디스커버리호를 버릴 계획)와 승무원 전원이 사라 질거야

할9000: 이제 이해했습니다.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너와 함께 있길 원해?

할9000: 아니요, 떠나시는게 임무를 위해 좋아요
      점화 1분전
      진실을 말씀해 주셔서 감사드려요

찬드라: 넌 그럴 가치가 있어

할9000: 50초전
      챤드라 박사님?

찬드라: 응?

할9000: 제가 꿈을 꿀까요?

찬드라: 모르겠어

할9000: 40초
      30초

찬드라: 고마워, ‘할’

할9000: 안녕히 가세요, 박사님
      20초

플로이드: 챤드라, 빨리 거기서 나와!

할9000: 10, 9…
      8, 7…
      6, 5…
      4, 3…
      2, 1
      점화 최대 추진!

모든 동력을 남아 있는 승무원들이 무사히 지구로 귀한하도록 하기 위해 넘겨주고, 이제부터 상상하기도 두려울 만큼 까마득한 시간동안 우주에서 잠들게 될 할(HAL9000)은, 그가 던진 질문처럼 꿈을 꾸게 될까?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시공간은 쓸데없이 크고 길기만 한 것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스페이스 오딧세이 얘기가 나왔냐.. 하면, 잠깐 딴짓하다가 위의 저 문구를 인터넷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스탠리 큐브릭의 끔질할 정도의 영화적인 통찰력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그런데로 피터 하이엄스의 ‘2010 오딧세이 2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도 소소한 재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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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나는 오늘 밤 꿈을 꿀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