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Kirrie Music Award

한달 동안 쓸까 말까 고민했다. 그래도 쓰기로 마음 먹고, 적어도 올 해를 넘기진 않았으니 다행이지 않은가.

어느 순간부터 사는게 브레이크가 고장난 자전거로 급경사를 내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한편으로는 넘어질까 아찔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귓가를 가르는 바람이 나를 한없이 고양시키기도 한다. 나는 힘이 들면 항상 멀리 본다. 아, 저 아래 끝도 없이 너른 평야가 있구나. 저 평야에 닿으면 달뜬 흥분과 성취감과 휴식으로 정말 아늑하겠구나 하고 생각해보는 것이다. 이건 확실히 효과가 있다. 내가 내일도 살아 있다면, 나는 아직도 앞을 보고 있는 것이다.

예전 어워드들

Kirrie Music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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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own By The River – Roy Buchanan
아무리 가사를 뒤집어 보고 세탁기에 넣어 돌려도 보고 거울에 반대로 비춰 보기도 하고 땅바닥에 질질 끌고 다녀보아도, 분명히 ‘자신을 저 무지개 너머로 데려다 줄’ 그녀를 ‘쏴 죽여야 한다’고 번역되는데 대체 그 심상이 이해되질 않는다. 이럴땐 여길 가봐야 한다. http://www.songmeanings.net/songs/view/80413/ 어차피 가사는 같으니 Neil Young의 원곡에 대한 양키들의 이바구를 디벼본다면, 가장 많은 추측이 ‘헤로인’에 관한 노래라는 것. River는 헤로인에 대한 은유로 쓰인다고도 하니, 이를테면 약을 한 뒤에 환각 속에서 자신의 ‘그녀’를 쏘았다는 개막장 스토리라는 말씀. 그런데 솔직히 이건 좀 아닌듯 하고, ‘말’이라던가 ‘차’에 관한 단순한 이야기라는 주장도 있다. 개인적으로 화자가 기르던 ‘말’을 쏠 수 밖에 없는 상황을 그린 노래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 라고 혼자 결론을 내리려던 차에, Rfeynman이 이런 이야길 하는걸 보다.

I just finished reading “Shakey” his authorized biography and in that
he says it’s not about anyone getting shot it’s about the ending of a
relationship.

말하자면 ‘Shakey’라는 Neil Young의 자서전을 지금 막 읽었는데, 그 책에 이르기를 ‘누굴 쏘았다’가 진짜 쏜게 아니라 ‘관계의 단절’을 의미한다는 것.

뭐면 어떠랴. 사실 로이 형님의 진가는 가사가 아니라 그 어두운 기타 선율에 있으니.

2. Red Right Hand – Nick Cave & The Bad Seeds
우리 학교 근처에 교회가 하나 있는데, 지금도 치나 모르겠지만 가끔 종을 쳤거든. 그걸 두고 선배가 그랬지. 너 지금 막 무슨 소리 듣지 않았니. 네, 종 치는 소린데요. 그게 바로 니 인생 종치는 소리야.

그래. 닉 형님의 Red Right Hand가 불길한 종소리와 함께 시작하는 것은 전혀 신기한 일이 아니지.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도 끊임없이 우물의 바닥을 향해 추락하는 중이거든. 아주 깊은 중력의 우물, 바닥을 치나보다 싶으면 더 깊은 곳으로 향하는 구멍이 발견되는 그런 우물. 추락하는건 날개가 있다는 개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 날개가 있으면 좀 더 멋지게 추락할 수 있을까. 멋지게 추락하는게 의미가 있을까. 추락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야. 끝없이 추락한다는 것…

3. If You Could See Me Now – Lenny Breau
유튜브에 검색해보면, 뭐 다른 것도 많지만, 원곡은 빌 에반스가 지었다. (는 것 같다.) 레니 브루가 누군지는, 검색하기 귀찮아서, 모르겠지만 그래도 이 원곡을 나름대로 분위기 있게 잘 커버한 것 같다. 빌 에반스의 원곡도 좋다. (말 나온김에 원곡 If You Could See Me Now from Bill Evans Trio 링크)

잘 자요, 내 사랑. 지금 막 잠들기 전에 우리 같이 서로를 보고 싶다는 열망에 시달렸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이불 속이 그대를 부르니 그래도 잠은 자야겠지요. 잠들기 전에 열심히 바라는 것은 꿈에 나온데요. 어제 빨래를 해서 햇볕에 바싹 말린, 청결한 냄새가 나는 이불을 덮고 시계 초침 돌아가는 소리도 없는 아늑한 방 안에서 같이 꿈을 꾸었으면 좋겠어요. 잘 자요, 내 사랑.

4. Arubaluba – Camel
오, 예. 좌- 좌- 좡- 띠리 띠릿 띠 띠 띠 띠 띠 띠 디- 띠리 띠릿 띠 띠 띠 띠 띠 디 디 디 디-
나 요즘 카멜에 미쳤삼. 카멜 만세!

5. Goodbye Cruel World – Pink Floyd

안녕, 잔인한 세상이여.
난 오늘 그대를 떠나네.
안녕, 안녕, 안녕…

안녕, 인간들이여.
당신들이 무슨 말을 해도
내 마음은 바뀌지 않아.
안녕…

별 하나에, 피지도 않은 봄 꽃
지네.

6. Storms – Perry Blake
아무리 생각해도 어디서 이 노래를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아. 나 하드디스크 속, ‘미정’ 폴더에 그냥 그렇게 처음부터 박혀 있었던 것 같아. 항상 이 노래는 이런 풍경을 떠올리게 해. 사건의 틈새, 폭풍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고 약속도 한참 남았고 전화도 없고 누가 부르는 사람도 길을 묻는 사람도 없어. 나는 그냥 정류장에 서 있어. 아무도 나를 열어보지 않아.

7. Throught the Roof And Underground – Gogol Bordello
영화 Wristcutter 삽입곡. 자살자만 가는 지옥에서 벌어지는 사랑이야긴데, 영화 참 좋다. 노래도 참 좋아.

이 마을 여기저기에 널 잡기 위한 덫이 놓여 있으면,
넌, 그래 뭐, 갈 곳은 땅 밑 뿐이라는걸 알게 되겠지.
이 방 여기저기에 널 잡기 위한 덫이 놓여 있으면,
넌, 그래 뭐, 갈 곳은 지붕 뿐이라는걸 알게 되겠지.
우우, 어쩌구 저쩌구… 가자, 가자! 아싸!

8. Here `Tis – The Yardbirds
래퍼들이 ‘세이 호오~’ 하면 관객들이 ‘호오’ 하면서 입김 불어주는거, 그거 원조가 아닐까 생각하는 정말 흥겨운 노래. 아, 광화문 한복판에서 미친척하고 누가 이 노래 딩가딩가 부르면 팔차선 전방위로 다 스크럼짜서 막고 나도 따라 부르겠고만.

9. Kashmir – Jeff Buckley from ‘Live At Olympia’
초 골까는 곡. 정규 앨범은 아닌듯 하고 아마도 라이브 공연의 곡을 누군가 녹음한 것이 나도는 것 같다. 역시 내가 (거의) 롹 역사상 최고의 보컬이라고 생각하는 제프 형아.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Kashmir 하면 레드 좌플린 형님들의 곡이죠. 이걸로 우리 제프 형아가 사정없이 웃겨버립니다.

‘(관객들이랑 이바구 막 깜)… 지금 레드 좌플린 연주하는 거에요…. 좌가좡- 좌가좡-… 이거, 레드 좌플린 연주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33 RPM (빠르기) 이잖아요. 이걸 45로 연주해볼께요. 죽여줍니다….’

온라인에서 찾을 수가 없어서 들려드리지 못함이 심히 아쉽삼. 요 옆에 제 이메일로 요청하시면 따로 보내드립니다.

10. Whipping Post – Allman Brothers Band
어디선가 찾은 리뷰에서는 당시에 레너드 스키너드와 쌍벽을 이루던 밴드였다는… 이상하게 라이브로 연주된 것만 먼저 Feel이 오는 건지, 이것도 역시 라이브 버전의 것이 정말 숨막힐 정도로 죽인다. (위키피디아에서도 라이브 버전에서야 이 곡의 풀 파워를 보여준다고 고백하고 있다.) 이런건 한밤중에 주위사람 신경 안쓰고 볼륨 최대로 해놓고 담배 뻑뻑 피우고 벌벌 떨면서 들어야 제맛.

원래 라이브 버전의 죽이는 버전은 20분을 훌쩍 넘기는터라 자비로우신 유투브의 날개 아래서는 라이브 버전을 발견할 수 없었으나, 검색 도중에 미치고 팔딱 뛸 것 같은 Whipping Post를 발견했기에 삽입합니다. 이 귀여운 아가씨의 폭발적인 기타 연주와 사랑스러운 보컬은, 당연히 원곡의 느낌과는 전혀 다르지만, 그래도 야 이런게 정말 롹이 대중문화로 뿌리 내린 양키의 저력이구나 하는 감회에 빠지게 하네요.

어쨌든 이것도 이메일로 요청하시면, 라이브 버전의 곡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술의 전쟁

주조(酒造) 선사 (조주 선사 아님) 가 하루는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의 방문을 받았다.

제자 : 선사님, 최근 친구와 만나 술집에 갔나이다. 이 친구는 한때 저와 진로그룹의 철의 동맹군을 자처하며 소주 한 잔에 별 하나를 세며 인생을 논하던 자였으나, 이제는 당연하다는 듯이 마른 안주에 맥주를 주문하며 오징어 다리 하나에 상한가를 김 한 장에 개발 호재를 이야기하니, 제자는 그 변화를 견디기 힘들었나이다. 결국 술병을 깨고 절교를 선언했으니, 제자는 좋은 술친구 하나를 잃게 되었나이다. 제자의 흔들리는 마음을 잡아 주시옵소서.

주조 선사 : 제자야, 너는 내 가르침 가운데 하나를 잊었구나.

제자 : 제자가 미욱하여 스승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겠나이다.

주조 선사 : 교과서 꺼내 오너라.

제자 : 네.

(교과서를 가져 온 제자.)

주조 선사 : 백팔십이페이지 두번째 단락 세번째 줄에 뭐라 쓰여있는고?

제자 : ‘알콜 도수 20도 이하는 음료수라 칭하며, 안주가 없을때에는 안주 대용으로 쓸 수 있다.’ 라고 쓰여 있나이다.

주조 선사 : 맥주는 몇 도인고?

제자 : 종류마다 다르긴 하나 보통 5도에서 15도 사이 이옵니다.

주조 선사 : 그럼 맥주는 무엇인고?

제자 : 가르침대로라면 음료수이옵니다.

주조 선사 : 사람이 나이가 들어 젊었을 때 두주불사하던 자도 와인과 맥주로 전향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사람이 즐기는 모든 것에는 기호가 있다고는 하나, 그것이 지나치면 종교적 숭배로 발전하게 되고 타인의 기호는 천박한 것으로 치부하게 되느니라. 제자야, 현명한 술꾼은 물 한 잔에도 호기롭게 취하는 법이며, 아둔한 술꾼은 즐비한 빈 병으로 자신의 주량을 자랑한다. 친구의 맥주 음료 애호를 그대로 사랑하도록 하여라. 너의 소주 애호를 굳건히 지켜나가라. 둘이 함께 술을 마시매, 친구는 친구대로 음료를 즐기니 좋고, 너는 너대로 안주가 없을 때 친구의 음료를 안주 삼아 소주를 마실 수 있으니 그 어찌 좋은 관계가 아니겠느냐?

옛 성현의 말씀에, ‘마시고 취하지 않으면 그 많은 술을 무엇하리오?’라고 하였다. 성현의 말씀이 의미하는 바, 술을 분석하지도 말고, 겨루지도 말며, 거창한 의미를 두지도 말라는 것이다. 술은 술이되, 술에 경중을 따지는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문제는 술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우월하려고 하는 사람의 마음에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

주조 선사의 말씀이 끝나자 제자의 마음에 홀연이 한 줄기 주향이 스치었다.

피의 책

“왜 그런 책을 읽어? 무서운 꿈이나 꾸겠지.”

– 사랑이 지겨워졌어. 이제는 공포야.

“제대로 사랑은 해 봤니?”

– 자신을 동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는 너무 금새 모든걸 깨닫는거야. 오직 내가 쉽게 깨닫지 못하는건 정신이지. 인간의 총체적 정신. 요즘엔 거기에 사랑보다는 공포가 더 닿아 있는 것 같다고 느껴.

“너 기독교인이면서도 그런 말을 해?”

–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이야. 말 안듣는다고 사십일 동안이나 전 세계를 물로 벌했잖아.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이 자애로운 애정의 어머니에서 언제든 자신의 적대자가 될 수 있는 아버지로 바뀌는 시점이 바로 그때였어. 그제서야 인간들은 깨닫게 된거지. 저 거룩한 손길이 스치기만 해도 우리 존재는 모래처럼 흩어지는구나.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구나.

“하지만 아버지도 결국은 부모잖아. 자식을 벌하는 아버지는 있어도 죽이는 아버지는, 아 물론 일반적으로 말할 때 말이야, 없잖아?”

– 그는 우리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어. 말해봐, 어째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거니.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 어째서 우리는 이 지상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지음 받은거지?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따서 우리를 완전히 만드셨어.”

– 어쩌면 네 말은 맞을지도 몰라. 인간은 완전해.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불완전해. 가장 비극적인건 보편 개념으로써 인간을 자각할 수 있는 개인은 없다는거야. 그건, 바로 내가 인간이 아닌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럼?”

– 하나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자식에게 죽임 당하는 어버이가 되기 위해 우리를 생산했어. 그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렬하게 자기 자신이 극복되기를 원해. 자기보다 훌륭한 어버이가 되기를 바라는거야. 인간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더 높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바래.

“그게 네가 말하는 공포하고는 어떤 관계인데?”

– 공포는 음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의 감정이기도 하지. 우리는 압도적인 미지의 대상 앞에서 두려워 떨며 울부짖고, 더 어두운 곳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해. 하지만 그 시점을 넘어서 자기 내부의 모든 생을 소진하고 완전히 텅 빈 상태가 될 때, 이제는 반대로 그것에게 끌리기 시작해. 그 대상의 피를 마시고 그 대상의 살을 먹으며 하나의 몸이 되려고 하지. 그것에게 굴복하는게 아냐. 바로 자기 자신이 공포 그 자체가 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세계로 변태하는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 증거는 겁쟁이들이나 찾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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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스티븐 킹이 그랬다네요. 이놈이야 말로 호러의 미래다! 한참 뒤에야 책장에 보니 이 책이 꼽혀 있는데, 대체 내가 언제 왜 이 책을 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신기한 일이죠. 바커씨가 한밤중에 몰래 꼽고 나갔나.

꽤 괜찮습니다. 찐득한 피와 살육에 대한 묘사를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다면, 그제서야 이 책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문장 묘사가 정말 일품이에요. 개인적으로 ‘피그 블러드 블루스’, ‘언덕에, 두 도시’, ‘로헤드 렉스’가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 단편을 모두 주의깊게 읽고 난 뒤에 어쩌면, 제가 위에 갈겨 놓은 낙서를 조금쯤은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섹스에 대해 이야기하다

몇 달 전이었는데, 야동을 보다가 갑자기 엄마가 들어와서 그야말로 ‘오랫만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뭐 나이 든 아들과 그런 문제로 얽히면 부모님 다들 그러실테지만, 서로 모른척 얼버무리고 넘어가긴 했는데 문제는 다음날부터 시작되었다. 대체 이 양반이 나하고 말을 안하려는거다. 뭐가 심통이 난건지 (물론 왜 심통이 났는지는 알지만) 내 옆만 지나쳐도 찬바람이 냉랭히 불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깠다. 엄마, 엄마가 왜 그러는지는 알아. 어쩌구… 그랬더니 이 양반 왈, 내가 음란하단다. 아이고, 주여. 나이 서른에 대체 음란하면 그게 얼마나 음란해야 하는것이냐. 내가 야외 노출 플레이를 즐기는 사람도 아니고 방안에 온통 살색 포스터로 도배를 해 놓은 것도 아니고 그저 간간히 육체적 외로움을 홀로 달래려는 것 뿐인데, 나이 다 찬 아들 방문 벌컥벌컥 열어대는 양반이 더 문제가 있는게 아닌가, 하고 되 따지려고 했지만 그냥 엄마 좀 이해해줘. 엄마 아들도 벌써 나이가 꽉 찼수. 하고 말았다.

섹스는 음란하다, 는 것은 아직 이 사회의 통념인 것 같다. 후배들과 이야기를 할 때도 섹스 이야기를 할라치면 다들 손사례를 친다. 물론 상대가 원치 않는 주제를 강요하는 건 상당한 문제다. 하지만 지들도 친구들끼리는 다 그런 이야기 하지 않겠는가. 지들도 다 애인들이랑 한 두번씩 경험은 있을게 아닌가. 단지 섹스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서라기 보다, 그것이 터부시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야기를 꺼리는 거라면 그거야 말로 음란한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까 우리가 그걸 ‘음란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게 음란한 것인지, 그게 진짜 음란하기 때문에 우리가 그걸 ‘음란하다’고 여기는 것인지가 바뀌었다는 얘기다.

친구들이 대부분 결혼을 앞두고 있거나 몇몇은 이미 결혼을 했다. 녀석들을 만나면 은근슬쩍 섹스 이야기를 꺼낸다. 신혼부부는 대체 주당 몇 회나 하는지, 어디서 주로 하는지, 콘돔은 사용하는지, 어떤 체위를 가장 선호하는지. 그리하여 우리의 성생활은 얼마나 익사이팅 한 것인지, 그리하여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얼마나 살아가도록 하는 것인지. 그리하여,

우리는 언제쯤 친구가 풀이 죽어 있을때, 너 요즘 섹스는 잘 하고 있니? 라고 자연스럽게 물어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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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크온섹스닷컴의 이벤트에 운 좋게(?) 당첨되어서 글을 씁니다. 첫경험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설교투로 하게 되어서 되게 찝찝합니다. 설교 별로 안좋아하는데… 그나저나 도메인 하나 참 잘 땄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