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의 책

“왜 그런 책을 읽어? 무서운 꿈이나 꾸겠지.”

– 사랑이 지겨워졌어. 이제는 공포야.

“제대로 사랑은 해 봤니?”

– 자신을 동정하는 것 가운데 하나가, 나는 너무 금새 모든걸 깨닫는거야. 오직 내가 쉽게 깨닫지 못하는건 정신이지. 인간의 총체적 정신. 요즘엔 거기에 사랑보다는 공포가 더 닿아 있는 것 같다고 느껴.

“너 기독교인이면서도 그런 말을 해?”

– 하나님은 공포의 하나님이야. 말 안듣는다고 사십일 동안이나 전 세계를 물로 벌했잖아. 그러니까 기독교의 신이 자애로운 애정의 어머니에서 언제든 자신의 적대자가 될 수 있는 아버지로 바뀌는 시점이 바로 그때였어. 그제서야 인간들은 깨닫게 된거지. 저 거룩한 손길이 스치기만 해도 우리 존재는 모래처럼 흩어지는구나. 애초에 게임이 안되는구나.

“하지만 아버지도 결국은 부모잖아. 자식을 벌하는 아버지는 있어도 죽이는 아버지는, 아 물론 일반적으로 말할 때 말이야, 없잖아?”

– 그는 우리의 생명에는 관심이 없어. 말해봐, 어째서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한거니.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

– 어째서 우리는 이 지상에 불완전한 모습으로 지음 받은거지?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을 따서 우리를 완전히 만드셨어.”

– 어쩌면 네 말은 맞을지도 몰라. 인간은 완전해. 하지만 개인으로서의 인간은 불완전해. 가장 비극적인건 보편 개념으로써 인간을 자각할 수 있는 개인은 없다는거야. 그건, 바로 내가 인간이 아닌게 되어야 한다는 말이니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그럼?”

– 하나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자신의 자식에게 죽임 당하는 어버이가 되기 위해 우리를 생산했어. 그는 그 어떤 존재보다 강렬하게 자기 자신이 극복되기를 원해. 자기보다 훌륭한 어버이가 되기를 바라는거야. 인간을 넘어서기를 바라고, 더 높은 곳에서 자기 자신을 내려다 볼 수 있기를 바래.

“그게 네가 말하는 공포하고는 어떤 관계인데?”

– 공포는 음의 감정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양의 감정이기도 하지. 우리는 압도적인 미지의 대상 앞에서 두려워 떨며 울부짖고, 더 어두운 곳에서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되기도 해. 하지만 그 시점을 넘어서 자기 내부의 모든 생을 소진하고 완전히 텅 빈 상태가 될 때, 이제는 반대로 그것에게 끌리기 시작해. 그 대상의 피를 마시고 그 대상의 살을 먹으며 하나의 몸이 되려고 하지. 그것에게 굴복하는게 아냐. 바로 자기 자신이 공포 그 자체가 됨으로써 비로소 완전한 세계로 변태하는거야.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네가 그렇게 말한다고 해서 그게 옳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어.”

– 증거는 겁쟁이들이나 찾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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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책, 클라이브 바커.
스티븐 킹이 그랬다네요. 이놈이야 말로 호러의 미래다! 한참 뒤에야 책장에 보니 이 책이 꼽혀 있는데, 대체 내가 언제 왜 이 책을 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요. 신기한 일이죠. 바커씨가 한밤중에 몰래 꼽고 나갔나.

꽤 괜찮습니다. 찐득한 피와 살육에 대한 묘사를 그럭저럭 견뎌 낼 수 있다면, 그제서야 이 책은 다른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문장 묘사가 정말 일품이에요. 개인적으로 ‘피그 블러드 블루스’, ‘언덕에, 두 도시’, ‘로헤드 렉스’가 가장 좋았습니다. 그리고 이 세 단편을 모두 주의깊게 읽고 난 뒤에 어쩌면, 제가 위에 갈겨 놓은 낙서를 조금쯤은 이해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