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work, 1976

나쁜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할 필요도 없어.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으니까. 불경기지. 모두가 이미 실직 상태이거나 실직할까봐 두려워하고 있어. 돈 들고 나가봐야 살 수 있는건 거의 없고, 은행들은 파산하고, 가게 주인들은 카운터 밑에 총을 놔두지. 펑크 빠돌이들이 거리를 점령하고 누구도 뭘 어째야 할지 모르고 있어. 아무도 언제 이게 끝날지 몰라. 공기가 나빠서 숨쉬기도 어렵고 음식도 더러워서 먹을 수도 없어. 우리는 그저 앉아서 어떤 지역 방송 아나운서가 오늘은 열다섯명이 살해당했고 예순 세 건의 강력범죄가 일어났습니다 하고 지껄이는걸 보고 있지, 마치 세상 사는 일이 다 그런 것처럼. 당신들도 이미 알고 있어, 진짜 문제가 뭔지. 미친 놈들 천지야. 온 세계가 미쳐가는 것 같아. 그래서 우린 밖엘 나가지 않지. 우린 그저 집에 앉아서 서서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좁아져 가는걸 견디고 있어. 그리고 고작 한다는 소리가 ‘제발, 적어도 이 집에서만은 우릴 가만히 놔둬요. 내가 토스터를 사게 놔둬요, 티븨를 사게 둬요, 강철 벨트가 들어있는 타이어를 사게 놔둬요, 그럼 아무 소리 안할게요. 제발 우릴 놔둬요!’ 라고 말이지. 그래? 하지만 난 널 혼자 가만 놔두지 않을꺼야. 난 네가 화내길 원해! 난 네가 데모하는걸 원치 않아. 난 네가 폭동을 일으키기도 원치 않아. 난 네가 국회의원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것도 원하지 않아. 왜냐하면 네가 탄원서에 뭐라고 써야할지는 나도 모르니까. 난 이 불경기와 인플레이션과 러시아에 대해서, 그리고 거리에서 일어나는 범죄들에 대해서 어찌해야 하는지 몰라. 내가 아는건 먼저 네가 화내야 한다는거야. 넌 이렇게 외쳐야 해. ‘나는 인간이다, 씨발! 내 삶은 가치가 있다!‘ 자, 이제 일어나. 모두 의자를 걷어차. 지금 당장 일어나 창가로 다가가. 창문을 열고 머리를 곧게 세우며 이렇게 외쳐라. ‘나는 지금 미칠듯이 화가난다! 난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무지개 여신

사실 다른 글을 적고 있다가 플레이어에서 무지개 여신 테마곡이 나와서 급선회.

진실한 멜로영화는, 두 캐릭터가 서로에게 진심이지만 그 진심이란게 결국은 가능하지 않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아닐까. 가끔 일본애들은 진짜 이런 영화들을 만든다. 러브 레터가 그렇고, 사월의 이야긴가는 보다가 히로인이 맘에 안들어서 때려 치웠지만, 무지개 여신은, 아무튼 내가 생각하는 멜로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는 그런 영화다.

그러고 보니 정말 통속적인걸 통속적이게 잘 묘사하는 무라카미 하루키도 일본 사람이지, 아마. (그러나 그를 ‘진짜 일본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의 단편 가운데 하나인 ‘토니 타키타니’를 원작으로 한 영화도 나오는 캐릭터들이 뭐 하나 제대로 안되는 그런 영화였다.

아무튼 문제는 우에노 주린데, 어찌된게 이 여자는 이다지도 싱그럽단 말인가. 싱그럽다 못해 징그럽게 푸르다. 옆에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항상 웃게 될 것 같다. 그건 그렇고, 도식화해서 무지개 여신의 연예감정도를 그려보자면 이렇다.

1. 주리사마가 남자 주인공놈을 좋아함.
2. 이놈은 주리사마를 그냥 친구로만 생각함.
3. 둘 다 대학 졸업하고 주리사마는 영화 동아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방송국에 취직함.
4. 이놈은 계속 딴 여자에만 기웃거림.
5. 주리사마 맘 상했음. 그러다 PD가 미국가라고 해서 고민하다가 미국 가버림.
6. 그 사이 이놈은 주리사마 잊어버리고 여러 여자랑 사귐.
7. 세월은 흘러흘러 주리사마가 귀국하는데, 비행기 사고가 나서 사망.
8. 주리사마 동생이 이놈한테 연락해서 장례식에 감.
9. 주리사마 방에서 기념품을 챙기다(?) 주리사마가 자기를 좋아했다는걸 깨달음.
10. 하늘 보다가 끝남.
(아, 물론 영화의 편집은 이렇게 시간순이 아님.)

결론은?

우리는 누군가를 계속 사랑한다고 믿지만 결국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아무와도 연결되지 못한다는 것. 이걸 위안으로 삼아야 하나?

기예르모 델 토로, ‘광기의 산맥에서’ 제작 추가 정보 2

영진공에서 기예르모의 헬보이 2에 관한 글을 읽다가 문득 생각나서 오랫만에 다시 델토로필름의 ‘광기의 산맥에서’ 프로젝트 페이지에 가봤다.

새로운 내용이 좀 추가되어 있어서 옮겨 봄.

What GDT Had To Say
From an interview posted on SciFi.com:

With regard to At the Mountains of Madness, I’d love to see you tackle H.P. Lovecraft in a way that hasn’t been done.

Del Toro: Me too. Me too. … Part of the arrangement with Universal–in being essentially there for now until 2017–part of the arrangement was they would finance research and development for Mountains of Madness. And we are doing it. There are many technical tools in creating the monsters that don’t exist, and we need to develop them. The creatures, Lovecraft’s creatures, the tools that exist for CG and the materials that exist for makeup effects, you need to push them to get there and we’re going to push them.

기예르모 델 토로와 SciFi.com의 인터뷰에서’광기의 산맥에서’를 떠올려 보자니, 당신이 정말 색다른 시도를 통해 러브크래프트를 재현하는걸 보고 싶다고 느꼈습니다.

델 토로 : 네, 정말 그래요. 저도 그렇습니다… 현재로부터 2017년까지에 해당하는 유니버셜사와의 협정사항이 있습니다. 내용인 즉슨, 유니버셜사가 광기의 산맥에서에 관한 제작비나 개발 사항들을 처리한다는 거지요. 실제로 그건 진행중입니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괴물들을 만드는 기술적인 방법들도 수없이 많고요, 그걸 통해서 괴물들을 만들어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괴물 말이죠, 러브크래프트가 창조해낸 생명체들. CG로 할 수도 있고 특수분장으로 할 수도 있겠죠. 그러니 당신들도 (SciFi.com) 그들 (유니버셜사) 에게 압력을 좀 넣어보세요, 함께 압력을 좀 넣어봅시다.

TORN interview, 22-Oct-2008:

And allow me to add one thing – because of all those projects, there is one that is to me – in a way I it may not be as complex and as monumental at first sight as The Hobbit, but is ‘At The Mountains of Madness’. And that movie I have kept alive for many, many years and I want to keep it alive to do as soon as I can. Right now I am fortunate that most of my projects rest at the same place, and that is Universal, including Saturn and the End of Days. So I want to send a message out that, that that movie is alive and well and that there’s a lot of research and development that has to be done to create the creatures in that movie, and the City. Some artists and key technicians have been working on for now years, and will continue to work through the production and post production of The Hobbit. Scrutinized by me, but they have their own set of logarithms and chemical materials to solve before we can create those creatures properly. So that movie is not dead – it’s not instated, it continues to evolvewith Te Hobbit. And it is my belief that a lot of the stuff we’re going to develop in terms of digital and make-up tools for The Hobbit will be used for that.

TORN 인터뷰, 2008년 10월 22일.

…그리고 하나만 더 말하게 해주세요. (왜냐하면 사실 그 모든 프로젝트들이 제게는 하나의 단일한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영화 ‘호빗’은 처음 대할 때에 매우 복잡하고 기념비적인 작품은 아닌 것처럼 여겨질 지는 몰라도 확실히 ‘광기의 산맥에서’는 그렇게 될 것입니다. ‘광기의 산맥에서’는 제가 매우 많은 시간 동안 어떻게든 시작해보려고 노력했던 작품이고, 정말 가능한 한 만들어 보고 싶은 작품이기도 합니다. 바로 지금 매우 다행스러운 사실은 제 영화 프로젝트들이 한 곳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유니버셜사죠. 그래서 (팬들에게) 이런 메세지를 전하고 싶어요. ‘광기의 산맥에서’는 잘 진행중이고, 영화에서 사용될 생명체들을 창조하기 위한 작업들도 엄청 많습니다. 그리고 이 작업들은 ‘호빗’의 제작 후에 계속 진행될꺼구요. 그런데 제가 좀 자세히 알아 본 바에 따르면, 아마 그때쯤 되면 (유니버셜사가? 혹은 다른 개발진들에 의해서?) 우리가 만들어야 할 생명체들을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것들이 이미 해결 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결론적으로, ‘광기의 산맥에서’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죽지않아!!!) 뭐 확실하게 영화가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말이죠, 그건 영화 ‘호빗’과 연계에서 계속 진행할 것입니다. 그리고 ‘호빗’에서 사용된 많은 기술들이 ‘광기의 산맥에서’에서 재사용될꺼란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결론

  • ‘광기의 산맥에서’는 죽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확실하게 제작에 착수한 것은 아니다.)
  • 예전에 언급한 워너 브라더즈사와의 ‘광기의 산맥에서’에 관한 협력은 캔슬 된 것 같다.
  • 새롭게 유니버셜사와 이 문제에 대해 타진하고 있는데 그들은 이 영화에 대해 호의적으로 보인다.
  • 현재 영화 ‘호빗’을 만드는데 (혹은 이미 만들어서 개봉했던가) 사용된 기술의 축적이 ‘광기의 산맥에서’에서 재사용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호빗은 광기의 산맥에서를 위한 프로토타입의 성격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

  • 새로운 소식이라고 기뻐했건만 열어보니 사실은 별게 없다.
  • 그냥 ‘믿어 달라, 우리는 진행중이다. (working on it)’ 정도?

관련 글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길은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눈 쌓인 둔덕들이 자그마한 음영을 만들어 내다가 이내 흰 빛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었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흰색 포드 승용차가 보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 차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는 나를 지나쳐 조금 더 달리다가 멈춰서더니, 다시 후진해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까지 갑니까?”
“그냥… 다음 마을에서 내려주시면 고맙겠어요.”


..

“멀더, 정말 그 신부의 말을 믿는거에요?”
“왜 믿지 못하죠, 스컬리? 그는 우리의 속임수를 단번에 알아차렸어요.”

멀더는 그 말을 마치더니 뒤를 돌아보며 내게 물었다.

“당신은 ‘영매’를 믿습니까? 그러니까… 초자연 현상 같은 것들을?”
“글쎄요… 적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현상들은 믿는 걸로 해두지요.”
“허, 참. 그런걸 어떻게 판단합니까? 왜 솔직하지 못하죠?”
“단지 난 그런 것들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 뿐이에요. 그런 당신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나요?”
“멀더, 그만해요. 미안해요. 이 남자는 어딘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하거든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근처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요? 갑자기 영매라니…”

멀더와 스컬리는 서로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별 일은 아닙니다. 어떤 남자가 환영을 본다고 해서 말이죠.”
“계시 같은거 말이죠?”
“네.”

눈보라는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했고 엔진 소리만 요란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런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요.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수사관에 관한 이야기였죠. 외계인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유령도, 혹은 그 이상의 설명 불가한 사건도 나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런걸 보는걸 즐겨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내가 그걸 수년간 계속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흥밋꺼리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인 두 수사관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해 가면서 ‘믿음’ 그 자체를 믿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사실 뭘 믿느냐는 중요한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린 모두 서로의 믿음을 갖고 있고 또 그런 믿음들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다는 행위 그 자체인거죠. 나는 정말 끊임없이 희구하고 경탄하고 싸워서 지켜내며 소중하게 여길 만 한 어떤 것들을 갖고 있을까…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을까… 온 세계가 나의 믿음에 대해 적대적일 때에도 나는 믿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멀더 그리고 스컬리, 그래서 말이죠.”

나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당신들은 지난 십년 간 수많은 멸시와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고 있군요. 멀더,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믿기를 바래요. 스컬리, 나는 아직 자기의 꼬리를 무는 뱀을 기억해요. 피해자가 멀더를 의지하고 멀더가 당신을 의지한다면, 과연 당신은 누굴 의지하고 있나요?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단 한 번 흔들리지 않았던 당신의 믿음 또한 나는 존경해요.”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길의 끝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린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덕분에 따뜻하게 올 수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멋적게 쳐다보았다.

“멀더, 할 말이 있어요. 핸드폰 잘 챙겨요.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스컬리에게 연락해야 해요. 그리고 스컬리. 포기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과 멀어져 갔다. 뱃 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서 길을 걷기가 수월해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눈보라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

믿는 자들의 기록
스프는 있습니다. (김진혁PD)

토니 타키타니

교보문고에 가면 가끔 DVD 파는 곳에 들린다. 이걸 어떻게 구하나 싶은 DVD 타이틀들이 3,900원이라는 초저가에 많이 풀리기 때문이다. 오즈 야스지로 시리즈도 여기서 3,900원에 구했고 (‘꽁치의 맛’을 샀고 또 뭐 하나 사서 사티형 선물로 주고, ‘동경이야기’도 있었으면 참 좋았을텐데 그건 없었다.), 에릭 클립튼 하이드 파크 공연 실황도 구했고, 거스 반 산트의 것도 몇 개 구했다.

이게 재고가 항시 있는게 아니라 준비되는대로 갖다 놓는 모양이어서, 어제 있었던게 오늘 없을 수도 있다. 엊그제는 왕가위 시리즈 (아비정전, 중경삼림, 화양연화. 동사서독이 있었으면 정말 좋았을텐데 이것도 없었다. 동사서독은 국내 개봉판이 원래의 러닝 타임이 아니라 팍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시 구해봤으면 하고 있다.) 와 ‘말타의 매’라는 고전 헐리웃 영화 (가끔 이런 영화 보면 참 재밌다.), 그리고 이 문제의 ‘토니 타키타니’를 샀다. 타이틀 다섯개를 샀는데, 값은 고작 2만 얼마. 최신 출시작 타이틀 한개 값이다.

그래, ‘토니 타키타니’. 이건 동명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을 영화로 옮긴 것이다. 한때 미친듯이 무라카미 하루키를 읽었는데, 영화 보면서 서서히 예전 읽었던 내용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감독의 주제넘은 로맨티즘이 빚어낸 참극이다. 신선한 부분도 있긴 하다. 원작을 관통하는 하루키 특유의 거리감을 (혹은 공허함을) 평면적인 각도의 카메라 앵글로 표현하려했던 부분이라던가, 관찰자의 음성이 배우들의 독백으로 처리된다던가 하는 것이 그렇다. 하지만 배우들의 감정의 누출은 최대한 절제하면서도 배경으로 흐르는 음악은 상당히 센티멘털하다. 번번히 이 센티멘털한 음악이 먹먹한 이야기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 또 원작에서 아버지가 간암으로 죽은 뒤에 물려 받은 재즈 레코드를 중고로 팔아 넘기면서 끝났던 이야기가, 끝났어야 했을 이야기가 감독의 어거지로 연장된다. 이를테면, 옛 기억들을 지워버리기 위해 과거의 흔적들을 태운다는 장면이, 그냥 그렇게만 맺었어도 좋았을텐데 굳이 거기서 2년 전에 아내가 막 죽은 뒤에 아내의 빈자리를 이겨내기 위해 채용할 뻔 했던 여인의 이력서를 발견하고 그걸 따로 보관한다. 그리고 ‘그녀가 아내의 옷방에서 울먹였던 모습이 떠올랐다.’ 운운 어쩌구.

영화 내내 빈 자리들을 보여준건 대체 무엇 때문이었을까. 상실감, 공허감은 반드시 치유되어야 할 대상인가. 꼭 사랑이 이루어져야 하는가. 이렇게 끝낼 작정이었으면서도 어째서 카메라는 매번 피사체와 거리를 두었는가. 이건 이를테면 한 입으로 두 말한 격이 되는거다.

암튼 감독을 제외하고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특히 미야자와 리에는 예뻤다. 아, 이건 연기하고 상관 없는건가? 아니 그래도 예뻤다. 73년 생이라는데, 어째 이제 갓 스무살 밖에 안된 것처럼 솜털 뽀얀 얼굴이었다. 게다가 이 미야자와 리에는 자기 역할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

뭐, 그렇다는 거다.

클로버필드, 비극의 실체에 닿은 관객들

카메라가 너무 흔들려서 토할 것 같았다. 돈주고 본게 아깝다.
너무 허무하게 끝난다.
‘심지어’ 재미없다.

… 고 말 할 사람들은, 아예 미리부터 보지 말기를 권한다. 특히 토할 것 같다고 한 사람들이 많던데, 건강상의 문제로도 정말 보지 말기를 권한다.

나는 놀랐다. 이건 영화가 아니라 사실이다. 그런데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칠천원인가 내고 ‘본’ 사실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건 사실이거나 사실이 아니다.

이 영화는 재미없다. 이 영화는 불친절하다. 이 영화는 고객서비스는 하나도 할 줄 모른다. 심지어 이 영화는 공간 지각에 장애를 일으켜 구토증상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래도 단연코 볼만한 영화다. 영화가 재난 한 가운데로 관객을 ‘모셔가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해야 할까. 이건 제 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동정적인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실제로 팔레스타인에서 테러의 위협과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람들의 실상이다. 내가 그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이 아니라, ‘되라’고 한다.

개봉 몇달 전부터 부족한 티저 프리뷰만으로 ‘괴수의 정체’에만 관심을 집중시켰던 에이브람스는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들의 뒤통수를 친다. 사실 괴수의 모습은 몇 컷 나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괴수가 어떻게 생겼냐, 얼마나 쎄냐, 얼마나 잘 부수냐, 얼마나 잘 죽이냐 이런건 이 영화 안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네가 지금 그 현장에 ‘있다’는 것이다. 스크린 너머에서 팝콘이나 주워 먹으며 ‘관람’하는게 아니라.

이건 어떻게 보면 정말 슬픈 얘기다. 한번도 비극의 실체에 닿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세계의 위협으로부터 고통받는 개인들. 마치 중동지역을 배경으로 한 잘 된 기획기사의 제목같아 보인다. 우리는 기사를 읽고, 공감을 하고, 좀 더 나아간 사람들은 기부를 한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뭐냔 말이다. 여전히 지구 반대편에선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고 피흘리며 죽어간다. 절대로 ‘그들’을 ‘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주인공의 애인이 총탄에 맞아 죽는 것을 보며 눈시울을 붉히는, 그게 우리(관객)의 한계다.

난 마지막 장면에서 정말이지 내 자신이 파편더미에 ‘매몰’되는 줄 알고 기겁을 했다.

써놓고 읽어보니, 이 글도 너무 피상적이다. 그냥 영화관 가서 봐라. 보고 ‘느끼’지도 말고 ‘체험’하지도 말고, 그냥 열심히 도망다니시길 바란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광기의 산맥에서’ 추가 정보

.. 랄 것도 없지만서도, 우연히 몇가지 정보를 더 찾아서 추가합니다.

At The Mountains Of Madness   

Status: In Development
GDT’s Role: Writer & Director

Summary

Project in development. Based on the H.P. Lovecraft short novel.

Notes

  • Latest news, posted 18 Jun 2006 by GDT: “Budgeting from
    scratch with WB physical production dept. I love working in this place!
    Hope they’ll make it-“
  • Ron Perlman may play the role of “Larson”
  • William Stout did some preliminary art design for AtMOM.

What GDT Had To Say

Posted 30-Nov-2007 on Hellboy 2 Message board:

“ATMOM is a delicate project to push through a studio: no love interest, no female characters, no happy ending…

BUt i believe its time to resurrect the BIG TENTPOLE horror movie.
The EVENT HORROR movie. Like THE EXORCIST was or THE SHINING or ALIEN
or JAWS in their time…”

http://www.deltorofilms.com/ProjectPage.php?projectid=9

광기의 산맥에서
진행상황 : 구상중
기예르모 델 토로 역할 : 각본 / 감독

요약
러브크래프트의 작품으로부터 구상중.

노트

  • 2006년 6월 18일 기예르모 델 토로의 코멘트 : “워너 브라더스 사와 예산문제를 기초부터 협의중입니다. 여기서 일하는건 정말 즐거워요. 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찍자고 했으면 좋겠군요.”
  • 론 펄만 (헬보이 아저씨) 가 “라슨” 역으로 나올지도 모름
  • 윌리엄 스타우트가 영화 광기의 산맥의 기초적인 아트 디자인을 맡아 작업해줬음.

기예르모 델 토로가 한 말들
2007년 11월 30일
“광기의 산맥은 영화사들을 통해 만들기에는 좀 빈약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사랑 얘기도 없고, 여자도 안나오고, 해피 엔딩도 아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진짜 호러 영화들이 (참조 tentpole) 나와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엑소시스트나 샤이닝이나 에일리언이나 죠스같은 진짜 호러 영화 말이죠.”

뒤에 이은 글들이 좀 있는데, 아직 뭐 하나 확실한건 없군요. 단지,

1. 기예르모 델 토로 (GDT) 가 러브크래프트의 소설인 광기의 산맥을 영화화 하고 싶어 한다.
2. 그 주변인들도 이에 대해 긍정적이다.
3. 하지만 이 ‘러브스토리도 없고 여자도 안나오고 게다가 해피 엔딩도 아닌‘ 영화에 투자할 영화사를 찾기가 매우 힘들다.

정도가 답일 것 같습니다. 심지어 IMDB에 GDT의 ‘광기의 산맥에서’를 찾아보면 2010년에 출시될 예정이라고 나와 있기까지 하네요.

참고로 러브크래프트의 소설 원제목은 ‘광기의 산맥에서’가 맞지만 국내 번역서의 제목이 ‘광기의 산맥’으로 나왔던 관계로 제목으로 그 둘을 혼용했습니다.

광기의 산맥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단편을 써왔다. 물론 크툴루 신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신화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된 인공적인 세계는 크툴루 신화가 처음이었다. (반지전쟁의 톨킨처럼) 그는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아이디어를 직조해 어둡고 광막하며 우주적인 공포(Cosmic Horror)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열광적인 독자들에 의해서 이 신화는 정리되어서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가 되었다.

그는 장편은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 드문 장편 가운데서도 수작이 바로 광기의 산맥이다. 광기의 산맥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유일한 장편(유일한 장편으로 알고 있다.)인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관한 오마쥬다. 남극으로 탐사를 떠난 탐험대와 그들의 눈에 펼쳐진 초고대의 거대문명. 그리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 만약 이 이야기가 매우 낯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암중으로 우리의 미디어 곳곳에 침투했다는 이야기다.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모두가 그렇듯이, 그의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하고 오래된 어두운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일부러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꼭대기 부분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마루 뒤쪽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만을 노려보았다…

중략

.. 신경 쇠약의 증세가 한 단계 더 심해진 댄포스는 침착하지 못했다. 초조한 듯 몸을 뒤채던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멀어지는 핏빛 하늘과, 이상한 모양의 동굴 입구가 나있는 산봉우리와, 사각형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는 산등성이, 거대한 성벽으로 빼곡하게 뒤덮인 구릉지대,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기이한 모양을 빚어내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중략

… 댄포스는 그토록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던 마지막 공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내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중략

… 이상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온 거석 도시나 동굴,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기이한 광기의 산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했었다. 소용돌이치는 수증기 구름 한가운데서, 고대의 존재들조차 멀리하고 두려워했던 거대한 보랏빛 산맥 너머의 끔찍한 광경을 순간적으로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도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선가 밝혔던대로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무튼 깊은 밤에 두서없이 공포영화를 보다가 문득 광기의 산맥이 영화화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펴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 하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는데, 모든 원작을 영화화 하려는 작업이 그렇듯이 과연 이 훌륭한 원작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공포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되기 쉽다. 걸작으로 남는 공포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강렬한 캐릭터가 그 중심에 있다. (프레디, 제이슨, 핀헤드… 또 뭐 있지?) 하지만 광기의 산맥의 진수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위치한 백색의 대지, 남극에 있는 것이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권말에 적힌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의 이야기를 싣고 싶은데, 타이핑으로 옮기기에 너무 길고 귀찮아서..) 여기서는 심지어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쫓기는 사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러브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면 매우 지루해 할 것이다. 결국 기예르모는 이 두 영화의 요소를 적절히 배분해야 할텐데, 과연 얼마나 양자(일반/매니아)의 사랑을 받게 될른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알 것이다.

O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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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어 평 방 안에서 창문 밖으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하늘을 보는 것도 지친 모양이다. 가끔 나는 일을 만들어 외출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으면 줄여 갈 길도 돌아가고 걷다 말고 아무 곳에나 앉아 쉬는 일도 잦다. 거리에서 시를 쓴다, 던 형도형의 메모처럼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는 일은 매우 신비롭다.


혼자서 먹는 싱거운 테이크 아웃 아이스 커피나 자장면, 담배, 재잘대는 여자아이들, 땀을 훔치며 바지런히 걷는 노인과 버스와 빌딩들, 그 옆의 노랗게 삭은 집들 그리고 혼자 보는 영화에도 나는 익숙해졌다. 귀에 소음으로만 들리던 것들도 이제는 조금 낯익다. 가을은 조금씩 더 많은 비를 뿌리게 되었다.

앞으로 당분간 이 영화의 OST를 들으며 나는 숨을 쉬듯이 아일랜드의 거리를, 그 거리에서 꽃을 팔던 처녀를, 10센트를 받고도 목청껏 자신이 쓴 곡을 부르는 거리의 악사를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각적 기억들은 다시 청각으로, 스피커를 통하지 않아도 울리는 마음으로 남을 것이다. Once의 가장 훌륭한 점은 (모든 훌륭한 영화들이 그렇듯이)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세계를 허물고, 또 그 세계와 대립하는 우리 마음의 울타리를 허물어 다시금 낯익게 만든다는 점이다. 얼어붙은 몸에 손끝으로부터 전해지는 안온한 온기 같은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