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Kirrie Best Music Award

슬슬 연말도 되었고.
사실 올 해는 작년처럼 영혼까지 흔들리는 음악들을 그다지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강박처럼 10개를 채워야 한다, 고 해서 억지로 10개를 뽑아봤지만 그 중에 몇 개는 Best Music이라기 보다는 그냥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일 뿐이고요.

언제 터뜨릴까 조바심 내다가 오늘 왠지 젖빛 유리창 밖 유령같은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까짓꺼 오늘 터뜨려 봅니다.

언제나처럼 번호는 순위가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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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ood Bye Lenin OST
얀 티어센의 음악은 언제나 울먹이는 흰색 비닐봉다리 사이로 보이는 세계, 어느 낯선 골목길, 이를테면 비오는 날의 충무로-종로 구간 같다. 명료하지만 그것은 불분명함에 대한 명료함이다.
레닌 그라드는 상트 페테스부르크로 지명이 바뀌었고 (사실 그 이전에도 상트 페테스부르크였다), 곳곳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레닌 동상의 철거를 두고 사회주의의 총체적 몰락과 관계짓는 조악한 상상력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이상향에 대한 둔감한 희망이나, 골수에까지 무력함이 뻗은 (이럴바엔 차라리 맹렬한 반동이 낫다.) 빈약한 쁘띠이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그런거 잘 모르겠고 말하자면 불분명함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념의 과잉, 음모의 과잉, 소문의 과잉, 전투적 성공신화들의 과잉, 정보의 과잉 등등의 가운데서 여전히 엄마들은 자식들이 꾸미는 아득한 거짓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죽는다. 아빠는 서독(2005년, 여전히 동독과 서독이 갈려있다는 사실이 믿겨져?)의 부유한 의사고 생판 모르는 나이 어린 동생들이 생겼다. 누나의 남편이란 작자는 언제나 맘에 안든다. 나는 라라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로켓에 담아 다 날려버린다. 이러한 불분명함들에 대한 명료함. 이름부터가 명료하잖아. 얀 티어센.

2. Sigur Ros
어느 날 하늘에서 열두장 날개를 가진 검은 낯빛의 천사가 내려와 육삼빌딩 꼭대기에 섰다. 그는 인간을 사랑했으나 그가 사랑하는 인간들은 사랑의 의미를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랑은 행동이라고, 이런 천박한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가 멀티비젼에서 쨍쨍 울렸다. 걍 움직여, 시간당 이만사천원으로 환산되는 급여명세표에 진리가, 방방헬스 3개월치 끊으면 회원증 50%할인, “까라면 까, 어디서 새빨간 이등병 새끼가.” – 1999년 8월 23일 강원도 7사단 16대대, 체크카드를 써도 소득공제가 되나요? (네, 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핸드폰 없으면 왕따…
천사는 인간이 지랄을 하던 발광을 하던 상관 않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을 올려다 봤다. 햇빛이 쨍쨍. 모든게 언젠가 한 번 경험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천사는 입을 벌려 노래했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의미없는 의미로.

3. 노찾사 4집 – 떠나와서
멀리 있어도 따로가 아니네
앞지나간 시간조차 조급해 아쉬운데
가슴에 남은 아픔은 오히려
말이 없던 그 눈길에 긁히어 쓰라린데
땀젖은 너의 얼굴 손저어 지우고
눈을 감고 뛰어봐도 들려오는 아우성
친구야 내가 내 몫을 다하는 날
힘들었던 기억들이 뜨거운 껴안음일지네
음음-

더 할 말 없음.

피엘쏭닷컴으로부터의 감격적인 스트리밍

4. Radiohead – Scatterbrain
자칭 라디오헤드 매니아, 인데도 사실 이 곡을 처음 본(들은)게 아마도 맥주홀릭님 블로그에서였을껍니다. 어쩌면 개인적인데 사실은 그게 사회적이란 말도 되겠지요. ‘Your voice is rattlin’ on my window sill(문득, 네 목소리가 창틀을 흔들었네.)’에서 옛날 생각이 좀 났고 ‘Somewhere I’m not scatterbrain(그 곳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곳이겠지.)’에서는 위안도 좀 되었고… 뭐, 작년에 얘네들한테 상을 못줬으니, 옛다 하고 올 해 별 하나 줘봅니다.

5. Henryk Mikolaj Gorecki – The Sorrowful Songs
http://kirrie.pe.kr/115
한참 주절거렸으니.

6. Ghost In The Shell OST – Access
카와이 켄지, 혹은 켄지 카와이. 붉어진 어두운 마음으로 가는 길. 그곳은 강철로 된 열대식물들이 그림자에 반사해 검게 빛나는 정글. 무서운 금속 말풍선들이 박제가 되어 허공을 떠다니네. 비릿한 쇳맛.
미안해. 네 마음이 이렇게 깜깜한지 몰랐어.

다음은 잠깐씩 좋았던 곡들
7. Tom Mcrae – The Boy with the Bubble Gun
http://kirrie.pe.kr/117
이것도 한참.

8.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OST – Jorge Drexler – Al Otro Lado Del Rio
꿈 속에서 이 노래를 들었어. 완전히 총천연색으로 분홍이더군. 물안개 사르락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보안등이 껌뻑였다.
근데, 나는 체를 잘 몰라.

9. Samuel Barber – Adagio for Strings
http://kirrie.pe.kr/114
말을 말아야지.

10. Nick Drake – At the Chime of a City Clock

“…하지만 1974년 11월 25일 닉 드레이크는 불과 26세의 나이로 자신의 침대에 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때 그의 책상에는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복사본이 놓여있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이상한 청년. 시지프스의 신화. 불가항력의 세계. 결락감. 12일 뒤에 나는 그보다 나이가 많아진다. 앞으로도 계속 많아질 것임.

드디어 구했다.

Symphony No3 “Symphony Of Sorrowful Songs”
Henryk Gorecki


Symphony No.3 Op.36: Lento – Sostenuto Tranquillo Ma Cantabile


Symphony No.3 Op.36: Lento E Largo – Tranquillissimo


Symphony No.3 Op.36: Lento – Cantabile Semplice

자신에게 관대한 것과 타인에게 관대한 것의 경계선에
잘 서있어야 해.
‘오래된 정원’ 봤어?
황석영의 장점은 사람의 세부심리묘사가 탁월하다는 거야.
것도 쉽게 전달해주지.
‘오래된 정원’을 잘 봐,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거야.
헨릭 코레츠키의 <슬픔의 노래>를 들어봤어?
정찬의 중편 <슬픔의 노래> 읽어봤어?
음악 다운 받느라 힘들었다, 책도 곧 읽어볼 거야.
쉔베르크의 음악 듣다 질려버린 적이 있지.
그래서 현대음악은 잘 안들어.
그런데 <슬픔의 노래>는 달라.
이 노래 들으면서 인간의 관대함을 생각했지.

-언제, 어디선가 수집했던 글

너희 들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돌을 들어 이 여자를 쳐라,
했더니 오늘날 수많은 자가 돌을 들어 여자를 쳤다.
오 이런, 무진장 순수한 세계야.

타인을 용서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가.
아우슈비츠에서, 중동에서, 만주땅이거나 버마에서, 베트남에서, 칠레, 스페인, 아일랜드, 광주 혹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돌을 던지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가가 문제야.

아.. 이 음악은 왜 이렇게 이상하지?
내가 던진 돌을 맞은 여자가 나를 용서하는거야.
왜 슬픔의 노래라는 제목이 붙었는지 알겠어.

세계가 갑자기 멸망하거나 모든 고통이 일순간 사라지거나 모든 전쟁이 종결되지 않는 한, 나는 이 음악이 언제까지나 세상에 잘 어울리는 곡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Unless the world suddenly turns on a dime and all suffering instantly goes away and all war is ended, I feel like this will always be a piece of music that is timely.)

어떤 리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