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소식

새벽에 잠깐 아버지가 들어와 텔레비젼을 고쳐달라고 나를 몇 번 흔들어 깨우다가, 내가 비몽사몽으로 대꾸를 하니까 그냥 나가셨는데 열한시쯤 일어나 ‘희안한 꿈을 꿨네.’ 하고 있자니 윤식이형한테 열시쯤 부재중 전화 두 통화가 와 있었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집안이 조용해서 뭔가 하고 안방에 들어갔더니 진짜로 텔레비젼이 고장나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잘됐다 싶어 이미 새로운 엘씨디 텔레비전을 주문하고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이십년 넘게 사용을 한 텔레비전이었고, 수리기사 말로는 ‘인간 수명으로 보자면 120살 정도 된 텔레비전이에요.’라고 했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윤식이형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노무현이 죽어? 이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때가 오전 열한시 반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낮부터 술을 마셔야겠노라며 신도림으로 튀어 나오라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끊었다.

텔레비젼이 없으니 소식을 알 수가 있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온통 노무현의 죽음에 관한 기사뿐이다. 블로그도, 트위터도 정신없이 새로운 글들로 갱신되고 있다. saxboy님의 트위터에 ‘장준하 선생님 생각난다’고 했는데, 정말 데자뷔가 아닌가. 날은 맑지 않고, 나는 두껍게 커튼을 친 상태로 어제 받아 놓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텔레비전이 완전히 고장난 시점과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한 시간이 비슷했다고 언급하는 것은, 자연의 무작위성에 항상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인간 이성의 속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타인에 대해서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은 언제나 깊이 생각하며 역지사지 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인생과 마지막으로 죽음을 결심하며 유서를 작성했던 오늘 새벽의 몇 시간 말이다. 역지사지 하는 척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정말 그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끝내 우리 자신의 인생밖에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에 떨며 현정권의 종료일을 기다리고 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작년 비비케이 사건에 관한 증거들 – 천연덕스럽게, 끝내 ‘혐의 없음’, ‘증거 불충분’ 등으로 판단해버린 – 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건 현정권, 까놓고 말해서 이명박 심판이 아니다. 그건 언제나 그랬듯이 과정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우리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치올코스프키의 유지가, 가상의 명왕성에서 러시아 우주인에 의해 읊어졌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요람에서 머물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오늘은 곧 과거가 되고 내일이 찾아 온다. 내일의 우리는 결코 오늘과 같아서는 안된다.

평화 속에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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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서 예전에 스크랩해뒀던 사진 한 장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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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주 긴, 긴 하루가 또 끝나려고 하고
청년은 퍼렇게 동트려 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들려고 노력한다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이야기는 좀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자명한 것들은 너무 흔하게 알고 있는 것이어서 깨닫기가 쉽지 않다
고 어두운 손바닥에 쓴다
청년은 시시때때로 꿈을 꾼다
꿈 속에서의 청년은 애정넘치는 인간이다
꿈 속에서 그는 아주 가끔만 절망한다
스탠드에 팔꿈치를 얹고 콜라를 마신다
그는 궁금해졌다
과연 나만큼 어두운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겐 일생이 꿈일 것이다
백만년쯤 전에 지나온 꿈이다
그리고 피식 웃는다

—>

안녕 잔인한 세상아
난 이제 널 떠나려 하네
네가 뭐라고 해도
내 맘은
바뀌지 않아

—>

영원히 살면서
세상의 종말을 보고 싶다
그 이후에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없더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