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실

지금 막 (다른) 하드에 저장해 두었던, 하다 만 번역들이라던가 우쭐대며 써내려갔던 영화평이라던가 하는걸 읽다가 순간 무시무시한 사실을 깨달아버렸다.

일주일전에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즈를 새로 깔았는데, 나름대로 철저하게 남겨 두어야 하는 파일들은 다 백업을 했다고 생각했음에도 불구하고 5년간 수집해오던 글들을 몽땅 남겨둔 채로 포맷을 해버린 것이다.

5년이었다. 나는 ‘영혼수집’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글을 모아왔다.
지금은 완전히 제로가 되었다.

아.. 이걸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또 완전 방전 상태가 되는건가…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일기

‘서울나기’란 타이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는 도시에서 산다는건 참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멜라토닌인가 세라토닌인가.. 하는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온다는 우울증, 나는 도처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깔아놓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실천하고 있었다. 기형도의 시작노트에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도시에서 사는게 너무 싫었다.

도시에서 사는게 싫었다, 는 말은 반드시 도시를 벗어난 삶이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골도 거기서 거기쯤이었으리라. 문제는 내 나이였고, 거대한 세계가 주는 압력이었다. 인간이 곧 우주라던데,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정보들 사이에서 아무런 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이 터무니 없는 존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주는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가..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다. 나의 원제는 ‘어느 룸펜의 서울나기’였고 나는 그게 썩 잘 지은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나를 대전고속버스터미널 공중인터넷컴퓨터 앞에서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국도를 굽이쳐 서울로 향하는, 저녁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기형도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국토(國土)에 깊다’라고 썼다. 나는 산자로 가득한 산천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면 어김없이 산 하나를 건너 불을 밝힌다. 그 불빛들 하나 하나가 각각의 삶들에 대응한다. 거의 매번 그런 풍경을 지날때마다 나는 열심히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려고 시도했다. 노동의 고단함과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보글보글 된장국이라던가, 드라마와 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리모콘 쟁탈전이나 내일까지 막아야 하는 대출금 이자 같은 것들. 멀리서 보면 모든게 아득하게 달콤한 새벽녘의 잠투정 같아진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즘의 경계는 너무 가까이 보거나 너무 멀리서 보는 것, 외에 다름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냥 살아지는건 없다고, 밥 꼭꼭 씹어 먹듯이 살아내야 한다.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앞서 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건 참 힘들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많은 고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깨버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님 말고.

신카이 마코토의 신작 ‘초속 5cm’

고양이의 눈을 통해 바라본, 도시에서의 여성의 삶, 그 고단함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처음 국내에 소개되었을때, 그것을 본 많은 사람들은 이 놀라운 완성도를 지닌 단편이 오직 한 사람의 손에 의해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

그 이후로 상대성 이론을 소재로 한, 서로가 필요한 때에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연인들의 이야기 ‘별의 목소리’나, 꿈과 무의식이 현실과 만나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을 통해 그는 소수 매니아들에게서 컬트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단편 애니메이터에서 대중적인 지지를 얻는 디렉터로 변모하게 되었다. (별의 목소리나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등을 거치며 그는 서서히 일인 제작자의 모습을 벗고 팀제의 스튜디오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아님 말고. -_-;;)

아무튼 내게 꽤나 오랫동안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를 만든 사람으로만 기억되었던 그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이후 신작을 준비중이라는 소문은 작년부터 파다했었고, 심지어는 야후 재팬이 그의 신작을 위한 사이트를 오픈하기도 했다.

http://211.222.66.227:8080/online/web/index.jsp?a=1&w=1&s=JA-JP&t=KO-KR&u=http://5cm.yahoo.co.jp

그런데 오늘 사이트에 다시 접속해보니, 드디어 ‘초속 5cm’가 3월 3일 초연을 (물론 일본에서)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프리뷰 동영상에서 보여지는 작화의 놀라운 퀄리티는 그가 극히 소수의 인원만으로도 얼마나 효율적으로 제작을 진행하는지를 보여준다. 심지어 바람에 날리는 벚꽃잎 하나 하나까지 crystal clear하게 그려내고 있다.

물론 국내에 그의 신작이 반입(?)되기까지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시간은 많고, 아직 봄은 당도하지 않았다. 나는 충분히 기다릴 수 있다.

일기

오랫만에 음악을 들으며 무언갈 한다. 만화책도 읽고 귤도 까먹고… 이런저런 생각도 했다. 도중에 갑자기 얀 가바렉의 울렁울렁, 마치 성수기가 지난 수영장에 씌워놓은 덮개같은 색소폰 소리를 듣는다. 내가 너무 많은 것들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고 하면, 그건 굉장히 미안한 일일까.

시미즈 레이코의 어느 단편 만화에는 식욕을 갖도록 프로그래밍된 인조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나중에 열심히 돈을 벌어서 자신의 식욕을 제거한다. 왜냐하면 필요하지도 않은 식욕때문에 소중한 사람들을 많이 잃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식욕을 제거한 뒤로는 좀처럼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사실 이 만화를 처음 읽었던 것은 십수년 전이었는데, 이토록 우울한 이야기를 너무 일찍 읽었던 것 같다.

텅 빈 바람을 마음 속에 꼭꼭 눌러 담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하하하.

신경과민

어느 날은 매우 과민된 상태로 깨어난다. 너무 늦게 일어났다 싶어서 서둘러 핸드폰을 열어보면 새벽 다섯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다. 밖에선 엄마가 출근준비로 소근소근… 이를테면 중간지대가 없다. 혼몽한 수면과 명료한 정신이 프레임 하나 차이로 바뀔 뿐이다.

그럴때면 많은 사람들이 머리 속에서 말을 건다. 일상적인 대화도 있고, 일과 관련된 내용도, 그냥 듣고만 있어도 우울해지는 자기고백 (혹은 자기기만)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런 말들은 마치 직접 뇌를 콕콕 찌르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사실 뇌에는 고통을 느낄 만한 수용체가 없다고 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온 몸의 통각을 받아들이고 해석해서 고통스러워하는 주체는 통각이 없다.

이럴때는 수가 없다. 가만히, 퍼렇게 동이 트는 것을 지켜보며 스스로 다독이는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되뇌이는 것이다.

다시는 정글로 들어가지 말자. 거기엔 아무것도 없다.

떠올리고 싶은 과거가 있다면…

친구놈과 함께 ‘아귀레 – 신의 분노’를 보다가 사이좋게 잠들었던 기억.
밤새도록 음악을 듣고 이야기를 하던 것.
만다린을 처음 마셨던 일.
뽀드득뽀드득 눈이 내린 밤의 산길을 밟아 초소근무 교대하러 간 일.
나를 향해 미소짓던 얼굴들.
인터넷에서 만난 착한, 그러나 항상 어딘가 고장나 있던 사람들..

만세!
내일도 살아남자!

just

07. 12. 01. 역시나 전에 걸어놨던 유투부 비디오 클립이 노 롱거 어베일리어블 떠서, 다른 곳의 소스로 바꿨습니다. 엑티브 엑스 컨트롤 깔아야 합니다만, 파이어폭스에서도 되는군요. 크로스 스크립팅?
—>

오 이런! 미안합니다. 거기 계신지 몰랐어요. 괜찮습니까?
네.
무슨 일입니까? 떨어지신 건가요?
아뇨, 괜찮소. 그냥 가시오.
취한 것 같은데..
취하지 않았소.
그럼 왜 길 한가운데 그렇게 누워있는 겁니까? 목이 부러질뻔 했어요! 이봐요… 무슨 일입니까? 제가 도와드릴께요.
제발! 건드리지 마시오!
무슨 일이래요? 떨어진건가요?
아뇨, 떨어진건 아니라고 하는군요.
어디 다친건가보죠?
아니에요, 제발 당신들 모두 날 가만히 놔둬주겠소?
어디가 좀 이상해진 것 같은데…
아뇨. 난 미치지 않았소. 제발.. 갈 길들을 가시오.
정말 무슨 일인겁니까.. 말 좀 해보세요.
보시오, 난 말 할 수 없소… 왜냐하면 말해선 안되기 때문이오.
미친게 틀림없어요. 오 저기봐요. 경관님! 경관님!
괜찮습니까?
괜찮소. 제발 부탁인데, 내가 그냥 여기 누워있도록 해주겠소?
그렇게 할 순 없군요.
건드리지 말라니까!
제발 말 좀 해봐요! 어서!
사실은 별로 알고 싶지도 않잖소.
인생은 허무하다는 건가요? 우리는 모두 죽어가고 있다고? 그런거에요? 그래서 그걸 표현하려고 이렇게 누워있는 겁니까?
아니오.
말해요! 젠장 말 좀 하라구!
정말 내가 여기 왜 누워있는지 알고 싶소?
그래요!
정말 알고 싶은거요? 좋소. 내 말해주지. 내가 왜 여기 있는지 말해주겠소. 하지만… 오.. 신이여 나를 용서하소서.. 이 불쌍한 어린 양들을 구원하소서.. 당신들은 지금 무엇을 묻고 있는지도 몰라…
말하라고!

영어로 독순술이 가능하신 분은 마지막에 누워있는 남자가 대체 뭐라고 했는지 읽으신 뒤에 코멘트로 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