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울 메탈 자켓

먼저 이거부터 읽어보시고,

어떤 사회적 사안에 대해 ‘국민’이나 ‘국가’, ‘애국’, ‘국익’같은 허구적 관념, 어 그러니까 이데올로기가 결합하기 시작하면 이 사안은 더 이상 사안이 아니라 ‘베트콩 수색’이 된다.

‘베트공 수색’

총을 난사할때 도망가는건 다 배트콩이지 도망가지 않는것들.? 그 놈들은 훈련받은 베트콩이지.

왜냐하면 ‘국민’, ‘국가’, ‘애국’, ‘국익’ 같은 단어의 개념 (이데올로기로써가 아닌 그 자체로써의 의미) 은 이 사회에서 그대로 어떠한 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마치 ‘부모’, ‘효도’, ‘우정’, ‘충성’ 등등이 그러하듯이.
그래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은 선한 것에 반대하는 반동세력으로 여겨지고 그 반동세력이 어떤 주장을 펼치건 간에 검은 입에서 나온 말은 모두 검다, 는 식이 된다.

정말 그들의 말대로 MBC는 매국노 집단일 수도 있고 PD수첩 PD는 개새끼일 수도 있다. 그런데 가만 있어보면 그런 것들이 너무나 무섭다. 연구에 대한 실질적인 관심이나 견해 없이도 몇몇 신문기사를 읽고 맹렬한 애국자가 되어버리는 사람들.

2002년에도 그랬지. 상암동에 경기장 만든다고 거기에 거주하던 사람들은 쫓겨나다시피 했고 내 기억에 아마 철대위도 생겼고 했던 것 같다. 집을 빼앗긴 (보상금 받았고 어쩌고 이런 말은 의미 없는거 아시죠?) 자들에게 있어서 2002년은 매우 우울한 해였을 것이고 월드컵은 전쟁보다 견디기 힘들었을 것이다. 살 집을 빼앗는 월드컵 반대, 서울시 정책에 반대, 하면 어이없이도 그들은 곧장 빨갱이가 되거나 매국노가 되어야 했다. 왜? 월드컵은 국위를 선양하는 행사였거덩. 국위에 반하는 것들은 모두 개새끼, 매국노거덩. 내가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위기에 휩쓸려 빨간 티를 입고 종로 거리를 미친듯이 활보할 때, 신문/방송에서 온통 한국민의 저력이니 87년의 재현이니 찬사와 평가로 가득찼을때 그깟 자기 집 빼앗겼다고 월드컵 반대하는 새끼들은 길바닥이거나 여관이거나에서 우울하게 나를 지켜봤겠지.

어쨌든 그렇다. 의식적인 것이던 무의식적인 것이던, 세뇌당했던 학습한 것이던 간에 그것 이외에 불변하는 확고한 진리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많은 사람들을 악한 것으로 간주하게 만든다. 세상에 그런건 없다. 국가가 최고의 선이면, 보트피플은 개망나닌가? 애국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이라면, 국적을 바꾸는 것은 패륜인가? (나는 이것에 대해 매우 웃긴 현상을 하나 알고 있다. 대한민국 사람들은 대한민국 사람이 타국으로 귀화하는 것을 매우 혐오하면서도, 타국 국민이 대한민국으로 귀화하는 것은 매우 환대하고 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설명만이 존재한다면, 그 둘은 똑같이 혐오스러운 짓이거나 자랑스러워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정말 불변하는 것들이 있다면 아마도 – 사람과 자유, 음악 그리고 사랑. 뭐 이런 것들이겠지.

헌책, 무식하게 찾아버리자!! alpha version

주변에 책 좋아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살짜쿵 공개해봅니다.
원래 필요해서 혼자 쓰려고 만들었는데, 혼자만 즐거우면 뭐합니까. 함께 즐거워야지요.

http://kirrie.pe.kr/playground/used_book_search/

간단한 도서명으로 각종 인터넷 헌책방에서 검색결과를 빨아오기 해서 출력해줍니다.
그러고보니 인터넷 헌책방도 꽤나 많아졌네요.
검색 가능한 헌책방들은 추후에 천천히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는 12개의 인터넷 헌책방에서 검색이 가능합니다.

사용하시다가 문제 생기면 코멘트 남겨 주시거나 메일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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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1월 27일 추가된 사항
1. 현재 17개의 인터넷 헌책방에서 검색 가능
2. 검색결과 화면 정리 (맨 마지막에 종합 검색결과 정보가 뜹니다.)

못먹는 것

어쩌면 이건 삶을 대하는 태도와 닮아 있는 것 같다. 나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어느 정도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봐도, 어떤 옷이 내게 잘 어울리겠거니 하거나 어디서 살면 정말 좋겠거니 하는게 잘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대부분 입거나 먹거나 자는 것, 이것은 내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가 된다. (이렇게 써놓고 정말 내가 그랬나 다시 생각해보니까, 확실히 그랬던 것 같다.)

먹는 것만 해도 그렇다. 편식하지 않는건 좋은 습관이라고 하고 다행스럽게도 편식같은건 모르고 자랐다. 어린 시절엔 서울 근교의 농(깡)촌에서 살았기 때문에 먹을 것이 귀했다. 뭐가 찢어지도록 가난해서- 그런게 아니라, 군것질꺼리를 살 돈이 있어도 구멍가게에 있는 것이라곤 새우깡, 뭐 그런 것 밖에 없었다. 그러니 과자같은건 잘 먹지 않았고 차라리 뒷산에 아이들과 함께 올라가 산딸기, 개암, 칡뿌리, 머루, 다래… 뭐 이런걸 먹거나 했고, 가끔은 한동네에 같이 살았던 외할머니와 함께 막걸리에 설탕을 타서 한사발씩 마시곤 했던게 전부였다. (막걸리에 설탕을 타면 최고의 음료수가 된다.) 이렇다보니 뭔가를 강렬하게 먹고싶어하는 열망같은게 희박해진 것 같다. 산에서 나는 것들이야 내가 안먹어도 거기 있는거고 사실 그다지 맛있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냥저냥 지냈던 것이다. 구하기가 좀 힘들지만, 산에서 다래를 만난 날은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래는 엄청 달거든요. 또 어린 마음에 칡술을 담근다고 산에서 통통한 놈으로 칡을 캐와서 정성들여 만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앞마당에 묻어두었을꺼에요. 나중에 꺼내서 아빠 드려야지 했던 기억도 나는군요. 그런데 그 뒤로 칡술을 묻은 기억을 까맣게 잊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죠. 지금 가보니 제가 살던 집은 사라지고 그 위에 콘크리트 빌라가 생겼더군요. 아마 지금쯤 꺼내면 대략 20년은 된 칡술이 되어 있었을텐데…

그러니까, 정말 먹고 싶은게 없다는 말은 곧 어떤 것이든 상관없이 잘 먹는다는 말이 되는 것.

하지만 이런 나조차도 경악을 금치 못하는게 하나 있는데… 나는 멍게를 못먹는다. 뭐 이 악물고 먹으면 먹을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그다지먹고 싶지는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엄마는 멍게 킬러. 한번은 멍게 한박스를 앉은 자리에서 다 까먹은 적도 있다. 으웩.

동생도 가리는거 없이 잘 먹는데, 이 녀석은 신기하게도 굴을 극도로 싫어한다. 걘 ‘굴’ 한마디만 해도 기겁을 할 정도다. 어젠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티븨에 굴요리 스페셜, 뭐 이런게 나왔는데 녀석은 티븨를 돌리지도 못하고 계속 헛구역질을 하면서 밥을 꾸역꾸역 먹었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서 굴을 양식하는 사람들을 다 구속해야 된다느니, 굴을 즐겨 먹는 사람들은 다 인간말종이라느니 온갖 험한 욕설은 다 해댔다. 옆에서 나는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모님은 그다지 가리는 음식이 없는듯하다. 대충대충 있는거 먹고 없음 말고, 이런 식이다.

음식은 큰외숙모가 정말 잘하는데, 가끔 외갓댁에 무슨 모임이라도 있으면 나는 정말 기쁘다.

요즘은 매운 음식만 먹으면 자꾸 토하거나 설사를 해서 가급적이면 안먹으려고 한다.

해삼도 무척 좋아함. 하지만 못먹은지 육천만년은 된 것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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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은 죽음으로 흐른다. 물을 마셨다. 어둡게 출렁거리는 검은 바다, 처얼썩. 문득 작년 시월 부산 무슨무슨 콘도 앞 방파제가 떠오른다. 검은 바다가 무한히 널려있었다. 어디가 뭍이고 어디가 바다일까. 경계가 꺼멓다. 문득 사람들은 생각났다는 듯이 바다로 걸어가다가, 어느 사이에 보이지 않았다.

누군가 죽었고, 아마 게시판에서 아이디 몇 번을 보았을까,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젊은이들이 죽는다. 퍼런 살깣과 검은 허파를 지닌 채 두꺼운 생활의 모양을 머리에 이고, 정신을 차리면 죽어있다. 자꾸만 살아 있음을 까먹는 시대.

찾아보니 어딘가에 ‘비극이 어디로부터 오는가’를 알았다고 적은 적이 있더라. 뻥이었어.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해.

아, 제발 죽지 마라. 다들 죽지 마, 내가 먼저 죽기 전까지. 잘 모르는 사람의 죽음도 이리 나를 뒤흔드는데, 당신들의 죽음이 과연 날 어디까지 몰고갈지 감히 알 수 없어. 미안하지만, 죽게되면 내가 먼저 죽을래. 정말 미안해.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반쯤은 직업병으로 인터넷 컨텐츠 프로바이딩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있다. 그래서 종종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들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여긴 이렇게, 이런걸 새로’ 하는 식으로 구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구상만이다. 귀찮게 해당 업체 기획팀에 아이디어 메일을 넣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이건 어쩌면 순전히 내 개인적인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는 yes24에는 언젠가부터 ‘리스트’라는 기능이 생겼다. (꽤 오래전 일) 어떠한 주제 아래 책들의 목록을 임의대로 만들어 공개하거나 혹은 개인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은근히 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주로 이걸 ‘구매 예정’, ‘구매 대기’ 등등의 서적 목록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했다. 그러나 한때 나는 극심한 금전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으며 ‘구매 예정’ 목록에 올라간 책들을 ‘구매 대기’로 대거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매우 슬펐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런 목록을 내게 호의적인 누군가에게 메일로 전송해서 그 사람이 쉽게 결제해 내게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이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책 선물 조르기’ 정도가 되겠고 며칠을 보내면서 이걸 하나의 아이템으로 가시화 시켜 yes24 기획팀에 보낼 수 있었다.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어서 빨리 이런 아이템이 실현되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조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답장이 왔고, 매우 흥미로운 아이템이며 현재 예정된 컨텐츠 추가 작업이 있어 당장은 구현이 어렵고 내부적으로 개발할 컨텐츠의 목록에 넣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뿌듯하기도 했고 이제나 저제나 그 기능이 추가될까 싶어 한동안은 yes24에 열심히 드나들기도 했다. 근데 영 소식이 없어 실망하던 차였다.

오늘 문득 yes24에서 검색되지 않는 책이 있어서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이리저리 검색하던 가운데, 내가 이전에 기획하고 구체화한 ‘선물 조르기’ 기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화가났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완전히 같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며 페이지 플로우도 매우 유사했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내가 만든 기획안의 판박이였던 것이다. 순간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개인적으로 내 아이디어를 매우 중하게 여긴 yes24의 기획자 하나가 교보문고로 이직하면서 아이디어를 가져간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좀 더 알아볼 요량으로 교보문고의 ‘사주세요(선물 조르기)’ 서비스를 검색해봤는데…

알고보니 작년 초에 나온 서비스였다. 내가 yes24에 ‘선물 조르기’ 기능을 제안한건 올 해 초였고. 쩝. 뭐 할 말은 없다. 두 아이디어가 극도로 유사해서 잠깐 흥분했던 것이다. (근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나는 이 아이디어의 최초 입안자가 나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떤 특화된 서비스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 컨텐츠는 역시나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게 어떤 종합포털의 성격을 띄기 전까지는 말이다.

입김이 하얗게 퍼져, 멀건한 보름달이 구름도 없는 하늘에 뻔뻔히 떠 있네. 얼마 안되는 엄마 월급, 내가 사라지면 다 누나에게 줄 수 있겠지. 누나는 행복해지겠지. 어떤 중삐리는 뻔뻔하게도 겨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띵동-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어떤, 스물 여섯살짜리 여자의 일상을 대담하게 엿봤다. 24시간이 지나니까 서서히 실감되기 시작하는, 살얼음같은 일상. 불안한 ‘즉흥환상곡’의 환상이거나, 접혀서 수첩 사이에 꼽아 놓은 몇천원이었던. 나는 시간마다 분열된다. 왜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왜냐하면 분명히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진보를 꿈꾸거나, 따뜻한 겨울을 그리워하거나, 일산에 음악적 취향이 같은 친구를 두었거나, 새벽 두시에 느닷없이 누군가 날 불러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가수를 발굴하거나, 며칠째 공무로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어긋나거나, 점점 속이 안좋아져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거나, 잠을 서른 다섯시간씩 자거나, 만 삼천원짜리 웰트화를 사거나, 엄마하고 싸우거나 하는 나, 와 나, 와 나 사이의 나, 였거나 나, 가 될 나, 거나, 말거나. 수많은 나 들 사이에서의 화해, 같은게 힘들어진다. 내가 원했던 나 아닌 내가 되려는 시도는 이런게 아니었어. 내가 아닌게 되려던거지 수많은 나를 원한게 아니야. 아, 토하고 싶어.

내가 가진 거라고는 손재주뿐… 이걸로 뭘 할까… 미술? 이미 늦었어…

어떠한 우울을 유발하는 것, 불안이거나 공포, 강박, 부담을 야기하는 것을 따로 분리해 둔다. 그것을 여기에 적는다. 추위를 지켜본다. 아, 하나님. 제발 날 지켜주세요…

쓰고, 남기고, 결합시키고, 굳힌다. 방부제처리를 하고, 추상의 감옥, 전자적 실체의 세계에 가둔다.

프레드릭 폴의 SF 단편, ‘설계된 인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시키는만큼, 현실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기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더 뮤직 인 더 일산

그러니까, 뜻밖이었고 비일상이었으며, 충동적이었거나 불협음 같은 이었다. 김워냉군은 “간만에 서로 안취한다?” 라고 했다. 나는 아마도 점심을 먹고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종로 어디쯤에 있던 일식 선술집에서 우리는 소주와 뭐라더라, 사케, 인가 하는걸 마셨다. 사실 취할만큼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지 뭐. 또 술집을 나와 애매한 시간에 한 잔 더, 를 외쳤고 바에 가서 양주를 사먹었다. 나는 꽤 돈을 썼던 것 같은데, 그 이상의 즐거움과 기쁨을 받았으니 괜찮은 거래다, 싶었다. 아우, 우린 음악 얘기를 두시간 가량 했다. 롹과 포크, 재즈에 대해 얘기 했고 아무래도 음악에는 어떠한 내재적 실체, 진리, 간주관적으로 지각 가능한 아름다움 같은 것이 있다는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테오 앙겔로풀로스도 얘기했고 자연히 그리스(Greece)도 얘기했다. 민호, 혜란이, 원주에 대해 갖는 막연한 죄송함 감사함 존경함에 대해 얘기했다.

오 마이 갓뜨, 나는 지금 일산이다. 녀석의 집이고 어제의 그 다음 날이며 혼자다. 녀석은 이미 출근했다. 나는 곧 이 집을 나가야겠다.

어제 밤, 이 아담한 원룸은 작은 콘서트장 – 7년전 사당동의 재현, 혹은 마지막 우드스탁의 재현 – 이 되었다. 간만에 새벽 2시,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이 크게 볼륨을 높여서 음악을 들었다. 킥킥킥킥. 야, 나 미치겠다 이 음악은 진짜다, 가만 있어봐 이 부분이 아냐, 뭐냐 이보다 위대하냐?, 요 다음 이 쾅! 그래 이 쾅! 쾅! 쾅!, 자끄 루시엘 트리오의 에릭 사티는 즐거우면서도 기품이 있었어. 그러나 그 어떤 노래보다도 내가 발굴(?)한 The Czars의 Drug보다 강렬하진 못했지. 이걸 내가 틀어주는 순간 녀석은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음악이 끝나니까, ‘야, 다시 한 번 더 듣자.’, ‘야, 한 번만 더.’, ‘마지막으로 한 번.’, ‘…’
이거 매형한테 들려주면 끝나버릴까? 완전 죽을껄. 킬킬킬킬킬!!!

그러나 지금은 조용한 원룸. 방 구석구석에 숨어 있던 그의 일상과 먼지같은 고독들이 스멀스멀 유령처럼 기어나온다. 견딜 수 없어 틀어 놓은 티븨에선 이경규가 뭐라뭐라 시끄럽다. 어떤 경우에, 티븨는 충분히 한 인간의 대용을 한다. 윤대녕의 ‘사슴벌레 여자’의 사슴벌레 여자는 냉장고가 한 밤에 쿵쿵대며 돌아가는 소리가 마치 넓직하고 든든한 한 남자의 등 같다고 했다. 그래서 너무 애처롭다. 조금은 멜랑콜리해진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암튼.

2005 Kirrie Best Music Award

슬슬 연말도 되었고.
사실 올 해는 작년처럼 영혼까지 흔들리는 음악들을 그다지 많이 만나지 못했습니다.
강박처럼 10개를 채워야 한다, 고 해서 억지로 10개를 뽑아봤지만 그 중에 몇 개는 Best Music이라기 보다는 그냥 요즘 자주 듣는 음악일 뿐이고요.

언제 터뜨릴까 조바심 내다가 오늘 왠지 젖빛 유리창 밖 유령같은 풍경이 마음에 들어서, 까짓꺼 오늘 터뜨려 봅니다.

언제나처럼 번호는 순위가 아님을 먼저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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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Good Bye Lenin OST
얀 티어센의 음악은 언제나 울먹이는 흰색 비닐봉다리 사이로 보이는 세계, 어느 낯선 골목길, 이를테면 비오는 날의 충무로-종로 구간 같다. 명료하지만 그것은 불분명함에 대한 명료함이다.
레닌 그라드는 상트 페테스부르크로 지명이 바뀌었고 (사실 그 이전에도 상트 페테스부르크였다), 곳곳에서 레닌의 동상이 철거되었다. 레닌 동상의 철거를 두고 사회주의의 총체적 몰락과 관계짓는 조악한 상상력이나, 현실 사회주의의 이상향에 대한 둔감한 희망이나, 골수에까지 무력함이 뻗은 (이럴바엔 차라리 맹렬한 반동이 낫다.) 빈약한 쁘띠이거나, 어쨌거나 저쨌거나 나는 그런거 잘 모르겠고 말하자면 불분명함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이념의 과잉, 음모의 과잉, 소문의 과잉, 전투적 성공신화들의 과잉, 정보의 과잉 등등의 가운데서 여전히 엄마들은 자식들이 꾸미는 아득한 거짓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척 하다가 죽는다. 아빠는 서독(2005년, 여전히 동독과 서독이 갈려있다는 사실이 믿겨져?)의 부유한 의사고 생판 모르는 나이 어린 동생들이 생겼다. 누나의 남편이란 작자는 언제나 맘에 안든다. 나는 라라를 도저히 이해 할 수가 없다. 그래서 로켓에 담아 다 날려버린다. 이러한 불분명함들에 대한 명료함. 이름부터가 명료하잖아. 얀 티어센.

2. Sigur Ros
어느 날 하늘에서 열두장 날개를 가진 검은 낯빛의 천사가 내려와 육삼빌딩 꼭대기에 섰다. 그는 인간을 사랑했으나 그가 사랑하는 인간들은 사랑의 의미를 알 필요가 없다고 했다. 사랑은 행동이라고, 이런 천박한 카피 “사랑은 움직이는거야.”, 가 멀티비젼에서 쨍쨍 울렸다. 걍 움직여, 시간당 이만사천원으로 환산되는 급여명세표에 진리가, 방방헬스 3개월치 끊으면 회원증 50%할인, “까라면 까, 어디서 새빨간 이등병 새끼가.” – 1999년 8월 23일 강원도 7사단 16대대, 체크카드를 써도 소득공제가 되나요? (네, 됩니다.),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 핸드폰 없으면 왕따…
천사는 인간이 지랄을 하던 발광을 하던 상관 않겠다는 투로 고개를 끄덕인다. 하늘을 올려다 봤다. 햇빛이 쨍쨍. 모든게 언젠가 한 번 경험했던 일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천사는 입을 벌려 노래했다. 들리지 않는 소리로, 의미없는 의미로.

3. 노찾사 4집 – 떠나와서
멀리 있어도 따로가 아니네
앞지나간 시간조차 조급해 아쉬운데
가슴에 남은 아픔은 오히려
말이 없던 그 눈길에 긁히어 쓰라린데
땀젖은 너의 얼굴 손저어 지우고
눈을 감고 뛰어봐도 들려오는 아우성
친구야 내가 내 몫을 다하는 날
힘들었던 기억들이 뜨거운 껴안음일지네
음음-

더 할 말 없음.

피엘쏭닷컴으로부터의 감격적인 스트리밍

4. Radiohead – Scatterbrain
자칭 라디오헤드 매니아, 인데도 사실 이 곡을 처음 본(들은)게 아마도 맥주홀릭님 블로그에서였을껍니다. 어쩌면 개인적인데 사실은 그게 사회적이란 말도 되겠지요. ‘Your voice is rattlin’ on my window sill(문득, 네 목소리가 창틀을 흔들었네.)’에서 옛날 생각이 좀 났고 ‘Somewhere I’m not scatterbrain(그 곳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 곳이겠지.)’에서는 위안도 좀 되었고… 뭐, 작년에 얘네들한테 상을 못줬으니, 옛다 하고 올 해 별 하나 줘봅니다.

5. Henryk Mikolaj Gorecki – The Sorrowful Songs
http://kirrie.pe.kr/115
한참 주절거렸으니.

6. Ghost In The Shell OST – Access
카와이 켄지, 혹은 켄지 카와이. 붉어진 어두운 마음으로 가는 길. 그곳은 강철로 된 열대식물들이 그림자에 반사해 검게 빛나는 정글. 무서운 금속 말풍선들이 박제가 되어 허공을 떠다니네. 비릿한 쇳맛.
미안해. 네 마음이 이렇게 깜깜한지 몰랐어.

다음은 잠깐씩 좋았던 곡들
7. Tom Mcrae – The Boy with the Bubble Gun
http://kirrie.pe.kr/117
이것도 한참.

8. 모터싸이클 다이어리 OST – Jorge Drexler – Al Otro Lado Del Rio
꿈 속에서 이 노래를 들었어. 완전히 총천연색으로 분홍이더군. 물안개 사르락 피어나기 시작하는 이른 아침, 보안등이 껌뻑였다.
근데, 나는 체를 잘 몰라.

9. Samuel Barber – Adagio for Strings
http://kirrie.pe.kr/114
말을 말아야지.

10. Nick Drake – At the Chime of a City Clock

“…하지만 1974년 11월 25일 닉 드레이크는 불과 26세의 나이로 자신의 침대에 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때 그의 책상에는 까뮈의 ‘시지프스의 신화’ 복사본이 놓여있었다.”

나와 나이가 같은 이상한 청년. 시지프스의 신화. 불가항력의 세계. 결락감. 12일 뒤에 나는 그보다 나이가 많아진다. 앞으로도 계속 많아질 것임.

목욕탕

백만년만에 목욕탕엘 갔다. 동네 남양탕은 남양사우나로 이름을 바꿨다. 코딱지만한 수면실이 새로 생긴 것과 체중계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뀐 것 외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요즘 들어 몸이 찌뿌둥하고 해서 뜨거운 물이 그리웠던거다. 삼십만년전에 우리 집은 욕조를 부수고 거기에 세탁기를 들여놓았다.

기억해보면 나는 목욕탕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했다. 국민학교땐 일주일에 두번은 갔던 것 같다. (뻥 좀 쳐서) 내가 처음으로 잠수를 익혔던 것도 목욕탕이고 어린 마음에 알듯모를듯한 성(性)적인 야릇함을 배웠던 곳도 목욕탕이었다. 뭐, 추행을 당했다는건 아니고…

처음으로 잠수의 쾌감(?)을 깨달았을 때의 일이다. 손으로 코를 쥐어막고 몸을 웅크려 머리까지 물에 담그면 갑자기 소리가 불투명한 막을 통과해서 머리로부터 울리는 것 같았다. 눈을 꼭 감고 있어도 어렴풋하게 뭔가 보였고 온 몸을 포근하게 감싸는 물의 느낌도 무척 좋았다. 빈약한 무중력의 느낌. 이런게 어떻게 성적인 쾌감하고 연결되냐고 물으면 잘 대답 할 수는 없는데, 아무튼 그때 나는 좀 부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냥 모든게 좋았다. 아득해지는 그 느낌과…

자궁의 기억, 뭐 그런거였을까.

맥반석 계란을 먹고 싶었는데, 왠지 뻘쭘해서 먹진 않았다.

바나나우유가 사라진 대신에 칡즙이 생겼다.

나는 아직도 사우나에 못들어간다.

Tom Mcrae

Day 4 of the Hotel Café tour, sharing a van with this many singer-songwriters was bound to cause trouble. After a peaceful first day several people are now trying to grow beards, form independent political parties, or passionately discuss 16th century French poetry… while still arguing about who’s to blame for global warming. I should have been in a rock band, snorting coke from a hooker’s navel and wearing leather trousers. In fact I still might. This is America after all, where anything is possible. Where any idiot can grow up to be President…. (하략)

호텔 카페 투어 4일째, 많은 싱어-송라이터들과 차를 함께 타는 것은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킬 것이었다. 평화로운 첫째날 이후로 사람들은 덥수룩하게 수염을 기르거나, 끼리끼리 모여 정치적 모임을 갖거나, 열정적으로 16세기 프랑스 시에 대해서 토론했다. 물론 전지구적 온난화는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에 대한 논쟁도 빼놓지 않았다. 난 차라리 가죽바지나 입고 코카인이나 빨아대는 락밴드이고 싶었다. 사실은 충분히 가능한 얘기였다. 여긴 모든게 가능한 아메리카니까. 심지어 좆같은 새끼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 9월 10일, 보스톤 Tom Mcrae

낮에 점심을 먹고 나서 친구랑 벤치에 앉아 간만에 뮤직배틀을 했다. 뮤직배틀이란 차례로 상대에게 누구나 듣기만 하면 인정할만한 최고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그래서 음악을 듣고 난 후에 “인정”이라고 말하면 다시 상대방 차례로 넘어가고 인정하지 못한다고 해도 넘어간다. 이 배틀의 좋은 점은 승부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매우 새롭고 신선하면서도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음악적 취향이 비슷해야 하는데, 다행스럽게도 내 주위엔 나와 비슷한 취향 – 이 음악적 취향이라는 것은 영국 락밴드의 음악을 들어 본 적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음악가중에 요절한 사람이 한명이상 있다 정도로 정리된다.(내 경우 너댓명은 되는것 같다.) – 을 가진 사람이 꽤 있다.
아무튼 내가 날린 선방은 Tom Mcrae의 The Boy with the Bubblegun이었고 녀석은 주저없이 인정했다.

집에 돌아와 잠깐 이런저런 일을 하고 기묘한 라이프 사이클에 따라 한 숨 잔 뒤에 지금 새벽 네시에 일어나 어제 일을 떠올린다. 톰 맥레이. 번역하다 만 그의 9월 10일자 일기를 꺼내 번역하면서, 다시 한 번 그의 음악을 듣는다. 톰 맥레이의 주목할만한 부분은 이 사람이 장르적으로 포크라는 것과 전체적으로 그다지 맹렬한 음율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내면적인 격렬함을 체득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가 누구나 인정할만한 싱어-송 라이터 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다. 아마도 그쪽에서는 그를 밥 딜런이나 닉 드레이크, 폴 사이먼과 같은 희대의 악마적인 시인들과 같은 선상에 놓고 평하는 것 같다. 이를테면, 청년 김민기 정도로 이해가 될까.

아무튼 당분간 다시 이 녀석의 음악을 들을 것 같다. 요즘 한동안 정신이 산만해서 가사가 있는 노래는 듣지 못했는데, 오늘부터 다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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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lus

알고보니 담배에 관한 공익광고 가운데 여자가 테이블에 얼굴을 박박 문대던 거였나 아니면 하수도 맨홀에 얼굴을 쳐박던 거였나에 삽입된 You cut her hair라는 노래도 이 사람 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