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기의 산맥

러브크래프트는 크툴루 신화를 배경으로한 수많은 단편을 써왔다. 물론 크툴루 신화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아니, 신화라는 것 자체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전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개인에 의해 창조된 인공적인 세계는 크툴루 신화가 처음이었다. (반지전쟁의 톨킨처럼) 그는 선배들로부터 이어받은 여러 아이디어를 직조해 어둡고 광막하며 우주적인 공포(Cosmic Horror)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의 열광적인 독자들에 의해서 이 신화는 정리되어서 오늘날의 크툴루 신화가 되었다.

그는 장편은 별로 쓰지 않았는데, 그 드문 장편 가운데서도 수작이 바로 광기의 산맥이다. 광기의 산맥은 에드가 앨런 포우의 유일한 장편(유일한 장편으로 알고 있다.)인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 관한 오마쥬다. 남극으로 탐사를 떠난 탐험대와 그들의 눈에 펼쳐진 초고대의 거대문명. 그리고 그 어두운 지하에서 만난 정체불명의 괴생명체들… 만약 이 이야기가 매우 낯익게 느껴진다면, 그건 전적으로 러브크래프트의 세계관이 암중으로 우리의 미디어 곳곳에 침투했다는 이야기다. 식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러브크래프트의 작품 모두가 그렇듯이, 그의 소설은 이야기가 아니라 상상할 수도 없이 거대하고 오래된 어두운 세계에 대한 묘사로 읽어야 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나는 일부러 수증기가 피어오르는 산꼭대기 부분에는 시선을 주지 않으려고 애쓰며, 산마루 뒤쪽으로 보이는 붉은 노을만을 노려보았다…

중략

.. 신경 쇠약의 증세가 한 단계 더 심해진 댄포스는 침착하지 못했다. 초조한 듯 몸을 뒤채던 그는 결국 뒤를 돌아보았고, 멀어지는 핏빛 하늘과, 이상한 모양의 동굴 입구가 나있는 산봉우리와, 사각형의 구조물이 매달려 있는 산등성이, 거대한 성벽으로 빼곡하게 뒤덮인 구릉지대, 소용돌이치는 구름으로 기이한 모양을 빚어내고 있는 하늘을 쳐다보고야 말았다…

중략

… 댄포스는 그토록 미친 듯이 비명을 질렀던 마지막 공포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내게도 털어놓지 않았다…

중략

… 이상하게도 그것은 우리가 지나쳐온 거석 도시나 동굴, 수증기가 솟아오르는 기이한 광기의 산맥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고 그는 고백했었다. 소용돌이치는 수증기 구름 한가운데서, 고대의 존재들조차 멀리하고 두려워했던 거대한 보랏빛 산맥 너머의 끔찍한 광경을 순간적으로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는 한번도 공포의 대상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그가 어디에선가 밝혔던대로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감정은 두려움이고, 가장 오래되고 가장 강렬한 두려움은 바로 미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아무튼 깊은 밤에 두서없이 공포영화를 보다가 문득 광기의 산맥이 영화화 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살펴보니, 기예르모 델 토로가 영화화 하려고 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는데, 모든 원작을 영화화 하려는 작업이 그렇듯이 과연 이 훌륭한 원작을 얼마나 리얼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하는 점이 그것이다. 아무래도 공포영화는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되기 쉽다. 걸작으로 남는 공포영화들을 보면 대부분 강렬한 캐릭터가 그 중심에 있다. (프레디, 제이슨, 핀헤드… 또 뭐 있지?) 하지만 광기의 산맥의 진수는 인물이 아니라 인물들이 위치한 백색의 대지, 남극에 있는 것이다. (아서 고든 핌의 모험의 권말에 적힌 서울대 영문과 김성곤 교수의 이야기를 싣고 싶은데, 타이핑으로 옮기기에 너무 길고 귀찮아서..) 여기서는 심지어 주인공이 정체불명의 괴물에게 쫓기는 사건도 의미가 없다. 그리고 이것을 그대로 영화로 옮기면 아마 모르긴 몰라도 러브크래프트 매니아가 아니면 매우 지루해 할 것이다. 결국 기예르모는 이 두 영화의 요소를 적절히 배분해야 할텐데, 과연 얼마나 양자(일반/매니아)의 사랑을 받게 될른지는 뚜껑이 열려봐야 알 것이다.

음식만들기 – 국

국 끓이기의 핵심 – 요리를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1. 가급적 천연 조미료를 이용한다.

다시다나 감치미 대신에 건멸치, 건새우, 건표고 등등을 갈아서 사용하면 좋다. 대신에 이런 천연 조미료는 인공 조미료에 비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풍미는 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소위 ‘감칠맛’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정제/추출된 상태로 인공 조미료에 첨가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 원료는 많이 먹을 수록 뇌에 장애나 과잉행동장애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인공 조미료가 아니라, 인스턴트 식품이다. 인공 조미료는 천연 조미료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햄, 소시지, 라면, 이온음료, 과일통조림, 캐첩 등등에 들어가는 인공 조미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체는 아주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 천연 조미료로 재료를 막 바꾸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섬세한 맛들에 시간이 지날 수록 미각이 예민해져서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태양광에 과도 노출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빛이, 어두운 밤에는 보이는 것과 같다.
나는 일전에 만두국을 끓이면서 소금이나 인공 조미료를 아예 넣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대신에 건멸치로 육수를 우려내고 국이 끓던 도중에 조미료 대신으로 만두 하나를 터뜨렸다. 아… 그 풍미란! 만두소에 포함된 고기나 야채들에서 우러난 진하고 깊고 복잡한 맛이,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2. 가급적 재료를 적게 쓴다.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양 조절이다. 우리 아버지도 지금은 요리를 잘 하시지만, 처음에 요리 하실땐 무조건 많이 넣으면 맛있어지는 줄 아셨던지 그 양이 엄청났다. 조미료도 심하게 넣고, 소금도 그랬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는 적당히 넣는 것이 좋다. 아니, 적당히약간 모자란듯 한의 그 미묘한 경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음식 만화의 지존인 ‘맛의 달인’의 어떤 챕터에는 숙련된 요리사가 보이는 소금간 시범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요리사는 그냥 물을 끓이고 거기에 약간의 소금을 넣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끓인 소금물은 매우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에 소금으로 정확하게 간을 맞춘다고 해서 맛이 정말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그 챕터가 가지는 내용의 핵심은 아주 미묘한 경험으로써의 간이 있다는 것이다. 국에 들어가는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국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끓임으로써 그 맛의 정수들이 국물로 모인다. 때문에 너무 많이 넣거나 너무 적게 넣는다면 원래 기대했던 맛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자, 그런데 왜 재료는 적게 써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재료를 적게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재료를 더하면 된다. 하지만 재료를 너무 많이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물을 넣어서 간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한 간에 물을 넣으면 전혀 맛이 없다. 정확한 간을 익힐 때까지는 조금씩 재료를 더하며 간을 맞추는 것이 훨씬 낫다.

3. 재료를 넣는 순서가 있다.
카레의 재료는 보통 감자, 당근, 고기, 양파, 카레가루, 물 등이다. 자, 그럼 맛있는 카레를 만들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식재료는 각자 익는 시간이 다 다르다. 감자나 당근은 보통 두툼하게 썰고 단단하므로 쉽게 익지 않는다. 그리고 양파는 제일 빨리 익는다. 조리가 끝났을 때 모든 재료가 각자 제일 적당한 정도로 익을 수 있도록, 재료를 넣는 순서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레의 경우 감자와 당근이 제일 늦게 익기 때문에 가장 먼저 넣어 볶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익어갈 즈음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경험 뿐이다. 아니면 젓가락으로 찔러봐도 된다.) 고기를 넣고 볶는다. 그리고 뒤에 양파를 넣고 양파가 거의 다 익을 즈음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다. 즉,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 시점에서 감자, 당근, 고기, 양파는 모두 비슷하게 익어야 한다.
사실 모든 식재료가 익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수많은 요리 가운데 생겨난 경험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4. 푹 끓인다.
돼지김치찌개의 핵심은 김치의 얼큰시원한 맛과 어우러진 돼지고기의 풍미일 것이다. 고기는 보통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오지도 않는다. 김치도 그렇다. 김치는 야채로 만든 것이어서 금방 익고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올 것 같지만, 푹 익은 김치는 왠만한 시간으로는 그 본래 맛을 내어주지 않는다. 때문에 돼지김치찌개의 경우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5~6분, 길게는 10분까지 끓여야지만이 본래의 맛이 우러나게 할 수 있다.
일본의 국에는 이랄까, 진하게 우려낸 같은 것이 없다. (라멘 육수 같은 것은 제외하고) 왜냐하면 일본 국의 핵심은 각각의 식재료들이 가진 맛의 정수를 최대한 이끌어 낸 정도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라멘 국물까지 다 마시는 법이 잘 없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국의 핵심은 모든 식재료의 맛이 국물에 집중되어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은 국물을 마시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5. 상상력!
상상력은 놀라운 힘이다. 만약 우리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해물된장찌개같은 시원한 된장찌개는 영원히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력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힘이기도 하다. 매번 같은 조리법에 질렸다면,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변화를 주는 것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요즘 주력하는 분야는 만두인데, 만두를 먹다가 왜 만두는 한끼 식사로만 먹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만두를 먹거나 밥을 먹지, 만두와 밥을 같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두의 만두소는 그 맛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충분히 반찬으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만두덮밥을 만들었다. 우선 먼저 건멸치로 낸 육수로 만두를 끓인다. 물의 양은 평소보다 조금 적게 하면 된다. 그리고 소금간은 하지 않고 대신 간장과 가스오부시액(한국에는 가스오부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스오부시액을 사용했다.)으로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게 간을 한다. 그리고 나는 파를 매우 좋아하므로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4분쯤 지났을 때 파를 듬뿍 넣는다. 그리고 1분간 더 끓여준다. 다 끓였으면 만두를 건저서 밥 위에 얹는다. (한끼 식사에는 보통 4~5개가 적당하다.) 그리고 육수는 버리지 않고 절반쯤 따라 낸 뒤에, 남은 것은 또 팔팔 끓여서 약간 졸게 만든다. 졸은 육수를 만두 위에 끼얹어 주면 맛있는 만두덮밥이 완성된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이나 깨소금을 약간 넣으면 좋다.

gidon kremer & kremerata baltica

인터미션 전에 연주된 두 곡은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현대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그래도 기든 크레머니까 집중하는 척은 해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 내 앞줄에 앉아 있던 두 중년 남녀의 엿 같은 짓거리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한 것은 참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떳떳한 새끼들은 용서할 줄 모른다. 다행히 인터미션이 끝나고 그 두 남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전문 감상자도 아니고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어서, 연주가 어땠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앉았던 자리가 3층이어서 그런지 음이 매우 풍부하게 울렸다. 사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는 꽤 여러 번 갔었는데, 그때마다 한국 교향악단의 연주는 예쁘지만 너무 마른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음과 음 사이에 공간이 많은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 연주들은 모두 1층에서 들었다. 앞으로는 3층에서 들어야겠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The Cinema’란 주제로 이어진 영화음악의 연주는 그럭저럭 들을만 했다. 기든 크레머라는 연주자 자체가 워낙 개성 있고 독특한 인물이어서 그런지, 그가 만든 악단 kremerata baltica도 굉장히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이 강했다. 연주 중간마다 코믹한 상황극(?)을 연출하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다만,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연주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는 어떤 연출이나 편곡, 기교도 없이 내가 자주 들었던 그 아다지오 그대로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몇 곡을 연주했고 (가벼운 느낌의 재즈곡) 드디어 고대하던 피아졸라의 순서가 되었는데, 아… 내가 항상 녹음 된 음반만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실황의 느낌이랄까, 기든 크레머적인 무언가가 적잖이 빠진 연주가 되어버려서 약간 실망을 했다. 프로그램에 실려 있던 대로 피아졸라는 그의 ‘필살기’인데 말이다. 피곤했던걸까…

아무튼 연주가 다 끝나고 앙콜 2곡 더 하고 막이 내렸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서 몰려나와 벤츠나 그랜저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혹은 버스나 나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땀 냄새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생애 최초로 거장을 만났다는 긴장감이 단추 풀리듯이 풀려버렸다. 그리고 긴장감의 빈자리에 공허함이 몰려왔다. 아마 대부분 공연이 이렇겠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기든 크레머는 정말 훌륭한 연주가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지.

열한 시 반쯤 집 근처에 내려서 문득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고, 편의점에서 김밥 몇 개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bigger than others’ from tom mcrae’s journal

tom mcraejournal들을 뒤적이다가, 공감가는 글을 읽어서 옮겨본다.
개인으로서의 신념과 실천에 관한 문제들을 고민하고 있다면, 그냥 훌훌 넘겨봐도 좋을 것 같다. 그의 정치에 관한 –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선거’에 관한 – 생각은 나도 많이 공감하고 있다. 좀 더 숙성되어야 할 것 같지만서도..

언제나 그렇듯이 난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기 때문에, 번역하고 나서 다시 읽어봐도 문장들이 잘 이어지질 않는 것 같다. 이해가 안된다 싶으면 원문을 참조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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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used to argue with my dad about many things, but mainly about religion and politics, and the state of the world. The arguments would usually end the same way. He would pause, sigh and then say in his best vicar’s voice: ‘well what would you do in the same circumstances?’ at once both neatly ending the debate, and also challenging me to get involved, to do something. And that is how I feel about many things today, I argue, I rant, I complain – often without being fully conversant with the facts – but then I usually decide to do something.
자주 아버지와 종교나 정치, 이 세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곤 하는데 대개 비슷한 방식으로 끝난다. 아버지는 잠시 뜸을 들이고 탄식하면서 엄숙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넌 어떻게 할꺼니?” 아주 매끄러운 끝맺음인 동시에 나로 하여금 진짜 뭔갈 하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는 내용에 대해서 사람들과 논쟁하고 큰소리치고 불평할때마다 나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떠올린다. 그래도 여전히 뭔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한다.

I stopped going to church when I realised there was no God – amusing my family no end in the process. I stopped eating meat when I thought me not having a bacon sandwich would bring about compassion in world farming. I marched against every new war, I helped drink the bar dry in solidarity with whichever Turkish miners’ union I felt sympathy with at the time. I bought fair trade coffee, organic eggs and Green and Black’s chocolate.
신이 없다는 것을 깨달은 때부터 나는 교회에 나가지 않았다.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집에는 계속 나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베이컨 샌드위치를 먹지 않는 것이 ‘세계 영농을 위한 연민(동물보호단체)’의 뜻과 일치한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나는 고기를 먹지 않았다. 전쟁이 발발할 때마다 시위행진에 가담하고, 관심을 갖고 있는 터키 광부 노조의 단결을 위해서 술을 마신다. 공정 무역을 통해 거래된 커피와 유기농 달걀과 초콜렛을 산다.

None of these activities has yet to have any major impact on the world (argue all you like) and in the end the smell of bacon tempted me back into the world of the carnivorous, and anyway…. some days you just want a Starbucks. L’Oreal bought The Bodyshop (right on, Anita – I met her once, not a terribly bright woman) Nestle bought Green and Black’s, and now the chances are any single way you try to act as a ‘caring consumer’ you’re putting money in the hands of one evil empire or another. My point is, we’re all hypocrites, even if it’s unwitting.
이런 결단들 가운데 어떤 것도 아직 이 세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결국은 베이컨의 유혹에 넘어가 육식의 세계로 다시금 되돌아 가는 것이다.. 어쨌든간에 스타벅스도 다시 마시게 될지 모른다. 로레알이 바디샵을 점령하고 (아니타를 한 번 만난적 있는데, 생각만큼 그렇게 멋지진 않았다.) 네슬레는 유기농 산업을 집어 삼키고 있다. 사려깊은 소비자가 되기 위한 그 어떤 노력도 결국은 악의 제국의 배를 불려줄 뿐이다. 하고 싶은 말은, 의도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우린 모두 위선자들이란거다.

But some days I read a paper or watch the news and I still ask myself ‘what would I do?’. Would I have invaded Iraq, I hope not. Would I be spending my country’s tax revenues on protecting opium growers in Afghanistan – nope, I’d legalise all drugs, classify them and charge a market rate, but that’s just me. Would I be partnering up with the most dangerous man in history, and by doing so undermining the position of the U.N, and making myself a pariah state and target for terrorism – again, I’d like to think not. Would I have shot a guy in his East London for home for the crime of having a beard? I’ll let you guess the answer to that one.
하지만 신문이나 티븨뉴스를 볼때면 나는 항상 자신에게 ‘내가 뭘 했어야했지?’ 하고 되묻는다. 이라크나 침공해야 했을까? 아니길 바란다. 그럼 내가 낸 세금으로 아프카니스탄의 아편 재배자들이나 보호하고 있어야 했을까? 아니다. 차라리 난 모든 약물들을 합법화 시켜서 그걸 등급별로 분류한 다음에 합당한 시세대로 유통시켜야 한다는, 뭐 그런 정도밖에 생각할줄 모르는 사람이다. 아니면 역사상 가장 위험한 인물(아마도 죠지 부시)과 작당하여 UN의 입지를 약화시킨 다음에, 내 자신이 테러의 목표가 되는 불쌍한 민간인들이 되는 짓을 반복해야 할까? 절대 아니다. 빵을 훔쳤다는 죄목으로 East London에 사는 그 사람을 쏴야만 했을까? 어째야 했을지 답해보시길 바란다..

But those are all hypothetical questions, I’m not the President or the PM, or Chief of Police… so what as an individual can I do? Well, I’m not famous enough for people to pay attention to the random rants of a minor songwriter with a cult (for cult, read smalll, loyal, intelligent, often physically beautiful, with nice hair and a fragrant smelling) audience, so that just leaves my voting rights. But – and here’s a minor controversial point – in much the same way I grew out of God, I’ve grown out of my belief in democracy. There is no longer any principle at the heart of politics, and the prime motivation of every party is election, followed by four years of campaigning for re-election. We all know this. I wrote a song about it once – big whoop. Smart people vote to keep out the BNP – or other fascists – and because our grandparents fought wars so we could, and because Emeline Pankhurst threw herself under a horse. But no one votes in the belief that anything will change. Do they? We have zero choice and zero expectations. The same thing has decided elections since the first man posted the first ballot in the first ballot box: it’s the economy stupid. Offer tax cuts you’ll get in. Pursue a stable economy at the expense of developing nations and the environment, you’ll get in. We all want jobs, homes and widescreen tv’s, Preferably with ‘ambi-light’ (A bulb in it. Ambi-light. Genius.) I know I do. How else will I enjoy Rooney firing home the winner in the world cup final. But I digress.
물론 위의 질문들은 모두 거짓이다.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판사도 아니며, 경찰서장도 아니다… 그런 ‘개인으로서’ 나 자신은 뭘 할 수 있을까? 글쎄, 난 그다지 유명하지가 않아서 컬트적인 팬이나 갖고 있는 인기없는 싱어송라이터의 돌발적인 이런 발언들에 사람들은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것이 나의 결정을 조금 더 유보하게 한다. 신으로부터 내 자신이 성장한 것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나는 성장해왔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정치의 핵심에는 어떠한 원칙이 없으며, 모든 정당의 핵심 동력은, 4년마다 재선을 위해 벌이는 선거 뿐이다. 우리는 모두 이것을 알고 있다. (예전에 이것에 관한 노래 – big whoop – 를 쓴 적이 있다.) 똑똑한 사람들은  영국국민당 (BNP, British National Party) 이나 다른 파시스트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투표한다. 우리 조부모들이 그래왔던 것처럼, Emmeline Pankhurst가 왕의 경주마(King’s horse)에 몸을 던져 죽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tom은 잘못 알고 있는듯 하다. 왕의 경주마에 의해 살해당했던 것은 그녀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었던 Women’s Social and Political Union의 멤버인 Emily Wilding Davison였다. 구글링을 해봤는데 영국인 가운데서도 혼동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구도 우리 사회가 변화할 것이란 믿음에 투표하지 않는다. 우리는 선택권도 없으며 기대도 하지 않는다. 첫번째 투표소에서 첫번째 사람이 투표를 함과 동시에 매번 같은 문제가 선거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세금을 인하하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국토와 환경을 개발하여 안정적인 경제를 만들겠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든다. 우린 모두 일자리를 원한다. 집도, 와이드스크린 티븨도 (가급적이면 지능형 조명연출 기능이 추가된 것이기를 바란다). 월드컵 결승전에서 루니가 승자의 자리를 놓고 다투는 모습을 보는 것 외에 다른 것에 신경쓸 겨를이나 있을 것인가. 조금 이야기가 빗나갔다.

So, as ethical consumers we’re fucked. The first rule of capitalism is that money will end up in the hands of those who already have it – Nestle, l’Oreal, and even BP – the oh-so-ethical-oil company working hard to develop new eco-energy whilst destroying Alaska drilling for oil. Now that’s old school, BP. Some would call that pissing down my back and telling me it’s raining. Please take the British out of your name – I’m ashamed enough as it is. Beyond Petroleum… my big fat, hairy (actually pert and smooth) butt.
어쨌든, 윤리적 소비자로서 우리는 완전 좃같다. 자본주의의 첫번째 법칙이란 돈은 결국 자본을 소유한 자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질 못한다는 것이다. (네슬레, 로레알, 심지어는 영국석유 (BP, British Petroleum)까지도 자본을 소유한 자들이다. 영국석유의 경우는 자칭 ‘우리는 환경친화적인 에너지를 개발하는데 주력하는 윤리적인 석유회사에요’ 하고 광고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석유 굴착을 위해 알래스카의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 영국석유가 좋았던 것도 다 옛 말이 되었다. 누군가 당신의 등에 오줌을 누면서 ‘아 비가 오네요’ 하는 격이다. 제발 그 이름에서 ‘영국’이란 단어를 빼버렸으면 좋겠다. 그렇지 않아도 충분히 부끄러운데… 하지만 ‘석유’만 남아도.. 에이 머저리들.)

And now as voters we’re fucked. Cameron, Blair/Brown/A.N Other, Menzies Campbell… who would you vote for? Green? Good luck with that. ‘But if enough of us do, Tom, we can change the planet’. ‘What if they held a war and no one turned up maaaan?’ No. Ain’t gonna happen. Once again it’s the economy, stupid. And if they held a war (which they will do every week until the end of time – not actually that far off) the Americans will still turn up to do some ass-whooping, with the trusty British gimp at their side.
그리고 이제는 투표자로서의 우리도 완전 좃같다.  캐머런, 블레어/브라운/A.N Other, 멘지스 캠벨 (누구지 이 사람들?)… 누구를 찍을 것인가? 녹색당? 오, 당신의 투표에 행운이 있기를. ‘하지만 우리가 조금씩만 실천한다면요, 톰, 우리는 세계를 바꿀 수 있을꺼에요.’, ‘만약에 전쟁이 시작되었는데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으면요오오오?’ 아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문제는 경제다, 바보들아. 만약에 ‘미국인들이’ 전쟁을 시작한다고 하면 (아마 그들은 세상이 멸망 – 멸망까지 얼마 남지도 않아 보이지만 – 할때까지 매주 계속 새로운 전쟁을 시작할꺼다), 같잖은 영국이 그들 편에 서 있다는 생각에 여전히 환호를 지르며 경제적인 문제들로 (석유나 각종 이권들을 위해) 전쟁을 계속할 것이다.

Again… I hear my father’s voice…’what would you do?’… well, I won’t be voting again that’s for sure. Please don’t mistake this for cynicism, it’s not. It’s the opposite: it’s hope. I will, in my small, and very ignorable way, remove myself from the process. I will never be involved in a ‘rock-the-vote’ campaign, not that I’d get asked. Bastards. Come the next election I will hold a ‘fuck-the-vote’ rally, campaigning to have my refusal to participate in electing the next generation of murderers recognised. I want my spoilt ballot counted. If the rules of the game suck, then you can chose to not play, or you can seek to change the rules. And seeing as not playing is no longer an option, what would you do, Tom? What would you do?
다시.. 나는 아버지의 음성을 듣는다… ‘그래, 넌 어떻게 할꺼니?’… 글쎄, 한가지 확실한건 난 투표따위는 하지 않을꺼란 사실이다. (혹은 그들에게 표를 던지지 않을 것) 이걸 냉소적인걸로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지 반대한다는 것이다. (정말 반대이길 바란다.) 난 내가 최소한 할 수 있는 – 그것들을 무시하는 방법으로 – 내 자신을 선거의 한 과정에서 제외시킬 것이다. 난 이제 다시는 ‘투표합시다!!’ 따위의 캠페인에 동조하지 않을 것이다. 개새끼들. 다음 선거가 오면, 나는 ‘투표따위는 엿먹어라!!’ 운동을 해보려고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음 세대의 살인자들을 뽑는 선거에 참여하지 말자는 것이다. 난 내가 던지는 사표(死票)도 하나의 표로 인정되기를 원한다. 선거판 자체가 좃같다면, 선거 자체를 부정할 수도 있어야 하고, 그렇게 해서 판 자체를 바꿀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들의 장단에 놀아나지 않는 것, 그것은 더 이상 해도 그만 안해도 그만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넌 어떻게 할꺼니, 톰? 어떻게 할꺼니…?

Clearly I had too much fair trade coffee this morning, and read about the shelling of Palestinians in Gaza. My first reaction was to want to have my records withdrawn from sale in Israel. Like anyone would notice. But then not every Israeli fires missiles into beaches, just as not every Palestinian is a terrorist. You never read about the Israeli peace movement – because no one prints those stories. It’s a fucked up situation that knee-jerk reactions won’t help. And where exactly would I sell my records if I didn’t agree with that country’s leaders? (Bless you, Belgium).
정말로 오늘 아침 나는 공정무역 커피를 너무 많이 마셨다. 그리고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폭격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내가 첫번째 반응은 이스라엘에서의 내 앨범들을 철수시키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이스라엘인들이 해변에 미사일 공격을 가한다는 것은 아니다. 모든 팔레스타인인이 테러리스트가 아닌 것처럼. 아마 이스라엘인들의 평화 운동에 대한 기사는 읽어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런 이야기는 기사로 만들지 않는다. 난 내가 이렇게 무의식적으로 어떤 것에 대해서 반응하는게 엿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내가 해당 국가의 수장에 반대한다고 해서 앨범을 풀지 않겠다고 하면, 대체 내 앨범들은 어디서 팔릴 것인가? (다행인줄 알아라, 벨기에)

‘But you’re a songwriter, Tom, and you shouldn’t be involved in politics’… I have a well worked out riposte to that one: fuck you. I have a right to an opinion, I have a website and I’m reasonably good with words…. I’ll say what the fuck I like, when and to whom. Notice the ‘to whom’. See?
‘하지만 당신은 그냥 노래하는 사람일 뿐이잖아요, 톰, 정치 따위에 관심을 가져선 안되요’… 요런 말들에 대해서 나는 한마디 해줄 말이 있다, 조까. 난 내 의사를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고, 웹사이트도 있고, 합당한 말을 하고 있다고!.. 난 언제고 누구에게나 그렇게 말 할 수 있다. ‘누구에게나’ 라고 한 것에 주목해라. 알아 듣겠냐?

Again ‘what would you do?’ Well, the best I could do was to write this.
Artists can agitate as well as soothe, I hope. Also I bought a big book on Israel, a general history of the world, and a high-powered rifle. One of those items was slightly harder to come by in Wood Green. I intend by the end of the week to have solved the problem of the Middle East – on paper at least – I’ll probably do it during half-time tomorrow. I’m not serious about the rifle, but I am serious about not voting. The world is a different, far more dangerous place to that of 1945. Democracy’s strength used to be that it evolved slowly over time, with checks and balances…. slow was good. Well, the planet’s dying – time isn’t running out, it’s already left the building and is right now in a jacuzzi, with Einstein and Darwin (my personal gods) and of course, Nina Simone – she’s there because she has the voice I always wanted, bitch.
다시 ‘넌 어떻게 할꺼니?’ 로 돌아와서.. 글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이 글을 쓰는 것이다. (아티스트들이란 가능한 조용하게 세상에 파문을 일으키는 자들이라고 믿고 싶다.) 또, 난 이스라엘에서 세계의 역사에 관한 책과 강력한 소총 한자루를 살 수도 있다.. 물론 이 물건들 중에 어떤건 우드 그린 (영국의 한 지명, 아마도 톰이 사는 동네인듯) 에 가져오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주말까지 동아시아 문제를 해결해 보려고 할 것이다. (결국 이렇게 글이나 쓰는 것이겠지만) 아마 내일 내내 하게 될 것 같다. 소총에 대한건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투표 거부는 진심이다. 이 세계는, 매우 위험했던 1945년 (2차 세계대전) 과는 분명 다르다. 민주주의의 힘은, 많은 교정과 균형들을 통해 서서히 발전해왔다. ‘서서히’ 란 좋은 것이다. 그리고 또..

So….What would you do?
그래서..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Next week we’ll be asking the questions ‘Is cranberry juice the fuel of the future? Is Sigur Ros the new Enya? And why are Keane?
아마 다음주에 우리는 이런 질문들이나 던지고 있을지 모른다. ‘정말 딸기쥬스(cranberry juice)가 미래의 에너지원이 될 수 있나요?’, ‘Sigur Ros는 엔야의 새로운 버전인가요?’, ‘왜 인가요?’

So who wants to hear about my new record?
그러니 누가 내 새로운 앨범을 들으려고 하겠는가.

좋은 것들은 일찍 사라진다.

자려다가 문득 책장 구석에 먼지 쓰고 잠들어 있던 고장난 셀빅 pda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이걸 고쳐서 다시 쓸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이놈하고 참 오랫동안 같이 지냈던 것 같다. pda로 전화를 한다는 것이 요즘에도 낯선 일인데, 02년도에 지하철에서 셀빅으로 이북을 보다가 갑자기 전화가 와서 바로 그놈을 귀에다 대고 말을 하기 시작하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신기하다기 보다는 (미친게 아닐까 걱정된 표정으로) 경악하며 나를 쳐다봤다. 한번은 궁금해서 못참겠던지 어떤 아저씨가 그건 뭐하는 기계냐고 묻기까지 했을 정도였으니까…

아무튼 그만한 가격에 자체 os와 수많은 공개 어플리케이션, 게다가 16 gray까지 지원하여 시원한 가독성을 보이는 pda는 아직도 없다고 감히 단언할 정도였다. 계속되는 판매부진으로 망했다는게 아직도 믿겨지지가 않는다.

솔직히 pda로 이동하며 영화를 볼 필요는 없다. pmp가 있고 심지어 핸드폰으로도 볼 수 있으니까. mp3? 요즘 mp3 플레이어 없는 사람 (도 있겠지만) 도 있나? 가장 기본적인 text 중심의 개인 데이터 오거나이저의 역할만 제대로 해낸다면, 그게 바로 최고의 pda다. 셀빅이 그런 존재였다. (나는 그 뒤로 명품이라는 바이저 프리즘도 클리에도 wince 계열의 pda도.. 이것저것 다 써봤지만, 예전과 같은 시원한 만족감은 느낄 수 없었다.)

삼성에서 만든 것중에 유일하게 맘에 들었던 이지프로도 그렇다. 핸드헬드 피씨라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아이템 (타블렛 피씨의 효시격이라고나 할까..) 으로, 동급 최강의 화면과 화면이 돌아가서 마치 노트패드처럼 보이는 ‘스위블’ 기능까지 갖춘 궁극의 기기. 이걸로 이북보면 정말 책보는 느낌이 났다. 노트북과는 비교도 안되는 배터리 용량 (구동장치가 없으므로 배터리 효율도 노트북에 비해 극히 높다.) 으로 한번 충전해서 학교에 갖고 가면 이틀은 레포트 쓰랴 학생회 회의록 정리하랴 아무 걱정도 없었다. 게다가 노트북에 비해 크기도 월등히 작고 가벼워서 극강의 휴대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바보같은 삼성은 이 라인업을 잘 살려 주무기는 못되어도 꽤나 인정받는 제품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를, 단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단종시켜버렸다. 예전에 프리챌에 이지동이 제일 컸는데, 거기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면서 정겨웠던 기억이 난다. 이 제품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각별했는지 어떤 사람은 기기 자체를 개조해서 사용할 수 없었던 마우스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던가, 삼성이 마음을 고쳐먹고 이지프로의 업그레이드 버젼을 비밀리에 개발중이라는 fake 기사를 인용한다던가 하기도 했었다. (말 나온김에 수집해둔 프리챌 이지동 글 몇개 링크.. 1 2 그리고 정말 ‘말 나온 김에’ 프리챌에 다시 들어가봤더니 이지동 아직도 살아있었다…)

모든게 좀 더 손 끝에 가까웠던 시절. 마음이 충실하게 움직였던 시절.. 일까.

colinux (cooperative linux) 관련

예전에 colinux를 설치해서 잘 쓰다가, 이 이쁜 프로그램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포스팅을 했더니 그 뒤로 꽤 많은 사람들이 해당 글을 보기 위해 접속하고 있다. 아마도 프로그램 설치 방법에 관한 내용을 기대하고 들어 왔을 것 같다. 하지만 예전에 썼던 글에는 설치방법은 적지를 않았다. 실망이 많았을 것이다.

그 글을 쓰고 난지도 한참이 지났고, 한동안 colinux를 잊고 있다가 다시 필요해져서 http://colinux.org 를 찾았다. 버젼은 꽤 업데이트가 되었고 현재 0.7.1이 beta 0.6.4가 stable인 상태다. stable을 받아서 설치하고 나니, 공포의 블루스크린이 뜨기 시작한다. 이걸 어쩐담… wiki를 살펴보니 부팅 옵션을 변경해주면 나아질 수도 있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도 블루 스크린이 여전하다. 문제가 계속 심각해져서 일단 서비스를 내려놓고 검색을 좀 더 하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stable인 주제에 winxp에서 자주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한다. beta버젼에서는 블루 스크린에 대한 많은 버그가 수정되었다고 해서 새로운 버젼으로 다시 설치를 했다. (※ 설치하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stable말고 beta를 설치하세요. 0.8.0이 가장 최근 스냅샷이긴 하지만 저는 0.7.1 rc4를 설치했습니다.) 별 무리 없이 잘 실행중이다.

그리고 루트 이미지도 그렇다. 내가 예전에 colinux에서 데비안을 돌릴때는 stable이 우디(3.0)여서 아무 생각없이 우디 버젼의 stable 데비안 이미지를 가져다 설치했더니 패키지 레포지트리 가운데 몇개가 죽어있고 (backports), 그나마도 무슨 문제인지 apt-get update시에 패키지를 제대로 merge하지 못하고 중간에 에러가 나버린다. 몇 번을 새로 다운로드 받아서 해봐도 안되어서 살펴보니 어느덧 stable이 이치(4.0)로 바뀌어 있었고, 그래서 이미지도 이치 버젼의 것으로 새로 다운받아 적용해봤더니 아주 잘 되고 있다. 게다가 apm도 다 최신버젼이다 (apache2, php5, mysql5). 아주 흐뭇하다. (※ 다른 배포판 쪽은 잘 모르겠지만, 데비안 계열을 이용하려면 3.0 이미지보다 4.0 이미지를 이용하세요.)

네트워킹 설정 (WinPCAP)

그리고 colinux를 설치하면서 가장 애먹이는 부분이 네트워킹 설정 부분이다. 나의 경우는 공유기를 사용하고 있으며 colinux를 마치 가상의 다른 물리적 머신으로 전제하고 작업해야 하므로 winpcap을 이용한 브릿지 방식의 네트워킹을 사용하고 있다. 이 경우 colinux는 winpcap을 통해 공유기에서 직접 ip를 받아온다. 공유기를 사용하는 유저라면 이 방법이 접근이 용이하므로 가장 유용할 듯 하다. 단 데비안을 막 부팅한 상태라면 /etc/network/interfaces 파일이 수정되지 않은 상태이므로 이 부분을 변경해야 한다. 디폴트로 nano가 깔려 있으므로,

kirrie@debian:~$nano /etc/network/interfaces

한 뒤에 편집창에서 static으로 잡혀 있는 설정을 dhcp로 변경한다. (특별한 라우터 구성이 아닌 다음에야 최근의 거의 모든 공유기는 dhcp를 통해 ip를 받아온다. 그런데 사실 준비된 ip가 다 사용중이지 않은 뒤에야 static으로 남은 ip를 잡았다고 동작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데, 뭔가 모르게 잘 안되어서 그냥 dhcp로 ip를 공유기로부터 가져오기로 했다.) 아무튼 아래와 같이 변경한다.

auto lo
iface lo inet loopback

auto eth0
iface eth0 inet dhcp

줄 앞에 #가 붙으면 해당 줄은 모두 주석처리되어 아무런 효력이 없다. 그러므로 주석 해제된 줄이 위와 같이 되도록 수정하면 된다. 나머지 부분은 삭제해도 좋고, 혹시 모를때를 대비해서 그냥 주석처리를 해놓는 것도 좋다.

정상적으로 수정했고 잘 저장했다면 네트워크 인터페이스를 재시동한다.

kirrie@debian:~$ifdown eth0

kirrie@debian:~$
ifup eth0

ifdown은 해당 인터페이스를 내리 (종료) 라는 명령이고 ifup은 올리 (실행) 라는 명령이다. 모든게 정상적이라면 dhcp-client가 열심히 ip를 공유기로부터 받아오려고 사정사정 하는게 보일 것이다. (나는 지금 네트워킹 부분을 데비안 환경에 맞춰 설명하고 있다. 다른 배포판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다른 배포판을 안써본지가 억만년은 넘었으므로 패스.)

ifup eth0 명령 후에 몇 줄이 지나가고 다시 프롬프트가 뜨면 이제 다 설정이 잘 되었는지 확인해본다.

kirrie@debian:~$ping www.google.com

모든게 다 잘됐다면 colinux는 구글에다가 핑패킷을 날리고 있을 것이다.

네트워킹 설정이 끝났으면 이제 apt의 소스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필요한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한다.

—>

처음엔 그냥 설치 잘 했다, 정도를 쓰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이야기가 조금 길어졌다. 혹시 colinux를 설치하다가 문제가 발생했거나 하신 분이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일단 먼저 자신의 문제가 어디서 발생한 것인지 잠시 생각해보고 wiki를 통해 해답을 찾아보길 바란다. 그래도 안된다면 kirrie_at_gmail_dot_com 으로 문의해주시면 최대한 도움을 주도록 노력하겠다.

다음엔 colinux를 가지고 할 수 있는 다른 여러가지 삽질(?)들을 소개할까 한다.

고백


“이제 좀 마음이 가벼워진 것 같아?” 내가 물었다.
“아니.”
전혀 놀랍지 않았다. 마음을 연다고 비애가 사라진다는 말을 나는 전혀 믿지 않는다. 단지 슬픔과 비애의 일부만이 타인에게 퍼져나갈 뿐이다.

중략

… 여동생을 강간했던 것이다. 그것이 그의 가장 큰 비밀이고 끔찍한 죄악이었다. 나는 귀가 더렵혀진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꾀죄죄하고도 보잘것없는 이야기였고, 이제 나는 그것을 평생 가슴속에 간직해야 한다.


– 로버트 실버버그, ‘두개골의 서’

자기부정

담뱃갑

흡연은 폐암 등 각종 질병의 원인이 되며, 특히 임신부와 청소년의 건강에 해롭습니다.

영화배우

특히,

“이건 영화가 아니잖아.”

하고 대사를 읊는 영화배우.

방정식

요즘 꿈을 너무 심하게 꾼다.

어제는 꿈 속에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방정식을 생각해냈다.

n(n-1)(n+1) = 3n

이라는 방정식인데, 당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이 방정식을 생각해낸건지
이 방정식 외에는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낮에 이 방정식을 풀어 보았다. 나는 수학을 정말 못하기 때문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는
짚어주시길 바란다.

n(n-1)(n+1) = 3n
=> n(n^2-1) = 3n
=> n^3-n = 3n
=> n^3-4n = 0

이 방정식을 만족시키는 정수의 해는 ±2 밖에 없다.

꿈 속에서 이 방정식을 떠올리고는 ‘해냈다!!’ 한 기분이었는데, 지금은 영 찜찜.

어떤 고난

데이터 저장용으로 사용하던 하드디스크가 날아가버렸다. 지난 수년간 작업했던 결과물들도 찍은 사진들도 희귀한 영화 파일도 다 날아가버렸다.

차라리 잘됐다 싶기도 하다.

무언가를 갖고 있다는건 언제든지 빈 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란거, 알았다. 됐다, 잊자. 잊자.

다시는 정같은거 주지 않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