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말더듬이의 날

성형외과에는 환자 아닌 환자들이 몰려든다. 말더듬이들은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인 셈이다. 말더듬을 학계에서는 ‘유창성장애’라 부른다. 유창한 언어생활을 향유하는데 장애를 겪고 있다는 뜻에서 붙여진 명칭일 성싶다. 말더듬을 단순한 습관이나 잘못 길러진 버릇으로 치부하지 말고 일종의 장애로 규정해 사회적 관심과 지원을 기울이자는 촉구다.

‘말더듬은 날’은 ‘International Stuttering Awarness Day’를 국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세계인구를 60억이라 가정할 때 약 1퍼센트 정도가 말을 더듬는 것으로 추정된다. 남한인구보다 훨씬 많은 숫자인 6,000만 명 가량의 인류가 사용하는 언어에 상관없이 유창성장애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헌장은 절규한다. “말을 더듬는 이들에게 일상적 의사소통은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말을 더듬는 이들은 매일매일 투쟁을 한다. 조국통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미제축출을 위해서가 아니라, 노동해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독재타도를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중흥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권탈환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자장면 곱빼기”와 “여보세요”나, 혹은 “아저씨 신촌로터리 가주세요” 따위의 지극히 평범한 단어들을 나열하고자 전신을 뒤틀고 심신을 쥐어짜며 분투해야 하는 것이다. 내세의 지옥과 현세의 감옥의 중간지점에 아마 말더듬이의 세상은 존재할 게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나는 말을 더듬는데, 요즘도 더듬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시점을 계기로 말을 더듬고 그것을 교정하며 대화할 때 내가 말을 더듬는지 더듬지 않는지 신경쓰거나 막히는 단어들을 피하기 위해서 같은 의미의 다른 단어들을 국어사전에서 찾아 외우는 등의 일들을 하기가 귀찮아졌다. 그냥 좀 더듬기로 했고 몇몇 친구들은 내게 말을 천천히 하라거나 머리 속에서 할 말을 정리한 다음에 하라는 충고를 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별 말 없이 나와 대화해주었다. 그래서 그냥 그런 것들에 익숙해진 나머지 내가 말을 현재도 더듬는지 잘 모르게 되었다. 아마 좀 더듬을 것이다. 여전히 막히는 단어가 좀 있고 긴장하면 주춤하게 된다.

세계 말더듬이의 날, 이란 것이 있는 걸 보곤 좀 마음이 푸근해졌달까.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 이외의 말더듬이를 본 적이 거의 없는데, 통계적으로 봤을때 내가 말더듬이와 마주치지 못한 것은 기이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도 말더듬이들은 심각한 대인장애를 동반하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랬으니까.

정말 그랬다. 나는 주로 ㅈ, ㄷ 자음이 들어간 단어를 발음하기 힘들었다. 대학에 와서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을 때 “디스”라는 말이 나오지 않아서 매번 “팔팔”을 샀다. “짜장면”이나 “짬뽕”을 말하지 못해서 중국집에 무언가를 시켜본 적도 없다. (요즘엔 잘 한다.)

지금은 물론 말을 더듬는 것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그 이상 괴로운 일이 훨씬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장애인이고 (물론 법적 장애인은 아니지만) 일반인에 비해서 소수자로써 장애인이 갖는 괴로움을 좀 더 세밀하게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왜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안타깝다. 말을 더듬는게 축복까진 아니어도, 내 자신이 원하는 세상에 다가가는데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저 굵은 글씨체로 되어 있는 인용문이 이해가 되세요? 나는 저거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일기

별로 술을 마실 일은 아니었는데, 언제나 후회는 때늦게 시작되듯이 그냥 먹기 시작한 술이 과했는지 새벽 내내 나는 위 속의 모든 것을 게워냈다. 지저분한 것들이 먼저 튀어 나왔고 끝내는 씁쓸한 체액까지 꼭꼭 씹어 뱉어냈다. 그리고 십분뒤엔 똑같은 지옥이 반복되었다.

아침엔 목구멍이 화끈거려 아무 것도 먹지 못했고 식구들이 모두 일터로 나가버린 어둑한 방안에서 나는 그냥 멀건 미음을 끓여 입에 떠 넣는다. 언뜻 발치에서 두꺼운 안경태를 연신 손으로 밀어 올리며 개다리소반에 무언가를 열심히 적어내려가는 주금깨 소녀가 환상처럼 보인다. 내가 신음하자 그녀는 당황해서 내게 돌아보고, “어디 좀 괜찮아? 물 좀 갖다줄까? 죽 좀 먹을래?” 하며 걱정해준다. “아아, 그냥 좀 속이 쓰려서. 아까 먹던 미음 좀 갖다줄래?” 그녀는 아뭇소리 안하고 미음을 적당히 데워서 간장과 함께 내온다. “그러길래 빈속엔 술 먹지 말라고 했잖아.”, “엄밀히 말해서 안주하고 같이 먹었으니 빈속은 아니었어.”, “그러셔.” 하고 토라지는 그녀. “뭘 쓰고 있었어?” 나는 그녀에게 묻는다. “그냥 옛날 얘기. 잊어버릴까봐.”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랬으면 좋겠다는 얘기이기도 하고 언젠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는 얘기.

하하하, 웃으면 좀 나으려나.

근데,
나 사실 정말 외로웠던거 아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