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

1964년 7월 31일 오후 두시 경, 뉴욕 맨하탄의 3번가 뒷골목에서 사진작가인 루이스 러브송은 보름 뒤 철거 예정인 어느 빌딩의 쓸쓸한 마지막 풍경을 필름에 담고 있었다. 그녀가 앵글을 높여 빌딩의 처마를 지키고 앉아 있던 가고일상을 촬영하려고 했던 바로 그 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고 차마 셔터를 누르지 못한 채로 그녀는 후두부의 총상입어 세상을 떠났다. 그것은 명백히 우발적인 살해였다. 이제 막 스물이 된 마퀴스 드마르쿠스는 철거 예정의 빌딩을 거점으로 하는 지역 갱단에 입단하여, 분쟁 상태에 있던 상대 갱단의 침입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는 그날 아침 느즈막히 일어나 허리춤에 38구경 리볼버를 꼽고 빌딩 주변을 어슬렁 거리다가 먼 거리에서 무엇인가를 손에 쥐고 빌딩을 노리는 어떤 백인 여자를 발견했다. 직감적으로 갱단의 간부들을 저격하려는 것이라고 판단한 마퀴스는 그녀의 뒤로 접근해 총을 발사했던 것이다. 루이스 러브송은 스물 아홉으로, 이제 막 사진계에 좋은 평을 듣기 시작하던 신예였고 마퀴스는 스무살 생일 지난지 두달이 된 겁없는 청년이었다.

같은 날, 같은 시간 영국 런던의 템즈강 워털루 브릿지의 교각에 떠내려오던 여자의 시체가 걸렸다. 시체는 강변을 산책중이던 아비게일 스탈링 (45세) 이 발견하여 곧장 경찰에 신고했다. 아비게일은 오년 전 심장병 발병 위험이 높다는 의사의 충고에 따라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연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이틀 뒤, 아비게일은 침대에서 심장마비로 숨진 채 발견되었다. 갑자기 심장마비가 온 것에 대해서는 밝혀진 바가 없으나 주위 사람들은 심약했던 그녀가 시체를 목격한 것에 대해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 때문에 사망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교각에 걸려 있던 시체의 이름은, 놀랍게도 같은 날 뉴욕에서 숨진 루이스 러브송과 같았다. 런던의 루이스 러브송은 맨하탄의 루이스 러브송이 사망한 비슷한 시각에 강변을 걷다가 갑자기 투신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의 자살에 대한 이유는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같은 날, 오전 열시 레바논의 베이루트에서 이륙하여 요르단 암만으로 향하던 중동항공(MEA) 소속의 코메트-4 여객기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발생한다. 비행기는 인근 사막에 불시착을 시도했고 다행스럽게도 사상자는 극소수였다.
사상자 가운데는 중동을 여행중이던 백인 미국 여성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루이스 러브송이었다. 그녀는 여객기가 불시착 한 뒤에도 살아남았으나 구조대를 기다리던 도중 불행하게도 사막전갈에게 물려 독사하고 말았다.

이틀 뒤, 1964년 8월 2일.
미국정부는 북베트남의 통킹만에서 미 구축함 매독스가 북베트남군의 어뢰 공격을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를 계기로 북베트남에 대한 폭격을 개시했으며, 그 후 베트남에 투입된 미군 병사는 년간 54만명이 넘었다. 1973년 종전을 선언할 때까지 미국이 베트남에 투하한 폭탄은 755만톤이 넘었고, 이는 2차 세계대전중 전 세계에 사용된 양의 2.7배에 달했다.

출근하는 너의 뒷모습

나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잠이 들었어. 내 옆에서는 네가 곤히 잠들어 있었고, 계속 희부윰한 음영 아래서 그 모습을 지켜봤지. 얼굴을 만지고 싶었는데 네가 깰 것 같아서 말야, 너는 또 아침에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잖아. 나같은 백수하고는 상황이 다르니까. 아마도 너를 만지고 싶다는 것과 네게 해줄 수 있는 것 사이에서 가장 훌륭한 절충안은 그냥 그렇게 지켜보는 것 뿐이었을꺼야. 꿈을 꾸고 있을까… 근사하지 않아? 적어도 네가 잠든 시간에 나는 깨어 있고 너를 바라보고 있어. 숨이 콱 막힐 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야. 그런데 너 코를 좀 골더라구. 하지만 그것도 너무 귀여웠어.

갑자기 보고 싶다고 전화를 해줘서 조금 당황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즐거웠지? 너의 작고 아담한 원룸, 약간의 알콜과 음악. 따뜻한 포옹과… 닭찜을 시킨건 사실 좀 무리였던 것 같지만, 그래도 이런 모든 것들이 정말 멋진 시간을 만들어냈잖아. 나는 네 화장품 냄새가 참 좋아. 씻은 뒤에 그 옅은 살깣의 냄새도 좋고.

“이런 이야기를 하는건 네가 처음인 것 같아.”

“생각해보면 우리 지금까지 참 너무 외롭게 살았던 것 같아. 아무리 옛 일을 떠올려 보려고 해도 잘 되지가 않아.”

“인생을 너무 낭비한게 아닐까?”

네가 참 좋아.

“나도 네가 좋아. 내가 널 치료해줄꺼야.”

나도 널 치료해줄꺼야.

“주말에 어딘가로 여행이나 갈까?”

좋지. 네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나도 가고 싶어.

“너는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니?”

강릉.

“바다?”

응. 있지, 가서 아주 찐득하게 사랑하는거야. 찐득하게 이야기하고, 아주 긴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서, 사실 나는 그때 조금 깨어 있었는데, 그냥 일부러 자는 척 했어. 내가 없을때 너는 어떻게 출근준비를 하고 집을 나설까 엿보고 싶었거든. 작게 콧노래를 부르면서 네가 샤워를 하고 어제 널어 놓은 빨래감을 만져보다가 다 마른 것들만 따로 곱게 개어 놓고 나를 위해 밥을 준비하고 옷을 입고 (네가 옷을 입는 모습은 최고였어!) 방안을 둘러보다가 결심했다는 듯이 신발을 신은 다음 문을 열고 나가는 것까지 다 엿봤어. 눈물이 났지. 튼튼하게 자기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 내게는 그야말로 신비야. 어쩜 그렇게도 당당할 수가 있을까. 어쩜 그렇게도 강할 수가 있을까.

지금 나는 느즈막히 일어나 네 컴퓨터를 켜고 이 글을 쓰고 있어. 내 옆에는 내가 다시 다 마른 빨래감은 따로 개어 놓고 아직도 마르지 않은 것들은 그대로 널어 놓은 것들이 있어. 그 중엔 네 속옷도 있는데, 의외로 대담한 것이어서 깜작 놀랐지만 다음 번에는 이걸 입은 모습을 봤으면 좋겠어.

이제 갈께. 미안하지만 설겆이는 도저히 못해놓고 가겠다.

너의 출근하는 뒷모습은 정말 최고였어.

김원영.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장장치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잘 기억하지 못해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주변장치들을 이용한다. 대개는 멍청이같이 시간이 되면 알람과 함께 해야 할 일들을 알려주는 것들이다. 멍청이라기 보다는 멍충이같이. 멍멍충이. 어쨌든 그 알람에 맞춰서 내가 해야 할 일이 결정된다는 것은, 오오 상상해보세요, 엄청 근사하다. 눈물이 날 것처럼 멋지다. 그러면 나는 상뇌와 하뇌를 구분해서 하뇌에게 해야 할 일을 하도록 시키고 상뇌로는 내가 하고 싶은 망상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나는 지금, 어 그러니까 “잘 모르는 올드팝을 듣고 있다.”라고 쓰려고 했는데 막 (인터넷 방송의) 다음곡으로 넘어가면서 얼 그린이 나왔기 때문에 “아 쫌 아는 가수의 올드팝을 듣고 있다.”라고 써야겠다. 뭐면 어떠랴.

세상에. 휴대폰으로도 인터넷 방송을 들을 수 있데. 라디오 프리 콜로라도의 디제이 게리 버크씨는 징하게 삼십분을 멘트만 하다가 두 서너곡 음악을 틀어주고 또 삼십분씩 멘트를 한다. 대부분 자기네 스테이션 자랑인데, 320kbps로 스트리밍하는 곳은 우리밖에 없네 어쩌네 하는 얘기였다.

콜로라도. 미국에서 콜로라도와 오레곤, 하면 나는 불곰하고 울울창한 침엽수림하고 만년설이 듬성듬성 쌓인 삐죽한 청년기의 산맥밖에 생각 안난다. 거기서 수염이 덥수룩한 아저씨가 체크무늬 셔츠에 멜빵 청바지를 입고 어깨엔 아이 머리통만한 도끼를 들면서 씨익 웃어주는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왕년에 내가 이 도끼로 세콰이어를 찍어 넘기는데 말야…”

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저런 아저씨를 알고 있다. 내가 막 제대하고 복학까지 잠깐 비어있는 6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라델피아까지 도보로 여행한 적이 있었다. 미국 끝에서 끝이다. 육개월. 정말 긴 시간이었어. 샌프란시스코에서 필라델피아까지 걷는 도보 여행은 꽤 유명한데, 왜냐하면 MWOS(MiddleWay of the States)가 있기 때문이다. 이건 직통으로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까지 연결해준다. 상상이 안가지? 거의 2000km에 가까운 거리다. 5년마다 이 길을 도보로 횡단하는 대회가 있을 정도로 미국 내에서는 유명한 길이기도 하다.
아무튼 애초에 도보여행을 의도한건 아닌데, 샌프란시스코에서 우연히 만난 도보 여행가 아더 요셉 맥타가트(Arthur J. Mctaggart)씨가 자꾸만 같이 가자고 권하는 바람에 따라나서게 되었다. (이 사람 나중에 알고보니 남미와 동남아시아를 순전히 도보로 여행한 것으로 이 쪽에선 많이 알려진 사람이었다.) 나야 막 제대한 예비역 군바리의 깡으로, 까짓꺼 힘들면 40km 행군만큼이나 힘들겠어, 하고 시작했는데 예상외로 군대행군하곤 많이 달라서 꽤나 고생했다.
아무튼 샌프란시스코에서 네바다주를 거쳐 유타, 와이오밍, 네브라스카즈음을 지날때였다. 네브라스카는 지겨운 로키산맥으로부터 안녕을 고하고 끝나고 슬슬 평지가 시작되려는 곳이기 때문에 비교적 걷기가 수월했다.
네브라스카의 미주리강의 수계가 시작되는 곳인가 그랬다. 그만 맥타가트씨가 발목을 심하게 접질르고 (전문용어가 뭐더라..) 말았다. 아직 완전히 산맥을 벗어난 것도 아니어서 다른 도보 여행자들이나 차들을 보기가 힘들었다. 나는 무척 난감했다. 아무튼 엉터리 영어로 “내가 좀 더 걸어가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보겠다.”고 했더니 그는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렇게 10km쯤 걸었을까, 벌목창고쯤으로 보이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강줄기 근처에 있었는데, 아마도 이곳으로부터 강을 통해 원목을 배로 실어 나르는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그 건물로 달려가 아무나 붙들고 사정을 어렵게 설명했다. 대충 “my friend’s leg was broken. 솰라솰라..” 하면서 손짓 발짓을 섞었더니 내 또래로 되어 보이는 무식한 것들이 계속 “what? what? speak english, sucha idiot.” 하면서 히죽히죽 웃고만 있었다. 이걸 확 뒤 엎어버려? 하고 있던 차에 창고에서 예의 그 수염 덥수룩하게 난 할아버지가 무슨일인가 하고 나오는게 보였다. 그가 내 곁으로 다가오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길래 다시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했다. 그는 먼저 옆에서 웃고만 있던 녀석들에게 뭐라고 막 욕을 하더니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엄청 낡은 웨건을 몰고 왔다. 뭐 그렇게 해서 맥타가트씨는 스티번씨티(steaburn city : MWOS와 76번 도로가 만나는 지점에 있는 네브라스카의 도시 이름)의 작은 병원으로 실려갔고, 응급실에서 그 할아버지와 드문드문 얘기를 나눴었다.
지금은 그 할아버지 이름도 잘 기억 안나는데, 그때 나눴던 이야기는 이상하게 또렸하다.

“어디서 왔니?”
“한국에서 왔어요.”
“오, 한국. 태권도, 휙휙(손짓 발짓). 태권도 할 줄 아니?”
“그럼요. 한국사람은 초등학교에서 의무적으로 태권도를 배워요. (라고 뻥침)”
“부르스 리가 그래서 태권도를 그렇게 잘하는 거구나. (잉? -_-;;)”
“할아버지는 벌목꾼(lumberman)이세요?”
“예전엔 그랬지. 지금은 그냥 늙은이야. 작업소엔 소일거리삼아 나가는거지.”
“젊었을땐 나무 꽤나 찍어 넘겼을 것 같으신데요.”
“그땐 도끼질 한방에 나무가 하나씩 넘어갔지.(a chop, a wood)”
“하하.. (원 이 할아버지 농담도..)”
“너는 한국에서 뭘 하고 있니?”
“이제 막 제대해서(discharge from military service) 잠시 쉬고 있어요.”
“군인이었어?”
“한국 남자는 스무살만 넘으면 누구나 군인이 돼야해요.”
“희안한 나라네.”
“맞아요. ㅎㅎㅎ”

뭐 그러면서 노가리를 풀고 있으려니 응급실에서 맥타가트씨가 발을 쩔뚝거리며 걸어나왔다. 이야기를 들으니 부러진건 아니고 조금 부었을 뿐이니까 일주일 정도는 요양을 해야한단다. 맥타가트씨는 내게 미안하다며, 원한다면 먼저 떠나도 좋다고 했는데 내가 혼자 가봐야 타국에서 얼마나 가겠냐며 당신곁에 머물겠노라고 (으웩) 했더니 그는 심하게 감동한 표정이었다. ㅎㅎㅎ
아무튼 여차저차해서 그 할아버지댁에 머물게 되었다.
할아버지 통나무집에서 혼자 살고 있었는데, 마루 벽난로 위엔 엄청 큰 사슴 머리가 박제되어 있어서 오래 살다보니 이런것도 실물로 다 보네, 하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뭐 이런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