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계지적생명체

2007. 12. 29.

넷앤시스 모뎀은 제조사를 알 수 없는 와이드밴드 케이블 모뎀으로 바뀌었다. (딕시스 2.0b 지원)
MAX400PLUS는 그 이후로도 쭉 고생했으나, 최근 광랜으로 바꾼 뒤로 제대로 속도를 내지 못해 IpTIME q104 공유기에 바톤을 이어줬으며, 공씨디에 추가해 공DVD 미디어도 많이 생겼고, 영원과 하루 팜플릿은 테오 앙겔로풀로스 DVD셋트로 바뀌었다. 마우스와 모니터 키보드도 바뀌었다.

나만 그대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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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큐브. 스피커. 넷앤시스 MNG-2005케이블모뎀, MAX400PLUS 인터넷 공유기. 메모박스. 밀레니엄맘보(아직도 다 못본). 2003년 세계댄스선수권대회 디브이디. 마이크로소프트 씨디 몇 장. 공씨디 대략 칠십장. 케이크통, 케이크통. 지갑. 담배. 유에스비메모리. 믹스너트 빈 캔. 재털이. 영원과 하루 팜플릿. 마우스. 키보드. 모니터.

휴. 재미없다.

새벽

왼쪽 어금니가 계속 아프다. 월요일에는 그냥 이상한 느낌이 스쳐 지나가는 정도였는데, 오늘은 확실히 자각할 정도로 욱신거린다. (가끔) 그런데 왜 이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는걸까. 한번 이를 갈고 금속의치를 박아 넣은 뒤로 치과와 관련된 치료는 빨리 받아야 겠다는 결심을 한 터였다. 그런데도 이 아픔은 뭔가 모호한 구석이 있다. 사실은 이가 아픈게 아니라 잇몸이 아픈 것에 더 가깝고, 잇몸이라기보다는 턱과 식도 근처 어림이 아픈게 더 정확하다. 이런저런 것 때문에 요즘 가끔 양치질을 하다 말고 거울을 통해 입 안을 들여다본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온통 누렇다. 군대 다녀온 뒤로는 양치질도 하루에 두번씩 하는데(세번은 도저히 버거워서), 오히려 그 전보다 커피라던가 흡연량이 늘어서 그런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구취가 심하지는 않다. 구취는 오히려 양치질보다는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겼을때 심해진다고 한다. 한동안 알콜섭취가 뜸해졌고 (정말 하는 말인데, 군대가기 전보다 술이 많이 약해졌다. 자주 마시기도 싫고..) 해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엔 정말 괴상한 생활을 하고 덕분에 내 몸 어딘가가 틀어진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 증세는 이렇다. 하루에 밥을 한끼 이상 먹으면 몸이 견디질 못한다. (속이 좋지 않다.) 고기를 먹으면 영락없이 다음 날은 설사를 한다. 특히 삼겹살은 쥐약이다. 그래서 계속 식욕이 없다. 힘을 빼고 있으면 오른손이 간간히 떨린다. 이건 마우스를 하도 클릭해서 그렇다. (그래서 마우스도 새로 사고, 마우스 패드도 손목 받침이 되어 있는걸로 바꿨더니 좀 부담이 덜한 느낌) 가끔 눈물이 나는데 (심정적인 이유가 아니라) 눈이 너무 따갑다. 모래가 들어간 것처럼. 왼쪽 어금니 부근도 아프고. 어휴.

어제는 티븨에서 대관령 근처의 양목장을 구경시켜줬다. 보는 순간 “내가 양띤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올랐고 양들이 무척 귀여웠다. 발정기가 되어서 숫놈끼리 싸우는걸 두고 리포터가 호들갑스럽게 “온순할 줄 알았던 양이 저렇게 사나워.. 어쩌구..” 하는 말을 하던데, 그마저도 귀엽게 느껴졌다. 모든게 유쾌하다. 그러나 기분이 썩 좋진 않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그러니까 한번에 두가지 상반된 감정이 들 때는 어떻게 해야하지? 유쾌하면서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비교적 적절한 묘사인 것 같다. 제발 날 때리지 말아주세요, 하고 마음 속으로 외쳤다, 지금 막. 그냥 그러고 싶었을 뿐이다. 수학시간때 배웠던 함수, 꼭 그런 기분이 든다. 인풋값이 있으면 특정한 아웃풋이 항상 있다. 그러나 왜 인풋값이 그렇게 아웃풋 되야 하는지는 며느리도 모른다. 캡슐화. 나 자신을 캡슐화하자.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하게. 내게서 인식의 문제는, 항상 내 자신이 인식 주체로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묘하게 조작된, 그러니까 두개의 나를 느낀다. 인식하는 나, 그 인식하는 나를 인식하는 나, 그리고 대상. 요즘 가끔 드는 생각인데, 인식의 대상이 주체성을 지닌다는 가장 간명한 사실이 대체 어떠한 심적 상태인지를 알 수가 없다. 그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까 이 말은 다음의 쉬운 비유로 치환된다. “남성으로서의 내가 포르노를 볼 때, 거기에 출연하는 여배우의 자기주체성”이다. 어떤(Some) 여성은 모든 상황에서 자기주체성을 긍정하는 존재여야만 한다. 물론 남성도 그렇다. 그러나 포르노에서 여성은 두번 자기주체성을 부정당한다. 한번은 상대배역의 남성(혹은 남성들), 두번째는 나에 의해서, 욕망의 대상으로써만 존재하는 것이다.  이건 어떤 의미에선 간단한 논리다. 그리고 이 논리는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 자본 아래서 노동하는 노동자들은 노동생산성으로써의 대상으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데, 까놓고 얘기하자면 그러면 안된다는 것이다. 아이는 귀여움받는 대상이 아니라 귀여운 주체여야하고, 장애인은 보살핌받아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아주 쉽고, 간단하고, 단단한 논리. 그러나 난 왜 그 말이 잘 와닿지가 않는걸까, 앵무새처럼 외우긴 잘하면서. 왜 내게는 그 모든게 다 대상일까, 심지어 나조차도 말이다. 주체가 존재하기는 하는걸까? 나에 의해서 단 한번도 인식된 적이 없는 나는, 과연 한번이라도 존재하기는 했던걸까? 여기서부터 혼돈이 시작된다. 인식의 문제. 모든걸 주체와 대상으로 구분해버리는 서양 인식론의 사고기반. 포스트모더니즘조차도 여기서 자유롭지 못한 모습을 자주 본다. 대상의 주체성. 웃기는 말이죠. 말대로 하자면 대상은 대상이고 주체는 주첸데, 대상의 주체성이란 논리적 모순이 될 수 밖에 없다. 아예 이런 틀 자체를 부정해야한다. 자,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하니까 여기서 이 얘긴 그만.

쓰기 시작했을때는 새벽이었는데, 이미 훤한 아침이 되었다. 원래는 새벽에 대해서 쓰려고 했다. 새벽, 이라는 부들부들거리는 힘찬 상상력이, 이제는 어떻게 내 내부에서 죽어가는지. 왜 새벽이 오는게 두려워졌는지. 나는 변할 수 있는지. 나는 변할 수 있는지. 정말 나는 변할 수 있는지. 갑자기 이 얘기 하니까 막 변하고 싶다. 오오, 이 말 한마디에 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다 변해있을 것 같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메인다. 나는 변할 수 있다. 나는 변할 수 있다, 고 주문을 외운다. 이제 누구도 날 열어 볼 일이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변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 그렇게,

이, 도망자들의 나라에 잘 오셨습니다. 그런데 당신, 왜 멈춰있지요? 그러다간 잡혀요. 어서 뛰세요, 어서!

Absolut Mandarin

게토레이에 보드카를 조금 넣어서 마셨더니 가뜩이나 안돌아가는 머리가 더 안돌아간다. (아, 드디어 구했어요 앱솔루트 만다린! 혼자 야금야금 먹어줘야지) 생각같아선 한잔 찐하게 하고 푹 자버리고 싶지만, 내일 오전 아홉시까지 일을 끝내야한다. 그 동안 한건 많은데, 왜 이리 진행된게 없는지.. 젠장..
게토레이에 보드카를 조금 넣어서 마셨더니 가뜩이나 울렁거리는 속이 더 울렁거린다. 이제 술도 그만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소주 한 병에 맥주 조금 마시다, 보드카 두어잔 먹은걸 갖고 집에 오다가 중간에 한번 내려서 영등포 뒷골목에서 토하고.. 어떻게 또 집에 가는 버스를 잡아탔는지, 깨어보니 종점. 집에 와서 보니까 오른쪽 팔꿈치에 제법 흉하게 상처가 나있더군. 게다가 왼쪽 어금니가 욱신욱신한게, 제발 충지 뭐 비슷한게 아니길 바라는데, 그러면서 속으로는 어딘가에 부딪힌거야 부딪힌거야 자위하면서 담배를 문다.
게토레이에 보드카를 조금 넣어서 마셨더니 가뜩이나 추잡시러 보이는 내가 더 추잡시러 보인다. 정식으로 돈을 버는 것도 아니고, 졸업도 멀었고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배운 기술이라곤 이것밖에 없으나, 이 길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내가 없다, 내가 없어. 이주헌씨는 부재중. 달나라에라도 가버린 모양이다. 아무런 감정도 들지 않는게 이상하다. 이상하게 꺼억꺼억 조용하다. 나는 반드시 해탈했거나, 뇌의 중요한 부분을 크게 다친 모양이다. 아무런 욕망도 없어. 언젠가 누가 그랬지. 생존본능이 희박한 놈이라고. 그 말이 수년을 돌아서 이제야 내게 당도했다. 자기부정 끝에 남는건 부정된 자기 자신 뿐이라고. 아 씨발 그럼 어쩌라고. 이미 엎질러진 물인데. 하루에 담배 두갑씩 피우게 된 난데, 이제와서 어쩌라고. 너 이 새끼 절망을 본적 있냐. 난 딱 한번 봤다. 사람은 그렇게 사는게 아니다. 그렇게 사는게 아냐..
이젠 어제도 희미하다. 아주 엷게 어제가 오늘에 걸쳐있다. 아마도? 오늘은 내일의 어디쯤에 붙들려 가겠지. 한줌,

.. 한줌이다. 손에 붙달려 있는 한줌. 지지리도 떨어지지 않는 희망.
오늘은 여기까지.

아, 근데 너 그거 아나? 날치가 얼마나 아름다운 생선인지. 비린놈 주제에 어떤 놈은 1킬로미터도 넘게 날아다닌다더군.

OTL

월요일날까지 마쳐 주어야 하는 모 회사 쇼핑몰 작업중..
왠일로 일이 잘 풀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db 스키마를 튜닝하던 중에
열어 놓은 phpmyadmin에서 해당 db를 보다가.. 왠지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테이블들이 많아서 아무 생각없이 체크하고 삭제 버튼을 눌렀음…
뭔가 틱틱, 화면이 리디렉션 되더니

“당신은 지금 xxxx db를 날려버렸습니다. 백업도 안해놨지? 바보;;”

…. OTL…

뭘까.. 이 허전함은…
젠장.. 다행스럽게도 이전에 스키마 짜면서 남겨 둔 문서가 있긴 하지만..
테이블들을 다시 하나씩 만드는 것도 귀찮고..
문제는.. 테스트용으로 칼럼들을 입력해놨는데.. 그걸 다 언제 다시 입력하냐..
왜!! phpmyadmin은 경고 메세지 조차 내뱉지 않는거냐!!!
왜!!
왜!!
왜!!


아.. 울고 싶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는 분들을 위한 설명]
그냥 작업하던거 다 날렸습니다.
덕분에 패널티 타임 1시간 추가!!

518

작년이었던가.. 그 날이 5월 18일인줄도 모르고 하루가 지나서야 깨닫고는 나조차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올 해엔 그나마 일주일 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으니 좀 낫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엔 광주라도 내려가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만약 가게 된다면.. 생에 두번째 찾는 광주가 될 것이다.
첫번째 방문은, 좀 이상한 일을 겪기도 했던 환경현장활동에서 이뤄졌다. 영광으로 갔었는데, 가는 길에 잠깐 금남로를 들렀던 것 같기도 하다. 그게 2002년 일이니까 뭐.
광주, 하면 난 이상하게도 기형도가 떠오르는데, 기형도 전집에 보면 짧은 여행의 기록의 경유지, 광주 망월동 묘역을 배경으로 한 사진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사진에서 기형도는 무언가 잔뜩 표정을 찌푸리고 있다. 역광을 피하기 위해서 태양을 바라보고 사진을 (그러니까 소외 말하는 셀카) 찍어서 그런거겠지.
그는

“그곳은 십자가로 만든 땅인가, 넋들 위에 솟아난 도시인가. 나는 아무런 감정도 예감도 없이 무등(無等)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라고 광주행에 앞서 밝힌다. 그리고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도 망월동행 차편을 모른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1년 전이지요. 7월 5일이에요. 3남매 중 큰아들이지요.” 한열이 어머니는 한숨을 토하듯, 그러나 힘없이 중얼거렸지만 멋모르고 캔만 빨아먹는 어린 손녀딸의 손을 힘들여 쥐고 있었다. 그럴 수도 있다. 우리 어머니의 뒷모습과 너무 흡사했고, 그것은 감상도 계시도 아니었다. 망월동 공원 묘지 제 3묘원은 찌는 듯이 무더웠고 그것은 고의적인 형벌 같았다. 나는 아무런 감정의 변화도 없이 묵묵히 묘원의 인상만 자신없이 기억 속에 집어넣었다. 광주의 충장로와 금남로 교차로에 있는 이곳 충금 다방에서 광주와의 첫 만남을 적는다.

다모레스크의 검. 적은 가장 강력한 무기를 가졌다. 너무나도 날카로워 만나는 상대마다 상처를 입히고 끝내는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귀신의 검.
그러나 우리는 항상 적보다 많다. 언제까지나 많을 것이다. 다모레스크의 검이 우리를 찔러 피가 흐르게 해도 많을 것이다.
그래서 그 검이 지쳐 스스로 자신의 주인을 찌를때 까지도 많을 것이다.
적은 항상 이겨야 하지만, 우리는 한번만 이기면 된다.

우리들의 죽음

우리들의 죽음 – 정태춘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을 나간 사이,
지하셋방에서 불이나 방 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였을 때,
다섯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붙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 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 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에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 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 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정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 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저기 옮겨 붙고 훨~ 훨~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훨 ~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퉁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리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린 다시 하늘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언제, 어느 때, 어느 기분에나 무얼 하고 있거나 누구와 있거나 이 노래를 들으면 눈물이 난다.
그리고, 내가 왜 있고 어디에 있으며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깨닫는다.

비극인가 싶으면 희극이고 희극인가 싶으면 비상식에다, 비상식인가 싶으면 처참하기까지 한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내 너를 결단내지 않으면 죽어서도 눈을 못감는다.

소모

 밤중에 일을 하다가 컵에 물을 담아오기 위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랬다. 어떤 산발을 한 여자가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삼년만에 그렇게 놀래보기는 처음이다. 가만히 보니까 엄마였다. 엄마랑 나랑 새벽 네시에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왜 내 방문 앞에 서 있냐고 물으니까 아침에 약국에 가서 아버지 약 좀 사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디 아프시냐고 했더니, 밤새 온몸이 쑤셔서 잠을 잘 못이루신다며 저 증세는 엄마가 잘 아니까 그냥 약국에 가서 약만 사오면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안방에 갔더니 아버지는 연신 몸을 뒤척이면서 끙끙댄다. 난 갑자기 부산해져서 119를 부르니 어쩌니 하는데, 엄마는 지금 가봐야 응급처치만 하니까 소용 없단다. 하긴…

 새벽까지 일을 하고 좀 느즈막히 일어났더니 집안이 조용했다. 엄마는 교회 간 것 같고 동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식탁에 못보던 약봉지가 있는걸 보니 동생이 투덜대며 약국에 다녀온 것 같다. 안방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말하기 민망하지만 치질 기운이 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벌써 근 10년 가까이 트럭 운전을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시간 만큼, 아버지는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그리고 피부병도 좀 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런저런 몸 상태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강철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아픈건 개념 밖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그것은 항상 거짓인 명제다. 어쩌면 내가 세심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이 옳다. 내가 세심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아픈걸 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아버진 아픈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좋아하는 교회도 가지 못하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낙), 처연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모양이라니.

 가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때를 떠올린다.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애증의 관계로 평생 이렇게 살겠지, 싶었는데, 엄마고 아버지고 점점 늙어가는 것 같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게, 뭐랄까 자기성(自己性) 같은 것을 조금씩 소모해 가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은 참 시답다.

 뭘 어째야 할까, 생각중이다. 깨워서 죽이라도 끓여 들여야 하나…

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 이소라

바람이 분다 서러운 마음에 텅 빈 풍경이 불어온다
머리를 자르고 돌아오는 길에 내내 글썽이던 눈물을 쏟는다

하늘이 젖는다 어두운 거리에 찬 빗방울이 떨어진다
무리를 지으며 따라오는 비는 내게서 먼 것 같아
이미 그친 것 같아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바람에 흩어져 버린 허무한 내 소원들은 애타게 사라져간다

바람이 분다 시린 한기 속에 지난 시간을 되돌린다
여름 끝에 선 너의 뒷모습이 차가웠던 것 같아
다 알 것 같아

내게는 소중했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나의 이별은 잘 가라는 인사도 없이 치러진다
세상은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내게는 천금같았던 추억이 담겨져 있던
머리위로 바람이 분다
눈물이 흐른다


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혼자 이렇게 달라져 있다.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