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 얘기

현재 블로그로 사용중인 태터툴즈를 최신버젼으로 업그레이드 했습니다.
이게 바뀐게 좀 있어서 스킨 변경이 쉽지가 않네요.. 게다가 노트북이라 마우스
사용도 불편하고.

조만간 예전 버젼에서 사용하던 스킨 내용들 (대추리 머릿글이라던가, 배너들..) 을 옮기겠습니다.

drug

바흐의 음악의 헌정을 들으며 아서 C. 클라크의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를 읽었다.

마약을 한 것처럼 육체의 말단으로부터 짜릿짜릿한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의 새천년판 (2001년을 맞이하여 클라크가 새로이 쓴) 서문을 보면, 스탠리 큐브릭이 언젠가 그에게 보낸 편지가 인용되어 있다.

1994년 8월 22일
친애하는 아서, 내 영화 작업 때문에 오늘 밤 당신이 커다란 영예를 누리는 자리에 동참할 수 없어 유감입니다.
당신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과학 소설가라는 칭호를 받아 마땅한 사람이지요. 요람 같은 지구에서 우주 속의 미래를 향해 손을 뻗는 인류의 모습을 당신만큼 훌륭하게 보여 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면 외계의 지적인 생명체들이 우리를 신적인 아버지(godlike father)처럼 대할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대부(Godfather)처럼 대하거나.
어쨌든 우주를 향해 영원히 여행을 계속하게 될 이 프로그램이 언젠가 그들의 시선을 끈다면, 그들 역시 당신을 가장 먼 시야를 갖고 자신들의 존재를 미리 예고해 준 중요한 선구자로 기리고 싶어할 겁니다.
하지만 미래 세대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될 기회가 있을지 여부는 당신이 좋아하는 질문의 대답이 무엇인지에 따라 달라질 겁니다. 지구에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하고 있느냐는 질문 말입니다.

당신의 친구, 스탠리

2001년이 되면 그가 만든 영화를 홍보할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는 스탠리 큐브릭은 안타깝게도 1999년 3월 7일 7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랑하는 이여, 내 곁에 있어줘.

좀 늦긴 했어도 결국 올 해가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말대로 몇 년 전부터 세계 영화계에는 아시아계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의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내 곁에 있어줘, 를 보고 아시아 영화의 약진이라던지 하는 말을 주워담는 것은 좀 비참하기도 하다. 어쩐지 그런 분석적인 말들을 내 곁에 있어줘의 옆에 붙여 놓으면 내 자신이 치졸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는 아주 조용히, 천천히, 젊은 내가 차마 인정하기 힘든 어떤 거대하고 숭고한 희망에 대한 얘기를 한다. 아버지와 아들, 두 동성애 소녀, 멋진 여자를 사랑하게 된 어느 뚱뚱한 경비원의 이야기들은 점진적으로 눈과 귀를 멀고서도 타인을 위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자존과 위엄을 위해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 해 온 테레사의 삶으로 투영되기 시작한다. 김지수를 닮은 그 여배우가 자살하기 위해 건물에서 추락할 때, 경비원은 주체 할 수 없이 피어오르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대신해서 그녀를 구하고 죽는다. 죽은 부인의 환영은 늘쌍 아버지의 주위를 맴돌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죽은 부인의 환영에 따뜻한 시선을 주지 않다가, 아들을 대신해 테레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처음으로 서글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환영에게 입맞춤한다. 아들은 경비원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소녀를 찾아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위로한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작은 사람에게 위안과 사랑을 받는다.

오랫만에 영화를 보고 울었다. 극단적으로 대사가 없는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러나 가슴이 묶이는 단단한 심정으로 보았다. 영화에 출현한 테레사의 이야기는 실화이며, 실화의 주인공이 실제 테레사의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다. 감독인 에릭 쿠의 인터뷰에 따르면, 눈이 멀고 귀가 먹은 테레사와 함께 작업하려고 생각했을때 그녀의 신체적 한계로 인해 작업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유쾌하고 밝은 그녀의 성격과 농담으로 인해 매우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여, 내 곁에 있어줘.
내 미소가 사라지지 않도록.

아..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일까. 천만분의 일도, 영화를 보고 난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

I float through strange days

Still Lost
– Tom Mcrae

So my love I
Left this world for a while
For a while

I float through strange days
Search the one wayto
Bring me back to you

So don’t let mego
Don’t let me go
Don’t let me go
From here

‘Cos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When you come
When will you come
To look for me

If I was to
Call you
Would you come
And if I was to
Call you
Would you come
Oh my love
When will you come to look for me

‘Cos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I’ll be still lost
When you come
Why don’t you come
To look for me?

–>
오늘날 내가 누군가에게 깊게 의지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 그것이 가장 큰 죄다.
너무 오랫동안 갖고 싶은 사람이 없었다.

미안해. 이제는 너무 사랑해..

실패

세번째 긴 글을 쓰다가 실패해서 그냥 새로 아무 얘기나 쓴다.

첫번째는 바흐의 Goldberg Variations에 관한 것이었고 (그 아름다움에 대해), 두번째는 파블로 카잘스의 바흐에 대한 깊은 이해에 관한 것이었고, 세번째는 사무실 빌딩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3번 마주친 5층에서 근무하는 (나는 13층) 어떤 여자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사랑 얘기에서 따뜻한 연애담같은건 없지만.

얇은 봄점퍼와 두꺼운 솜파카 사이에서 곤혹스러웠던 지난 한달이었다. 그렇다고 겉 옷을 입지 않으면 뭔가 맹숭맹숭한, 파렴치한 시월이 그렇게 갔다. 바지런을 떨며 나는 열심히 놀았다. 낮에는 가끔 졸기까지 했는데, 그때마다 여지없이 꿈을 꾸었다. 대개는 계속 일을 하는 꿈이었다. 어쨌거나 십일월의 첫날, 아슬아슬하게 지하철을 잡아타고 간신히 지각을 면할 때처럼 계절에 딱 맞아 떨어지는 적당한 재킷을 입고 출근을 했다.

기분은 제대로 거지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