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놔, 레몬펜 이거 뭐냐!!

몇 년 전에 나 혼자서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라고 무릎을 쳤던 인터넷 서점 관련 서비스가 있었다. 당시에 나는 내가 자주 이용하던 인터넷 서점에 그 서비스를 건의했었고, 답장으로 온 것도 흥미있는 아이템이라며 고려해 보겠다는 고무적인 내용이었다. 그러나 몇 개월 뒤 교보문고에 갔다가 완전 똑같은 내용의 서비스를 발견하고는, 어떻게 이렇게 같은 아이디어가 비슷한 시기에 여러 사람에게서 나올 수 있는지 믿기 힘들었던 적이 있다.

나는 며칠 전에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 하나를 떠올렸다. 일반적인 댓글 기반의 의사 전달 시스템이 가지는 한계는, 추가로 달리는 댓글의 숫자가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원본 글과의 물리적 거리가 길어진다는 것이다. 때문에 댓글을 한참 읽다가, ‘그런데 이게 무슨 내용에 관한 댓글이지?’ 하고 다시 마우스를 움직여 스크롤-업 해야만 했다. 그래서 댓글이 원본 글의 밑에 달리는 방식 이외의 것을 생각하다가, 댓글을 원본 글의 글자 사이사이에 넣는게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이를테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라는 문장까지 읽고 ‘당신의 아이디어는 우습지도 않아!’ 라는 댓글을 달고 싶다고 하자. 그럼 댓글이 바라보는 키워드 문장 (내지는 단어) 에 일종의 표식을 해두고 다음에 누군가 그 글을 볼때 같은 지점에서 내가 쓴 댓글이 달린 내용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런게 재귀적으로 작용해 댓글과 원본 내용에 관한 시각적인 의미 관계를 유추해 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걸 생각하고 얼마나 떨렸던지… 그래서 차근차근 생각을 정리하고 오늘 시험삼아 코딩 해볼까 하면서 참조해볼만한 기술적인 효과들을 찾던 중에… 발견해버리고 만 것이다. 완전 똑같은 아이템으로 이미 베타 테스팅 중인 서비스를.

레몬펜 (http://www.lemonpen.com/)

적용된 모습 마루짱(?)님 블로그의 ‘화려한 디자인 변신, ‘디지털 지갑” (http://www.designlog.org/2511227)

글을 보다 보면 글의 하단 부분에 형광색으로 몇 단어가 마킹 되어 있고 옆에 말풍선으로 숫자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당연히 말풍선을 누르면 댓글이 나타난다. 내가 생각했던 것과 완전히 같다. (레몬펜은 댓글형식으로만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모양이지만, 이걸 확대 적용하면 마치 위키처럼 지식을 기술하는 새로운 기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허탈감이랄까.. 어째서 비슷한 시기에 또 이런 아이디어를 만났을까, 나는.
덕분에 손마디를 꺽어서 이제 한 번 시작해 볼까 하던 마음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늘어졌다.

ㅜ.ㅜ

해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

반쯤은 직업병으로 인터넷 컨텐츠 프로바이딩에 대한 관심이 (조금) 있다. 그래서 종종 내가 이용하는 사이트들을 이리저리 뜯어보며 ‘여긴 이렇게, 이런걸 새로’ 하는 식으로 구상해보기도 한다. 물론 구상만이다. 귀찮게 해당 업체 기획팀에 아이디어 메일을 넣는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하지만 하나 예외가 있었는데, 이건 어쩌면 순전히 내 개인적인 편리함을 위한 것이었고, 아이디어를 만들어 메일을 보낸적이 있다.
열심히 포인트를 쌓아가고 있는 yes24에는 언젠가부터 ‘리스트’라는 기능이 생겼다. (꽤 오래전 일) 어떠한 주제 아래 책들의 목록을 임의대로 만들어 공개하거나 혹은 개인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할 수도 있으며, 은근히 이게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주로 이걸 ‘구매 예정’, ‘구매 대기’ 등등의 서적 목록 데이터베이스로 활용했다. 그러나 한때 나는 극심한 금전적 어려움에 처해 있었으며 ‘구매 예정’ 목록에 올라간 책들을 ‘구매 대기’로 대거 옮길 수 밖에 없었다. 매우 슬펐다. 그때 문득 든 생각이 ‘이런 목록을 내게 호의적인 누군가에게 메일로 전송해서 그 사람이 쉽게 결제해 내게 선물로 줄 수 있다면!’ 이었다. 좀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책 선물 조르기’ 정도가 되겠고 며칠을 보내면서 이걸 하나의 아이템으로 가시화 시켜 yes24 기획팀에 보낼 수 있었다.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었고 그저 어서 빨리 이런 아이템이 실현되어서 내가 누군가에게 조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며칠이 지나 답장이 왔고, 매우 흥미로운 아이템이며 현재 예정된 컨텐츠 추가 작업이 있어 당장은 구현이 어렵고 내부적으로 개발할 컨텐츠의 목록에 넣었다며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조금 뿌듯하기도 했고 이제나 저제나 그 기능이 추가될까 싶어 한동안은 yes24에 열심히 드나들기도 했다. 근데 영 소식이 없어 실망하던 차였다.

오늘 문득 yes24에서 검색되지 않는 책이 있어서 교보문고 사이트에 들어가 이리저리 검색하던 가운데, 내가 이전에 기획하고 구체화한 ‘선물 조르기’ 기능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매우 화가났다. 비슷한 정도가 아니라 용어의 사용에 있어서도 완전히 같은 것이 한둘이 아니었으며 페이지 플로우도 매우 유사했고, 아무튼 전체적으로 내가 만든 기획안의 판박이였던 것이다. 순간 무슨 생각까지 했냐면, 개인적으로 내 아이디어를 매우 중하게 여긴 yes24의 기획자 하나가 교보문고로 이직하면서 아이디어를 가져간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좀 더 알아볼 요량으로 교보문고의 ‘사주세요(선물 조르기)’ 서비스를 검색해봤는데…

알고보니 작년 초에 나온 서비스였다. 내가 yes24에 ‘선물 조르기’ 기능을 제안한건 올 해 초였고. 쩝. 뭐 할 말은 없다. 두 아이디어가 극도로 유사해서 잠깐 흥분했던 것이다. (근데 정말 거짓말 안하고 나는 이 아이디어의 최초 입안자가 나라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어떤 특화된 서비스 내에서 발견될 수 있는 컨텐츠는 역시나 한계가 있는 모양이다. 그게 어떤 종합포털의 성격을 띄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