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김이 하얗게 퍼져, 멀건한 보름달이 구름도 없는 하늘에 뻔뻔히 떠 있네. 얼마 안되는 엄마 월급, 내가 사라지면 다 누나에게 줄 수 있겠지. 누나는 행복해지겠지. 어떤 중삐리는 뻔뻔하게도 겨울 하늘의 별이 되었다. 띵동- 메일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뻔뻔스럽게도 어떤, 스물 여섯살짜리 여자의 일상을 대담하게 엿봤다. 24시간이 지나니까 서서히 실감되기 시작하는, 살얼음같은 일상. 불안한 ‘즉흥환상곡’의 환상이거나, 접혀서 수첩 사이에 꼽아 놓은 몇천원이었던. 나는 시간마다 분열된다. 왜 어제의 내가 내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까. 왜냐하면 분명히 그때 나는 내가 아니었으므로. 진보를 꿈꾸거나, 따뜻한 겨울을 그리워하거나, 일산에 음악적 취향이 같은 친구를 두었거나, 새벽 두시에 느닷없이 누군가 날 불러내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알려진 가수를 발굴하거나, 며칠째 공무로 만나야 할 사람과 약속이 어긋나거나, 점점 속이 안좋아져서 김치찌개를 먹다가 화장실로 뛰어가 토하거나, 잠을 서른 다섯시간씩 자거나, 만 삼천원짜리 웰트화를 사거나, 엄마하고 싸우거나 하는 나, 와 나, 와 나 사이의 나, 였거나 나, 가 될 나, 거나, 말거나. 수많은 나 들 사이에서의 화해, 같은게 힘들어진다. 내가 원했던 나 아닌 내가 되려는 시도는 이런게 아니었어. 내가 아닌게 되려던거지 수많은 나를 원한게 아니야. 아, 토하고 싶어.

내가 가진 거라고는 손재주뿐… 이걸로 뭘 할까… 미술? 이미 늦었어…

어떠한 우울을 유발하는 것, 불안이거나 공포, 강박, 부담을 야기하는 것을 따로 분리해 둔다. 그것을 여기에 적는다. 추위를 지켜본다. 아, 하나님. 제발 날 지켜주세요…

쓰고, 남기고, 결합시키고, 굳힌다. 방부제처리를 하고, 추상의 감옥, 전자적 실체의 세계에 가둔다.

프레드릭 폴의 SF 단편, ‘설계된 인간’에서는 자신의 기억을 컴퓨터에 입력시키면 시키는만큼, 현실의 자기 자신이 사라지는 기묘한 이야기가 나온다.

”에 대한 8개의 생각

  1. 음악을 들려줄땐 '찾기 어렵지 않다'가 아니라 먼저 구해놓고 어딘가에 올린 다음 들을 수 있게 링크를 걸거나 메신저로 보내주던가 해야지.

  2. 다시 찬찬히 생각해보니, 폼잡느라 그런게 아니라 난 골수에까지 사무친 안티-렌 세력이었다. 굳은 의지와 함께 워냉이와의 강고한 노학연대로 인해 가까스로 가능하게 되었지. 조심해라 렌. 집으로 돌아가는 어두운 골목길에 빠알간 담뱃불 두개가 껌뻑이며 네게 손짓하면, 그땐 정말 용서의 여지가 없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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