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서울나기’란 타이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오래 전의 일이다. 그때는 도시에서 산다는건 참 공평하게 누구에게나 힘든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잠에서 깨어나던 시절이었다. 멜라토닌인가 세라토닌인가.. 하는 호르몬 분비에 장애가 생기면 온다는 우울증, 나는 도처에 지뢰와 부비트랩을 깔아놓고 그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피해 나가는 아이러니를 실천하고 있었다. 기형도의 시작노트에 거리에서 시를 쓴다는 내용이 떠올랐다. 그는 많이 아팠을 것이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식상한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아무튼 나는 도시에서 사는게 너무 싫었다.

도시에서 사는게 싫었다, 는 말은 반드시 도시를 벗어난 삶이 좋았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골도 거기서 거기쯤이었으리라. 문제는 내 나이였고, 거대한 세계가 주는 압력이었다. 인간이 곧 우주라던데, 나는 내 안에서 쏟아져 들어오고 빠져 나가는 정보들 사이에서 아무런 계시를 발견하지 못했다. 대체 이 터무니 없는 존재들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주는 누구를 위해서 자기 자신을 지탱하는가..

아님 말고, 식의 이야기다. 나의 원제는 ‘어느 룸펜의 서울나기’였고 나는 그게 썩 잘 지은 자기기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먼저 나를 대전고속버스터미널 공중인터넷컴퓨터 앞에서 던져버리고 마는 것이다.

고속버스를 타고 국도를 굽이쳐 서울로 향하는, 저녁의 풍경은 정말 근사하다. 기형도는 서울로 향하는 기차 안에서 ‘죽은 자들이 국토(國土)에 깊다’라고 썼다. 나는 산자로 가득한 산천을 보았다. (그런데 사실 그 말이 그 말이다.) 저녁 어스름이 짙어질 때면 어김없이 산 하나를 건너 불을 밝힌다. 그 불빛들 하나 하나가 각각의 삶들에 대응한다. 거의 매번 그런 풍경을 지날때마다 나는 열심히 집안 풍경을 상상해보려고 시도했다. 노동의 고단함과 저녁 식탁 위에 오른 보글보글 된장국이라던가, 드라마와 뉴스 사이에서 벌어지는 리모콘 쟁탈전이나 내일까지 막아야 하는 대출금 이자 같은 것들. 멀리서 보면 모든게 아득하게 달콤한 새벽녘의 잠투정 같아진다. 리얼리즘과 로맨티즘의 경계는 너무 가까이 보거나 너무 멀리서 보는 것, 외에 다름아니다.

그러나저러나 그냥 살아지는건 없다고, 밥 꼭꼭 씹어 먹듯이 살아내야 한다. 능숙하게 살아내야 한다. 앞서 간 많은 사람들이 증거하듯이.

물론 여전히 도시에서 사는건 참 힘들다. 너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너무 많은 고독함을 이겨내야 한다는건, 대한민국이 어느 순간 자본주의의 환상을 동시에 깨버리는 것만큼이나 힘들다.

아님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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