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김] 한 초등학생의 일기

아래의 글은 평택범대위의 자유게시판에 어느 분이 올린 글입니다. 가족끼리 휴일을 이용해 대추리를 찾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건 제가 나이가 들어서 결혼하여 가정을 가지게 될 때 닮고 싶은 모습이기도 합니다. 부모로부터 아이들에게 전해지는 자유와 평화, 연대, 사랑에 대한 따뜻하고 올곧은 마음.
세상에는 점점 이런 가정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괜찮습니다.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언제나 많을 것이고 언젠가는 모두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5월 어느날 평택 대추리를 방문한 한 초등학생의 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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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5월 7일 일요일
날씨: 햇볕 때문에 눈을 못 뜨겠다.
제목: 평택 대추리에 다녀와서

어린이날 평택에 갔다. 일산에서 영등포 까지 간 다음, 거기서 기차를 타고 평택역까지 간 다음, 16번 버스를 타고 대 추리로 갔다. 평택 대추리에 들어가자마자 경찰버스가 보였다. 우리는 다 내려서 아빠는 학교 앞 에 있고 나랑 엄마는 마을을 돌아보기로 했다. 대추분교가 있던 자리에는 다 부셔진 폐허 밖에 없었다. 그리고 폐허 한 가운데 평화라고 쓰여진 깃발이 있었다. 그걸 보니 마음이 아팠다. 대추분교를 본 후 이제는 마을에 가보았다. 마을에는 빈 집이 많았다. 평택에 살던 주민들이 떠난 집들이다. 그런데 집이 다 부셔져 있었다. 집을 그대로 두면 평택 지킴이들이 들어와서 살 수 있기 때문에 국방부에서 집을 다 부시고 가라고 한 것이다. 모든 것을 빼앗으면서 살던 터전까지 부시고 가라는 명령을 할 수 있을까? 주민들은 떠날 때 쓸 수 있는 물건들을 가져가지 않았다. 책상, 라이타, 시계, 전화기 그런 것들을 왜 가져가지 않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마을을 구경하다 보니 집회할 시간이 되었다. 여러 사람이 말도 했고, ‘미군기지 반대 한다’ ‘올해에도 농사짓자’ 구호도 많이 외쳤다. 집회를 하고 있는데 전경들이 왔다. 한 할머니가!
손에 모래를 담아서 막 전경들 쪽으로 뿌렸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다가 전경들이 먼저 갔다. 집회를 하고, 논으로 갔다. 가보니 전경들과 군인들이 있었다. 군인들 쪽에선 “우리 군은 국민과의 충돌을 원하지 않습니다.” 방송이 나왔다. 나는 그걸 듣고 어떻게 될지 두고 보라지 했다. 저 논 끝에서 사람들이 더 많이 왔다. 그렇게 모인 사람들이 1000명 정도 되었다. 그러고 나서 경찰과 군인들과 싸움이 벌어졌다. 나랑 엄마는 위험하니까 멀리 떨어져 있었다. 떨어져서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여기는 평택 대추리 땅이고 대추리 땅은 대추리 주민들건데 왜 정부가 맘대로 기지를 만들려하나? 땅의 주인인 주민들이 안 된다고 했으면 안 해야 되는 것 아닌가? 그런걸 알면서도 왜 군인들과 경찰들을 보내서 미군 기지를 만들려할까?
집회가 끝나고 엄마와 나는 대추리에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경찰들이 한밤중에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나는 궁금했다. 대추리가 농민의 땅이라고 자기의 의견을 말하는 사람들을 왜 잡아가야하는지? 대추리는 평화를 원하는 데 말이다.

<시>

대추리

대추리는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희망도 주었습니다.
행복도 주었습니다.
기쁨도 주었습니다.
이제 대추리는 또하나를 남기고 떠나려 합니다.
그것은 바로 슬픔입니다.
무너진 대추분교 사이로 슬픔이 보입니다.

대추리는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윤민하

[옮김]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먼저 아래의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는 민중가요 스트리밍 서비스, 감격적인 피엘쏭닷컴 게시판에 들렀다가 본 글이며, 비슷한 이야기로 한참을 적어 내려가다가 이 글을 보고는 제 것이 너무 부끄러워 차마 공개하지 못하고, 이것으로 대신 할까 합니다.

제 2의 광주 넘어 앞으로!

그랬구나
내 잠시 잊었구나, 잊고 있었구나
‘개혁’입네 ‘참여정부’네 이런 게 죄다 입발린 말이라고 알고는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철저하게 껍데기인줄 내 잠시 잊고 있었구나

수천 명 광주시민 학살한 전 모씨 청문회에서
명패 집어던지며 이름날려 대통령된 자가
얼룩무늬, 보기만 해도 소름끼치는 군인들
제 어미 아비 제 삼촌 이모 형들 곤봉으로 패 잡으라고 시킬 줄이야

국회의원 시절 ‘공무원에게도 완전한 노동3권 보장해야 한다’고
그런 번듯한 말 언제 했냐고 입 싹 딱고 공무원노동자 열라 조질 때도 알아는 봤다만,
‘협력적 자주국방’이니 ‘좌파 신자유주의’니 그 무슨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말 해대며
미국에겐 굽신, 비정규직노동자 농민들 졸라 조질 때도 내 진작 알아는 봤다만,

그랬구나, 그래 정말 그랬구나
사진으로 비디오로만 봤던 80년 5월 광주학살이
‘동북아 허브센터’니 ‘세계 11대 경제국’이니 ‘IT산업 선진국’이니
아, 듣기만 해도 머리 어찔해 알아 먹지도 못할 말잔치 풍성한
21세기 자랑하는 지금 대한민국 평택 땅에서,
몰랐구나, 내 눈앞에서 이렇게 생생하게 벌어질 줄이야 참말이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구나

‘올해도 농사짓자’는 게 올해 소원의 전부인 순박한 대추리 농민들에게
시퍼렇게 날선 방패로 후려치고 군인들 곤봉으로 내려 조져,
그렇게 모진 구박에도 씨뿌려 싹튼 잎사귀들 군홧발로 무참히 짓밟아버리는
청와대 노 모씨야!
이쁜 우리 자슥들 우짜든지 무지랭이 농투성이 되지 말라고
등짐 져 날라다 어찌어찌 세운 대추분교가 단 몇 분만에 포그레인에 박살난 폐허 위에서
통곡하는 저 머리 허연 대추리 주민들은 너와같이 한솥밤 먹던 이 나라 백성이 아니더냐
‘협력적 자주국방’하려면 제 나라 백성들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더냐, 정녕 그렇더냐

민심은 천심이라.
제 나라 민심이 이젠 천심이 아니라, 제 나라 백성은 이미 지 상전이 아니라,
바다 건너 모 씨가 하늘인, 부시가 부르기에도 참으로 편한 ‘easy man’ 노 씨여,
배반의 땅, 불효막심한 참으로 위대한 우리의 대통령이여!
‘빨갱이’라면 그렇게 불러도 좋고, ‘폭도’라면 또 그렇게 불러도 좋아

아, 평택이여! 우지마라 대추리여!
짓이긴 땅 보듬고 쓰러진 폐허 위에 또다시 희망의 싹을 틔워 가리니,
아 평택이여! 제 나라 대통령에게 버림받은 배반의 땅이여!
또다시 살아오는 5월 광주의 투혼으로
결코 쓰러뜨릴 수 없는 자주와 평화의 깃발을 세우고 말리니.
제 2의 광주학살 넘어,
마름질하는 대통령 넘어 힘차게 앞으로 나아가고야 말리니!

이제 또 월드컵의 계절이군요. 아무튼 간에 저는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터라 큰 기대도 설레임도 없습니다만, 대추리, 이 완전히 빗나간 미쳐버린 세월에 포박당해 함께 전진하지 못하고 월드컵의 함성에 잊혀져갈 그들이 생각나 마음이 무겁습니다. 어째서 그것이 가능하냐구요? 왜요… 우리는 4년 전에도 월드컵 함 해보자고 모질게 동포를 내치지 않았습니까. 상암동에 살면서 월드컵 경기장 때문에 용역깡패들에게 쫓겨나야 했던 그들 말입니다.

나는 이 나라가 참 신기합니다. 채 반백년도 지나지 않았는데도, 군인들에 의해 백수대낮 민간인들이 학살당해야 했던 엄청난 기억도 쉽게 잊어버리고 또 다시 군인들이 민간인들을 핍박하는, 역사가 역전되는 아이러니컬한 세월에 그저 몸을 맡길 뿐이라니요. 지만원 이 개새끼는 하는 말이라곤, 시위대에게 발포를 해야 했었느니 이따구 개수작이나 부리고, 거기에 응응 동조하는 꼴통들이 전국에 수십, 수백만이 넘을텐데도 사람들은 결코 아픈척을 안하는군요.

사회윤리학 시간에 선생님이 그랬습니다. 우리가 흔히 머리, 손, 발 등으로 어떤 사회를 비유하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사람에게 상처가 생겨 고름이 날 경우 환부를 도려내는 것을 두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회의 병적인 요소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도려낼 것이 틀림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과 사회의 환부를 도려내는 것은 전혀 별개의 문제다. 우리가 도려내도 된다고 생각하는 환부는 그냥 환부가 아니라 우리처럼 살아 있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라고.

평택, 대추리 사람들은 결코 환부가 아닙니다. 병적인 요소도 아니구요. 그냥 그분들은 여태껏 농사짓고 살아 왔던 땅에서 앞으로도 그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대추리가 친북반미 세력의 중심지가 되고 있다굽쇼? 차라리 그들이 우익이고 싶다면, 좀 제대로 된 우익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부디 다치는 사람 없이 평화로운 대추리가 되기를 진심으로 희망하면서.

그냥

이 밑에 글, 도 아니고 음악과 가사만 놓아 둔 무책임한 그 책장에 누군가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다고 계속 생각하면서 집에 왔다.
아주 간료한 안부라도 좋고,
아주 뜬금없는 불평이라도 좋고,
아주 사랑스러운 찬사라도 좋으니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
라고.

많이 취했는데,
기어이 집에 왔다.
기어이 침대에 눕고,
기어이 또 꿈을 꾼다.

나도 그게 너무 너저분한 넋두리란거 알아.
젠장, 씨발.

나도 안다고.

Easy to please

Easy to please
-coldplay


Love, I hope we get on
I hope we can find a way
Seeing it all
Love, I hope we can be
I hope I can find a way
Of letting you see
That I’m so easy to please
So easy


Love, I hope we grow up
I hope we can find a way
Of seeing it all
Love, I hope we can be
I hope I can find a way
Of letting you see
That I’m so easy to please
So eas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