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어떻게 어쩌다가 우연히 귀농해서 대관령에서 감자, 고구마, 옥수수나 유기농 야채들을지어 스스로 만든 인터넷 쇼핑몰에 내다 파는 농사꾼의 홈페이지를 알게 되었다. 쇼핑몰 홈페이지 폼을 보니 대충 혼자서 이렇게 저렇게 뚝딱 지은 티가 나도 꼼꼼히 농사일기를 올리거나, 감자/옥수수/고구마 맛있게 삶는 법 뭐 그런 생활의 지혜도 올리고, 고객게시판도 열심히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어쩌면 저 모습이 내가 언젠가 꿈꾸는 모습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야금야금 혼자만 아는 비밀의 장소를 찾듯이 몰래 훔쳐보곤 했었다.
물론 그곳에서 뭐 하나 산 것은 없었지만..
그러던게 요 이삼주 가량 고객게시판에 연일 배송이 늦다는 둥, 이럴꺼면 환불을 해달라는 둥, 배송 온 옥수수는 익지도 않아서 먹지도 못하고 버렸다는 둥 불만의 글들이 거의 도배되다시피 올라왔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가 달아 놓은 댓글을 봤다.
‘막 익은 맛좋은 옥수수를 보내드리려고 옥수수가 익기만을 기다리는데, 요 며칠 계속 비가와서 옥수수가 익지도 않고 따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죄송합니다만 조금만 더 기다려 주세요..’
한 번도 농사를 지어 본 일이 없기에 옥수수는 다 따놓고 파는 줄 알았더니 주문이 들어오면 그때그때 밭에서 옥수수를 보내는 모양이다. 타들어가는 농사꾼 마음이야 오죽하겠냐만은 주문해놓고 기다리는 사람도 참 애가 타겠다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마음에 두고 있는 농사꾼이기에 이런 일로 혹시나 주문한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여 그를 사기꾼이라고 생각하고, 도매금으로 귀농하여 농사짓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되지나 않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이제 슬슬 날이 좋아질 때이니 잘 되겠지 생각하고 한동안은 홈페이지를 방문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던게 오늘 아침 홈페이지가 완전히 열리지 않는다. 연결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리자가 아예 사이트를 닫아버린 것이다. 자세한 전후 사정이야 내가 물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제 물을 수 있는 기회도 없으니 섣불리 단정지을 수는 없으나 이렇게 일방적으로 홈페이지를 닫아버리면 물건을 주문하고 배송받지 못한 사람들이나 나같이 하릴없이 들락거리던 사람들은 오해를 풀 기회조차 없지 않은가. 아예 옥수수나 감자 들을 수확할 수가 없어 더 이상 쇼핑몰을 운영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더라도 이미 주문을 넣은 사람들에겐 사정을 설명하고 환불해주면 될 일이었다.
아무튼 마음이 좋지 않아서 계속 열리지도 않는 쇼핑몰을 F5키를 눌러 새로 고쳐본다.
그러는 사이 밖에는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또 태풍이 온다지?
오늘도 또 비온다며 속이 썪을 강원도 대관령 어느 농사꾼이 슬슬 다시 걱정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