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사년 전 회사 댕길 때 이야기니까, 지금 그녀는 한 이십대 중반쯤 되었을꺼다. 아침에 출근할 때 또 좆같은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하는 절망감 보다는 앞 집 여자와 마주쳐서 버스 정류장까지 의식하며 걸어야 하는게 더 부담스러울 때가 있었다. 만약에 같은 버스를 타야 하기까지 했다면 아마도 난 회사를 옮기거나 관두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했었을 것이다. 둘 사이에 불편한 섬씽같은게 있었냐고? 혹시 주차문제 같은걸로 대판 싸운 적이 있었냐고? 아니.
그녀는 소아마비였다. (였을 것이다. 아니라면 다리에 뭔가 문제가 있었거나.)
혼자서 비척비척 걸을 수는 있는걸 보면 중증은 아닌듯 했다. 일반 걸음보다 훨씬 느린 걸음걸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상하게 그녀를 떨치고 먼저 걸을 수가 없었다. 언제나 (심각한 부담을 느끼면서도) 그녀 앞 삼사미터에서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며 걸었다. 이러고 보면 장애인 이동권 같은걸 입에 주워 담던게 얼마나 무모한 짓이었는지 곧잘 느끼게 된다.
아무튼 한 십분쯤 걸어서 정류장에 당도해 버스를 기다리고 있자면, 그녀가 저 멀리서 걸어 오는게 보였다. 어떤 날은 그녀가 먼저 버스를 탈 때도 있었다. 만원버스에 다리가 불편한 사람이 버스를 탄다. 그게 어떤 기분이었을까. 사람들의 시선과, 어쩌면 과잉 친절에 부담스러워 질 때도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 그것은 그녀에게 지옥같았을 것이다. 대체 아침마다 어딜 가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 보이지 않는걸 보면 대학생일 수도 있었고, 어쩌면 어딘가에 출근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아침마다 같은 시간에 마주쳤던 걸 보면 학생은 분명 아니었지 싶다.) 회사에 출근했다면, 사무직은 아니었겠지. (이건 편견일까?) 아마도 공장 같은데 가서 옆 자리 언니랑 “언니, 오늘은 버스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어.” 이런 이야길 나눴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렇게 한 육개월을 마주쳤으면 서로 눈인사라도 나눴음직한데 눈인사는 커녕 제대로 얼굴을 본 기억도 없다. 그냥 당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나름대로 평범하게 지나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우리 빌라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러하듯이.
그리고서 회사를 관두고 또 다른 회사에서의 출근시간이 늦춰짐에 따라서 그녀와 다시 아침에 마주치게 되는 일은 없었지만, 왜 그녀 이야기를 꺼냈냐면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그녀와 집 앞에서 또 마주쳤기 때문이다. 노오란 가로등 아래 저만치에서 비척비척 걸어 오는 그녀가 보였다. 손에는 무슨 참치캔 선물셋트 같은게 들려 있는걸 보면 회사에 다니는게 맞는 것 같다.
어두워서 얼굴을 분간하지 못해도 그 걸음걸이는 천만명 가운데서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을 것 같다. 제기랄. 밤이어서 그래. 인사라도 할까 하다가, 어두운 길가에서 (그녀가 날 알아볼지는 모르겠지만) 낯선 사내가 인사하면 얼마나 놀라겠는가. 그래서 또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뭐 그런 얘기.
‘맛좋은 술’을 혼자 홀짝거리면서 몇년전 부터 보려고 했었던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을 드디어 보았다.
항상 뭔가 씨부리고싶은 기분이 들때는 여기에 오게되는것 같아. 그런데 제대로 해본적은 단 한번도 없지.
쓰다가 지우고를 몇십번씩 반복한 후에 결국 누가봐도 챙피하지 않을정도의 이야기만 남아. 왜 난 내가 별볼일 없는 인간이란걸 스스로 인정하지 못할까. 씨발….
결국에는 정말 하고싶었던 이야기가 뭐였는지, 네 글을 보고 또 재밌는 우연이다 싶어서 떠올랐던 것도 다 까먹고 내가 뭐하고 있는건지조차 잊어버렸다.
스스로가 별 볼일 없는 인간이란걸 진짜 실감하고 인정하게 될 때가 아마 천국일꺼 같다. 나는 맨날 엄마한테 얘기하지. 너무 기대하지 말라고, 엄마 아들은 천재가 아니라고. 그런데 그런 말을 할때마다 내 맘 속에선 나도 믿기 힘든 욕망같은게 떠올라.
아요, 딸랑아 애욕을 버려라. 시퍼런 새벽에 눈씻고 하늘 보면 여전히 사바세계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