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소리 소문 없이 친구들이 사라졌던 몇 해 전, 광기어린 살육의 시기를 잘 버텨온 우리에게는 적절한 포상이 주어졌다. 발로 차거나 담배 불로 지지는 일 대신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때로는 맘씨 착한 주인을 소개 받기도 했다. 나와는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같은 동네의 점순이는 며칠 전에,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꼬마의 부모에 의해 입양되었다. 나는 그녀가 자동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별로 이별이 가슴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근처에서 볼 수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이럴때 술을 마신다지만, 나는 그냥 배회할 뿐이었다. 냄새를 맡고 영역을 표시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컹컹 짖고 나면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그 날은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내 영역에서 낯선 냄새를 맡기 전까진 그랬다. 전체적으로 숫자가 많이 줄어서 이제는 남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녀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던터라, 뉴페이스가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약간 기쁘기까지 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나니 시장 입구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낮게 으르렁 거렸다. 녀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리가 나는 내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더니 다시 시장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경계를 풀었다. 어차피 이 곳은 내가 혼자 독식하기에는 너무도 큰 장소였다.

나는 녀석의 옆에 앉아서 슬쩍 말을 걸었다.

‘서로 상처주는 일은 피하자고. 원하면 필요할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도 좋아.’

‘고맙군.’

‘이 근처에서는 못보던 얼굴인데?’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먼 곳에서 왔지.’

‘떠돌이 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야.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이제 어딘가에 정착해서 사는게 어때? 마침 여기는 나 혼자 관리하기도 벅차고 해서 말이야.’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아직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은 없네.’

‘뭐, 좋아. 언제든지 말만 하라구.’

그 순간 멍한 녀석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컹컹, 그는 저 먼 도로의 한 곳을 바라보며 짖었다.

‘이봐, 좋은 구경 시켜주지. 따라와.’

나는 녀석을 쫓아갔다.

‘저 늙은 사람은 말이야, 신기한 재주가 있어. 그가 들고 다니는 저것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나거든. 저걸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빈 기분이 들어. 마치 내가 전봇대 만큼이나 오래 산 것 같은 그런 기분.’

늙은 사람이 소리를 내고 그 주위엔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녀석은 가끔 컹컹하면서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을때부터 저 늙은 사람을 따라다녔어. 나는 항상 묻고 싶었지. 어째서 당신이 내는 소리가 나를 이토록 흔드는가 하고. 내가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일까, 나쁜 기분일까… 그것도 모르겠어. 아무 것도 몰라. 내 어미가 나를 낳고 어느 추운 날 우리 형제가 뿔뿔이 흩어졌고, 또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게 이 순간을 위해서 필요했다는 기분이 드는거야. 나는 이상한 개일까? 나는 이런걸 느껴서는 안되는걸까? 이봐, 젊은 친구. 자네는 뭐 느껴지는게 없나?’

‘인간의 소리라는 것 밖에는 모르겠는데. 이런건 여기선 자주 듣는다고. 빛이 나고 소리가 나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오고, 소리만 나오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와. 그런데 난 네가 느낀 것 같은건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는걸.’

‘그래… 그렇군. 역시 이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인가보군.’

그 뒤로도 저녁까지 우리는 함께 그 늙은 사람의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늙은 사람은 아침마다 같은 장소에서 소리를 냈고, 늙은 녀석도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늙은 녀석이 뭘 먹는걸 본 적이 없어서, 가끔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그는 먹는둥 마는둥 했다.

‘좀 먹지 그래. 이래서야 어디 팔려가지도 못하겠군.’

그는 웃을 힘도 없는지 입가만 약간 움직이다 말았다.

‘젊은 친구, 자네는 자네가 왜 개로 태어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이 세상 수만 생명 가운데 어째서 개일까 하고 말야.’

‘내 어미가 개였으니 나도 개인거지.’

‘자네 어미가 개인 것은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자기 어미가 개인 것을 모르는 개도 있단 말이야?’

‘내 말은, 그걸 자네가 기억하느냐 이거지.’

‘나는 내 어미 젖을 먹고 자랐어.’

‘그래 그 이전엔? 자네가 자네 어미의 자궁을 뛰쳐나와 첫 울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아니면 자네가 자네의 형제들과 함께 어두운 자궁 안에서 이따금 몸부림 치던 것들이 기억 나던가? 아니면 자네가 수태되던 그 어느 뜨거운 여름 날이 기억 나던가?’

‘그런걸 기억하는 생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가 다 자기의 형태대로 태어난 것을 알 수가 있는거지? 우리의 어미 아비가 태어나지도 않았을때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걸까. 내 마음은 어째서 산처럼 묵묵히 자기 있을 곳을 알고 있지 못할까. 내 마음은 어째서 봄날 민들레처럼 얕은 바람에도 하늘로 불려 올라가는걸까…’

‘병에 걸린 모양이군.’

‘맞아, 병이라면 병이지. 나는 개라는 병에 걸린거야. 병은 이름 붙이는 순간 병이라네. 마음병이지. 마음에서 모든게 시작된다네. 저 늙은 사람의 소리는 단지 내 마음에 불을 켠 것 뿐일지도 모르지.’

또 며칠이 지났다. 늙은 녀석은 몇 번 숨을 헐떡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늙은 사람은 그 순간 내던 소리를 멈추고 늙은 녀석을 옆구리에 끼더니 자리를 떴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가끔 늙은 사람이 다시 이 동네를 찾을까 싶어서 예전 소리를 내던 장소를 찾곤 했다. 내가 그 장소를 찾을때마다 내 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건 사람의 소리도, 개의 소리도 아니었다. 꽃이 피는 소리였다. 꽃이 피는 소리라니! 개의 감각이 아무리 예민해도 그런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꽃이 피는 소리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하늘에 반짝이는 것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내려오는 소리와, 바람이 산을 움직이게 하는 소리와, 땅이 움직이다가 멎는 소리와, 온갖 살아 있는 것이 나이 먹는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와, 태어나는 소리와…

나의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Q :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A : 개에게 물어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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