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게, 가끔은 얼룩진 것처럼 구불텅한 짙은 숲 사잇길을 쉬엄쉬엄 걸어 나가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맑은 연못 하나를 발견하게 된다. 정말 연못을 발견할 수 있는지 없는지, 대체 짙은 숲은 어디인지 물을 필요는 없다. 그건 정말 거기 있는 것들이니까. 나이만큼 수그려진 고개와 어깨로 두어번 긴 숨을 내쉬다가, 작정하고 인정하면 그만이다. 그렇게, 그것들은 거기 있다. 그리고 대체로 일년에 두어번 연못의 수면이 모든 빛을 머금고 반사를 포기할 때가 있는데 만약 당신이 그 연못을 방문했을때가 그때라면 정말 운이 좋은 것이다. 평상시에는 수면에 반사하는 하늘의 구름이며, 숲의 음영들로 인해 연못 아래 있는 것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마법같은 우연으로 수면반사가 멈춘 날에는 오히려 공기보다 더 투명하게 그 아래가 내려다 보인다.
물은 다이아몬드처럼 시리게, 썩어가는 나뭇잎은 깊은 시간의 색으로 바래지고 당신 가슴의 출렁임에 맞춰 수면이 작게 흔들리면, 거기 당신, 무엇이 보이지? 나는 시체들이 보여. 하얗게 눈을 뜨고 미동도 없이 정지한 사람들. 언젠가 한번씩은 대면했던 이들. 과거는 정말 쏜살같이 지나가는데, 미래는 아직도 당도하지 않은 희부윰한 새벽에 조금씩 가벼워지는 세계.
이 망상을 떨칠 수가 없다. 어쩌면 그 이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