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 제사가 있어서 경기도 의왕시엘 다녀왔다. 간만에 제사때 대빵 웃긴 일이 있어서 옮겨본다.
할아버지 제사때 모이는 내 또래 가운데 내가 가장 나이가 많고(작은집 애들은 이제 제일 큰애가 고1… 나머진 그 밑으로 쪼르륵..) 장남이라서 이것저것 힘쓰는 일, 잔 일은 언젠가부터 내 몫이 되었다. 이를테면, 교자상을 옮긴다던가 병풍을 꺼내서 세운다던가, 제수음식을 나른다던가 하는 일..
그중에 내가 제일 하기 싫은건 제수음식을 나르는 일인데, 이게 좀 사연이 있다.
원래 제사는 큰집에서 지내는 것이고 우리집이 큰집이긴 하지만 집이 매우 좁아서 작은집에서 제사를 지낸다. 마당이 있는 시골이라면 어르신들은 제사 준비가 완료될때까지 휘적휘적 마당에서 한담을 나누거나, 평상에서 술을 드신다거나 하면 되지만 작은집은 아파트라서 제사가 준비되는 동안 제삿상이 차려지는 마루의 쇼파에 앉아 계신다. 문제는 이분들이 딱히 그 시간을 보낼 만한 일거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 준비마다 "이건 이렇게 해야하고 저건 저렇게…" 하는 식의 명령을 내린다.
그 중에 가장 강력한 발언권을 가진 분은, 제삿상 히에라르키의 가장 정점에 서 있는 작은할아버지다. 나는 매번 제수 음식을 나를때마다 할아버지께 "왜 과일이 뒤에 가 있냐, 생선은 저쪽이지" 하면서 핀잔을 듣는다. 교자상이나 병풍이야 하도 오래해서 눈감고도 적당하게 위치를 맞출 수 있는데, 이놈의 제삿상 차리기는 도무지 감각을 모르겠다. 나는 매번 소신껏 (그러나 작은 목소리로) "어휴, 작은할아버지. 저 아직 제삿상 차리는거 잘 몰라요. 그냥 음식 나르면 어른들이 정돈하시겠죠." 라고 말하는데, 거의 전달이 안되는 것 같다. 어쨌든.
올 해 제삿상의 논쟁거리는 과연 말린북어의 정확한 위치는 어디냐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작은할아버지가 뭐라 하시건간에 대충 제수 음식을 상에 올려만 놓는 경지에 이르렀으므로, 작은아버지가 제수 음식을 정돈하는데 여기서 그만 작은할아버지의 지적이 있었다.
보통 생선류는 동두서미(東頭西尾)에 따라 머리는 동쪽에 꼬리는 서쪽에 둬야 한단다. 뭔가 착각이 있었던지 작은아버지가 말린북어를 제대로 놓지 못하자, 작은할아버지가 "그건 거기가 아니라… 동두서미니까.. 어쩌구.. " 하셨던 것이다. 작은아버지는 지적에 따라 여러번 말린북어의 위치를 조정했는데도, 작은할아버지는 계속 뭔가 중얼거리셨다. 불만스러운 것이다. 게다가 우리 아버지도 뭔가 거들며 "그건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하는 바람에 중간에 작은아버지만 계속 북어의 위치를 옮겼다. 그러던 중!!
"에이, 동두서미면 이건데요 작은아버지."
허거걱!! 그렇다.. 우린 그냥 제삿상에 평행하게 둘 줄만 알았지, 진동과 진서의 위치가 어떻게 되는지 몰랐던 것이다!!
순간 마루에 정적이 감돌았다. 작은할아버지도 할 말이 없지, 왜냐면 작은할아버지가 생선은 동두서미라고 하셨거든.
다들 아무 말 못하고 애매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나는 그만 엄청나게 큰 소리로 웃어버리고 말았다.
진짜 동쪽과 서쪽이 어딘지도 모르면서 맨날 동두서미만 외우는 작은할아버지한텐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