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세상에

나는 모든 종류의 살인에 반대하며, 그러므로 사형제도 또한 반대한다. 또한 인권은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춘 자에게 수여되는 훈장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그 어미로부터 태어나는 순간 당연히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오늘 나는 처음으로 이러한 결심히 흔들리는 경험을 했다. 어린아이를 잔혹하게 성폭행한 남성에게 징역 12년이 구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머리 속에서 클라이브 바커의 단편에 등장하는 핏빛 가득한 고어적 영상이 계속해서 반복되는 통에 일을 손에 잡을 수가 없었다. 인간이 상상력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문조차도 그에게는 너무 자비로운 형벌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하루 종일 여기저기로 퍼날라지는 성폭행 당시의 사건기록들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의 일부에서 캡춰한 피해 어린이의 상흔을 클로즈업한 이미지들과 시간별로 자세하게 정리된 사건 당일의 리얼한 묘사들은 너무나도 그로테스크했다. 그러한 묘사들을 통해서 마치 내 자신이 그 옆에 무기력하게 서서 사건의 방조자가 된 것 같은, 엿같은 기분이 들었다. 물론 어른들은 (특히 성인 남성들은) 모두 사건의 방조자다, 많던 적던간에. 그리고 이렇게 재생산되는 참혹한 사건기록은 어딘지 모르게 대상을 (그 대상은 물건이 아니라 어린아이였다.) 탐욕스럽게 소비했던 가해자의 시선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제발 이제 그만 좀 퍼나르고, 누구를 가운데두고 이 일을 되새겨야 하는지 스스로들 조용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피해 어린아이의 상처가 부디 곱게, 단단히 아물기를 빈다. 이런 일에 항상 가해자인 남자 어른 가운데 한 명으로서 진심으로 미안해하고 있다고, 이 지옥같은 세상에 너를 두고 한 눈을 팔아 정말 죽을만큼 미안하다고.

개인적으로 그 씨발새끼한테 진심으로 집행유예를 내리고 싶다. 이마와 두 뺨에 큼지막하게 ‘강간범’이라고 문신을 새겨서, 그런 다음 명동 한 복판에서 12년 동안 사회봉사 명령을 내리고 싶다.

오랫만에

오랫만에 블로그를 찾는다. 내가 최근 블로그를 찾는 경우는 페이스북 링크를 클릭하기 위한 것을 빼고는 거의 없다. 트위터도 가끔 하는데, 예상외로 생각을 140자 내로 정리한다는 것이 쉽지가 않다.

지난 일요일에는 워냉과 워냉 회사 대리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낚시를 다녀왔다. 바다 갯바위 낚시였는데, 나는 반팔에 모자도 없이 가서 새까맣게 타버렸다. 덕분에 이번주 사무실 개발팀은 내내 나만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더 몇 주 전에는 사랑니를 뽑았다. 뽑는 도중이나 마취가 풀리고 난 직후라던가, 그로부터 이삼일까지도 전혀 아프지 않았다. 소독을 위해 그 후에 한번 더 치과를 방문했었고 의사에게 그 이야기를 했더니 너무 당연한 일이라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는게 기분 나쁠 정도라는 표정으로 ‘당연히 안아프게 뽑아드려야죠. 그리고 사랑니가 곧게 잘 나서 수월했어요.’ 하더라는.
사랑니를 뽑고 솜뭉치로 지혈하며 사무실로 향하는 길에서 ‘나는 이제 사랑같은건 다신 못할꺼야.’ 하고 되뇌여봤는데, 사랑니를 뽑았다고 사랑을 못하게 되는건 아닐테고 그냥 있던게 사라져서 허전한 것일테다. ‘앓던 이 빠지듯’이란 속담, 누가 처음 생각해낸 것인지는 몰라도 참 잘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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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좀 깎아요, 그 잘생긴 얼굴 가지고 왜 그런데.’

하고 에밀리는 톰에게 질문한다. 톰은 웃으며

‘예술가의 마음에 대해서 아주 적절히 표현하고 있는 이 만화를 먼저 보세요.’

한다. 두컷짜리 짧은 만화인데, 주인이 자신의 개 ‘진져’에게 야단을 친다. ‘너 이놈 자식 쓰레기통 뒤지지 말라고 몇번이나 말했어! 어쩌구 저쩌구…’ 그리고 그 위에는 ‘당신이 말하는 것’ 이라고 쓰여 있다.
다음 컷에는 ‘당신의 개가 듣는 것’ 이라고 쓰여 있고 그 밑에 개는 ‘XD#@$DFG 진져 #$DFSFD!!…’ 라고.

역시 사람 (예술가나 사람이나) 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 같다. 톰은 ‘당신의 모든 질문 가운데서 “그 잘생긴 얼굴” 밖에는 안보이는군요.’ 하고 웃는다.

뭐 그렇다능.

아이 졸라

문득 고개를 돌리니  BBC 월드 뉴스에서 김대중 서거 뉴스를 전하고 있었다. 술집 안은 시끄러웠고 애초에 화면만 보는 텔레비젼이었으므로, 게다가 뉴스 음성을 들을 수 있었다 하더라도 한마디 알아 들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았다.

하고 다시 떴다. 이번에는 티아라 쇼 시즌 4가 방영되고 있었다.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기 이전에 그가 그녀의 쇼에 출연했을 당시를 회고하고 있었다. 그리고 열여섯, 열넷, 열여섯살의 미국 애들이 나왔다. 타이틀로는 ‘(오바마가 미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미국에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는 열여섯살의 데이비드’ 뭐 이런 것이었다. 티아라는 그 중에 열여섯살 먹은 흑인 소녀에게 대통령 선거 당시 가족이 참여했던 오바마 선거 유세에 대해 물었다.

“할아버지가 ‘내가 죽기 전에 흑인이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다니 참 감개가 무량하다’고 하셨어요.”

티아라의 눈물이거나 열여섯살 흑인 소녀의 감회 같은건 사실 우리가 자본을 소비하는 새로운 양태라고 생각한다. 체의 티셔츠이거나 자서전 같은게 ‘소비’되는 것처럼. 그런데 좋은 소비와 나쁜 소비가 있을까. 에이 씨발, 그런게 어딨어. 사는거 자체가 다른 존재를 씹어먹는 죄악의 연속인데, 소비는 죄다 나쁜거지. 어쨌든.

그래도 그 눈물을 믿고 싶다고 생각했다. 물론 순도 구십구쩜구퍼센트의 개뻥이겠으나, 그래도 영쩜영일퍼센트 정도의 진실이란게 있다고 믿고 싶어지는거다. 삼성카드로 엘지데이콤이나 아이엔아이, 모빌리언스 같은 결제대행사를 통해 대략 결제당 이퍼센트에서 사퍼센트 사이의 수수료를 물고 저 머나먼 나라의 머나먼 가난에 기부하는, 쪼금 아이러니컬한 상태를 인정하고 싶은거다.

이런 상황에서 당위를 말하는건 정당하다. 왜냐하면 당위가 당위가 아니니까. 아무도 선하게 살지 않는데, 선하게 살자는 당위를 말하는건 혁명을 하자는거다. 혁명을 하자는건 마누라 빼고 다 바꾸라는 (씨발 그럼 애새끼들도 바꾸게?), 내적으로는 보수지만 외적으로는 진보의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라는게 아니다. 자기 자신부터가 원자수준에서 변하하자는거다. 이제 제발 ‘유년기의 끝’을 보자는거다. 꼰대들이 아무리 졸라게 세상을 부여잡아도 애들은 점점 더 이해 불가능하게 변한다. 어른들을 능가한다. 그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란 이야기다.

테드 창이 그랬다. 니가 인정하건 인정할 수 없건 간에 우리는 이미 변화의 도중에 있으며, 오직 환상 속에서 귀환하지 못하는 자들만이 세상을 이전 상태로 고정시키려고 시도한다. 나는 그걸 정치적으로 (누가 뭐라든!) 읽었으며, 그 정치적이라는 표현은 제도 정치가 아니라 일상의 정치다.

술 좀 먹어서 말이 자꾸 꼬리를 문다.

나는 조금씩 나은 인간이 되려고 한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인간.

어떤 소식

새벽에 잠깐 아버지가 들어와 텔레비젼을 고쳐달라고 나를 몇 번 흔들어 깨우다가, 내가 비몽사몽으로 대꾸를 하니까 그냥 나가셨는데 열한시쯤 일어나 ‘희안한 꿈을 꿨네.’ 하고 있자니 윤식이형한테 열시쯤 부재중 전화 두 통화가 와 있었다.

깨어나서 화장실에 갔다가 집안이 조용해서 뭔가 하고 안방에 들어갔더니 진짜로 텔레비젼이 고장나 있었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잘됐다 싶어 이미 새로운 엘씨디 텔레비전을 주문하고 돌아오시는 길이었다. 이십년 넘게 사용을 한 텔레비전이었고, 수리기사 말로는 ‘인간 수명으로 보자면 120살 정도 된 텔레비전이에요.’라고 했다니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윤식이형한테 전화를 걸었더니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게 아닌가. 노무현이 죽어? 이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그때가 오전 열한시 반이 조금 넘어가는 시간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낮부터 술을 마셔야겠노라며 신도림으로 튀어 나오라는 소리에 기겁을 하고 끊었다.

텔레비젼이 없으니 소식을 알 수가 있나. 포털 사이트에 들어갔다. 온통 노무현의 죽음에 관한 기사뿐이다. 블로그도, 트위터도 정신없이 새로운 글들로 갱신되고 있다. saxboy님의 트위터에 ‘장준하 선생님 생각난다’고 했는데, 정말 데자뷔가 아닌가. 날은 맑지 않고, 나는 두껍게 커튼을 친 상태로 어제 받아 놓은 다큐멘터리를 봤다.

텔레비전이 완전히 고장난 시점과 한 사람이 생을 마감한 시간이 비슷했다고 언급하는 것은, 자연의 무작위성에 항상 어떤 의미를 부여하려고 하는 인간 이성의 속성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타인에 대해서 최대의 경의를 표하는 것은 언제나 깊이 생각하며 역지사지 하는 것 밖에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의 인생과 마지막으로 죽음을 결심하며 유서를 작성했던 오늘 새벽의 몇 시간 말이다. 역지사지 하는 척이라도 할 수 밖에 없다. 정말 그 이상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우리는 끝내 우리 자신의 인생밖에는 살 수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분노에 떨며 현정권의 종료일을 기다리고 있다.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아직도 작년 비비케이 사건에 관한 증거들 – 천연덕스럽게, 끝내 ‘혐의 없음’, ‘증거 불충분’ 등으로 판단해버린 – 을 컴퓨터에 보관하고 있다. 정말 중요한건 현정권, 까놓고 말해서 이명박 심판이 아니다. 그건 언제나 그랬듯이 과정이다.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오늘의 우리가 되는 것, 그리고 그것이 계속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오늘 본 다큐멘터리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치올코스프키의 유지가, 가상의 명왕성에서 러시아 우주인에 의해 읊어졌다.

지구는 인류의 요람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요람에서 머물 수는 없다.

우리는 오늘을 살지만, 오늘은 곧 과거가 되고 내일이 찾아 온다. 내일의 우리는 결코 오늘과 같아서는 안된다.

평화 속에 잠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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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나서 예전에 스크랩해뒀던 사진 한 장 덧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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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아주 긴, 긴 하루가 또 끝나려고 하고
청년은 퍼렇게 동트려 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들려고 노력한다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이야기는 좀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자명한 것들은 너무 흔하게 알고 있는 것이어서 깨닫기가 쉽지 않다
고 어두운 손바닥에 쓴다
청년은 시시때때로 꿈을 꾼다
꿈 속에서의 청년은 애정넘치는 인간이다
꿈 속에서 그는 아주 가끔만 절망한다
스탠드에 팔꿈치를 얹고 콜라를 마신다
그는 궁금해졌다
과연 나만큼 어두운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겐 일생이 꿈일 것이다
백만년쯤 전에 지나온 꿈이다
그리고 피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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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잔인한 세상아
난 이제 널 떠나려 하네
네가 뭐라고 해도
내 맘은
바뀌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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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살면서
세상의 종말을 보고 싶다
그 이후에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없더라도

정상

몇가지 일이 지난 주에 일어났다. 일단 새롭게 일자리를 구해야 할 일이 생겼고 감기로 인해 이틀 동안 침대에 누워있었더니, 감기보다 요통 때문에 더 고생했다. (나중에 자가 진단을 내려 본 바, 통증의 원인은 장기간 누워 있던 자세로 인한 요통이 아니라 감기로 인한 근육통인듯 싶다.) 깜빡 잊고 담배를 사흘 정도 피우지 않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다시 피우게 되었다. 이틀만에 감기는 진압된 듯 보였지만, 오늘 또 코끝을 간지럽히는 기침이 요란하다.

요즘 자주 만나는 몇 명의 사람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몇번이고 왜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상적이지 않을까, 다들 어딘가 모르게 삐뚤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그리고 통근을 하며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면면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면, 나와 안면도 전혀 없는 이 사람들 조차 정상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게 너무 이상했다. 무엇이 정상일까. 나는 단 한번이라도 정상적인 사람을 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 욕심만 앞선 습작에서의 인물이 각진 종이인형처럼 날카롭게 삐죽거리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진짜 자신을 평범하다고 여기는 사람만큼 비범한 사람도 없을 뿐더러, 실제로 비범한 사람은 단 한번도 보지 못했으니 적어도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자기 자신을 비범하다고 여기는 것 같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렇다. 그냥 그걸 아이덴티티라고 하자. 그렇게 보면 정상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아무도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행복을 바라는 것처럼, 정상인 것에 대한 고민 없이 우리는 정상이기를 바란다.

커먼 센스는 넌센스다. 보편은 없고 보편에 대한 환상만 있다. 그래서 누군가 이데올로기를 허위의식이라고 번역한게 참 그럴듯 하다고 생각된다.

봄인지 뭔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바뀌는건 봄에서 여름으로의 그것보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그것이 더 강렬한 것 같다. 일찌기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어두운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접어들때의 환희를 – 기억이 맞다면 – 어느 순간 사방이 ‘밝아졌다’는 짧지만 매우 공감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줄여 표현했었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전환도 그렇다. 낮이 길어지고, 사방이 갑자기 밝아져서 눈이 부시다. 꽃들과 여자들의 옷차림이.

그렇지만, 나는 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폭발하는 생명의 소란스러움은 수류탄 파편처럼 맹목적으로 내 나약함을 파고든다. 감당하기 힘든 그 공격에 날마다 초주검으로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아침이 되면 뿌연 창문 밖엔 또 어떤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 걱정이 앞서 맥손을 놓기 일쑤였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은 소란스럽다. 봄만 되면 모든게 귓가에서 앵알대는 파리의 날갯짓 같이 성가시고 괴롭다.

봄이란다. 매년 힘내서 피워내는 옆 빌라의 목련이 올 해에도 굳세게 만개했다. 딱딱하게 굳은 감각들도 조금은 풀어진 모양으로 봄이 봄인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가, 그리고 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간다. 이 문장에 담긴 비의를 체득하게 될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봄을 견뎌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조금씩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왔다가 갈 것이다, 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멍한 내 시선 바깥에서 봄은 왔다가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