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와 B가 C에 대해 토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진지하고 제대로 된 토론을 본 적이 별로 없으므로, 이 경우 ‘토론’을 ‘말싸움’으로 바꿔 읽어도 뜻은 통하겠다. 그리고 여기서, 이를테면 올바른 스승 밑에서 정순한 내공을 쌓지 못하고 여기저기 싸움판을 돌아다니며 스스로 터득한 몇가지 잡기로 살아 온 사람들이 쓰는 비겁한 수를 자주 볼 수 있는데, 이를 두고 ‘장님 따귀 때리기’ 라고 (내가 이름 붙인) 한다.
자, 말싸움에서 승리하고 싶다면 상대방이 뭐라고 하는지 일단 잘 들어야 한다. 그는 대부분 상대방이 한 말을 연역하고 덧붙이고 개작해서 새로운 논지를 만들어낸다. 즉, 나는 ‘개고기 도축의 비인간성과 유통 과정의 비위생성’을 이야기 하는데, 상대방은 이것을 ‘개고기 반대론자 -> 친 브리짓트 바르도파 -> 반한파 -> 매국노’ 로 확장시킨다. 그리하여 그가 상대하는 것은 ‘한민족의 전통성을 부정하는 비열한 매국노의 논리’ 가 되고, 상대방을 논박하여 무너뜨리는 것은 ‘시대가 그에게 내린 역사적 사명’ 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민주 애국 시민들에게 이 존엄한 십자군 전쟁에 동참하기를 선동한다.
나는 이런 경우를 많이 봐 왔다. 그리고 그것을 하는데 조중동을 따를 만 한 곳은 없다.
http://article.joins.com/article/article.asp?Total_ID=424265
만화영화 ‘인크레디블 맨’에서 대체 뭘 읽어냈는지 감도 잡히지 않을 만큼, 이것은 그들의 흔적 가운데 빼어난 수작이다. 기자는 처음부터 ‘좌파 빨갱이들이 주장하는 반민족적 사학법과 언론법 개정’ 을 까기 위해 인크레디블 맨을 개작하기 시작한다. 거기서 ‘내가 사회에 공헌한게 얼만데!’ 하는 소외된 초인가족은 바로 자기 자신들이다. 그리고 여기서 그들은 한번 더 논지를 꼬기 시작한다. 사학/언론법의 개정이 주는 피해를 기층의 피해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년에 돈 백억 이상 버는 사람들은 누진세를 적용해서 소득의 7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야한다.’ 고 하면 ‘여러분! 이제 여러분들은 일년 소득의 70퍼센트를 세금으로 내게 생겼습니다! 이건 빨갱이가 국정을 장악한 결과입니다!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이번 대선에서 빨갱이를 몰아내야 합니다!’ 하는 격이다. 그리고 그 뒤에 매우매우매우매우매우 작게 ‘단, 여러분이 100억 이상을 벌 때의 이야기입니다.’ 고 적는데, 이건 잘 안보인다.
아무튼 수많은 장님 낭인무사들 사이에서 따귀를 맞지 않으려면, 꾸준히 비판적으로 읽고 생각하고 말해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들의 협잡을 깨닫는 것이다. 고작 저런 수법 몇가지로 배운 척, 고매한 척 하는구나 하면서 콧방귀를 뀌어야 한다.
나는 아직도 말싸움을 잘 못한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다. 나날이 근검착실하게 고민하는 수 밖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