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늦긴 했어도 결국 올 해가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보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의 말대로 몇 년 전부터 세계 영화계에는 아시아계 감독들의 약진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 같다. 혹은 우리에게, 더 이상 할리우드 영화의 제한된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세계의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어쨋든, 내 곁에 있어줘, 를 보고 아시아 영화의 약진이라던지 하는 말을 주워담는 것은 좀 비참하기도 하다. 어쩐지 그런 분석적인 말들을 내 곁에 있어줘의 옆에 붙여 놓으면 내 자신이 치졸한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영화는 아주 조용히, 천천히, 젊은 내가 차마 인정하기 힘든 어떤 거대하고 숭고한 희망에 대한 얘기를 한다. 아버지와 아들, 두 동성애 소녀, 멋진 여자를 사랑하게 된 어느 뚱뚱한 경비원의 이야기들은 점진적으로 눈과 귀를 멀고서도 타인을 위해, 무엇보다 자기 자신의 자존과 위엄을 위해 평생을 끊임없이 노력 해 온 테레사의 삶으로 투영되기 시작한다. 김지수를 닮은 그 여배우가 자살하기 위해 건물에서 추락할 때, 경비원은 주체 할 수 없이 피어오르는 애틋한 사랑의 감정을 대신해서 그녀를 구하고 죽는다. 죽은 부인의 환영은 늘쌍 아버지의 주위를 맴돌지만, 아버지는 단 한번도 죽은 부인의 환영에 따뜻한 시선을 주지 않다가, 아들을 대신해 테레사에게 음식을 가져다 주면서 처음으로 서글픈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환영에게 입맞춤한다. 아들은 경비원의 희생으로 목숨을 구한 소녀를 찾아가 그녀와 그녀의 어머니를 위로한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는 이야기다. 아주 작은 사람들이 아주 작은 사람에게 위안과 사랑을 받는다.
오랫만에 영화를 보고 울었다. 극단적으로 대사가 없는 영화였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고 편안하게, 그러나 가슴이 묶이는 단단한 심정으로 보았다. 영화에 출현한 테레사의 이야기는 실화이며, 실화의 주인공이 실제 테레사의 역할을 맡아서 연기했다. 감독인 에릭 쿠의 인터뷰에 따르면, 눈이 멀고 귀가 먹은 테레사와 함께 작업하려고 생각했을때 그녀의 신체적 한계로 인해 작업이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달도 지나지 않아서 유쾌하고 밝은 그녀의 성격과 농담으로 인해 매우 즐거운 기분이 되었다고 한다.
사랑하는 이여, 내 곁에 있어줘.
내 미소가 사라지지 않도록.
아.. 이런 말이 무슨 소용일까. 천만분의 일도, 영화를 보고 난 내 감정을 표현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