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 끓이기의 핵심 – 요리를 막 시작한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
1. 가급적 천연 조미료를 이용한다.
다시다나 감치미 대신에 건멸치, 건새우, 건표고 등등을 갈아서 사용하면 좋다. 대신에 이런 천연 조미료는 인공 조미료에 비해서 겉으로 드러나는 풍미는 덜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는 우리가 소위 ‘감칠맛’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인 ‘L-글루타민산나트륨’이 정제/추출된 상태로 인공 조미료에 첨가되기 때문이다. 대신에 이 원료는 많이 먹을 수록 뇌에 장애나 과잉행동장애등을 야기할 수도 있다. 그런데 정말 큰 문제는 인공 조미료가 아니라, 인스턴트 식품이다. 인공 조미료는 천연 조미료로 대체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햄, 소시지, 라면, 이온음료, 과일통조림, 캐첩 등등에 들어가는 인공 조미료는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체는 아주 놀라운 적응력을 발휘한다. 천연 조미료로 재료를 막 바꾸었을 때는 느끼지 못하던 섬세한 맛들에 시간이 지날 수록 미각이 예민해져서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태양광에 과도 노출된 상태에서는 보이지 않던 별빛이, 어두운 밤에는 보이는 것과 같다.
나는 일전에 만두국을 끓이면서 소금이나 인공 조미료를 아예 넣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대신에 건멸치로 육수를 우려내고 국이 끓던 도중에 조미료 대신으로 만두 하나를 터뜨렸다. 아… 그 풍미란! 만두소에 포함된 고기나 야채들에서 우러난 진하고 깊고 복잡한 맛이, 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다.
2. 가급적 재료를 적게 쓴다.
요리를 처음 하는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이 양 조절이다. 우리 아버지도 지금은 요리를 잘 하시지만, 처음에 요리 하실땐 무조건 많이 넣으면 맛있어지는 줄 아셨던지 그 양이 엄청났다. 조미료도 심하게 넣고, 소금도 그랬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는 적당히 넣는 것이 좋다. 아니, 적당히와 약간 모자란듯 한의 그 미묘한 경계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음식 만화의 지존인 ‘맛의 달인’의 어떤 챕터에는 숙련된 요리사가 보이는 소금간 시범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 요리사는 그냥 물을 끓이고 거기에 약간의 소금을 넣었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그 끓인 소금물은 매우 맛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에 소금으로 정확하게 간을 맞춘다고 해서 맛이 정말 있을리는 만무하지만, 그 챕터가 가지는 내용의 핵심은 아주 미묘한 경험으로써의 간이 있다는 것이다. 국에 들어가는 식재료도 마찬가지다. 국에 들어가는 모든 재료는 끓임으로써 그 맛의 정수들이 국물로 모인다. 때문에 너무 많이 넣거나 너무 적게 넣는다면 원래 기대했던 맛을 이끌어내기 힘들다.
자, 그런데 왜 재료는 적게 써야 하는가? 아주 간단하다. 재료를 적게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재료를 더하면 된다. 하지만 재료를 너무 많이 써서 원하는 맛을 내지 못할 경우에는 방법이 없다. 물을 넣어서 간을 맞추면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과한 간에 물을 넣으면 전혀 맛이 없다. 정확한 간을 익힐 때까지는 조금씩 재료를 더하며 간을 맞추는 것이 훨씬 낫다.
3. 재료를 넣는 순서가 있다.
카레의 재료는 보통 감자, 당근, 고기, 양파, 카레가루, 물 등이다. 자, 그럼 맛있는 카레를 만들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넣고 끓이기만 하면 될까? 아니다. 식재료는 각자 익는 시간이 다 다르다. 감자나 당근은 보통 두툼하게 썰고 단단하므로 쉽게 익지 않는다. 그리고 양파는 제일 빨리 익는다. 조리가 끝났을 때 모든 재료가 각자 제일 적당한 정도로 익을 수 있도록, 재료를 넣는 순서를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카레의 경우 감자와 당근이 제일 늦게 익기 때문에 가장 먼저 넣어 볶기 시작한다. 어느 정도 익어갈 즈음 (이것을 판단하는 것은 경험 뿐이다. 아니면 젓가락으로 찔러봐도 된다.) 고기를 넣고 볶는다. 그리고 뒤에 양파를 넣고 양파가 거의 다 익을 즈음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다. 즉, 카레가루를 녹인 물을 붓는 시점에서 감자, 당근, 고기, 양파는 모두 비슷하게 익어야 한다.
사실 모든 식재료가 익는 시간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수많은 요리 가운데 생겨난 경험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4. 푹 끓인다.
돼지김치찌개의 핵심은 김치의 얼큰시원한 맛과 어우러진 돼지고기의 풍미일 것이다. 고기는 보통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오지도 않는다. 김치도 그렇다. 김치는 야채로 만든 것이어서 금방 익고 그 맛이 금방 국물에 우려 나올 것 같지만, 푹 익은 김치는 왠만한 시간으로는 그 본래 맛을 내어주지 않는다. 때문에 돼지김치찌개의 경우 국물이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5~6분, 길게는 10분까지 끓여야지만이 본래의 맛이 우러나게 할 수 있다.
일본의 국에는 푹이랄까, 진하게 우려낸 같은 것이 없다. (라멘 육수 같은 것은 제외하고) 왜냐하면 일본 국의 핵심은 각각의 식재료들이 가진 맛의 정수를 최대한 이끌어 낸 정도로 즐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들은 라멘 국물까지 다 마시는 법이 잘 없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국의 핵심은 모든 식재료의 맛이 국물에 집중되어 어우러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은 국물을 마시기 위해서만 존재한다고까지 할 수 있다.
5. 상상력!
상상력은 놀라운 힘이다. 만약 우리에게 상상력이 없었다면, 해물된장찌개같은 시원한 된장찌개는 영원히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상상력은 평범함을 거부하는 힘이기도 하다. 매번 같은 조리법에 질렸다면, 상상력을 발휘해 작은 변화를 주는 것도 요리의 맛을 결정짓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내가 요즘 주력하는 분야는 만두인데, 만두를 먹다가 왜 만두는 한끼 식사로만 먹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는 보통 만두를 먹거나 밥을 먹지, 만두와 밥을 같이 먹지는 않는다. 하지만 만두의 만두소는 그 맛이 아주 다양하기 때문에 충분히 반찬으로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만두덮밥을 만들었다. 우선 먼저 건멸치로 낸 육수로 만두를 끓인다. 물의 양은 평소보다 조금 적게 하면 된다. 그리고 소금간은 하지 않고 대신 간장과 가스오부시액(한국에는 가스오부시를 구하기 힘들기 때문에 가스오부시액을 사용했다.)으로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진하게 간을 한다. 그리고 나는 파를 매우 좋아하므로 팔팔 끓기 시작했을 때로부터 약 4분쯤 지났을 때 파를 듬뿍 넣는다. 그리고 1분간 더 끓여준다. 다 끓였으면 만두를 건저서 밥 위에 얹는다. (한끼 식사에는 보통 4~5개가 적당하다.) 그리고 육수는 버리지 않고 절반쯤 따라 낸 뒤에, 남은 것은 또 팔팔 끓여서 약간 졸게 만든다. 졸은 육수를 만두 위에 끼얹어 주면 맛있는 만두덮밥이 완성된다. 기호에 따라 참기름이나 깨소금을 약간 넣으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