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팸 필터에 분명히 ‘이성순’을 등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네 이름으로 된 스팸을 또 다시 마주하자니 어떤 방법으로 그게 가능했던 것인지 나는 참으로 가늠할 길 없도다. 이렇게 질긴 스패머는 ‘박갑생’ 이후로 처음이로다.
가련하도다, 생이여, 밥먹고 살기여. 오늘도 몇 통인가의, 더 이상 스팸을 보내면 죽여버리겠다는 협박성 메일을 받고 욕설이 담긴 전화를 받고 일과 내내 보낸 스팸의 리포트를 정리하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느라 시계를 바라보는 네 누추한 어깨를 떠올려 본다. 그것은 본디 예술가의 고뇌와 깊이는 다를지언정, 무게만은 같더라. 사는게 어디 가벼운 일이겠느냐. 나도 오늘은 긴, 긴, 아주 누추하도록 긴 하루를 보냈다.
너, 이성순이여. 이성순인지 이상순인지, 아니면 스팸 머신에 넣을 이름을 떠올리다 질리도록 이가 갈리는 옛추억의 그 여자 이름인지를 떠올려 무심결에 입력한 것인지, 박갑생과 마찬가지로 도저히 의미를 추측할 길 없는 무작위 조어인지는 몰라도 나는 너를 인정하겠노라. 낙오된 길가에 배가 곯고 먼 산을 바라보다가 길 끝에서 가물거리며 누군가 나타나면, 그가 강도라도 반갑지 아니 하겠는가.
이성순이여. 오늘도 잘 살아내었다. 내일도 부디 내 블로그에 와서 스팸을 달아주시라. 그리하여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