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지금도 드문드문 지훈이형을 기억하는 건 우리 둘의 사이가 긴밀했기 때문은 아니다. 아마도 5년 이상, 우리는 소식 한 번 전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너무 그 사람이 그리워져서 이런 글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냥 나는 가끔 그가 트럭의 짐칸에 앉아서 발악하며 부르던 자두의 ‘대화가 필요해’를 떠올린다. 그리고 나서 지훈이형이 떠오르는 것이다.
02년도 여름방학, 철학과와 국문과, 그리고 중앙대 몇 명의 친구들은 전남 영광으로 환경현장활동을 떠났다. 환경현장활동이란 타성화되던 농민연대활동(농활, 농촌봉사활동이 아님)의 대안으로, 자본에 의해 파괴되는 환경문제를 통해… 뭐 그런 내용인데, 그 사안적 중요성과 대안적 실천방안의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층 활동세력의 붕괴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하면서 검색해보니 여전히 환경현장활동은 진행중이었다.) 어쨌든.
뭐가 잘 안됐던 환활이었다. 기둥적인 역할을 하던 고학번이 모두 사라진, 그래서 스스로 기둥이 되어야 할 우리들 조차도 제대로 감을 잡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전남 영광의 지역적 특성(핵발전소와 폐기물 매립장 등) 때문에 거기엔 수많은 이권들이 개입하고 있었고, 사실 반대의 깃발을 드높이며 내려갔던 우리들, 아니 나조차도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리라고 믿지는 않았다. 때문에 주된 활동들은 기존 농활의 문제점들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우리는 답답했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어떤 이유로 답답한지 알 수 없었다. 어두워지는 저녁 여덟시만 되면 씻고, 밥 먹고, 불끄고 자려고 준비하는 고단한 농가에 어떻게 우리가 비집고 들어가 그들을 깨워서 핵발전소, 폐기물 매립장의 부당함에 대해서 강의할 수가 있겠는가.
어차피 지역농민들과 말 한마디라도 붙이려면 무임금의 노동력을 제공해야만 했다. 물론 그건 절대 고까운 일이 아니었다. 가보면 안다, 농촌에 가보면… 저문 강에 삽을 씻는다는, 정희성 시인의 그 시가 뭘 의미하는지, 법 보다 무서운건 밥이라는걸, 새끼들 입에 밥풀 하나라도 더 넣어주려면 새벽같이 일어나 논으로, 밭으로 떠나야 한다는 걸 깨닫게 된다. 농촌의 경쟁력 강화, 뭐 이런 소리는 씨알도 안먹힌다. 대체 육칠십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 밖에 남지 않은 그 곳에 강화할 경쟁력이 어디 있겠는가. 그저 묵묵히 수박을 수확하고, 담배밭에서, 고추밭에서 묵묵히 일을 거드는 것 외에는…
아무튼 그런 날들이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젊은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상황버섯을 재배중이라던데, 자기 일 좀 도와달라고 은근슬쩍 말을 건내는데, 당신보다 훨씬 나이 드신 어른들 밭도 지금 사람이 부족해서 도와드리지 못하는데, 생존이 아닌 치부를 위한 일에 손을 빌려 줄 수는 없다고 말하려는데, 또 우리는 가슴이 작아져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나올까 싶어, 그럼 오전만 도와드릴께요, 하고 인력시장에서 팔리는 사람들처럼 트럭에 짐처럼 실려 어딘가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지훈이형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다가 그 노래를 불렀다. 대화가 필요해, 우린 대화가 부족해, 할 말 있으면 터 놓고 말해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