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way

술을 조금만 먹었더니 잠이 잘 안와서, 만다린을 또 뜯고 땅콩 안주에 머그컵에다 담뿍 붓고 sideway를 본다.
마일즈에게 여러명이 투사되었지만,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듯 마지막은 내 얘기인 것 같았다. 이야기가 많았던, 61년산 셰빌 블랑크를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함께 몰래 마시는 장면은 임팩트가 너무 적었고 오히려 시간이 지난 어느 날, 마야에게 온 음성 메시지가 내겐 더 간절했다.

“정말 이 모든 일을 겪은거에요? 진짜 힘들었겠네요…”

물론 진짜 힘들었지. 어쩐지 그 말이 내겐 위로가 된다.
조금만 더 살자.

그냥

그냥 술을 조금 마신다.
그냥 담배를 조금 피우다가
그냥 땅콩을 조금 까먹고
그냥 모니터 멍하니 바라보다
그냥 자겠지.

어느 누구만 죽는다는 것은 불공평하지만,
모두가 다 죽는 다는 것은 의외로 공평하다. 그냥
지구를 단번에 파괴할 수 있는 미사일의 발사버튼을 누르는
악당의 마음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냥
어떤 날은 기분이 좋고 그냥
어떤 날은 까닭없이 눈물 나는거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다.

피할 수 없다면
차라리 철저히 속아주는거
까짓꺼 희망, 삶, 사랑, 우정
뭐 이런거
속지 뭐.
속아주지.

뭐.

학과서버..

작년엔 그냥 쉬엄쉬엄 하다가, 올 초부터 학과 웹서버 관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갖은 정전과 단 한번도 업데이트 하지 않은 울트라 구버젼 레드햇 6.2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99년부터 올 해 4월까지 묵묵히 제 몫을 하던 서버였다. 불쌍하게도 놈은 이름도 없다.
정식으로 관리자 일을 시작하면서 서버가 하드웨어적으로 노후되어있으니 새로운 서버를 구입해야 할 시기가 왔다고 과사무실과 학과장님을 열심히 설득했으나, 다들 다른 일에 바쁘고 돈들어가는 일이라서 그런지 쉽사리 오케이 싸인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던 중… 한달 전부터 학과 홈페이지가 접속되질 않는 것이다. 종종 서버가 있는 과사무실 건물이 정전되는 일이 잦았기에 그런가부다, 얼마 안 있으면 다시 열리겠지 탱자탱자 하고 있다가 그게 한 주가 되고 한 달이 되고 말았다. 나도 일이 있으니 쉽사리 학교까지 가기도 쉽지 않았.. 다는 핑계로 그냥 그렇게 지켜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엊그제 다른 일로 과사무실에 걸어서 통화하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서버가 어떻게 된거냐고 물어봤더니, 얼마 전 정전된 이후로 완전히 시스템이 죽어버렸단다. 난 속으로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하드웨어야 버려도 누가 가져갈지 모를 정도로 구형이기 때문에 시스템이 죽어버렸다는 것에 대해서 별로 마음이 쓰이지 않았으나 (하면서도 결국은 내가 그 죽어버린 구형 시스템을 가져왔다. 취미생활)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데이터였다. 근 6년간 학생이며 교수님, 동문들이 소중히 적어 온 게시물들이 날아가버리면 그야말로 초유의 비상사태가 될 것이었다. 일단 맘 속으로 최악의 상황이 아니길 빌면서, 조교형에게 어떻게 할꺼냐고 물어봤더니 학과장님이 드디어 새로운 시스템을 위한 예산을 허가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내일 (지금 시각으로는 어제) 용산에 갈 수 있으면 같이 가자는 말을 꺼냈다.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서 빵빵한 새 시스템을 장만했다. 조교형과 함께 서버에 이름도 지어줬는데, 희랍어로 지혜를 의미하는 소피아(sophia)로 낙찰. 다행스럽게도 예전 서버에 달려 있던 하드의 데이터는 무사했다. 쿵짝쿵짝 백업을 하고 원격지에서 작업이 가능하도록만 설정해놓고 편안하게 집에서 서버를 만지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다시 원상태로 홈페이지를 복원해 놓는 것도 일이다. 애초에 학과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었던 형이 파일기반의 데이터베이스를 사용하는 게시판을 사용해서, 수년간 쌓인 게시물의 용량만해도 200메가가 넘었다. 하드웨어가 넉넉하니 일단은 그럭저럭 사용한다고 해도, 시간이 흐르면서 데이터는 그만큼 더 늘어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업도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다시 새로운 홈페이지를 만들자니 기존 게시물들을 연동할 수 없는게 아쉽다. 이래저래 딜레마에 빠져버렸다. 현재 실현 가능성이 높은 대안은, 새로운 홈페이지에 기존 게시판을 읽기 전용으로 연동하는 것이다. 이건 일단 과사무실과 상의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