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글은 전혀 다른 제목으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쓰다가 만 글인데, 다시 수정해서 올리려다가 왠지 기분이 묘해서 다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있다.
제목은 ‘아주 즐거운 상상’이었다. 야한 얘기는 안나온다. 요새 곧잘 혼잣말을 한다. 대개는 ‘아 씨발 이거 왜 이래’, ‘대체 뭐가 문제야’, ‘졸라!’ 등등이다. 그러다 정말 대개는 ‘역시’, ‘난 졸라 천재야’, ‘뭐 이런게 다 있어’ 등등으로 끝난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충돌, 수습. 뭐 그런거. 그런데 아주 예전엔 친구들하고 있을때나 욕을 섞어가며 얘길 했지, 퍼블릭 도메인에선 의식적으로 욕이 안나오도록 조심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후천성욕안하면입안에철조망돋힘증후군 같은거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거나, 그렇게 생각이 된다거나, 역시 넌 그랬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하곤 상관없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다. 아, 그러니까 요즘엔 안그런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다. 요즘엔,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물론 부모님을 향해서 하는건 아니고, 그냥 감탄사 대신에 욕이 나오는 정도다. 입 밖으로 욕이 튀어 나가면, 나도 깜짝 놀라고 (내색은 안하시지만) 부모님도 놀라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을 벗어나 신인류로 변태하는 중이라서, 가급적이면 집안 누구도 나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건드리면 설금설금 돋던 날개가 떨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욕을 한다고 개만도 못한 놈이라거나 후레쉬자식이라던가 졸라 미친새끼라던가 하고 생각해도, 뭐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왜 무거운 상상이냐, 혹은 희망일까, 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작년인가에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 라는 아이슬란드 4인조 롹그룹을 알게 되었다. 한때, 잠깐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야금야금 녹아버렸다. 물론 그 뒤로 에릭 크립튼 다시 듣기 프로젝트라던가, 자나깨나 재즈사랑 깨진파일 다시보자 운동 등으로 간신히 정상생활로 복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깜빡깜빡 생김새도 잊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 그 희미한 기억처럼 묵묵하게 하드 속에 쟁여뒀던 그들이, 한창 뜨거운 여름이 발악해볼까 준비운동하는 지난 칠월 중순경 느닷없이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한겨레에 눈을 팔고 있던 내 귓가를 울려버렸다. 사실 운건 내 마음이었다. 마음이 울자 귀가 따라 운 것 뿐이다. 그러니까 머리카락군이 귀야 왜 울어, 같이 울까? 하고 위로해주는 바람에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눈도, 그만 울어버렸다. 뜨거운 여름에. 버스 정류장에서. 미쳐 버스가 당도하기도 전에. 아스팔트가 미쳐,
녹아버리기도 전에,
말이다.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의 리뷰를 읽은 것 같다. 그들은 완전한 異세계의 롹커들이다. 톨킨이 지구를 잠시 떠나서 집필활동에 전념할 때에, 그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현실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종족의 언어까지 만들어낸다. 인터넷에선 이 언어로 쓰고 읽는 연습을 위한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시규어 로스는 그들의 음악을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기묘한 이 언어는, 희안하게도 전세계, 민족, 국경, 언어, 경제력, 피부색, 성별, 나이, 장애, 신분, 계급, 식습관, 성적취향, 욕의 구사능력을 떠나서 공평하게 같은 메세지로 이해된다. 그 메세지를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거니와, 소개하려면 나도 그 언어를 배워야겠는데, 아무래도 그 언어는 말만 있고 문자기호는 없는, 칠백만년전에 인간이 아직 졸라 미개할 때 인간의 형제를 자처하여 지상에 강림했다는 라엘리안들이 사용했던 언어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언어를 ‘희망어’라고 부른다, 라는 대목이 갑자기 버스 정류장에서 떠올랐다. 희망어. 희망어. 이 무수한 족쇄들아. 나를 단단히 감아다오.
희망어로 부르는 롹은, 그러나 깊푸른 심연의 색이다. 철저하게 정리되고 검증하고 반드시 희망이어야 할 것, 들로만 이뤄진 인공의 냄새가 난다. 아니, 어쩌면 그건 희망어가 아니라 일상어인지도 모른다. 공기만큼 가볍고 투명한 언어가 일만미터 심해에서 억만겁을 살아내야 하는 괴어처럼 경쾌하면서도 무겁게 흔들리다니.
희망이 무거워, 너무 무거워. 내겐 가벼움이 너무 무거워. 무거움은 너무 가볍지. 너흰 이걸 이해 할 수 있니? 왜 아침 산에 놀러 온 구름이 소스라치게 하늘로 돌아가는지, 상상 할 수 있니? 어떻게 사십오억년동안 파도가 해안으로만 밀려왔는지, 감당할 수 있니? 아주 작은건, 아주 작은 걸로 끝나지. 넓게 봐. 인간을 전체로 봐. 나는 이제 이 말이 들려. 어느 누군가, 가 아닌 인간이 내는 소리가 들려. 인간을 전체로 봐. 어느 누군가가 아냐. 전체야.
다시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입꼬리가 재밌게 흔들렸다. 웃음이 나오려는 징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말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아, 서로 사랑하라.
천구백구십오년.
천구백구십팔년.
이천삼년.
이천오십사년.
삼만 칠천칠십년.
이십오역육천만년.
태양이 지금의 두배로 부풀어 오름.
칠십억년, 쯤.
태양의 지름이 지구와의 거리에 반.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천구의 반을 가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백오십억년.
뻥! 쾅! 우르릉!
거짓말. 거긴 소리가 안나요. 아무 소리도 안나요. 그냥 빛이 번쩍, 하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어요.
엔딩 크레딧 종료.
The END.
갑자기 막이 열리며 감독 등장.
인간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것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톤으로 읽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쪼록 가시는 길 무사히 되밟아 가시길 바랍니다.
출구는 왼쪽입니다.
간혹 오른쪽으로 가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거긴 화장실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오랜 시간동안 끝까지 죽지 않고 버텨준 인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너무 즐거워서, 백오십억년까지 무겁게 둥실둥실 떠오를거같아요.
뭘 이런걸로.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