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살아가기

아주 러프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의사코드(pseudo code)를 작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while(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 {

돈을 번다.

}

while이란 구문은 () 안의 조건식이 참일 경우에만 {}안의 명령을 반복해서 실행한다. 이 경우, ‘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가 거짓이 될 때까지, 즉 ‘나는 이제 그럭저럭 살만해졌다.’가 될 때까지 ‘돈을 번다’는 명령을 실행한다.

내 스스로 보기에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모든게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내내 이렇게 살고 있다. 살만해질때까지 끊임없이 돈을 번다. 그 외에는? 없다.

프로그래밍에서 while은 상당히 주의깊게 사용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구문이다. 왜냐하면 종료조건(괄호 안의 조건식이 거짓이 되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프로그램은 while문 안에서 무한히 명령을 반복실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경우가 예상하지 못하게 발생하는 것을 두고, 프로그램 버그라고 부른다.

위 의사코드는 일견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의 머리에 세뇌된 환상같은 이 선언이 여전히 루프(Loop)를 도는 한 저 코드는 유효한 코드다. 우리는 끊임없이 종료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즉 부유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명령을 반복실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우리집 구성원은 전부가 일을 한다. 부모님은 십수년 넘게 자의에 의해서 손에 일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몇 번 타의에 의해 일을 쉰 적이 있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을 한다. 동생도 이래저래 쓰는 돈이 많긴 해도, 제대 후 한번도 아르바이트를 안한 적이 없다. 나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밤을 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가족의 종료조건은 먼 것 같다. 나는 이게 잘 이해가 안된다. 우리 아버지는 근 삼십년간 이런저런 일을 하셨는데, 삼십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모아 놓은 재산은 마이너스다. 어머니의 재산도, 동생이나 내 재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 환상대로 열심히 일했다. 죽을만큼 일했고 사치도 안했다. 때마다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강남의 어떤 가족 얘기를 듣는다. 우리 가족은 이십칠년동안, 내가 열일곱살이었던가 했던 해 단 한번 강릉으로 1박 2일 피서를 갔었다.
왜 우리 가족은 부유해지지 않는 것일까? 부유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돈때문에 걱정하고 살아야 하지는 않아야 할 때가 되야하는건 아닐까? 여전히 압류한다 어쩐다 나불나불 최후 통첩같은 엽서가 배달된다.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걸까? 그러면 나아질까?

우리에겐 보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한 열번쯤 명령을 반복 실행해도 구문이 종료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구문을 종료시켜야 한다. 돈이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정부가 대신 갚을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무이자 오십년상환, 정도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보조해라.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만 있어도, 이런 일은 가능해진다. 대기업한테 좀 더,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세금을 걷어라. 그러면 while은 돌 필요도 없다.

이상, 폭우를 뚫고 새벽에 차례차례 일 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때문에 몇 자 적었다. 아.. 썅, 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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