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또 여름을 잘 버텨내고 있는지. 서울에서 몇 자 적는다.
말도 없이 네가 사라진 때부터 벌써 몇 해가 지났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고, 반쯤은 그럴듯한 변명이라고 자위하면서 안부를 까맣게 잊고 있다가 어제 명식이하고 소주 한 잔 하면서 갑자기 네 이야기가 튀어나와 조금 어색했다. 명식이 녀석도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있었던 것 같더라. 네 이름 넉자가 튀어나오니까 안절부절 못하더니 급기야는 서럽게 울기도 했고. 나는 우리 셋이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한참을 옆에서 담배를 피워댔지. 그래도 명식이 착한거 알잖아. 끝내 네 원망 한마디 않고, 마지막에는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씩씩하게 소주 두 병을 싹싹 비워냈다.
아, 그러고 보니 좋은 소식. 명식이가 많이 좋아져서 지금은 한달에 한 번 통원치료를 받아도 생활에 지장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물론 옆에서 순애가 고생 많이 했지. 그래도 가장 큰 건 명식이 자식이 갖고 있는 자기 자신에 대한 무한한 신뢰 덕택이 아니었나 싶다. 너도 알지? 그 녀석 고래 심줄같이 굵은 정신을 갖고 있는거. 대신 외부세계에 대해서는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무방비상태이긴 하지만. 물론 우리가 셋이었을 때 네가 명식이에게 들려줬던 많은 이야기도 녀석에게 도움이 되었을꺼라고 믿는다.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고 사귀던 아가씨는 다시 고이 접어 원래 있던 장소에 잘 되돌려 주었다. 올 해 늦가을 쯤 명식이하고 순애는 드디어 결혼하게 될 것 같고, 경준이형은 여전히 재판중이고… 다들 죽어도 이 악물고 다시 살아내고 있다.
아무튼 명식이하고 그러고 난 다음에 널 다시 만나게 되는 상상을 몇 번 했는데 잘 되질 않아서 그냥 그러고 있는 중. 네놈은 여전히 미친놈처럼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겠지. 그렇게 바라던 생명같은 연애는 성공했는지, 술밤에 달 한 잔 하는건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싱숭생숭해지는 늦은 밤.
자, 나는 내일 또 아침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할 몸.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편지 적고 봉투에 넣어 우체통에 넣고, 제발 이 편지가 수취인불명으로 되돌아오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