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초가 되어 집에 들어왔다. 덜컥 겁이 난다. 그냥 내가 원했던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놈팽이가 되는 것이었다. 오늘 하루도 일용할 수돗물과 비둘기와 나눠 먹는 빵 한조각으로 즐거이 지나가고, 저녁엔 골백번도 더 읽은, 귀퉁이가 달아서 뭉그러진 어느 소설책을 집어 들고 내키는 페이지부터 읽다가 잠이 드는 그런 삶. 서걱서걱 생활에 잘려 나가는 뭉텅이의 머리카락을 지켜보며, 그래도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내일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해야한다. 아무리 해도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삶, 묻어가는 나날들. 물이끼는 물가에 핀다지만, 나는 어디에 피어야 하는걸까.
내게 있는 부정형의 어떤 것들, 을 고형의 틀에 넣어 단단하게 굳힌 다음 백만년의 박물관에 넣어 전시하는 것이다. 일천구백칠십구년산 놈팽이. 곰팡이의 일종이며, 때가 되면 자연히 사라짐. 세계적 희귀생물. 이런 명패를 달고 사람들로부터 서서히 잊혀지는 것. 모든 멸종위기의 생물이 그렇듯이 나에게도 어느 정도 매니악한 팬들이 있다. 곧 다가올 IPV6 시대에 상상하기도 힘든 숫자의 인터넷 주소들 가운데 두서너개 정도는 내 몫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화석화된 희망 같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연 집단인가 개인인가. 왜 아프리카 사람들의 피부색은 검은가. 나는 왜 나인가. 라는 질문이 수도 없이 제기된다. 관람객들에 의해서.
아님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