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다는걸 잘 상상할 수 없는 동기가 갑자기 전화해서 결혼한다고 하고, 아는 선배가 낸 책이 오늘 인터넷 서점에 걸렸다고 하고.
나는 블로그에 들어와서 스팸 트랙백을 지우고 그 소식을 전한다.
남에게 솔직하기란 무척 쉽다. 무관심하면 되니까. 자기 자신에게 솔직하기는 그래서 훨씬 더 어렵다. 특히 나는 내 자신에게 무관심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과거가 시시 때때로 유령처럼 되살아나서 조소한다. 별 볼 일 없는 사내라고 고백하기도 전에 이미 내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는걸 깨닫는 순간, 나는 까무러칠만큼 지쳐버린다. 그래서 사랑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기 긍정이 애초부터 불가능한 자가 어떻게 타인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단 한번도 진실을 말해 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나는 지극히 얍삽한 인간이다. 순서를 정해본다면 내가 가장 증오하는 것은 자신이다. 이 비열한 토막들의 악취는 어디에서 근거하는 것일까. 나는 대체 어디에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오랫동안 아무도 들춰보지 않아 썪은 내를 풍기는 이 두엄더미를 뒤엎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에 시달린다. 삶은 너무 길다. 아무도 날 구원해주지 못할꺼라는 불길한 상상이 나를 휘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