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인지 뭔지…

무채색에서 유채색으로 바뀌는건 봄에서 여름으로의 그것보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그것이 더 강렬한 것 같다. 일찌기 괴테는 그의 ‘이탈리아 기행’에서 어두운 독일을 떠나 이탈리아로 접어들때의 환희를 – 기억이 맞다면 – 어느 순간 사방이 ‘밝아졌다’는 짧지만 매우 공감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줄여 표현했었다. 겨울에서 봄으로의 전환도 그렇다. 낮이 길어지고, 사방이 갑자기 밝아져서 눈이 부시다. 꽃들과 여자들의 옷차림이.

그렇지만, 나는 봄이 가장 견디기 힘들다. 폭발하는 생명의 소란스러움은 수류탄 파편처럼 맹목적으로 내 나약함을 파고든다. 감당하기 힘든 그 공격에 날마다 초주검으로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아침이 되면 뿌연 창문 밖엔 또 어떤 무시무시한 전쟁이 벌어지고 있을지 걱정이 앞서 맥손을 놓기 일쑤였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고 움직이는 것은 소란스럽다. 봄만 되면 모든게 귓가에서 앵알대는 파리의 날갯짓 같이 성가시고 괴롭다.

봄이란다. 매년 힘내서 피워내는 옆 빌라의 목련이 올 해에도 굳세게 만개했다. 딱딱하게 굳은 감각들도 조금은 풀어진 모양으로 봄이 봄인지 뭔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 왔다가, 그리고 갈 것이다. 그러나 고통은 왔던 길로 되돌아 나간다. 이 문장에 담긴 비의를 체득하게 될 때까지 또 얼마나 많은 봄을 견뎌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나 다행스러운 것은 조금씩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왔다가 갈 것이다, 라고 주문을 외우는 것처럼 멍한 내 시선 바깥에서 봄은 왔다가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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