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J를 만났다. 이 바닥의 교류가 언제나 그렇듯이, 그 사람은 어떤 생김일 것이다, 하는 추측은 완전히 빗나간다. (이자벨 아자니급의 사기성 외모) 분명 나보다 연상인데, 맥주 마시면서 나는 언젠가 이런 일이 한번 있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과거에 꾼 꿈 같기도 했다. 언젠가 누구에게서 당신은 참 편한 사람입니다, 라는 이야길 들은 이후로 사람을 만나면 강박처럼 편하게 대해줘야 한다는게 있었는데 오히려 내가 너무 편하게 있었다. (기쁘고 즐거운 종로의 저녁!)
그리고 우리는 비가 내리기 시작한 거리의 비둘기처럼, 시간에 화들짝 놀라 서로의 집으로 흩어졌고 집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내게 계속 기대오는 어떤 젊은 처자의 머리를 옆으로 밀어내(는 시늉을 하)며 나도 살폿 잠이 들었다.
사실은 이 기쁘고 즐겁다가도 열두시가 되면 유리구두 하나 던져놓고 도망쳐야 하는 신데렐라의 운명, 그와 유사한 나른한 피로감을 그대로 이어 침대로 다이빙까지 가려고 했으나, 버스 안에서 잠깐 든 잠때문에 내려야 할 정류장에서 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오늘 밤은 어째야 하나, 이러고 있었던 것이다.
내일은 하늘이 두쪽나도 가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일찍 자긴 자야할텐데, 고민하다가 마침 출출해진 배 때문에 마침 길 가 24시간 기사식당에 닭곰탕이 삼천원이라고 해서 나도 모르게 문을 드르륵 열고 테이블에 앉았다.
절대 소주를 함께 시키려던건 아니었는데, 손님도 하나 없는 해장국집이 24시간 연중무휴로 오픈한다는 말이 너무 서글퍼서 어쩔 수가 없었다. 파리도 날아가다 잠들만큼 지루한 식당 안에서 아저씨는 반쯤 누은 자세로 웃찾사를 본다. 나는 그의 시선을 따라 브라운관에 어느 지점을 응시하다가 벌컥 소주 한 잔 마시고, 해장국을 뜨고.
꾸역꾸역 곡식을 채우고 나는 소주에 내 이름을 쓴다. 방년 스물 여덟, 만으로는 그보다 하나 아래. 무직에 백수에… 터져 나오는 배와 찌를듯이 솟구치는 과민증. 영화를 보면 항상 내가 한 일이 아닌데, 계속 조제와 헤어진 쓰네오처럼 그녀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궁금했다. 조제가 잘 지내고 있을까? 요즘도 혼자 그렇게 생선을 구워서 먹고 있을까? 혹시 또 옆집 변태아저씨의 이상한 요구를 들어주면서 지내지는 않을까? 정말 쓰네오와는 그 이후로 다시는 만나지 않았을까? 가 떠올라 한참을 (속으로) 울펐다.
잘 잘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하루도 무사했다. 그리고 즐거웠다. 나는 눈물도 기쁘고 슬픔도 즐겁다.
종로에서 논건 정말, 10년만이었어요. 여전히 사람들이 많고, 약간의 호객. 뜻밖에 ‘편안해서’ 저의 추측도 좀 빗나갔답니다.^^ 오늘은 작은 J가 돌아와서 다시 마음이 바쁘네요. 혼자 마신 소주… 조제, 츠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