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오자마자 나는 멜렁멜렁해진다. 멜렁멜렁은 말랑말랑과는 비슷하지만, 완전히 같은 뜻은 아니다. 오히려 벌렁벌렁이 더 가깝다면 가까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벌렁벌렁한 말랑말랑 정도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다시,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나는 벌렁벌렁 말랑말랑해진다. 엄마랑 장난을 조금 치고,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감식초 한 잔을 만들어 컴퓨터를 켠다. 엄마는 회사에서 그렇게 컴퓨터를 만져놓고 집에 와서 또 컴퓨터를 켜고 싶냐며 핀잔하지만, … … … 그러게나 말이다. 사실 그다지 켜고 싶은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멜렁멜렁하기 때문에 그런가부다 하고 생각한다. 윈앰프에서 티카티카하고 산울림이 노래를 부른다. 발바닥은 슬근슬근 간지럽다. 동생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복작복작하고 검은 비닐봉지에 쌓인 옷을 찾는다.
오늘은 하루종일 쌜쭉쌜쭉. (그러니까 집에 오기 전까지) 바깥 날씨는 아직까지도 여름에 맞춰진 내 대뇌신경계가 깜짝 놀랄만큼 쌀쌀했지만, 내부는 아직도 뜨어거운 여름이어어어었다. 저녁에는 감자탕에 동동주를 마셨고, 직원들과 남 흉을 봤다. 그런데 그 ‘남’이라고 하는 것은 우리 가운데 아무와도 인연이 없는 아주 먼 과거의 어떤 사람이었다.
나는 요즘 사람의 꿈들을 한데 모아서 동전으로 바꿔주는 일을 한다. 나는 이 일이 썩 맘에 든다.
내 꿈도 좀 동전으로 바꿔줘… 한 트럭으로…
내가 먹고 사는게 네 꿈일까봐 두렵다. 나는 언제까지 네 꿈으로 안심하며 살아야 하는걸까. 나는 왜 이렇게 용기가 없을까…
주헌아. 유부녀를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 안하면 허영맞지?
글쎄요. 생각해보니 그럴듯도 한데요… 그런데 그런 허영이라도 있어야 살지요. 난 좀 꼭꼭 묻어둔 사랑같은거 있음 좋겠더라. 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