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시대 온라인

하드를 포맷하고 윈도우를 다시 깐 바람에, 이전에 종종 기분전환용으로 즐기던 게임들과 완전히 바이바이 해버리고 말았다. 길드워는 누군가의 말처럼 유료화 되자마자 길드워는 어떻게 먹으면 맛난 음식인데?가 되어버렸고, 워록은 곰곰히 생각해보니 너무 잔인해서 하기가 싫어졌고, 잠시 좌백과 진산 부부가 공동으로 개발에 참여했다는 가십때문에 시작했던 구룡쟁패도 일주일만에 초단순반복형 레벨링이 지겨워서 그만두었다. 그래서 별로 미련도 없고 미련하게 다시 게임들을 다운받아 인스톨하는 것도 귀찮아서 죠이스틱을 사서 동생이랑 비행기 슈팅게임이나 하고 그랬다.
lunamoth님의 대항해시대 온라인에 관한 글을 보다가, 그럼 이거나, 하는 심정으로 클로즈드 베타테스터에 신청해서 이틀 전인가 당첨(?)이 되었고 클라이언트를 다운받아 잠시 플레이해본다.
이제 뭔들 ‘억!’ 한게 없다. 육개월 전이었으면 아마 식음을 전폐하고 달려들었을텐데, 지금은 모든게 시들하다. 차라리 멍하니 음악 들으며 가을로 깊어지는 맑은 공기를 감상하는게 오히려 더 즐겁다. 어쨌든.

롤플레잉 게임이란게, role playing game이다. 역할극 놀이. 게임 내에서 나는 현실에서의 내가 아닌 창조된 새로운 인격을 가지고 살아가 보는 것이다. 시금털털한, 대한민국 이십대 후반의 청년으로 살아내야 하는 무거운 짐을 벗고 다른 ‘내’가 되어본다.
어떨까? 즐겁지 않나? 나는 그래서 빈약한 진실을 더 사랑하게 된다. 결국 사람든 돌아와야 할 곳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

세계, 라는 지평의 확대. 16세기 초 대양항해기술의 발달. 성공, 부와 명예. 확장, 정복. 편가르기. 발견하면 그야말로 모두 내것이 되던 시절. 그러나 발견당하는 자의 입장에서는 재앙의 시작이었던, 또 그런 시절.

리스본 뒷골목에서 태어난 kirrie. 태어난 직후 부모에게 버려져, 당시 리스본의 실력자였던 바스톨로뮤가 지원하는 성당 직할의 고아원에 맡겨진다.
매사에 무기력하고 항상 희미한 예감의 냄새를 따라 불투명한 스테인드 글라스 저 편, 푸른 바다만을 그리워하는 나날이 계속되다가, 그녀 나이 십칠세에 고아원을 탈출하여 무작정 어딘가로 떠나는 배에 밀항한다.

… 그리고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

십년 후. 그녀는 리스본에, 왼쪽 눈가에 생긴 긴 흉터 그리고 얼마의 돈과 함께 돌아온다.

“십년.”

십년. 입밖에 내어 보지 않으면 그녀 자신이 세월을 실감할 수 없을 것 같아 내뱉은, 짧막한 첫마디. 부둣가의 소음 사이로 곧, 십년은 묻혀버렸다.

사실 ‘그녀에게 수많은 일이 일어났다.’는 굉장히 불쾌한 묘사다. 조금이라도 그녀의, 폭풍우 뒤 많은 모래가 쓸려간 해변에 삐죽히 드러난 난파선 조각같은 지난 십년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아니, 이 부둣가에서 그녀가 산 럼주를 단 한잔이라도 마셔 본 뱃사람이라면 한달이나 두달쯤 계속해서 토해내도 다 토해내지 못할 만큼 방대한 그 이야기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찬찬히 듣고 기억하며 가슴 아파해야 한다. 우선은, 그 흉터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야 할까? 어디서 돈을 벌었는지에 대해서? 그녀를 거쳐간, 혹은 그녀가 거쳐간 사람들에 대해서?

그러나 우린 아무 얘기도 들을 수 없다. 그녀는 항상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처럼 심각한 얼굴로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을 것처럼 웅크려 있거나 주점에서 매우 취해 남자들 사이를 오가며 분주하게 시시컬컬한 농을 주워섬기고 있을 뿐이다. 그녀는 결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 법이 없다.

많은 돈과는 거리가 멀어 이 부두의 누구나 조금씩 손대본 밀교역도 하지 않고 (사실은 재주가 없어 항상 손해를 본다.), 그저 가끔 주점을 찾는 의뢰인들로부터 들어오는 해역의 조사나 소문의 진상을 파해치는 일로 생계를 꾸려간다. 제법 일처리가 꼼꼼해서 단골로 그녀를 찾는 의뢰인도 몇몇 생겼다.

그녀의 꿈은 육지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무인도를 발견하는 것과 고아원에서 헤어진 동생 세나를 찾는 것이다. 결국 그녀는 동생과 함께, 고원과 같은 무인도에서 살아가려는 것 같다.

몇몇 남자와 가까운 사이가 되기도 했지만, 누구와도 마음을 나눌 만큼 가까워지진 않았다.

자주 하는 말은 ‘너나 잘하세요.’다.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에 대해

동물원은 어떻습니까? 동물원 좋아하십니까? 전 그다지 동물원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이 기사를 읽으면서 동물원이 참혹하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평생을, 그나마 몸집이 큰 동물들에게는 몇백평에서부터, 작은 동물들은 몇십평, 몇 평 밖에 되지 않는 우리 안에 갖혀 지내야 하는거에요. 완전 미쳐버리는거죠. 그래서 요즘엔 동물들도 정신병을 앓는답니다.

좀 뜬금없긴 해도, 사소한 이유들로 반평생을 손바닥만한 방에서 수형해야 하는 사람들은 어떤가요? 뭐라구요? 적어도 우린 그네들을 구경하러 다니진 않는다구요? 하하하. 하하. 하… ㅎ..ㅏ……

[#M_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more.. |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less.. |

Captive dolphins sent to Italy

WDCS is concerned about the development of a new dolphinarium near Rome in Italy by the company Zoomarine, which is already involved in the display of dolphins in Portugal and Malta.

The number of captive facilities displaying dolphins continues to expand in Europe. Yet more people are realising that it is cruel to keep dolphins in captivity and there is a growing recognition that the dolphin captivity industry is having a negative impact on the welfare of the individual dolphins involved and on the conservation of the animals in the wild.

Whales and dolphins continue to be captured from the wild to supply the growing demands of the captivity industry and to replace animals dying prematurely in these artificial environments. Scientific evidence indicates that whales and dolphins suffer extreme mental and physical stress in captivity. This is revealed in aggression between themselves and towards humans, boredom, and a lower life expectancy and higher infant mortality than in the wild. WDCS believes it is impossible to accommodate the mental, physical and social needs of whales and dolphins in captivity and that it is cruel to confine them.

We have just learned that Zoomarine has imported bottlenose dolphins for display at its new facility in Pomezia near Rome. Italy has specific legislation relating to the holding of bottlenose dolphins in captivity, including conditions relating to education and research. We believe that any dolphins imported for this facility will not be held for the purpose of education and research, but primarily for commercial gain. We are working with the Italian organisation Animalisti Italiani to persuade the Italian authorities not to allow further dolphin trade and display in Italy.

Please help us stop the continued expansion of the dolphinarium industry in Europe. To send a campaign e-card to the Italian authorities, click here.

Source: WDCS

사육되는 돌고래들, 이탈리아로 보내지다.

WDCS는 Zoomarine이라는 기업에 의해서 이탈리아 로마 근처에 새로 개관 준비중인 돌고래 수족관에 대해 우려하고 있습니다. 이미 Zoomarine은 포루투칼과 말타에서도 이러한 수족관을 경영한 적이 있습니다.

유럽에서는 최근 다수의 돌고래 수족관들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사람들이 돌고래를 사육하는 것이 얼마나 잔인한 일인지를 잘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점차로 돌고래 전시 산업(돌고래 수족관)이 자연상태 그대로 동물과 교감하는 것보다 (교육적인) 효과가 없으며, 사육되는 각 돌고래 개체들의 생활에도 부정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에 대한 인식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고래와 돌고래들은, 늘어나는 사육 산업의 수요를 충족시키고 인공적인 환경에서 태어나 미성숙한 상태로 죽어가는 동물들을 대신하기 위해서 야생상태로부터 계속적으로 포획됩니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로 고래와 돌고래들도 사육되는 상태에서 극도의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므로 포획사육 상태가 공격적인 행동이나, 권태감, 짧은 수명, 야생상태에서보다 높은 어린 개체의 사망률등을 유발하게 됩니다. WDCS는 사육상태에서는 절대로 고래와 돌고래들의 정신적, 육체적, 혹은 사회적 요구들을 충족시켜 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가둬놓는 것은 잔인한 행위입니다.

우리는 막 Zoomarine사가 로마 근처 포메지아(Pomezia)에 새로운 돌고래 전시시설을 개관하기 위해 병코돌고래들을 수입했다는 사실을 접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병코돌고래 사육 개체수에 관한 특별한 법률이 있으며, 그것과 관련된 교육과 연구에 관한 법률도 있습니다. (즉, 교육과 연구 목적으로만 특별히 병코돌고래를 제한된 개체수로 사육할 수 있다는 의미인듯 함.) 우리는 관람시설을 위해 수입된 모든 돌고래가 연구와 교육의 목적이 아닌, 단지 상업적인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때문에 우리는 이탈리아의 Animalisti Italiani라는 단체와 연계해 이탈리아 정부로 하여금 돌고래 거래 및 관람을 허용하지 말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유럽에서의 돌고래 수족관 산업의 팽창을 막기 위해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단지, 이탈리아 정부에 e-card를 보내는 것만으로 캠페인에 참여 할 수 있습니다. 여기를 눌러 참여해주세요.

출처 : WDCS

_M#]

talk to cat

어느 날 밤늦게 담배를 사러 간다. 길을 걷다 모퉁이,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다. 고된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까치발로 살금살금 돌아가려는데, 그만 슬리퍼가 아스팔트에 길게 끌리는 바람에 고양이가 흘끔 나를 돌아본다.

“저, 나는 그냥 담배사러 가는 길이니까 그냥 계속 먹어도 돼. 장난치지 않을게.”

고양이는 내 말의 진위를 따져보려는 듯이 날 한참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식사에 열중한다. 가끔 딱딱한 뼈다귀라도 씹는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아간다.

“모든 사람이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으련만.”

“뭐라고?”

고양이가 말을 했다.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말한거야?”

“그럼 여기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분명히 니코틴 금단현상일꺼야. 빨리 담배를 사러 가야지…”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후다닥 슈퍼로 뛰어가 디스플러스를 샀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요즘 너무 무리하는걸까.”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간다.

“이봐, 놀란거야?”

흠칫.

“뭘 이런걸로 놀라고 그래. 로켓을 쏴서 화성까지 보내는 시댄데, 고양이가 말 좀 한다고 해서 놀라 후다닥 뛰어갈 필요는 없잖아?”

쓰레기 봉투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

“이리 와 봐. 사람은 안잡아먹어.”

나는 홀린듯이 고양이에게로 다가간다.

“담배 산거야? 뭐 샀어? 디스플러스?”

“..으, 응.”

“한 대 줘봐. 식후땡.”

불을 붙여 담배를 건냈다. 저 고양이발로 과연 담배를 집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뭐 어떻게 잘 피우고 있다.

“다음부턴 레종 피워. 그거 한 갑 피우면 우리 고양이들한테 1퍼센트씩 모델료가 떨어지거든.”

“그건 좀 비싼데…”

“시끄럽고, 피우라면 피워. 알겠어?”

“응. -_-;;”

“너 저 위에 화평빌라 다동에 사는 애지? 맨날 밤새도록 불켜놓고 있는.”

“응.”

“애들이 가끔 네 얘기 하더라. 너 언젠가 네 창문가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먹을거 줬다면서?”

“몇 번.”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우리 고양이들도 프라이드란게 있다구. 우린 스스로 구하지 않은 먹이는 먹으면 안돼.”

“그 고양이는 잘 먹던데.”

“그때 걘 임신중이어서 뭐든 질 좋은걸 먹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였고, 아무튼 주지 말라면 주지 마.”

“있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다 찢어놔서 맨날 아줌마들이 골치아파한데.”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꽁꽁 싸매놓은걸 이 손으로 어떻게 풀란 말야. 인간들은 참 웃기다. 어차피 버릴꺼, 뭘 그렇게 매듭을 지어 놓는거야? 버리는건 편하게 버리라구. 거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건 다 먹어치울테니까, 나머진 새벽에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가져가겠지.”

“사람들은 그걸 예의라고 생각해. 쓰레기봉투를 꽉 매듭지어 놓는거.”

“정말 예의를 지켜야 할때나 지키라고 해. 나는 인간들이 쓰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이 골목 고양이 대장은 오래 살아서 그런지 신문인가 하는걸 읽더라구. 대장이 그러는데, 니들은 정말 필요할 때엔 무신경하고 불필요할때에만 열심이라고 하더군.”

“할 말은 없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게 예의야.”

“너는 이름이 뭐야?”

“고양이는 이름이 없어. 그냥 고양이지.”

“너는 다른 ‘너희’들과 어떻게 네 자신을 구분하니, 그럼?”

“왜 구분을 해?”

“불편하잖아, 그런건… 누굴 불러야 할때도 그렇고.”

“누굴 불러야 하면 그 녀석한테 직접 가서 이야기하면 돼.”

“아무리 그래도…”

“우리 고양이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양이면서 총체적으로도 모두 고양이야. 부분과 전체가 통일되어 있는거지. 우리는 집단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면서, 존중받는 개체들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어디에서나 같아.”

“밤에 자지 않고 있으면 너희들도 꽤 싸우던데…”

“발정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구.”

“발정.”

“그래, 발. 정.”

담배를 다 피워서, 고양이는 꽁초를 땅에 그냥 버리더니 발로 능숙하게 비벼 껐다.

“안뜨거워?”

“뜨거워.”

“대단하시군.”

“뭐, 별로.”

바람이 불자, 나무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다음에 또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

“내가 내키면.”

“있잖아, 언제라도 배가 고프면 내 방 창가로 와서 먹이를 구해가.”

“누가 주는건 안먹는대도.”

“나는 그냥 버릴테니까, 그 뒤는 알아서 하라구.”

“너 이자식, 머리 쓰는거냐?”

당황.

“아니, 난 그냥…”

“심심하면 놀러갈께. 먹이 따윈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괜히 걱정해줄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이제 가.”

“알았어. 잘 지내.”

“너도.”

두서너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더니, 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이 땅에서 살아가기

아주 러프하게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에 대한 의사코드(pseudo code)를 작성해 본다면 다음과 같다.

while(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 {

돈을 번다.

}

while이란 구문은 () 안의 조건식이 참일 경우에만 {}안의 명령을 반복해서 실행한다. 이 경우, ‘나는 살아가기 힘들 정도로 가난하다.’가 거짓이 될 때까지, 즉 ‘나는 이제 그럭저럭 살만해졌다.’가 될 때까지 ‘돈을 번다’는 명령을 실행한다.

내 스스로 보기에도 상당히 직관적이고 심플하면서도, 모든게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내내 이렇게 살고 있다. 살만해질때까지 끊임없이 돈을 번다. 그 외에는? 없다.

프로그래밍에서 while은 상당히 주의깊게 사용해야 하는, 어떤 면에서는 위험한 구문이다. 왜냐하면 종료조건(괄호 안의 조건식이 거짓이 되는 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 프로그램은 while문 안에서 무한히 명령을 반복실행하기 때문이다. 만약 그런 경우가 예상하지 못하게 발생하는 것을 두고, 프로그램 버그라고 부른다.

위 의사코드는 일견 아무런 문제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누구나 열심히 일하면 부자가 될 수 있다.’라는, 자유주의 경쟁체제 속에서 어느 사이엔가 사람들의 머리에 세뇌된 환상같은 이 선언이 여전히 루프(Loop)를 도는 한 저 코드는 유효한 코드다. 우리는 끊임없이 종료조건을 달성하기 위해, 즉 부유해지기 위해서 ‘돈을 번다’는 명령을 반복실행한다. 그러나 이것은 새빨간 거짓이다.

우리집 구성원은 전부가 일을 한다. 부모님은 십수년 넘게 자의에 의해서 손에 일을 놓아 본 적이 없다. (아버지는 몇 번 타의에 의해 일을 쉰 적이 있다.) 그야말로 소처럼 일을 한다. 동생도 이래저래 쓰는 돈이 많긴 해도, 제대 후 한번도 아르바이트를 안한 적이 없다. 나도, 많이 벌진 못하지만 끊임없이 일을 찾아서 밤을 샌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가족의 종료조건은 먼 것 같다. 나는 이게 잘 이해가 안된다. 우리 아버지는 근 삼십년간 이런저런 일을 하셨는데, 삼십년이 지난 지금 아버지가 모아 놓은 재산은 마이너스다. 어머니의 재산도, 동생이나 내 재산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예의 환상대로 열심히 일했다. 죽을만큼 일했고 사치도 안했다. 때마다 가족동반 해외여행을 한다는 강남의 어떤 가족 얘기를 듣는다. 우리 가족은 이십칠년동안, 내가 열일곱살이었던가 했던 해 단 한번 강릉으로 1박 2일 피서를 갔었다.
왜 우리 가족은 부유해지지 않는 것일까? 부유는 그렇다치고, 적어도 돈때문에 걱정하고 살아야 하지는 않아야 할 때가 되야하는건 아닐까? 여전히 압류한다 어쩐다 나불나불 최후 통첩같은 엽서가 배달된다. 우리는 좀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걸까? 그러면 나아질까?

우리에겐 보다 강력한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 한 열번쯤 명령을 반복 실행해도 구문이 종료되지 않으면, 강제로라도 구문을 종료시켜야 한다. 돈이 없어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을 해도 빚을 갚을 수 없다면 정부가 대신 갚을 돈을 빌려주어야 한다. 무이자 오십년상환, 정도로. 도저히 일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정부가 생활비를 (현실적으로) 보조해라.
국내 총생산의 1퍼센트만 있어도, 이런 일은 가능해진다. 대기업한테 좀 더, 아니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세금을 걷어라. 그러면 while은 돌 필요도 없다.

이상, 폭우를 뚫고 새벽에 차례차례 일 하러 나가시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보면서 갑자기 치밀어오르는 화때문에 몇 자 적었다. 아.. 썅, 화나라.

인터넷 뱅킹과 보안

워낙 게으른 탓에 뭐든 움직이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처음에 조금 성가시더라도 일단 그러한 시스템을 꾸며놓는게 내 성미에 맞다. 종종 인터넷에서 물건을 살 때 신용카드가 없어서 무통장입금으로 결제를 해놓고 은행까지 가서 계좌이체를 하는 것이 너무나 귀찮아, 인터넷 뱅킹을 신청한지도 벌써 수년 전 일이다. 이제는 인터넷 뱅킹으로 계좌이체를 하는 것조차 귀찮아서 체크카드를 신청해 사용하고 있다.
은행도 늘어가는 창구 관리비용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서 인터넷 뱅킹이나 ATM을 이용한 은행거래에는 인센티브를 주는 반면에, 간단한 입출금 거래를 가지고 창구에까지 오면 엄청난 수수료를 물리는 등의 패널티를 주고 있다. 그러한 패널티 자체가 은행으로써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서비스 비용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비용을 무조건적으로 고객에게만 전가하는건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일이지만, 창구에 가본지도 한참 오래전의 일이고 무엇보다 인터넷 뱅킹이나 ATM으로 거래시 수수료가 없거나 거의 없다는 사실은 커다란 매력이다.
만약 집에 컴퓨터가 없다면, 은행에 설치되어 있는 인터넷 뱅킹 전용의 공용컴퓨터를 이용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 창구에서 번호표를 뽑고 한참이나 기다릴 필요도 없고, 중언하는 바 수수료도 아낄 수 있다.

얼마전 사용자의 키보드 입력을 중간에 가로채서 인증서를 재발급받아 타인의 계좌에서 인터넷 뱅킹을 통해 거액을 불법 인출한 사건이 있었다. 어차피 ID, PASSWORD 인증방식을 근간으로한 (크게 보면 공인인증서도 ID, PASSWORD 인증을 좀 더 복잡하게 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현존하는 인증시스템 내에서는 계속적으로 이러한 범죄가 발생할 수 밖에 없다. 아예 획기적으로 생체정보를 통한 인증이나, 별도의 하드웨어적인 Key를 발급하는 등의 시스템적인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그 무엇도 안전할 수 없다. 그러나 생체정보나 하드웨어 키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그때문에 발생하게 될 비용은 과연 누가 부담할 것인가? 은행이? 아니면 고객이?
그렇기 때문에 현재로써는 사용자 쪽에서 최대한 이런저런 것들을 조심하는 것 밖에, 자신의 계좌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런데 원래 하고자 했던 얘기는 이게 아니었다. 나는 좀 화가, 아니 짜증이 났다. 불법 계좌 인출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내가 거래하던 은행사들은 비교적 보안에 대해, 일종의 너그러움을 갖고 있었다. 그 너그러움이란, 소위 해킹 방지 프로그램 이라는 것을 깔지 않아도 성가시게 그걸 다시 깔겠냐는 메시지를 띄우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보안에 민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딱히 백신을 쓰지 않더라도 (나는 램에 상주해서 시시때때로 내가 사용하는 모든 메모리나 네트워크 트래픽, 심지어는 메일까지 감시하는 백신을 완전 싫어한다.) 지금까지 바이러스때문에 고생해본 적이 없다. 이건 내가 몇가지 원칙을 지키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화벽 기능이 제공되는 인터넷 공유기를 쓰기 시작했을때부턴 웜에 대해서도 신경쓸 필요가 없었다.)
어쨌든 공인인증서를 위한 기본 프로그램과, 끽해야 네트웍 트래픽을 감시하는 것처럼 보이는 보안 프로그램을 더 깔겠냐고 묻는게 전부였다.

그러나 사건이 일어나고 다음부턴 인터넷 뱅킹을 하러 사이트에 접속하는게 굉장히 성가시게 되었다. 일단 공인인증서를 위한 프로그램을 깔고, 키보드 해킹 방지 프로그램을 깔며, 네트워크 트래픽을 감시하는 프로그램을 또 깔고, 거기다가 하드를 검색해서 알려진 해킹툴이 있는지 없는지까지 확인하는 프로그램을 깐다. 도합 4개나 내 시스템이 깔아야 하는 것이다. 깔기 싫다고 ‘아니오’를 선택하면, 페이지가 바뀔때마다, 혹은 현재 페이지 내에서도 자꾸만 깔겠냐고 묻는다.
나는 왜 이것이 선택적으로 깔게 되어 있지 않은지 이해 할 수가 없다. 나는 은행이 추천하는 보안 프로그램들이 그다지 효율적으로 돌아간다고 믿지도 않으며, 심지어 이 플러그인 류의 프로그램들은 인터넷 뱅킹을 종료해도 여전히 종료되지 않고 시스템 트레이에 남는다. 이건 또 하나의 공해다.

물론 요즘의 크래킹 유행은 점차적으로 서버 중심에서 클라이언트 중심으로 옮겨가는 것 같다. 즉, 엄청난 방화벽과 관리인원에 의해 섬세하게 감시되는 서버 자체를 크래킹하기 보다는, 상대적으로 보안에 취약한 클라이언트의 말단을 크래킹해서 서버로 침투하는 것이다. 은행이 이것에 매우 민감하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그러나 그까짓 보안 프로그램 몇 개 깔았다고 해서 사용자를 크래킹의 위험으로부터 완전히 보호하고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만약, 이러한 공개된 보안 툴들을 원천적으로 무력화 시키는 크래킹 툴이 먼저 사용자의 시스템에 설치되어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직까지 그런 툴이 있다는 이야긴 들어보지 못했지만) 또 사용자는 이러한 툴들에 너무나도 의존한 나머지, 공용 컴퓨터에서도 인터넷 뱅킹을 시도할지 모른다. 이러한 보안 툴들이 자신을 지키는 한 안전하다고 믿으면서 말이다.

보안에 가장 큰 구멍은 바로 인간이다. 계속적인 사용자 교육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 보안 툴을 설치하는데 드는 비용보다 결과적으로는 더욱 큰 가격대 성능비를 낼 것이다.

이도저도 싫다면, 그냥 계속 창구거래를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통장만 잃어버리지 않는다면, 이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다.

Alien Hand Syndrome(외계손 증후군)

요즘들어 키보드를 바꾼 탓인지, 자꾸만 가장 기본적인 문장에서 오타를 낸다.

외계손 증후군이란 뇌량(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부분)에 문제가 생긴 이들에게서 드물게 발생하는 증상인데, 주로 사용하는 손의 반대편 손을 제대로 통제 할 수 없는 현상을 수반한다.
환자는 물론 ‘외계손’화 된 손의 존재를 자각할 수 있고 감각도 느끼지만, 통제가 불가능하다.
대부분의 경우 ‘외계손’은 아무런 의미 없는 움직임을 보인다. 그러나 정말 드물게, 이 ‘외계손’이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purposeful) 움직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옷을 입을때 정상인 손이 단추를 채우려고 하면, 외계손은 반대로 단추를 풀기 위해 정상손을 방해한다. 옷을 찢기도 한다. 어떤 실험에서는 최면으로 인위적인 ‘외계손’의 암시를 준 사람에게 슈퍼마켓에서 몇가지 물건을 사오도록 시켰는데, 그를 숨어서 관찰한 결과 ‘외계손’의 암시를 받은 손이 자신도 모르게 ‘아무 물건이나 훔쳐서 주머니에 넣는’ 광경이 목격되기도 했다. 물론 그 자신은 그러한 행위를 자각하지 못했다.

외계손 증후군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부분은 바로 이 ‘퇴행적인 행위’다. 분명 손은 정상적인 뇌가 자각하지 못하는 행위를 하게 되는데, 이것이 뭔가 의미를 갖는 행위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반사회적이며, 난폭한 행위로 나타난다. (때리기, 꼬집기, 훔치기, 부수기 등등)
아직 이 분야에 대해 깊은 연구가 선행된 바 없기 때문에, 또한 전공도 아닌 분야기 때문에 뭐라 짚어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생각에 아마도 이것은 존재가 예상되기는 하지만 누구도 존재함을 증명하지 못한 ‘무의식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M_ ‘외계손 증후군’에 관한 몇가지 스크랩 more.. | ‘외계손 증후군’에 관한 몇가지 스크랩 less.. |

http://www.madsci.org/posts/archives/dec97/878684062.Ns.q.html

Alien hand syndrom is a rare side effect of Corpus Callostomy surgery
that has been performed on Epilepsy sufferers.

Can you tell me more about it?

외계손 증후군은 간질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뇌량(좌뇌와 우뇌를 연결하는 부위) 수술의 부작용으로 매우 드물게 발생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에 대해 더 알려줄 수 있나요?

http://www.madsci.org/posts/archives/dec97/878684062.Ns.r.html

ALIEN HAND OR ALIEN LIMB SYNDROME This is a situation in which the limb seems to be functionally unconnected to the body, but is not paralyzed. The patient has no voluntary controll over the limb.It has been described after callosotomy, and also in corticicobasal degeneration. It is similar to disturbances related to the parietal lobe, where patients seem to lose the knowledge of certain parts of their bodies.

[외계손 혹은 외계팔 증후군] 이것은, 마비된 것도 아니면서 팔이 몸과는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증상입니다. 환자는 자신의 팔을 정상적으로 컨트롤 할 수가 없습니다. 뇌량 수술 후나 corticicobasal(?) 퇴행증상 가운데 발견됩니다. 두정엽(parietal lobe)과 관련된 장애로 보여지며, (그곳에 이상이 생기면) 환자는 ‘자신의 몸’이라고 인식하는 부분에 대한 ‘앎’을 상실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디까지가 제 몸인지 뇌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의미.)
‘Alien Hand’ Syndrome
Turns Limbs Monstrous
By E.J. Mundell
http://dailynews.yahoo.com/h/nm/20000221/hl/dsb_51.html
2-21-00
외계손 증후군이
팔을 괴물로 만든다.
E.J. Mundell

NEW YORK (Reuters Health) — Like victims in a horror film, patients with a rare syndrome known as ‘alien hand’ feel disassociated from one of their own hands, insisting that the hand is ‘possessed’ by a force outside their control.

뉴욕 (Reuters Health발) — 공포영화의 희생자처럼, 외계손 증후군이라고 알려진 희귀한 증세를 앓는 환자들은 그들의 팔이 따로 분리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마치 다른 외계의 강력한 힘에 의해 팔이 ‘지배’된 것 같다는 것이다.

The condition typically arises in the aftermath of brain surgery, stroke, or infection. Patients can feel sensation in the hand, but believe that it is not part of their body, and that they have no control over its movements. In some cases, ”alien hands can perform complex acts such as trying to tear clothes or undoing buttons,” explain neurologist Dr. R. Inzelberg and colleagues at Hillel Yaffe Medical Center in Hadera, Israel.

이 증세는 전형적으로 뇌수술이나, 뇌에 충격을 받거나, 뇌의 감염 등으로부터 발병한다. 환자들은 매우 민감하게 손의 ‘존재’를 느끼지만, 확실하게 그 손이 자신의 일부분이 아님을 자각하며, 손에 대한 통제권을 상실한다. 어떤 경우에는 “외계손(외계손 증후군을 앓고 있는 환자의, 통제를 벗어난 손)이 매우 복잡한 행동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를테면 옷을 찢는다거나, 단추를 푸는 것이다.” 라고 이스라엘의 Hadera에 있는 Hillel Yaffe 의학 센터의 Inzelberg 박사 연구팀은 말한다.

Writing in the February issue of the Journal of Neurology, Neurosurgery, and Psychiatry, the Israeli team describes a case of ‘alien hand’ associated with a possible case of Creutzfeldt-Jakob disease (CJD), a degenerative brain disorder caused by infectious particles called prions.

2월에 뇌신경학과 신경외과 그리고 정신의학 등에 관련된 잡지에 (그들이) 기고한 바에 따르면, ‘외계손 증후군’은 Creutzfeldt-Jakob병(CJD)이라고 불리는 몇몇 경우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CJD란 프리온이라고 불리는 전염인자가 유발하는 퇴행성 뇌질환이다.

The patient in question, a 70-year-old Argentinean man, underwent a swift neurological decline — including hallucinations, memory dysfunction, behavior change and alien hand — possibly caused by CJD. “At times,” the researchers report, “(his) left arm would spontaneously rise in front of the patient during speaking…. He was unaware of these movements until they were brought to his attention.”

(이 병을 앓고 있는) 일흔살의 아르헨티나 노인의 경우 CJD로 유발된 급성 신경 쇠퇴증(swift neurological decline : 대충 해석한거)을 겪고 있는데, 이것과 함께 ‘환상’, ‘기억장애’, ‘외계손 행동’ 등의 증상을 수반하고 있다. (그 노인을 연구하는) 연구자들에 따르면, “(그의) 왼팔이 환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자연스럽게 들려지고… 연구자들이 주의를 주기 전까지 환자는 그러한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했다.” 고 한다.

Isolated reports have linked alien hand with CJD in the past. In one case, “the alien limb performed complex actions such as unbuttoning (the patient’s) blouse and removing a hair pin.” In another, a woman found herself “powerless” to prevent her hand from repeatedly touching her eyes and mouth.

과거에도 CJD와 외계손 증후군과 관련된 증상들이 보고된 적이 있다. 어떤 경우에 “외계손이 (환자의) 웃옷 버튼을 풀거나, 머리핀을 빼는 등의 복잡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다른 여성의 경우, 그녀는 자꾸만 자신의 눈이나 입을 만지려고 하는 (외계)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외계손의 힘이 너무나 쎄서)

According to the study authors, various types of brain injury appear to trigger distinct subtypes of alien hand. For example, in right-handed persons, injury to the corpus callosum — a bundle of nerves connecting the two halves of the brain — can give rise to “purposeful” movements of the left hand, while injury to the brain’s frontal lobe can trigger ”grasping” and other purposeful movements in the dominant (right) hand. In other cases, “aimless movements of either hand” occur in patients affected by injury to the brain’s cerebral cortex. And the authors note that more complex alien hand movements — such as unbuttoning or tearing of clothes — are usually associated with brain tumors, aneurysm or stroke.

연구팀에 따르면, 매우 다양한 형태의 뇌손상이 (서로 구분되는) 다양한 외계손 증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예를 들면, 오른손잡이인 사람의 경우, 뇌량에 발생하는 손상이 왼손에 “의도적인” 움직임을 하도록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두엽에 발생하는 손상이 “탐욕스러움(탐식)”과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오른손에 다른 의도적인 움직임의 신호를 보내는 것과 대조된다. 대뇌피질에 발생한 손상이 “양손에 의미없는 움직임”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리고 연구팀은 외계손의 복잡한 움직임이 (단추풀기, 옷찢기 등) 보통 뇌종양이나 동맥류나, 뇌진탕 등과 관련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In every case, patients retain sensation of feeling in the affected hand or arm, but lose any sense of control over the renegade limb. “They may struggle to stop the movements,” Inzelberg told Reuters Health, “restrain the limb, punish it, talk to it, personify or refer to it as a third person. The may even say that an evil spirit exists in the hand. In a sense the hand is the ‘Other.”’

모든 경우에, 환자들은 외계손(팔)에 감각을 계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통제권은 상실한 상태다. “환자들은 이상 움직임을 멈추려고 매우 애를 씁니다.” Inzelberg박사는 말한다. “팔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억누르기도 하고, 벌을 주거나, 달래거나 하는 등, 마치 손이 제3의 인격체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자기 손에 악마가 깃들었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지요. 결론적으로 그들이 ‘외계손’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인식은 ‘외인(外人)’ 입니다.”

The study authors note that one common factor between the diseases associated with the phenomenon is that all these disorders involve several parts of the brain at once, suggesting that simultaneous damage to the parts of the brain that control movement may be responsible. In essence, Inzelberg explained, there is a “disconnection between parts of the brain which are involved in motor (voluntary muscle) control.”

이 현상과 관련된 질병의 원인들은 하나의 공통된 사실을 갖고 있는데, 그것은 이 모든 장애(disorder)가 동시에 뇌의 여러부분과 얽혀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움직임을 통제하는 뇌의 부분들의 서로 연관되어 손상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본질적으로, “움직임(불수의근)을 제어하는 뇌의 여러 부분이 단절되어있음(disconnection)”을 의미한다고 Inzelberg박사는 설명한다.

Unfortunately, there is currently no treatment for alien hand. According to the Israeli researcher, all patients can do to control the problem is to keep the hand “occupied” by having it hold an object.

불행하게도 현재로써는 이 ‘외계손’에 대한 치료방법이 없다. 이스라엘 연구팀에 의하면, 환자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문제가 되는 손에 무언가를 들려줌으로써, 손이 계속적으로 ‘점유(occupied)’된 상태로 두는 것 밖에 없다고 한다.

Based on their findings, the investigators advise that Creutzfeldt-Jacob disease be added to the list of neurological disorders that prompt ‘alien hand.’ Inzelberg says future studies are planned “to understand better the mechanisms involved in this rare condition.”

그들의 발견에 근거하여, CJD가 신경학적 장애 분류에 ‘외계손’이라는 이름으로 추가되었다. Inzelberg박사는 앞으로 “이러한 희귀한 증상을 계속적으로 연구해 나갈 생각”이라고 밝혔다.

SOURCE: Journal of Neurology, Neurosurgery and Psychiatry 2000;68:103-104.

_M#]

아주 무거운 상상

원래 이 글은 전혀 다른 제목으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쓰다가 만 글인데, 다시 수정해서 올리려다가 왠지 기분이 묘해서 다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있다.
제목은 ‘아주 즐거운 상상’이었다. 야한 얘기는 안나온다. 요새 곧잘 혼잣말을 한다. 대개는 ‘아 씨발 이거 왜 이래’, ‘대체 뭐가 문제야’, ‘졸라!’ 등등이다. 그러다 정말 대개는 ‘역시’, ‘난 졸라 천재야’, ‘뭐 이런게 다 있어’ 등등으로 끝난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충돌, 수습. 뭐 그런거. 그런데 아주 예전엔 친구들하고 있을때나 욕을 섞어가며 얘길 했지, 퍼블릭 도메인에선 의식적으로 욕이 안나오도록 조심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후천성욕안하면입안에철조망돋힘증후군 같은거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거나, 그렇게 생각이 된다거나, 역시 넌 그랬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하곤 상관없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다. 아, 그러니까 요즘엔 안그런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다. 요즘엔,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물론 부모님을 향해서 하는건 아니고, 그냥 감탄사 대신에 욕이 나오는 정도다. 입 밖으로 욕이 튀어 나가면, 나도 깜짝 놀라고 (내색은 안하시지만) 부모님도 놀라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을 벗어나 신인류로 변태하는 중이라서, 가급적이면 집안 누구도 나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건드리면 설금설금 돋던 날개가 떨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욕을 한다고 개만도 못한 놈이라거나 후레쉬자식이라던가 졸라 미친새끼라던가 하고 생각해도, 뭐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왜 무거운 상상이냐, 혹은 희망일까, 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작년인가에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 라는 아이슬란드 4인조 롹그룹을 알게 되었다. 한때, 잠깐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야금야금 녹아버렸다. 물론 그 뒤로 에릭 크립튼 다시 듣기 프로젝트라던가, 자나깨나 재즈사랑 깨진파일 다시보자 운동 등으로 간신히 정상생활로 복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깜빡깜빡 생김새도 잊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 그 희미한 기억처럼 묵묵하게 하드 속에 쟁여뒀던 그들이, 한창 뜨거운 여름이 발악해볼까 준비운동하는 지난 칠월 중순경 느닷없이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한겨레에 눈을 팔고 있던 내 귓가를 울려버렸다. 사실 운건 내 마음이었다. 마음이 울자 귀가 따라 운 것 뿐이다. 그러니까 머리카락군이 귀야 왜 울어, 같이 울까? 하고 위로해주는 바람에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눈도, 그만 울어버렸다. 뜨거운 여름에. 버스 정류장에서. 미쳐 버스가 당도하기도 전에. 아스팔트가 미쳐,
녹아버리기도 전에,
말이다.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의 리뷰를 읽은 것 같다. 그들은 완전한 異세계의 롹커들이다. 톨킨이 지구를 잠시 떠나서 집필활동에 전념할 때에, 그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현실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종족의 언어까지 만들어낸다. 인터넷에선 이 언어로 쓰고 읽는 연습을 위한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시규어 로스는 그들의 음악을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기묘한 이 언어는, 희안하게도 전세계, 민족, 국경, 언어, 경제력, 피부색, 성별, 나이, 장애, 신분, 계급, 식습관, 성적취향, 욕의 구사능력을 떠나서 공평하게 같은 메세지로 이해된다. 그 메세지를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거니와, 소개하려면 나도 그 언어를 배워야겠는데, 아무래도 그 언어는 말만 있고 문자기호는 없는, 칠백만년전에 인간이 아직 졸라 미개할 때 인간의 형제를 자처하여 지상에 강림했다는 라엘리안들이 사용했던 언어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언어를 ‘희망어’라고 부른다, 라는 대목이 갑자기 버스 정류장에서 떠올랐다. 희망어. 희망어. 이 무수한 족쇄들아. 나를 단단히 감아다오.
희망어로 부르는 롹은, 그러나 깊푸른 심연의 색이다. 철저하게 정리되고 검증하고 반드시 희망이어야 할 것, 들로만 이뤄진 인공의 냄새가 난다. 아니, 어쩌면 그건 희망어가 아니라 일상어인지도 모른다. 공기만큼 가볍고 투명한 언어가 일만미터 심해에서 억만겁을 살아내야 하는 괴어처럼 경쾌하면서도 무겁게 흔들리다니.
희망이 무거워, 너무 무거워. 내겐 가벼움이 너무 무거워. 무거움은 너무 가볍지. 너흰 이걸 이해 할 수 있니? 왜 아침 산에 놀러 온 구름이 소스라치게 하늘로 돌아가는지, 상상 할 수 있니? 어떻게 사십오억년동안 파도가 해안으로만 밀려왔는지, 감당할 수 있니? 아주 작은건, 아주 작은 걸로 끝나지. 넓게 봐. 인간을 전체로 봐. 나는 이제 이 말이 들려. 어느 누군가, 가 아닌 인간이 내는 소리가 들려. 인간을 전체로 봐. 어느 누군가가 아냐. 전체야.

다시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입꼬리가 재밌게 흔들렸다. 웃음이 나오려는 징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말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아, 서로 사랑하라.

천구백구십오년.

천구백구십팔년.

이천삼년.

이천오십사년.

삼만 칠천칠십년.

이십오역육천만년.

태양이 지금의 두배로 부풀어 오름.

칠십억년, 쯤.

태양의 지름이 지구와의 거리에 반.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천구의 반을 가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백오십억년.

뻥! 쾅! 우르릉!
거짓말. 거긴 소리가 안나요. 아무 소리도 안나요. 그냥 빛이 번쩍, 하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어요.

엔딩 크레딧 종료.

The END.

갑자기 막이 열리며 감독 등장.

인간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것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톤으로 읽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쪼록 가시는 길 무사히 되밟아 가시길 바랍니다.
출구는 왼쪽입니다.
간혹 오른쪽으로 가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거긴 화장실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오랜 시간동안 끝까지 죽지 않고 버텨준 인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ok마트 아저씨 & 오늘

낮에 우리집 특별식, 냉국수를 해먹기 위해서 냉면육수를 사러 ok마트에 갔다. 날은 어느때보다도 투명했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에서 거대한 난로를 켜 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구름이 나무처럼 자라난다. 하늘은 파랬다.

주섬주섬 냉면육수와, 9V짜리 배터리를 계산대에 올려 놓고 담배도 사려고 하는데 주인 아저씨는 계속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나는 그의 통화가 기다릴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 신한은행이라니까. 입금 안됐어? 몰라 있다 다시 해. 손님왔어, 지금.”

“디스 플러스도 한 갑 주세요.”

문득 그의 핸드폰이 낯익다는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희귀하다는 … 내 핸드폰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나는 내 핸드폰 모델명도 모른다.) 지금 사용중인 핸드폰을 사용한지가 거의 일년 반이 넘어가는데, 같은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어랏? 저하고 똑같은 핸드폰 쓰시는 분 처음 봤어요.”

“네? 아.. 으하하. 그렇네요, 저도 처음 봤어요.”

“이거 괜찮죠?”

“네, 싸고 그냥저냥 쓰기엔 딱 좋더라구요, 근데 배터리가 빨리 달아서 바꾸려고…”

“엇, 저도 최근에 들어서 이상하게 배터리가 빨리 닳던데?”

“그래요? 저도 괜찮다가 요금에 그러더라구요. 얼마나 쓰셨어요?”

“한 일년 반?”

“저도 그래요. 이 모델이 아마 그때쯤 나왔던 것 같아요. 일년 반 지나면 배터리가 다 그렇게 되나봐요.”

하고 대화를 나눴다. 생각해보니까 최근 몇 달 간, 잘 모르는 사람과 잡담을 나눈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냉면육수 4개와 배터리, 담배를 넣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까닭없이 서글퍼졌다. 자꾸 내가 물리적으로 닳아서 없어지는 것 같다. 어제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오늘은 엉덩이가, 하는 식으로.
후줄근한 내 자신을 상상하는건 정말 자신이 없지만, 가끔 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모습이 보이곤 하는데, 나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노랗게 땀에 절은 반팔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연신 얼굴에서 땀을 훔쳐내며 짜증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면서도 전체적으로 구겨진 표정을 하고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면서 전체적으로 모난 투로 말을 건내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는 심하게 축약된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것이 인생’ 이라는 말로 얼버무린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렇다면 ‘삶은, 의미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의미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피아졸라의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 앨범 가운데, ‘astor’s speech‘라는 트랙을 들으면 확실히, 삶이 의미라는데 동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coLinux, 윈도우 서비스로 돌아가는 작고 쓸만한 리눅스

내가 리눅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그 안에 무한한 삽질의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체계적이고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는 방대한 Document들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기쁨과 수많은 포럼 및 메일링 리스트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열정적인 논쟁들을 엿보는 재미는 그 어떤 여가생활보다도 충만한 에너지를 충전시켜준다.

가능하다면 불법 소프트웨어 사용자의 딱지를 떼고 자유와 열정이 살아 숨쉬는 리눅스의 세계로 풍덩 빠져버리고 싶은 욕망이 시시때때로 고개를 들지만, 현실적으로 일과 관계된 소프트웨어들이 죄다 윈도우에서만 돌아가는 상황이라 무작정 윈도우를 버리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

아니면 VirtualMachine류의 어플리케이션을 이용해서 리눅스를 에뮬레이트해 쓸 수도 있었다. 그러나 경험상, 그런 식으로 돌아가는 리눅스를 진지하게 써본 기억이 없다.

그러는 와중에 이놈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coLinux(Cooperative Linux). 적은 용량의 프로그램 하나만 설치하면, 윈도우에서 서비스형태로 거의 완벽한 리눅스를 체험해 볼 수 있다. 물론 하드웨어 지원이나, X시스템의 부재 등의 단점이 존재한다. 차지하는 자원도 굉장히 적고 실행해 본 결과 colinux-daemon과 네트워크 사용을 위한 colinux-bridge-daemon이 각각 4메가바이트의 메모리만을 사용한다. 이미지(not picture) 형태의 파일시스템을 사용하므로 원한다면 physical partition을 사용할 수도 있다. 새로운 시스템의 형성이나 복제가 매우 간편하다.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전세계 수많은 coLinux 사용자들이 미리 생성해 놓은 이미지를 가지고 다른 리눅스 배포판을 체험해 볼 수도 있다.

내 경우엔, 윈도우용 APM을 대체할 개발서버가 필요했다. critical한 문제는 아니지만, APM은 윈도우와 리눅스 사이에 미세한 환경의 변화가 있다. PHP의 경우 윈도우에선 제대로 지원되지 않는 함수도 있다. 그렇다고 본 서버에서 직접 개발을 하는 것도 여러가지 이유로 굉장히 불편하거니와, 혹시라도 있을 보안상의 문제도 마음에 걸렸기 때문에 반드시 로컬에서 접근 가능한 리눅스 서버가 필요했다.

두 말 할 필요도 없이 이 경우 coLinux가 가장 나은 대안 같아 보인다. 어차피 서버로 사용할 리눅스기 때문에 단점인 완벽하지 못한 하드웨어 에뮬레이션이나 X의 미지원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거나 오히려 반갑기까지 했다. X는 서버의 적!

내가 생각하는 개발 서버로의 coLinux활용도는 다음과 같다.

1. 로컬 네트워크가 존재하는 상황 (공유기나 라우터 등) 에서 coLinux는 bridge 방식으로 네트워크에 접속하여 하나의 독립된 개체로 인식된다.

2. 본 서버와 같은 환경을 구축한다. 현재 데비안 sarge로 설정해 두었다.

3. coLinux는 네트워크 상에서 독립된 개체이므로 삼바를 이용해서 쉽게 파티션에 접근할 수 있다.

4. 맘껏 일을 한다.

5. 개발이 종료되면, 본 서버에서 rsync를 이용해 완료된 작업을 간단하게 긁어간다.

6. 런칭!

+ 혹시라도 X가 필요하다면, ssh X11포워딩이나 vnc를 이용해서 X 어플리케이션을 실행 할 수도 있다.

+ 간단한 설정 파일을 가지고 원하는 만큼의 파티션을 지정해서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각각의 파티션은 이미지 파일로써 존재해야만 한다.

[Whales turned into burgers, the scandal goes on]에 대하여

포경에 있어서 가장 큰 이슈는 그것을 식용으로 즐기는 국가가 있다는 것이다. 그 가운데 노르웨이와 일본은 세계적으로 가장 큰 포경국가이며, 그들은 매년 천마리에 가까운 고래를 잡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매우 난해한 문제다. 어느 문화의 식습관을 야만적이라거나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비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포경에 반대하는 이들을 바라 보는 대부분의 시선은 그러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타문화의 식습관을 ‘단지 자신들이 애호하는 동물’을 죽인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물론 포경에 반대하는 이들은 대부분 고래를 좋아하지만, (다른 이유로 포경에 반대할 수도 있다.) 그런 이유만으로 포경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먼저, 고래는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고래는 물고기처럼 난생(卵生)하지 않고 2, 3년에 한마리씩 새끼를 낳는다. 그리고 태어난 새끼라도 갈 수록 심해지는 해양오염 및 선박사고로 인해 쉽게 생명을 잃는다.

둘째로, 고래고기는 식용으로 부적당하다. 고래는 바다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상위에 위치하는 동물이다. 때문에 플랑크톤으로부터 고래의 먹이가 되는 크릴새우나, 오징어, 작은 물고기류에 이르기까지 축적된 오염물질이 그대로 고래 체내에 쌓이게 된다. 결국 고래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농축된 오염물질을 그대로 흡수하는 것과 다름없다.

셋째로, 개체수에 따른 제한적 포경도 시기상조다. 아직까지 명확하게 동북아에 서식하는 고래의 종류 및 개체수, 이동경로등이 밝혀진 바 없다. 또한 그러한 연구가 선행된다고 해도 포경에 대한 철저한 감시가 가능할까도 의문이다.

물론 일부에선 미국을 위시한 반포경국가들이 포경금지를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해, 빈국의 포경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을 가로막고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사실상 고래고기의 수요가 몇몇 국가를 제외하곤 매우 미미하기 때문에 포경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은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엔 노르웨이나 일본에서의 고래고기 수요도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한 내용은 및의 기사문에 있음.)

[#M_ more.. | less.. |

Whales turned into burgers – the scandal goes on
2005-07-22 오후 12:07:13

In an attempt to revive a dying industry, Norway and Japan have begun to market “fast food” whale products, with whalers hoping to cash in on their governments’ stated intentions to dramatically increase quotas in the coming years. For example, despite the IWC moratorium on commercial whaling, Norway awarded itself a quota of 796 minke whales for 2005, and the government has announced that it could increase the number by as much as three times in future. This move towards increasing whaling and “fast food” products comes despite concerns about the health risk posed by pollution in whale meat and claims that whaling and whale meat are key parts of Japanese historical traditions.

The Norwegian Burger

In recent years, whalers have not taken the entire quota in Norway and sales of whale products have flagged. Whale meat has become viewed as an old fashioned food, and sales outside of the traditional northern whaling areas are few and far between. Whale blubber, often highly contaminated, has either been dumped overboard or turned into dog food. The largest potential export market for Norwegian whalers – Japan – was closed seemingly due to the concerns over contaminants.

However, the Karsten Ellingsen company of Skrova, Norway, recently launched several new products based on whale meat, foremost among them the “Lofotburger”. The burger, 50% minke whale and 50% pork, has gone on sale in dozens of supermarkets throughout Norway. The company also offers whale ham and pastrami. Ulf Ellingsen, spokesperson for the company, was clear about the rationale behind the whale burger: “We hope that this product hits the nail on the head and that a new generation get their eyes opened up to whale meat.”

The Japanese Burger

Japan will also increase quotas for 2006, to more than double the number of minke whales it kills in its so-called scientific whale hunts. Japanese harpoons will target some 935 minkes next year, and the whalers also plan to kill humpback and fin whales, the first time that these species have been hunted since the whaling moratorium came into place in 1986. The scientific justification for this hunt has been criticised by researchers world-wide, and the IWC at its recent meeting called on Japan to scrap its research hunts.

As is the case with the Norwegian market, whale meat sales in Japan have been consistently low, and Japan currently consumes between one and two percent of the level of whale meat compared with levels 30 or 40 years ago.

Despite the concerns raised by the contaminant studies, showing dangerously high levels of pollution in some whale meat products in the Japanese market place, the government of Japan
continues to promote the consumption of whale meat – including offering whale burgers to school children.

And in June of 2005, the Lucky Pierrot restaurant chain in Japan began selling deep-fried minke whale burgers dressed with lettuce and mayonnaise for 380 yen (US $3.50), saying that it was “to use up the whale meat from experiments”.

WDCS believes that the aim of this new “fast-food/convenience-food” marketing is clear: to open up new domestic markets for the struggling whaling industry and to increase profits. Both Norway and Japan have argued for years at the IWC that their whaling is based on cultural tradition and need, but these latest cynical attempts to profit from an inherently cruel, unnecessary and indeed unhealthy industry point to the lie in that argument.

So, burger buyers, beware. The next time you take a bite out of a burger in either Norway or Japan, there is a chance you might be eating whale meat.

Background articles:
http://www.kyst.no/index.php?page_id=21&article_id=72034 (article in Norwegian, with a photo of the Lofotburger package which has a whale on it)
http://www.japantimes.co.jp/cgi-bin/getarticle.pl5?nn20050624a4.htm
http://www.ellingsen.no/
http://206.190.35.122/s/afp/20050623/sc_afp/environmentwhalingiwc_050623142821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6/18/AR2005061800890.html

Source: WDCS

고래버거 – 추문은 계속된다
2005-07-22 오후 12:07:13

죽어가는 포경산업을 살리기 위해, 노르웨이와 일본은 고래 고기로 만든 “패스트 푸드” 시장을 새로이 시작했다. 포경업자들은 그들의 정부가 포경 쿼터를 늘리는데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그로 인한 수익의 증대를 기대하고 있다. 하나의 예로, IWC(국제 포경 회의)가 상업 포경에 대해서 모라토리엄을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르웨이는 2005년 밍크고래의 쿼터를 796마리로 확정했으며, 향후 그 쿼터를 현재의 3배 이상 늘릴 것임을 공표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앞으로, 오염된 고래 고기로 인한 건강상의 위험이 현존함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포경산업과 (고래고기로 만든) “패스트 푸드” 제품들을 증가시킬 것이며, 또한 (관련해서) 포경산업과 고래고기는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역사적인 전통의 중요한 일부분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노르웨이 버거

최근 몇년간, 노르웨이의 포경업자들은 그들에게 할당된 포경 쿼터를 전부 채우지 않았으며, 고래(고기)로 만든 제품들은 인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고래고기는 매우 식상한 음식으로 비춰졌으며 전통적인 북 포경 구역(고래고기를 먹는 지역) 외에서의 고래고기 판매도 부진했다. 매우 오염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고래 지방은 바다에 그냥 버려지거나 개사료로 둔갑하기도 했다. 노르웨이 고래고기의 가장 커다란 잠재 수입국인 일본 또한 오염의 이유로 외양상 그들의 고래고기를 수입하길 꺼려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Skrova에 있는 the Karsten Ellingsen 사(노르웨이의 수산물 가공 업체 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사이트에 고래고기에 관한 내용은 없습니다만 사이트가 매우 부실한 것으로 보아 관련 내용이 업데이트 되지 않은 것 같네요. http://www.ellingsen.no/)는 최근 고래고기로 만든 몇가지 새로운 제품을 선보였는데, 그 가운데 주목할만한 것이 “Lofotburget”다. 밍크고래의 고기와 돼지고기를 절반씩 섞어 만든 그 버거는 노르웨이 전역의 수십개 슈퍼마켓들에서 판매되기 시작했다. the Karsten Ellingsen사는 또한 고래고기햄과 패스트라미(pastrami : 훈제 또는 소금에 절인 소의 어깨 고기)식의 가공육을 판매하고 있다. 회사의 대변인(사장?)인 Ulf Ellingsen은 고래고기 버거가 사회통념상(주1)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는 이 제품이 시의적절(주2)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신세대들에게 고래고기의 참맛을 알려줄 좋은 기회죠.”

일본 버거

일본도 2006년부터, 과학적인 목적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되는 무자비한 고래 살육의 양을 현재보다 두배 이상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해서 일본은 내년에 935마리 가량의 밍크고래를 사냥할 계획이며, 포경업자들은 1986년 이 종에 대한 포경이 금지(모라토리엄)된 이래 처음으로 혹등고래나 수염고래를 죽일 계획을 갖고 있다. (노르웨이보다는 일본에 대한 어조가 상당히 강경하군요.) 이러한 포경에 대한 과학적 정당성이 전세계의 수많은 연구자들에 의해 비난받고 있으며, 이 문제에 대해 최근 모임을 가졌던 IWC에서는 일본에게 연구 목적의 포경을 금지할 것을 촉구했다.

노르웨이의 고래고기 시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일본의 고래 판매량 또한 저조하다. 일본은 30~40년 전과 비교해서 현재는 1~2퍼센트 정도 수준의 고래고기를 소비하고 있다.

일본 시장의 고래고기가 종종 대단히 높은 수치의 오염도를 나타내는 것과 관련해서, 고래고기의 오염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는 계속해서 고래고기의 소비를 촉진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심지어 그들은 학생들에게까지 고래 버거를 공급한다.

그리고 2005년 6월, 일본의 the Lucky Pierrot 레스토랑이 380엔(미화 3.5불)에 상추와 마요네즈가 곁들여진 밍크고래고기 버거를 이런 변명과 함께 판매하기 시작했다. “실험하고 남은(혹은 실험이 끝난) 고래고기를 소비하는 것 뿐입니다.”

WDCS는 이런 새로운 “패스트 푸드/편의식(convenience-food)”의 목적이 매우 명백하다고 믿는다. 즉, 위기에 처한 포경 산업과 금전적 이익을 위한 새로운 시장 개척이라는 것이다. 수년간 노르웨이와 일본은 IWC에서 그들의 포경은 문화적인 전통에 기반하고 있으며 필요에 의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결국 그들의 주장에서 뻔히 드러나는 거짓말처럼 불건전한 산업을 기반으로 이익을 얻으려는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버거 소비자들이여, 기억하라. 나중에라도 노르웨이나 일본에서 버거를 한 입 물게 될 때, 당신은 고래고기를 먹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참조 기사 :

http://www.kyst.no/index.php?page_id=21&article_id=72034 (article in Norwegian, with a photo of the Lofotburger package which has a whale on it)
http://www.japantimes.co.jp/cgi-bin/getarticle.pl5?nn20050624a4.htm
http://www.ellingsen.no/
http://206.190.35.122/s/afp/20050623/sc_afp/environmentwhalingiwc_050623142821
http://www.washingtonpost.com/wp-dyn/content/article/2005/06/18/AR2005061800890.html

주1 : rationale : 원랜 논리적이거나 이성적인, 이란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인데, 문맥상 적절히 의역했습니다.
주2 : hit the nail on the head : 직역하면 ‘정통으로 못의 머리를 때리다.’는 의미의 숙어입니다. 보통 ‘적절하다, 정곡을 찌르다.’ 등의 의미로 사용됩니다. 역시 문맥상 적절하게 의역했습니다. 노르웨이 포경과 고래로 만든 제품들의 시장이 매년 축소되고 있는 가운데 고래고기의 수요를 늘릴 새로운 대안이 나왔다는데에, ‘시의적절’ 이란 표현이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_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