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날까지 마쳐 주어야 하는 모 회사 쇼핑몰 작업중..
왠일로 일이 잘 풀려서 즐거운 마음으로 db 스키마를 튜닝하던 중에
열어 놓은 phpmyadmin에서 해당 db를 보다가.. 왠지 쓸데없이 자리만 차지하는
테이블들이 많아서 아무 생각없이 체크하고 삭제 버튼을 눌렀음…
뭔가 틱틱, 화면이 리디렉션 되더니
“당신은 지금 xxxx db를 날려버렸습니다. 백업도 안해놨지? 바보;;”
…. OTL…
뭘까.. 이 허전함은…
젠장.. 다행스럽게도 이전에 스키마 짜면서 남겨 둔 문서가 있긴 하지만..
테이블들을 다시 하나씩 만드는 것도 귀찮고..
문제는.. 테스트용으로 칼럼들을 입력해놨는데.. 그걸 다 언제 다시 입력하냐..
왜!! phpmyadmin은 경고 메세지 조차 내뱉지 않는거냐!!!
왜!!
왜!!
왜!!
아.. 울고 싶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가는 분들을 위한 설명]
그냥 작업하던거 다 날렸습니다.
덕분에 패널티 타임 1시간 추가!!
카테고리 보관물: 서울나기
고기자! 축하해!
맨날 어리기만 한 줄 알았더니 어느새 나를 한참 추월해 있구나.
기자가 된 것 진심으로 축하한다.
냉정, 신속, 정확 취재를 모토로 삼고 훌륭한 기자가 되기를 바란다.
밖이 훤해서
밖이 훤해서 아직 너다섯시 밖에 안됐겠거니 했는데, 시계를 보니 일곱시 반이다.
여름이구나 벌써.
소모
밤중에 일을 하다가 컵에 물을 담아오기 위해서 방문을 여는 순간 심장이 멎을 정도로 놀랬다. 어떤 산발을 한 여자가 문 앞에 멍하니 서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 삼년만에 그렇게 놀래보기는 처음이다. 가만히 보니까 엄마였다. 엄마랑 나랑 새벽 네시에 한참을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왜 내 방문 앞에 서 있냐고 물으니까 아침에 약국에 가서 아버지 약 좀 사오라는 이야기를 한다. 어디 아프시냐고 했더니, 밤새 온몸이 쑤셔서 잠을 잘 못이루신다며 저 증세는 엄마가 잘 아니까 그냥 약국에 가서 약만 사오면 된다는 말만 반복한다. 안방에 갔더니 아버지는 연신 몸을 뒤척이면서 끙끙댄다. 난 갑자기 부산해져서 119를 부르니 어쩌니 하는데, 엄마는 지금 가봐야 응급처치만 하니까 소용 없단다. 하긴…
새벽까지 일을 하고 좀 느즈막히 일어났더니 집안이 조용했다. 엄마는 교회 간 것 같고 동생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식탁에 못보던 약봉지가 있는걸 보니 동생이 투덜대며 약국에 다녀온 것 같다. 안방에는 여전히 아버지가 주무시고 계신다.
아버지는, 말하기 민망하지만 치질 기운이 좀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는게, 벌써 근 10년 가까이 트럭 운전을 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한번 컴퓨터 앞에 앉아서 일을 하는 시간 만큼, 아버지는 한번 운전대를 잡으면 놓을 수 없다. 그리고 피부병도 좀 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이런저런 몸 상태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어렸을 때 아버지는 강철인간이었다. 아버지가 아픈건 개념 밖의 일이었다. 그러니까 모든 가능한 세계에서 그것은 항상 거짓인 명제다. 어쩌면 내가 세심하지 못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그것이 옳다. 내가 세심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아픈걸 잘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어쨌든 아버진 아픈 것과는 상관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좋아하는 교회도 가지 못하고 (우리 아버지의 유일한 낙), 처연하게 방안에 누워 있는 모양이라니.
가끔 부모님이 모두 돌아가신 때를 떠올린다. 예전같았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애증의 관계로 평생 이렇게 살겠지, 싶었는데, 엄마고 아버지고 점점 늙어가는 것 같다. 인간이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는게, 뭐랄까 자기성(自己性) 같은 것을 조금씩 소모해 가는 것 같다. 그런 모습은 참 시답다.
뭘 어째야 할까, 생각중이다. 깨워서 죽이라도 끓여 들여야 하나…
seti at home
어제 문득 무슨 글을 보다가 seti at home이 떠올랐다. 이전 블로그 등에서 수차례 언급했으므로 seti at home이 대충 뭔지 아시리라 믿고.
그 동안은 seti at home 프로그램을 돌릴 곳이 마땅찮아서 135개의 work unit을 끝으로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어제 문득 seti at home을 떠올리다가 현재 내가 관리하는 서버가 꽤 있는데까지 기억이 미쳤던 것이다. 그래서 각각의 서버에 seti 클라이언트들을 다운 받아서 설치하고 돌렸다. 물론 seti at home은 소유권이 자신에게 있지 않은 시스템에서 불법적으로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에 대해서 금하고 있다. 하지만 관리자의 권한은 막강하고, seti 클라이언트 자체가 자동적으로 시스템의 자원상황을 판단해서 무리가 가지 않는 한도 내에서 프로그램의 점유율을 조정하므로 문제는 없을 것이다.
하루 동안에, 아니 정확하게는 19시간만에 4개의 wu을 보냈다. 호호호~
어버이날
기본적으로 난 못난 자식이고 그래서 매년 어버이 날이 다가올 때마다 반은 거북하고 반은 두렵고 뭐 그런 심신 상태에 접어든다. 그런데 올 해엔 정신 없다는 핑계로, 당장 어버이 날 당일이 될 때까지도 오늘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고 있었다. 어버이 날 기념 & 할머니 생신 겸 외식 어쩌구를 하려고 용인 할머니댁에 가는데, 주위에 온통 카네이션을 단 어버이들이 와와 다니시길래 솔직히 속으로 좀 찔렸으나 겉으론 태연하게 창밖을 바라보며 자그맣게 노래를 흥얼거렸다. 엄마는 계속 네시 반까지 집에 와서 차를(자가용이 없어서 외삼촌 차를 빌렸다.) 돌려줘야 하는데, 하는데 하시고 아버지는 오랜만에 눈에도 안들어 올 조그만 승용차를 모시려니까 적응이 안되는지 연신 기어 변속에 실패한다. 한 뼘도 안되는 공간에 모인 사람들. 우리는 모두 다른 생각중이다.
솔직히 난 친가쪽 식구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나이가 먹을 만큼 먹었으니 어른들 보기가 부담스럽고.. 어쩌구.. 뭐 그런게 아니라, 이렇게 친가 가족들이 모인 자리가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온갖 인간 군상의 전형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서로 통하지 않는 말을 계속해서 반복하는, 일종의 퍼포먼스를 보는 것 같다. 거기엔 룰도 없고 사상도 없고 의미도 없고 소음만 있다. 물론 그건 주관적인 견해다. 의미 정도는 있을 것인데, 도무지 난 그 의미를 짐작 할 수 조차 없다. 그래서 명절때가 되어 할머니댁에 갈 때면 난 슬그머니 정신을 집에 두고 나온다. 가서 실컫 웃고 어른들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위해서다.
뭐 됐다. 나도 의미 없으니까 딱히 그쪽이 의미 없다고 비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그 갈비집은 정말 맛이 없었다. 진짜 참나무 숯으로 갈비를 굽는건 신선했지만, 서비스도 엉망이고 고기도 퍽퍽하거나 너무 느끼했다.
서버 이전 공지
서버 옮깁니다.
이제 학교랑 빠이빠이 하고 돈주고 보다 넓은 세상으로 옮겨갑니다.
저랑 친한 분들 중에서 혹시 홈페이지 만들고 싶은데, 올릴 곳이 마땅치 않은 분들은 아래 이메일로 연락주시면 계정 드립니다.
5월 4일부터 1 ~ 2일간 홈페이지가 열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세종문화회관
세종문화회관 앞 뜰에서는 봄부터 늦가을까지 노천카페의 형식으로 맥주를 판다. 맥주값은 놀랄만큼 싸고 (이 말은 상상했던 것만큼 비싸지 않다는 얘기다. 500 한 잔에 2000원) 맛도 놀랄만큼 진하다. 물론, 안주는 시키지 않아도 상관없다. 그까짓 일로 종업원이 얼굴을 찌푸린다거나 하는 일은 없다.
나에겐 일종의 거만과 허위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세종문화회관. 단 한번도 그 곳에서 실연되는 공연을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때가 되면 이 맥주맛을 잊지 못해서 때론 혼자서 때론 몇 명의 친구들과 지나가다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삼년째구나 벌서.
어젠 인사동에서 일때문에 미팅이 있어서 갔다가 세종문화회관 앞 버스정류장까지 걸어왔다. 걸어가기엔 좀 빠듯한 거리, 라고 느꼈다. 역시 연애할때하곤 다른 모양이다. 날씨도 더웠고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여서 정류장 앞에 도착했을땐 거의 녹아웃 상태였다. 버스를 기다리다가 뒤를 돌아보니 간이 테이블이 앉아 맥주를 마시거나 콜라를 마시는 사람들이 보였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나서 무작정 나도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를 시킨다.
별다른 집회일정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짭새들은 불온하게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건너편 미 대사관 앞에선 한양대 학생들이 미군철수를 주장하는 깃발을 들고 서 있다. 그마저도 몇 명 되지 않는다. 여전히 고가의 대형카메라를 든 멋진 남성과 귀엽고 아담하면서도 역시 상당히 고가인 휴대용 디지털 카메라를 든 멋진 여성들은 연신 세종문화회관을 찍어댄다. 재잘재잘. 여전히 버스들은 줄을 이어 정류장에 도착했다가 출발하고를 반복. 공복에 마신 맥주탓인지 세상이 느리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딱히 전화해서 불러낼 사람도 없었고 기다리는 것도 지쳐서 혼자서 홀짝홀짝 맥주를 마신다. 세종문화회관의 거용이 만들어낸 그림자 아래서 지친 청춘은 서서히 가라앉는다. 갑자기 심한 복통이 몰려왔으나 이내 취기로 인해 통증이 가셨다.
그런데 갑자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동기도 없고 대상도 없는 막연한 분노. 서울의 중심, 이 지리적 중심 혹은 이데올로기적 중심, 그것도 아니면 소문의 중심이거나 서민들이 가지는 막연한 자부심으로써의 중심. 그 중심에다 시원하게 오줌을 갈기고 싶었거나, 혹은 내 머리위로 핵폭탄을 떨어트리고 싶었다. 무기력과 교만과 낙담의 중심에다가 말이다.
잠시 머리를 텅 비웠다. 젠장. 욕이 나온다. 어쩌자고 여기까지 왔을까. 왜 여기서 대낮에 맥주나 마시고 자빠졌나. 다시 사물이 분주히 가속한다. 나는 점진적으로 고도를 높였다.
버스가 도착해서 시원한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다. 이어폰에선 피아졸라의 센트럴파크 공연실황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전 지금 농담하려는게 아닙니다. 진지하게 말해서 이 악기는 비현실적인(surrealistic) 역정을 겪었지만 이것은 마치 탱고가 어떻게 나이트클럽이나 캬바레 같은 곳에서부터 태어났는지를 보여줍니다. 마치 뉴올리언즈 재즈같이. 이런 것들은 그 시작이 분명하진 않지요. 하지만 오늘은 분명할껍니다. 왜냐하면 사람과 자유, 음악 그리고 사랑같은게 분명한 것들이기 때문이지요. 매우 감사합니다. 제 음악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니까
사실 돌아왔다, 라는 말도 우습다. 왜냐하면 난 한번도 여기에 있었던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곳은 새로운 장소인데도, 자꾸만 돌아왔다, 는 느낌이 들게 한다. 어깨가 아파서 그런 것 같다.
한 한달간을 공식적인 글만 쓰고 다녔다. 뭘 묻거나, 일때문에 보내는 메일을 쓰거나, 뭘 팔거나 등등. 그래서 그게 그렇게 편했냐고 하면, (혹시 싸이코 남치렉이라고 아세요? 몽골리언 싱어입니다. 그녀는 몽고, 였던가 어쨌든, 의 민요를 토대로 한 노래를 작곡해서 부르는데, 몽고 민요 들어보셨는지요. 두마디도 필요 없고, 단 한마디로 귀곡성 입니다. 근데 왜 이런 이야길 하냐구요? 그냥요.) 편했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편함이란 그다지 하는 일 없음과 비슷한 의미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린 공무원들이 편하겠다, 고 한다.
나는 그간 머리를 비웠고 몸도 많이 비웠고, 그래서 체력은 바닥이고, 불안과 초초함을 비웠고 집착과 분노도 버렸다. 그랬더니 완전히 병신이 되고 말았다. 이제 슬슬, 하며 무슨 일을 해보려고 해도 아무것도 잘 되질 않는다. 병신이란 이런 의미다. 매일 게임을 하고 매일 잠을 자고 매일 멍하니 누워 티븨를 보다가 매일 천장을 보며 숫자를 센다. 게다가, 휴학도 했다. 누구보다 내 자신이 깜짝 놀랐다. 부모님은 비교적 놀라지 않았다. 휴학을 했다, 니.
앞으로 내가 어떻게 될지 잘 모르겠다. 지금 중언부언하는건, 이 글쓰기 폼에 아직 적응이 되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십년쯤 걸리겠지.
지금은 다른 도수의 안경을 낀 것처럼 사물이 멀리 있는 것 같다. 사람도 그렇고.
누구 말마따나 연애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는데, 연애란게 필요에 의해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그냥 있으련다.
아침 여섯시 이십 삼분.
네 시작이 미약하였듯이
끝도 심히 미약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