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지금 막 플레이어에서 키스 쟈렛이 나와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은 맞다.), 언제였더라, 사당동 DJ가 권해서 듣게 된 그의 퀠른 콘서트 공연 실황은 정말 먹어주는 앨범이다. 이 앨범을 두고 공전절후의 즉흥 연주라던가, 육체적 한계를 극복한 아름다운 인간 승리라던가 (그의 ‘만성 피로 증후군’을 두고 하는 이야긴데, 사실 이 앨범하고는 관련이 없는 이야기다.) 하는 말을 하지 않더라도, 그냥 듣기만 하면 이게 얼마나 위대한 정신의 발현인지 단박에 알아 차릴 수 있는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압도적인 곡으로 스타트를 끊었으니, 왠지 그의 다른 앨범들은 시시해서 못듣겠다는 등의 불상사가 생겨버렸는데, 뭐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맘 속에 고이고이 간직한 첫사랑의 짜릿한 기억처럼, 이건 정말 나만 (적어도 내게 이 곡을 소개 시켜준 두세명만 빼고) 좋아하는거야, 나만 알고 있는거야, 나만 이 아름다움을 즐기는거야 하고 있었는데, 지난 학기 ‘역사철학’ 수업 시간에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과 함께 강의실을 나서려다가 후배 하나가 선생님 곁으로 가더니, ‘선생님 이 앨범 선물로 드리고 싶어요.’ 하며 내미는 앨범이 바로 이 키스 쟈렛의 퀠른 콘서트 공연 실황이 아닌가!

야, 정말 맘 한 편으로는 우연히 길을 걷다가 헤어진 첫사랑이 배가 남산만해져서 왠 남자랑 즐겁게 걸어가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 것처럼 아릿하고 답답해지기도 했지만 또 한 편으로는 아니 이 녀석이 이걸 알아? 하며 뭔가 뿌듯하달까, 으쓱하게 된달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


..

몇 번의 퇴짜를 맞고 난 뒤로 나는 이제 누구에게 음악을 잘 권하지 않게 되었다. 블로그에야 누가 알아보던 말던 내가 좋아서 글쓰고 하는거니까 상관은 없는데, 사람에게 좋아하는 것을 권했다가 그가 별로라는 표정을 지으면 정말 마음이 상한다는걸 깨달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사당동 DJ를 만나 그에게 음악을 전수(?) 받는 그 순간, 나의 내면에 숨겨진 이 롹 스피릿을 발견해 내고 그와 공유할 수 있었다는 것은 참 대단한 확률이었지 않나 싶다. 그 놈은 얼마전에 결혼했지만 (그러니까 이젠 이야기해도 된다는 거), 사실 우린 한때 “왜 넌 여자가 아니냐?”를 두고 심각하게 고민을 했었더랬다. 이렇게 서로 코드가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참 힘든 일인데, 만나 놓고 보니 이게 동성이라 뭔가 더 이상 발전이 없는거다. ㅋㅋ

참, 얼마전에 월드 뮤직에 빠져 있다는 선배에게 모 사이트를 알려줬더니 정말 좋아라 하더라. 내가 그에게 그 어떤 것보다 귀중한 것을 선물한 것 같아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흐흐.

재니스 조플린 – 섬머 타임

아직도 재니스 조플린의 섬머 타임을 들으면 운다는 사람을 위해서.
마이클 스완익의 ‘성(聖) 재니스의 향연’이 생각나서 마지막 몇 문장을 옮겨본다.

그날 저녁 울프가 탈 배가 보스턴 항에 들어왔다. 그는 그 배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 갈 것이었다. 이 마법에 가득 찬 악몽 같은 나라와 유령, 그리고 살아 있는 시체들을 뒤로 한 채. 그는 배를 바라보면서도 배가 진짜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느 틈엔가 무엇을 믿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것 같았다.
그를 여객선으로 실어다 줄 거룻배가 다가왔다. 울프는 가방을 집어 들었다.

스완익의 이 괴기스런 단편을 빌어 말하자면, 재니스 조플린의 석연치 않은 죽음 (하기야 요절한 예술가의 죽음치고 그렇지 않은게 또 어디 있겠냐만은) 이야 말로 광기에 찬 제의의 희생물이었다는 것이다. 시대가 미치면 그 광증을 치료하기 위해 사람들은 제물을 필요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죽으면…

영화, 그래 무슨 영화였더라. 무슨 레코드점 이야기가 나오고 존 쿠삭 나오고 그런 영화였는데, 거기서 잠깐 존 쿠삭이 jimmy cliff의 many rivers to cross를 언급하면서 자기 장례식장에서 그 노래를 꼭 틀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roy buchanan의 down by the river는 내게 그런 곡이다.

사실 roy buchanan의 기교가 끔찍할만큼 대단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를테면 당대의 기타리스트들과 비교해서 말이지. 하지만 나는 그의 기타를 통해 처음으로 영혼이 떨리는 기분을 맛봤고 공기의 진동을 통해 단순히 물질 이상의 초월적인 교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건 도저히 평범한 사람은 할 수 없는 연주였던 것이다. 단순하게 천재성을 지녔거나 노력파거나 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나는 특별히 그의 기교가 뛰어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나는 기교를 믿지 않는다.
단지 자신의 악기로 울 수 있는 사람만 믿을 뿐이다.

2007 Kirrie Music Award

몇 주 전에 쓰기 시작해서 대충 기억나는 곡들을 다 적고 나니 정말 연말이 되었습니다. 열곡을 채우고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올 해엔 그다지 노래를 듣질 않아서 여덟곡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올 해의 글은 이제 마지막일 것 같은데, 뭐 어쩌면 한 두개 정도 인사글 올릴 수 도 있구요. 그런거죠.

2006 Kirrie Music Award
2005 Kirrie Best Music Award

어느 사이엔가 Best Music에서 그냥 Music으로 바뀌었군요. 사는게 점점 재미가 없어지나봐요.
좋은 밤 되시길.
—>
마지막으로부터 두 개피째 담배를 피운다. 이걸 피우고 나면 한 개피가 남는다, 라고 키보드를 두드리면서 담배를 껐다. 물을 마셨다. 분명 이 다음 삼십분도 지나기 전에 나는 또 강렬한 흡연 욕구에 시달릴 것이다. 그 다음의 삼십분 뒤엔 이 중독증세를 다스릴 수 있는 것이 없다. 그리고 커피를 조금 마신 탓인지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는다. 궁지에 몰린 것이다.
남아공에 사는 스미스씨는 분명 과거에, 혹은 현재에, 아니면 미래에 이런 일을 겪고 있다고 그의 일기장에 적었다. 나는 그가 누군지 모른다. 그건 중요한 일이 아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다. 컵에 물이 가득 담겼을 때 누군가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물을 붓고 있을 수도 있고 자비심이란 눈꼽만큼도 없는 마피아에게 붙잡혀서 평생 손에 쥐어보지도 못한 백만달러의 행방을 추궁당하며 마지막 남은 몇 리터의 혈액이 몸 밖으로 흐르는 모습을 지켜 볼 수 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유압 프레스기 안에 갇혀서 듣는 사람도 없는 비명을 지르며 조금씩 압사 당하는 경우도 있다.
사는게 끔직할 정도로 비인간적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도 그런 상황에 처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우리는 그저 바보같이 살면서 그런 일은 절대 자신에게 닥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분명 누군가에게는 일어나는 일이다. 일어나는 일은 반드시 일어났던 일이다. 우리가 져야 할 책임은, 단지 지금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이다.

올 해 나는 나를 확인했다. 나를 구성하는 코드들을 하나씩 솎아내서 그 구성 요소와 작동 방식을 분석하고 그럼으로 해서 그것들이 구성하는 나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요소들은 과연 나로 환원될 수 있을까 없을까, 시작부터 그런 물음들은 던질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긴박했던 것이다.

나는 솔직하고 싶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것 까지 고백할 수는 없다.
—>
Bulletproof… I wish I was / Radiohead
Bulletproof… 는 The Bends에 포함된 곡이고 Scatterbrain(1, 2)은 한참 뒤의 앨범에 포함되었지만, 나는 이 두 곡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라디오헤드는 이미 놀라울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갖고 있는 밴드가 되었다. 그들의 최신 앨범인 In Rainbow가 다운로드 판매 만으로 플래티넘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한 편으로 가슴이 시렸다. 손가락 끝에 지구를 올려 놓은 것 같다. 그들을 둘러 싼 세계는 끊임없이 소음을 만들어 내는 라디오헤드인 것이 아닐까. Bulletproof이기를 바라며 때로는 자신이 Scatterbrain이 아닐 수 있는 다른 어떤 곳을 갈망하는.

Simple Man / Lynyrd Skynyrd
많은 일들이 있었다. 나는 추위에 언 손을 모닥불에 녹이며 눈 밭, 지평선 너머로 길이 사라지는 모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이따금 사람들이 그 길로부터 걸어와 모닥불에 손을 부비며 내게 말을 붙였다. 내가 어깨를 으쓱하자 그들은 고개를 젓고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내게, 아직도 기억나는 엄마가 있었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
[#M_ Lynard Skynard – Simple Man 가사.. | Lynard Skynard – Simple Man 가사.. |Lynard Skynard – Simple Man

Mama told me when I was young
Come sit beside me, my only son
And listen closely to what I say.
And if you do this
It will help you some sunny day.
Take your time… Don’t live too fast,
Troubles will come and they will pass.
Go find a woman and you’ll find love,
And don’t forget son,
There is someone up above.
내 어릴 적 엄마는 말했지
이리와 앉으렴, 내 아들아
지금부터 엄마가 하는 말을 잘 들으면
네게 좋은 일이 생긴단다.
여유를 가져라… 바삐 살지 말거라,
고통은 오는 길로 되돌아 간단다.
여자를 만나 사랑을 찾거라,
그리고 잊지 말아라
저 위에 계시는 누군가를.

And be a simple kind of man.
Be something you love and understand.
Be a simple kind of man.
Won’t you do this for me son,
If you can?
그리고 단순한 사람이 되어라.
네가 사랑하고 이해 할 수 있는
그런 단순한 사람이 되어라.
엄마를 위해 그렇게 해 줄 수 있지?

Forget your lust for the rich man’s gold
All that you need is in your soul,
And you can do this if you try.
All that I want for you my son,
Is to be satisfied.
부자가 되기 위한 열망 따위는 잊거라
네게 필요한 건 오직 네 영혼 뿐이란다,
그리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엄마가 네게 바라는 모든 것은
오직 만족하는 삶이란다.

Boy, don’t you worry… you’ll find yourself.
Follow you heart and nothing else.
And you can do this if you try.
All I want for you my son,
Is to be satisfied.
아들아, 너무 걱정하지 말거라… 언젠간 너도 네 자신을 찾을 수 있겠지.
마음이 가는 대로 살거라.
그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지.
엄마가 네게 바라는 모든 것은
오직 만족하는 삶이란다.
_M#]The Rain Song / Led Zeppelin
내가 이 노래를 다시 꺼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계속해서 할 말들이 줄어들다가 결국엔 몇 가지의 이미지만 남게 될 것이다. 그건 언어로 형용하기 힘든 정신적인 부분이다. 분명 나를 이루는 역사들이 이 노래와 나와의 관계를 암시하고는 있지만, 그게 어디로부터 연결되어서 어떻게 중간에 변질되었으며 그래서 복잡한 꼬임 구조(twisted-structure)를 갖게 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노래는 때마다 나로 하여금 너그러움과 여유, 회복 같은 단어들을 떠올리게 한다. 여전히, 그리고 오랫동안 이 노래를 듣고 있을 것 같다.

Ten Years Gone / Led Zeppelin
레드 제플린의 보컬인 로버트 플랜트첫사랑에 대한 몇 안되는 발라드 넘버라고 하는 이 곡. 어째 요즘은 ‘어 이 노래 좋다.’ 하면 가사가 다 왜 이런지 모르겠다. 분명 처음에는 가사에 별로 신경쓰면서 듣지는 않았다. 그리고 신경쓰면서 듣는다고 해도 단박에 알아 들을 만큼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중에야 가사를 구해 찬찬히 들여다 봤는데 이게 거의 시 수준이라 독해가 쉽지 않았다. 그런데 어쩜 번역하고 나니 이리도 나를 위로한단 말이냐.

Ten Years Gone” is a song by English rock band Led Zeppelin from their 1975 album Physical Graffiti. Originally intended to be an instrumental piece, Jimmy Page used some 14 guitar tracks to overdub the harmony section. Robert Plant
later added lyrics, which are dedicated to an old girlfriend who, ten
years earlier, had made him choose either her or his music.

“Ten Years Gone”은 영국 롹 밴드 레드 제플린의 1975년 앨범인 ‘몸으로 쓴 시(Physical Graffiti)’에 수록된 곡이다. 원래 이 곡은 지미 페이지가 14개의 기타 트랙을 이용해 하모니를 이루는 연주곡으로 만들어졌다. 후에 로버트 플랜트가 십년 전 사귀었던, 그로 하여금 음악과 사랑 사이에서 선택을 고민하게 했던 옛 여자친구에게 바치는 가사를 덧붙였다. (번역이 좀 잘못되었습니다. 정정합니다. 또한 관련 내용을 덧붙입니다.)

Robert Plant wrote the lyrics about a girlfriend who made him choose
between her and his music 10 years earlier. She got the boot. In an
interview with
Rolling Stone magazine (March 13, 1975) the
interviewer, Cameron Crowe, asked Robert Plant what gambles he had
taken. Plant replied: “Let me tell you a little story behind the song
‘Ten Years Gone’ on our new album. I was working my ass off before
joining Zeppelin. A lady I really dearly loved said, ‘Right. It’s me or
your fans.’ Not that I had fans, but I said, ‘I can’t stop, I’ve got to
keep going.’ She’s quite content these days, I imagine. She’s got a
washing machine that works by itself and a little sports-car. We
wouldn’t have anything to say anymore. I could probably relate to her,
but she couldn’t relate to me. I’d be smiling too much. Ten years gone,
I’m afraid. Anyway, there’s a gamble for you.”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이 쓰여진 때보다) 10년 전 그로 하여금 사랑과 그의 음악 사이에서 고민하게 했던 여자친구에 대한 가사를 썼다. 물론 플랜트는 음악을 선택했다. (그녀는 쫓겨났다. -_-;;) 1975년 3월 13일자 롤링스톤즈지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론 크로우 (인터뷰어)는 플랜트에게 어떤 도박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플랜트는 대답했다. “새로운 앨범에 수록된 ‘Ten Years Gone’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를 말씀드릴께요. 내가 레드 제플린에 합류하기 전에, 아주 바닥을 칠때 이야기에요. 당시에 내가 정말 사랑했던 여자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좋아, 나야 당신 팬이야?” 어쨌든 난 팬 같은건 갖고 있지 않을 때였지만, 이렇게 말했죠,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난 (음악을) 계속 해야해.” 아마 그녀는 요즘 꽤 만족하면서 지낼 것 같아요. 지 혼자서 움직이는 세탁기도 있고, 작지만 스포츠카도 갖고 있을테니 말이죠. 아무튼 우리 얘긴 거기서 끝났어요. 어쩌면 아마 난 좀 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 갈 수 있었겠지요. 불행하게도 그녀는 그러지 못했지만. 아마 내가 너무 많이 미소만 짓고 있어서였는지도 몰라요. Ten Years Gone, 뭐 그런 얘기죠. 이게 내가 해본 최고의 도박이였어요. (여자친구냐 음악이냐를 두고 한 쪽을 선택한 것.)”

Page and Plant performed this song once on their Japanese tour at Osaka on February 15, 1996. Jimmy Page also performed this song on his tour with The Black Crowes in 1999. A version of “Ten Years Gone” performed by Page and The Black Crowes can be found on the album Live at the Greek.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는 이 곡을 1996년 1월 15일 일본 투어 도중 오사카에서 한 번 연주했다. 지미 페이지는 1999년 The Black Crowes와의 합동 공연에서도 이 곡을 연주했으며, 지미 페이지와 The Black Crowes의 합주에 의한 “Ten Years Gone”은 Live At The Greek 앨범에 수록되었다.

http://en.wikipedia.org/wiki/Ten_Years_Gone

The Messiah Will Come Again / Roy Buchanan
이 곡을 올려놓고 빈 잔을 다시 커피로 채웠다. 감기에 걸린 것인지 코가 맹맹하고 가끔 목이 간지러워 크게 기침을 한다. 몇 일은 담배를 피우지 말아볼까 하다가, 아까 가게에 가서 담배를 다시 사오고 말았다.
며칠 전 사촌 동생과 만나 잠깐 음악 얘기를 하는데 녀석이 로이 부캐넌을 이야기하더라.

“형, 기타가 우는거 들어 봤어?”
“그럼 들어봤지.”
“로이 부캐넌 들어 봤어?”
“그럼 들어봤지.”
“거기서 기타가 울잖아, 그치 형?”
“그래 기타가 울지.”

Buchanan’s long-standing alcohol and substance problems seemed to worsen with time, culminating on August 14th ,1988, when Buchanan was arrested for public intoxication. Several hours later Buchanan was found hanging in his cell, in the Fairfax County Jail, by his own shirt. His cause of death was officially recorded as suicide, a finding disputed by some of Buchanan’s friends and family.
부캐넌이 공공장소에서 만취했다는 죄목으로 (미국에서는 공공장소에서 엄청 취하면 잡아가는 모양이다.) 체포되었던 1988년 8월 14일은, 그의 오랜 알콜 의존증 문제가 극에 달했던 날이었다. 체포 후 몇 시간 뒤에 그는 페어팩스의 어느 감방에서 자신의 셔츠에 목을 매달린 채로 발견되었다. 그의 죽음은 공식적으로 자살로 기록되었으나 그의 친구와 가족들은 그의 죽음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Roy_Buchanan#Legacy

관심 있다면 여기도 가 볼 것. http://windshoes.new21.org/wind-etc04.htm

A Star In Nobody’s Picture / Ben & Jason
Ben & Jason을 어디서 처음 권유받았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물론 누가 실제로 내게 저 녀석들 음악 좋아, 하고 말 해 주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어쨌든 처음에 찾아 본 여러 평에서 너무 좋은 얘기만 해서 몇 일 동안은 그런 평들에 가세해, 아 이 노래들 참 좋구나, 하고 있었는데 많이 듣다가 보니 힘이 많이 달리는 느낌이 들었다. 모던 락, 이지 리스닝, 네오 포크.. 뭐 어쩌구 그런 것 같은데, 자그마한 소품같은 느낌은 들어도 딱히 이거야! 하는 감이 오질 않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주 듣다보니 가사에 신경이 쓰여서 좋아하게 된 곡이 하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은 정말 먼 거리의 낯 모르는 사람을 상상해 본 일이 있나?
캐나다에 사는 ‘그녀’는 어렸을 때부터 삶이 자신의 생각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랄 만큼 집이 부유하지도 않아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내 – 라고 해봐야 두세 블럭 정도의 상점가가 전부인 – 의 한 식당에 웨이트리스로 취직한다. 성인이 되고 나서 그녀는 정말 자신의 삶이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었지만, 그 균열이 너무나도 거대했기 때문에 쉽게 어디서부터 무엇을 건드려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다. 티븨에 나오는 성공한 삶을 사는 다른 이들처럼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살고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매일 아침 일곱시까지 식당에 나가봐야 한다. 주말 교대조인 웬디는 가끔 이웃 마을에 사는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러 나오질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웬디의 몫까지 일을 해야만 했다. 그녀는 특별한 추억이 없었다. 크리스마스가 되면 옛 첫사랑에게서 카드가 배달되어 오긴 하지만, 카드 따위나 보내다니 아마도 그에게 있어 그녀는 둘이 사귀던 16살 그 즈음에 멎어 있는 모양이다. 존재감도 없어서 누군가 그녀를 떠올릴라치면 한참을 생각해내야만 했다. 어렸을 때부터 귀여움을 독차지 하던 그녀의 여동생이 벤쿠버로 이사를 간 뒤로는, 그녀는 한번도 그녀의 여동생을 본 적이 없다. 정말 평범해서, 오히려 비범해 보이기까지 한 그녀. 그녀는 요즘 진(Jin)에는 손도 대지 않고 보드카만 마신다. 그녀는 가끔 식당을 들리는 택시기사들과 섹스를 하는데, 언젠가 한 번 누군가 그녀에게 왜 그렇게 몸을 쉽게 굴리는가 하고 물었다. 그녀는 그렇게라도 해야지만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대답했다.
그녀는 단 한번도 누군가 갖고 있는 옛 사진첩에서 빛나는 별인 적이 없었다. (She’s a star in nobody’s picture)
그녀는 자신의 삶에서 조차도 엑스트라였다. (She’s an extra in her own life)
그녀는 이게 누구지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전화번호수첩에 적힌 기억나지 않는 전화번호의 주인이다. (She’s a name in somebody’s phonebook)
하지만 그녀도 살아 있다. 살아서 오늘도, 내일도 살아가는 사람이다. (She’s alive.)

Dogs / Damien Rice
‘오렌지 나무를 키우는 여자가 있었어. 그녀는 요가도 할 줄 알았지. 어느 날 갑자기 우리가 방문했을 때, 그녀는 땅에서 잡초를 뽑고 있었네.’ 어쩌구 하며 시작하는 경쾌한 어쿠스틱 기타의 노래가 있다. 그냥 평범한 사랑얘기 같은데, 이상하게 매번 그 노래를 들을 때마다 마음 속이 요동쳤다. 특별히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이건 그냥 이지 리스닝이에요.

그 남자 그 여자의 사정 / 다이나믹 듀오
사실 난 다이나믹 듀오를 잘 모른다. 동생이 어느 날 이 곡을 힘껏 틀어 놓고 설겆이를 하고 있는데, 뒤에서 난 화장실에 가다가 멍하니 서서 끝까지 이 곡을 듣고 말았다.

이 곡의 뛰어난 점은 낙태에 대한 그 어떤 진부한 도덕적 설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서태지의 컴백 홈보다 훨신 뛰어나다.) 대부분의 경우 도덕적 설교는 상대방이 진심으로 자신의 논리에 감화되어 개과천선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의 생각하는 도덕적 수준이 상대방 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한다.

낙태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군대 있을때 사단 사령부에서 1년 정도 파견근무를 했던 적이 있다. 군대에서는 부대가 다르면 자신의 직속 상관이 아니라 해서, 사병들 끼리는 계급에 상관없이 서로를 ‘아저씨’로 호칭하곤 한다. 그런 ‘아저씨’ 가운데 하나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의 친구 중 하나는 오랫동안 사귀고 있는 여자가 있다고 했다. 처음에는 피임 실수로 여자가 임신을 했고 둘은 상의해서 낙태하기로 했다고 한다. 보통은 그런 경험을 하게 된 커플은 곧잘 헤어지곤 하던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둘은 그 뒤에도 서로 잘 지냈다. 그러다가 여자는 또 임신을 했고 또 낙태를 하고 또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고… 나는 그때 ‘아니 씨발 그런 새끼를 그냥 뒀어요?’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난 대체 어떤 것에 화가 났던 것일까 싶다. 여자가 불쌍했을까?

Find Me In Your Dream / Pat Metheny & Brad Mehldau
사실은 이 곡을 넣지 않으려고 했다. 너무 감상적인 것이 아니냐, 하는 자체 검열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샤워를 한 뒤 뽀드득 소리 나는 기분으로 이 곡을 틀어 놓고 만화책을 읽고 있노라니, 너무 감상적이라거나 하는 혐의는 눈 녹듯 사라지고 뿌연 우윳빛 공기 속을 흘러다니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나를 위한 곡일 뿐이지, 하는 생각으로 추가함.

톰 맥레이 첫 내한공연 후감, Tom Mcrae first gig in Seoul

나는 왜 이 69년 영국산 청년이 대한민국 팬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는지 이해 할 수가 없다.

자, 이건 팬으로서의 오피셜한 발언이고.

아직까지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탓인지, 그다지 크지도 않은 공연장의 절반도 채우지 못한 객석에 앉아서 시작시간 전까지 무의미하게 흘러 나오는 무딘 경음악들을 애써 참아내며 나는 확실히 뭔가를 상상하고 있었다. 이 청년은 분명 파퓰러한 뮤지션이 아니라, 그냥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며 동시대를 살아내고 가끔 전화해 꾀어 내면 시덥지 않은 고기 몇 점에 소주 한 잔을 걸치더라도, 그래서 이 무궁한 삶들이 누추하게 느껴질 지라도 끝끝내 네가 있어 산다, 나는 끝끝내 변혁할 것임을 믿는다 고백하며 내일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런 상상이었다. 가끔씩 집중해서 (집중하지 않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를 꼬부랑 글씨들 턱에) 그의 글들을 읽어 보면 10년의 나이 차이가, 대한민국과 영국이라는 지역적, 문화적 차이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짱구 굴리는 모양새는 비슷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트와 바이트로, 또 동축케이블이나 광케이블로 연결된 활자화 된 관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어느 순간 그가 나타나 기타를 튕기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자, 미몽같던 상상들은 천장으로부터 추락해 내게 실물의 톰 맥레이를 던져주었다. 그건… 그다지 멋진 일이 아니었다. 스폿 라이트로부터 그의 각진 미간이 만들어 내는 어두운 눈덩이라던가, 왼발 오른발로 탁탁 바닥을 때리며 리듬을 맞추는 스타일은 지금까지는 내 상상 속에서 온전히 나만의 것이었다. (아, 이러니까 내가 무진장 위험한 스토커 같다는 기분이 든다.) 그러나 이젠 그게 아니라는걸 알아버린 것이다. 그는 그 나름대로 살아서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주체였다. 이건 아마도 스타와 팬 사이의 풀 수 없는 오래된 오해 같은 것일까.

아무튼 정제된 스튜디오에서의 완벽한 곡만 듣다가, 가끔 박자를 놓치거나 줄을 실수로 뮤트시키는 등의 생동감 넘치는 라이브를 듣는다는 것은 그것대로 멋진 경험이었다. 아직 신보인 King of Cards를 구하지 못해서 종종 처음 듣는 곡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가 부르며 유명해진 곡들 ‘Still Lost’, ‘Walking 2 Hawaii’, ‘For The Restless’, ‘End Of The World’, ‘You Cut Her Hair’ 등등을 남몰래 따라 부르며, 몇십년 전에 내한했던 클리프 리차드에게 팬티를 벗어 던졌다는 무시무시한 우리 엄마 세대들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실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만약 프로그램에 없었다면 미친듯이 뛰어나가 그의 멱살을 잡고 신청했을 나만의 톰 맥레이 18번 ‘The Boy With The Bubblegun’이 아무렇지도 않게 시작되었을 때엔,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고 좌석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내가 생각하는 톰의 강점은 그가 자신의 음악에 대해 진지하다는 것이다. 다시. 물론 어느 뮤지션인들 자신의 음악에 진지하지 않을까. 다시. 내가 생각하는 톰의 강점은 그의 진지함의 형태가 나를 움직이게, 나를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버블건 소년의 가사는 정말 근래에 보기 드문 수작이라고 생각한다. 터져 나오는 격한 톤의 분노가 폭발 직전의 한계에 이르러 오히려 외면적으로 고요한 모양새를 이루고 있는 모습은 시퍼렇게 날이 선 예리한 칼날을 연상케 한다.

언젠가 다시 오기를 희망한다는, 어디선가 많이 들어 본 적이 있어서 별 감흥을 주지 못하는 클로징 멘트였어도 나는 그 말을 믿기로 했다. 주로 유럽과 북미에서 활동하던 그가 갑자기 무슨 생각으로 아시아 투어를 온 것인지는 나도 어리둥절 할 정도지만 (그나마도 아직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뿐이다.), 그의 노래가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동쪽의 한 나라에 한 청년을 감동시켰던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가 언젠가 다시 방문할 그 날엔 우리는 더 많아 질 것이고 계속 그렇게 더 많아 질 것이다.

하나, 오늘 9시에 홍대 클럽 Freebird에서 조촐한 팬미팅 (아, 팬미팅이라니!) 과 함께 몇 곡을 부를 예정이라고 한다. 공연장이야 무턱대고 혼자 갔지만서도, 클럽에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가봤으면 좋겠다.

둘, 혹시 어제 공연장에서 사진 찍으셨던 분 계시면 트랙백 좀 쏴주세요. 촬영 안되는 줄 알고 카메라를 안가져 갔더니 후회막심이네효!

Tom, It was a great gig to me last night. I’m afraid you might have been disappointed about small fans. But don’t forget your saying that you hope you’ll come to this country again. We’ll be getting more and more.  

tom mcrae 첫 내한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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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m mcrae의 tour 일정을 업데이트하는 이메일을 확인하다가 그가 곧 유럽투어를 종료하고 한국과 일본에 올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을 진정시키고 네이버에서 검색해보니 역시나…!! 아.. 살다보니 이런 날도 오는구나!! 같이 가실 분!!

gidon kremer & kremerata baltica

인터미션 전에 연주된 두 곡은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기본적으로 현대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있지만(그래도 기든 크레머니까 집중하는 척은 해줄 수 있었다.), 그것보다 내 앞줄에 앉아 있던 두 중년 남녀의 엿 같은 짓거리 때문에 미치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식한 것은 참아도 남에게 피해를 주고도 떳떳한 새끼들은 용서할 줄 모른다. 다행히 인터미션이 끝나고 그 두 남녀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가 전문 감상자도 아니고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사람도 아니어서, 연주가 어땠고 하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다. 다만, 앉았던 자리가 3층이어서 그런지 음이 매우 풍부하게 울렸다. 사실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는 꽤 여러 번 갔었는데, 그때마다 한국 교향악단의 연주는 예쁘지만 너무 마른 여자를 떠올리게 했다. 음과 음 사이에 공간이 많은 것처럼 느꼈다. 그리고 그 연주들은 모두 1층에서 들었다. 앞으로는 3층에서 들어야겠다.

인터미션이 끝나고 ‘The Cinema’란 주제로 이어진 영화음악의 연주는 그럭저럭 들을만 했다. 기든 크레머라는 연주자 자체가 워낙 개성 있고 독특한 인물이어서 그런지, 그가 만든 악단 kremerata baltica도 굉장히 엔터테인먼트적인 면이 강했다. 연주 중간마다 코믹한 상황극(?)을 연출하는 일이 많아서 사람들이 즐거워했다. 다만, 새뮤얼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를 연주할 때 나는 깜짝 놀랐다. 여기는 어떤 연출이나 편곡, 기교도 없이 내가 자주 들었던 그 아다지오 그대로를 연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또 몇 곡을 연주했고 (가벼운 느낌의 재즈곡) 드디어 고대하던 피아졸라의 순서가 되었는데, 아… 내가 항상 녹음 된 음반만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실황의 느낌이랄까, 기든 크레머적인 무언가가 적잖이 빠진 연주가 되어버려서 약간 실망을 했다. 프로그램에 실려 있던 대로 피아졸라는 그의 ‘필살기’인데 말이다. 피곤했던걸까…

아무튼 연주가 다 끝나고 앙콜 2곡 더 하고 막이 내렸다.

어디 숨어 있었는지, 깜짝 놀랄 만큼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서 몰려나와 벤츠나 그랜저를 타고, 혹은 택시를 타고, 혹은 버스나 나처럼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했다. 땀 냄새 가득한 지하철 안에서 갑자기 생애 최초로 거장을 만났다는 긴장감이 단추 풀리듯이 풀려버렸다. 그리고 긴장감의 빈자리에 공허함이 몰려왔다. 아마 대부분 공연이 이렇겠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기든 크레머는 정말 훌륭한 연주가다. 그렇다고 내가 언제나 반드시 만족하는 것은 아니겠지.

열한 시 반쯤 집 근처에 내려서 문득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고, 편의점에서 김밥 몇 개를 사서 집에 들어왔다.

레드 제플린 공연!!

아무래도 떨어진 모양. 10월 1일부터 쭈욱 메일을 기다렸으나 오지 않았다.
사실 진짜 당첨메일이 오면 어쩌나 하고 조금 걱정하기도 했다.
비행기와 콘서트 티켓값이며 기타 경비며.. 이 모두를 충당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소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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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6일 레드 제플린 (먼저 가버린 존 본헴을 제외하고) 이 거의 30년만에 재결합해서 콘서트를 갖는다고 합니다. 아마 진짜 락 스피릿을 느낄 수 있는 역사상 마지막 콘서트라고 생각되네요.

http://www.ledzeppelin.com/

공식 홈페이지에도 나와 있는 내용이니 콘서트의 사실유무는 안봐도 비디오겠지요.

콘서트가 콘서트인 만큼 티겟도 걍 예매하는게 아니라 추첨에 의해서 구할 수 있다고 해요.

http://www.ahmettribute.com/

에서 자신의 정보를 입력하면 10월 1일 발표가 나온다고 합니다. 티겟값은 seated/standing 모두 125파운드 (한화로 약 24만원 가량) 입니다. 아님 말고 식으로 일단 등록은 해뒀어요. 만약에 당첨된다면? 정말 가볼까나.. ㅎㅎ

Sunday, Bloody Sunday

U2 – Sunday, Bloody Sunday

I can’t believe the news today
I can’t close my eyes and make it go away
오늘 그 뉴스를 보고 믿을 수 가 없었어
차라리 눈을 감고 잊어버리려고 했지만 그럴수도 없었네

How long
How long must we sing this song?
How long, how long?
Tonight we can be as one
Tonight
얼마나 오랫동안,
진정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우리는 이 노래를 불러야 하나?
얼마나 더, 얼마나 더?
오늘 밤 우리는 하나로 뭉칠 수 있어
오늘 밤

Broken bottles under children’s feet
And bodies strewn across a dead end street
But I won’t heed the battle call
It puts my back up against the wall
아이들의 발치에 깨진 병들과
거리 곳곳엔 시체가 흩어져 있네
하지만 난 전투가 시작된다는 신호를 들은 적이 없어
나는 벽을 등지고 숨기만 했네

Sunday, bloody sunday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And the battle’s just begun
There’s many lost
But tell me who has won?
The trenches dug within our hearts
And mothers, children, brothers, sisters torn apart
그리고 전투가 시작됐지
진 사람은 많은데
아무도 누가 이긴건지 말해주지 않았어
우리 마음 속에 깊게 참호가 파이고
그리고 엄마들과 아이들, 형제들, 자매들이 찢겨 죽었네

Sunday, bloody sunday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Wipe your tears away
Wipe your tears away
Wipe your bloodshot eyes
네 눈물을 훔쳐라
네 눈물을 닦아라
네 충혈된 눈을 씻어라

Sunday, bloody sunday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

And it’s true we are immune
When fact is fiction and TV is reality
And today the millions cry
We eat and drink while tomorrow they die
The real battle just begun
To claim the victory Jesus won
On a sunday, bloody sunday
이젠 그런 걸 봐도 아무렇지가 않은걸
사실이 허구가 될 때, 티븨에서 말 하는 것들을 그대로 믿어버릴 때
바로 오늘 수백만의 사람들이 울고 있을때
우리는 먹고 마시겠지, 바로 내일 그들이 죽어갈 동안
진짜 전투는 이제 막 시작됐어
주께서 승리하셨다고 선언할 그런 전투가
일요일, 피의 일요일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