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 보통 흡연면허

도로주행 연습하다가 문득 든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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흡연면허

1.

“항상 담배 먼저 뽑으라니까요, 아이 참 답답하시네.”

강사의 불만 섞인 목소리에 주헌은 움츠려드는 자신을 느꼈다. 벌써 몇번째 라이터를 먼저 뽑는건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에 먼저 손이 가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자 다시 해봅시다. 몇번째 설명하는거지만 라이터를 먼저 손에 들게되면 담배를 뽑을때 우물쭈물하다가 라이터를 떨어뜨리는 수가 많아요. 그럼 바로 실격입니다. 이게 작년부터 법이 바뀌어서 라이터 떨어뜨리면 바로 실격이에요, 감점이 아니라. 항상 담배를 먼저 뽑아물고 그 다음에 라이터에요. 아시겠죠? 천천히 해봅시다.”

이번엔 운이 좋았다. 주헌은 담배를 뽑아 입에 물고 라이터를 찾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매끄러운 불티나의 느낌이 손 끝에 전해지자 안도감이 느껴졌다. 그러나 안도감이 도를 넘었던 걸까. 이번엔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렸다.

“허어, 내 강사생활 십년만에 입에 문 담배를 떨어뜨리는 분은 또 처음이요. 무슨 문제 있는거 아닙니까? 병원에 좀 가보셔야겠네.”

비아냥 대는 강사의 목소리 뒤로 수업이 끝나는 차임벨이 울렸다.

“주헌씨 다음 시간도 있죠? 쉬는 시간에 놀지 말고 연습 좀 하세요. 좀 쉬다가 십분 뒤에 봅시다.”

주헌은 작게 대답을 하고 그만 자리에 주저 앉았다. 가슴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담배를 뽑는 기초단계부터 막히기 시작한 자신에 대한 분노보다는 일단 이 지옥 같은 수업으로부터 잠시 멀어졌다는 고마움이 더 크게 느껴졌다.

그는 잠시 공허하게 천장을 바라봤다. 왜 흡연면허같은걸 따야 하는걸까. 나이 서른이 넘어서까지 그는 흡연면허 없이도 충분히 행복했다. 니코틴이 필요하면 흡연자들 옆에서 간접흡연만으로도 충분했다. 아직까지도 흡연면허가 없냐고 놀리는 직장 동료들에도 어지간히 면역이 된 그였다. 그런데 연애가 문제였다.

2.

올해 초 그는 거래처에 인사차 들렀다가 신입 여사원 하나를 알게 되었다. 신입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생글생글 웃으며 어설픈 농담에도 환하게 웃어주는 그녀가 주헌은 마음에 들었고, 몇달 전부터는 이야기가 잘 풀려 몇 번인가 가벼운 데이트를 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녀와 함께하는 시간은 정말 즐거웠다. 이처럼 마음이 맞는 상대를 만날 확률도 굉장히 드물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취향에 있어서 윤대녕과 박상우 정도의 차이는 있었다. (그녀는 윤대녕의 굉장한 팬이었다. 주헌은 오래전에 윤대녕을 포기했지만, 그다지 내색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런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만했고 둘 다 이와이 슈운지를 좋아한다는 점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완벽한 커플이라고 해도 무방할만큼 마음이 맞았다.

둘이 연인이 되기로 약속하고 일곱번째 데이트를 할 때의 일이다. 계절은 늦가을로 바뀌어 거리엔 낙엽이 가득했다. 주헌이 회원으로 있는 영화 커뮤니티에서 소규모 영화배급사와 함께 이와이 슈운지 특별전을 기획했는데 그의 작품을 연달아 밤새도록 상영하는 것이었다. 주중에 열리는 상영회라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좋은 작품을 함께한다는 기대감으로 그녀의 의향을 물어 함께 월차를 내기로했다.

극장은 작았지만 아늑했고 시간은 꿈처럼 흘렀다. 두 편의 영화가 끝나고 30분간 쉬는 시간에 둘은 로비로 나갔다.

“오빠, 그런데 조금 출출하지 않아요? 나 뭐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샌드위치라도 사올께. 커피도 마실꺼지?”

“응. 사서 흡연실로 와요. 오래 참았더니 담배도 피우고 싶어졌어.”

“알았어. 가 있어, 금방 사갈께.”

그녀가 흡연실 쪽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주헌은 매점으로 향했다. 작은 불안의 조각이 마음 속에서 달그락거렸지만 무시하고 먹을 것을 사서 흡연실 앞에 섰다. 그 조각은 이내 실체를 갖고 표면에 나타났다.

‘흡연 2종 보통 이상 출입가능.’

주헌은 난감했다. 흡연면허가 있는 사람만이 흡연실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인식이 비흡연자에 대해 차별적이라고 하여 최근에는 비흡연자도 들어갈 수 있는 흡연실이 확산되는 추세였다. 물론 만 십오세가 넘으면 누구나 취득할 수 있는 면허라서 거의 모든 사람이 통과의례처럼 흡연면허를 따기도 하지만 주헌이 그 나이였을때에는 누구도 지금 이 면허를 따지 않으면 이십년 뒤에 너는 큰 난관에 봉착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충고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그 자신이 흡연자가 아니라고 해서 자연스럽게 상영관의 흡연실 상황 따위를 체크해보지 않은 것도 문제였다. 무엇보다 주헌은 그녀에게 흡연면허도 없이 담배도 피우지 못하는 남자로 보이기 싫었다. 그때 우연히 문이 열리고 그녀가 얼굴을 내밀었다.

“오빠, 뭐해요 들어오지 않고?”

“아, 응. 흡연실 찾다가 이제야 왔어.”

“어서 들어와. 여기 동호회에서 오빠 아는 분이라는데 엄청 재밌어요.”

주헌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고 지키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 뒤에 흡연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수십 기압의 유독성 기체로 가득한 금성같았다. 그는 그 안에서 사람들이 히히덕거리며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는 상황을 즉시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 곳은 지옥이었고 악마들이 그의 처분에 대해 상의하고 있었다.

“오빠, 여기 앉아요. 뭐 사왔어요? 나 참치 샌드위치는 싫은데. 아, 햄치즈다!”

입을 열면 기침을 할 것 같아서 주헌은 말쑥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샌드위치와 커피를 넘겼다. 그녀는 한참 내가 몇 번 오프모임에서 얼굴을 익힌 사내와 대화를 나누는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주헌은 매운내를 가시게 하려고 연신 커피를 마셨다.

“… 그렇게 해서 주헌씨가 동호회 내에서 잠깐 유명해지기도 했었다니까요. 이 사람 참 웃긴 양반이에요.”

사내는 그렇게 말을 맺으며 주헌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렇게 아리따운 아가씨를 옆에 두고 이 양반은 왜 이리도 멀뚱하담? 담배 안 피워요?”

“아, 저… 마침 담배가 떨어져서요.”

주헌은 제발 그 다음은 말이 이어지지 않기를 바랬다.

“무슨 담배 피우는데? 그냥 이거 피우세요.”

그가 내민 것은 뻘건 포장지가 위압적인 말보로였다. 주헌이 듣기로 그것은 가장 독한 담배 가운데 하나였다. 가끔 간접흡연을 할 때에도 말보로를 피우는 사람 옆에서는 그 독함 때문에 어지러움증이 일 정도였다. 그는 정말 이 상황을 고사하고 싶었다.

“그럼 고맙게 피울께요.”

그러나 생각과 달리 손은 반쯤 삐져나온 말보로로 향했다. 아주 조금만 빨면 괜찮을꺼야,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꺼야, 그는 자신에게 암시하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사내가 불을 붙였다.

아주 약간이었다. 빨아들인 연기의 양으로 치자면 2에서 3cc도 되지 않았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주헌은 구토에 가까운 기침을 내뱉았다.

“어, 어, 오빠 괜찮아요? 왜 그래 갑자기?”

“이 친구 사레들렸나… 괜찮아?”

순간 주헌은 흡연실 안의 모든 시선이 자신에게 향하는 것을 느꼈다. 격렬한 기침과 부끄러움과 흡연면허가 없는 자신에 대한 혐오가 뒤섞여 울음이 날 것 같았다. 한참을 그렇게 기침하다,

“미안해… 사실 나 면허 없어.”

그 말만 남기고는 도망치듯이 흡연실을 빠져나왔던 것이다.

3.

그 뒤 며칠간 주헌은 그녀의 연락에 답신하지 않았다.

‘오빠 괜찮아요? 오빠가 갑자기 그렇게 가버려서 많이 당황스러웠어요. 연락주세요.’

‘오빠 면허 없는게 무슨 창피한 일이라고 그래요? 면허야 따면 되는거지요.’

‘나는 오빠가 면허 없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제발 괜찮으니까 연락 좀 주세요.’

‘내 주위에도 자발적 비흡연자들이 많아요. 요즘에는 그런거 다 인정하는 시대니까요. 오빠는 전혀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취향인걸요.’

‘오빠, 정말 이러기에요? 자꾸 이렇게 답장 안하면 나 화낼꺼에요?’

‘오빠, 제발…’

‘오빠…’

그 며칠간이 주헌에게는 군대 2년을 며칠로 압축한 것보다 훨씬 더 견디기 힘들었다. 어두운 방 안에서 그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 뜯으며 왜 이십년 전 친구들이 면허 따러 학원에 등록할때 그들을 비웃었는지 후회했다. 기회가 된다면 다시 그때로 돌아가 자신을 설득하고 싶었다. 제발 남들 다 하는거 똑같이 좀 하라고. 네놈 인생은 항상 그 삐죽거리는 태도 때문에 아무것도 안된다고.

얼마나 울었는지 아침에는 삼십분쯤 눈두덩이에 냉찜질을 해야 붓기를 빼고 출근할 수 있을 정도였다.

며칠의 방황 끝에 주헌은 면허를 따기로 결심하고 그녀에게 메세지를 남겼다.

‘미안해, 그동안 연락 못해서. 네가 잘못한 것은 전혀 없어. 이건 모두 다 내 문제야. 지금 이대로는 네 앞에 나설수가 없어. 나 면허 따기로 결심했어. 면허 딴 다음에 연락할께.’

곧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그래요. 꼭 연락해줘요.’

주헌은 그 답장이 조금 메말라있다고 느꼈다.

4.

“아이고 이제 잘 하시네. 담배는요, 뭐 다른 것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자기가 그걸 즐긴다고 생각해야됩니다. 잔뜩 긴장해서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아주 간단한 것도 잘 안되고 그러거든요.”

“말씀 감사합니다. 시기가 지나서 하려니까 잘 안되네요, 긴장도되고.”

“그런 말씀 마세요. 요즘엔 오십 육십 먹고도 다 따러 오세요. 이제 느끼는거죠, 흡연면허 없으면 정말 불편하다는걸. 주헌씨는 그나마 빨리 생각 바꾸신거에요. 아무튼, 잘 하셨고요, 내일은 도너츠 코스 들어갑니다. 이게 뭐 어렵다고들 하지만 몇가지 요령만 알면 쉬워요.”

“네 감사합니다. 내일 뵐께요.”

“그래요 내일 봅시다.”

5.

주헌은 결국 흡연면허를 취득했다. 1종 보통이었다. 1종 보통이면 타르 함량에 상관없이 시중에 출시되는 거의 모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자격이 있는 면허였다. 심지어 짧은 구간에 한해서는 도보 흡연도 가능했다.

관할 경찰청에서 면허를 받고 나오자마자 주헌은 주머니에서 뻘건 말보로와 지포라이터를 꺼냈다. 지포라이터는 한정판으로 꽤 비싼 값을 치르고 산 것이었다. 그는 열심히 연습한 결과로 지포라이터를 손가락으로 이리저리 돌리며 곡예에 가까운 솜씨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주위에서 경탄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는 한껏 부풀어 올랐다.

‘오늘 면허를 땄어. 면허를 가지고 있다는 것 만으로도 이렇게 기분 좋은 것인지는 정말 몰랐어. 너를 만나고 싶어. 그동안 많이 보고싶었어.’

주헌은 그녀에게 메세지를 보냈다. 이내 답장이 왔다.

‘오빠, 정말 축하해요! 나도 그동안 보고싶은걸 꾹 참았어요. 면허 따느라고 고생 많았어요. 오늘은 정말 기쁜 날이니까 제가 오빠에게 좋은 곳에서 저녁과 함께 맛있는 와인을 사고 싶어요! 잘 아는데가 있거든요. ^^’

기뻤다. 기뻐야 했다. 기다렸던 메세지였다. 그러나 주헌은 기쁨을 느낄 수 없었다. 와인이라고? 그는 음주면허가 없었던 것이다. 주헌은 반쯤 빨던 담배를 비벼 끄고는 애꿎은 지포라이터의 표면만 계속해서 문질렀다.

Fin.

개에게도 불성이 있는가

소리 소문 없이 친구들이 사라졌던 몇 해 전, 광기어린 살육의 시기를 잘 버텨온 우리에게는 적절한 포상이 주어졌다. 발로 차거나 담배 불로 지지는 일 대신에 사람들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주었고 때로는 맘씨 착한 주인을 소개 받기도 했다. 나와는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같은 동네의 점순이는 며칠 전에, 그녀를 유심히 지켜보던 꼬마의 부모에 의해 입양되었다. 나는 그녀가 자동차에 실려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하염없이 지켜봤다. 별로 이별이 가슴 아팠던 것은 아니지만, 항상 근처에서 볼 수 있던 것이 사라진다는 건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이럴때 술을 마신다지만, 나는 그냥 배회할 뿐이었다. 냄새를 맡고 영역을 표시하고 기분 나쁜 느낌에 컹컹 짖고 나면 땅거미가 지기 시작했다.

그 날은 어제와 같은 날이었다. 내 영역에서 낯선 냄새를 맡기 전까진 그랬다. 전체적으로 숫자가 많이 줄어서 이제는 남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녀석들을 쉽게 찾을 수 없던터라, 뉴페이스가 등장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나는 약간 기쁘기까지 했다. 동네를 한바퀴 돌고 나니 시장 입구에서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멍하니 앉아 있는 녀석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일단 녀석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낮게 으르렁 거렸다. 녀석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것처럼 소리가 나는 내 쪽으로 고개를 한 번 돌리더니 다시 시장 쪽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나는 경계를 풀었다. 어차피 이 곳은 내가 혼자 독식하기에는 너무도 큰 장소였다.

나는 녀석의 옆에 앉아서 슬쩍 말을 걸었다.

‘서로 상처주는 일은 피하자고. 원하면 필요할 때까지 여기에 머물러도 좋아.’

‘고맙군.’

‘이 근처에서는 못보던 얼굴인데?’

‘자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이 먼 곳에서 왔지.’

‘떠돌이 개는 살아남기 힘든 세상이야. 나이도 있어 보이는데, 이제 어딘가에 정착해서 사는게 어때? 마침 여기는 나 혼자 관리하기도 벅차고 해서 말이야.’

‘마음은 고맙지만, 나는 아직 어딘가에 정착할 생각은 없네.’

‘뭐, 좋아. 언제든지 말만 하라구.’

그 순간 멍한 녀석의 눈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컹컹, 그는 저 먼 도로의 한 곳을 바라보며 짖었다.

‘이봐, 좋은 구경 시켜주지. 따라와.’

나는 녀석을 쫓아갔다.

‘저 늙은 사람은 말이야, 신기한 재주가 있어. 그가 들고 다니는 저것에서는 기묘한 소리가 나거든. 저걸 듣고 있노라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텅 빈 기분이 들어. 마치 내가 전봇대 만큼이나 오래 산 것 같은 그런 기분.’

늙은 사람이 소리를 내고 그 주위엔 서너명의 사람들이 모여서 그가 내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녀석은 가끔 컹컹하면서 그 소리에 장단을 맞추는 것처럼 굴었다.

‘나는 내가 기억할 수 있을때부터 저 늙은 사람을 따라다녔어. 나는 항상 묻고 싶었지. 어째서 당신이 내는 소리가 나를 이토록 흔드는가 하고. 내가 느끼는 것은 좋은 기분일까, 나쁜 기분일까… 그것도 모르겠어. 아무 것도 몰라. 내 어미가 나를 낳고 어느 추운 날 우리 형제가 뿔뿔이 흩어졌고, 또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의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게 이 순간을 위해서 필요했다는 기분이 드는거야. 나는 이상한 개일까? 나는 이런걸 느껴서는 안되는걸까? 이봐, 젊은 친구. 자네는 뭐 느껴지는게 없나?’

‘인간의 소리라는 것 밖에는 모르겠는데. 이런건 여기선 자주 듣는다고. 빛이 나고 소리가 나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오고, 소리만 나오는 물건에서도 자주 나와. 그런데 난 네가 느낀 것 같은건 한번도 느껴보지 못했는걸.’

‘그래… 그렇군. 역시 이건 나에게만 들리는 소리인가보군.’

그 뒤로도 저녁까지 우리는 함께 그 늙은 사람의 근처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며칠이 지났다. 여전히 늙은 사람은 아침마다 같은 장소에서 소리를 냈고, 늙은 녀석도 그 근처에 머물면서 그 소리를 들었다. 나는 그 늙은 녀석이 뭘 먹는걸 본 적이 없어서, 가끔 먹을 것을 나눠 주었다. 그러나 그는 먹는둥 마는둥 했다.

‘좀 먹지 그래. 이래서야 어디 팔려가지도 못하겠군.’

그는 웃을 힘도 없는지 입가만 약간 움직이다 말았다.

‘젊은 친구, 자네는 자네가 왜 개로 태어났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이 세상 수만 생명 가운데 어째서 개일까 하고 말야.’

‘내 어미가 개였으니 나도 개인거지.’

‘자네 어미가 개인 것은 어떻게 알고 있지?’

‘아니, 자기 어미가 개인 것을 모르는 개도 있단 말이야?’

‘내 말은, 그걸 자네가 기억하느냐 이거지.’

‘나는 내 어미 젖을 먹고 자랐어.’

‘그래 그 이전엔? 자네가 자네 어미의 자궁을 뛰쳐나와 첫 울음을 터뜨렸던 그 순간이 기억나는가? 아니면 자네가 자네의 형제들과 함께 어두운 자궁 안에서 이따금 몸부림 치던 것들이 기억 나던가? 아니면 자네가 수태되던 그 어느 뜨거운 여름 날이 기억 나던가?’

‘그런걸 기억하는 생명이 있을까?’

‘그렇다면 어째서 우리는 우리가 다 자기의 형태대로 태어난 것을 알 수가 있는거지? 우리의 어미 아비가 태어나지도 않았을때 우리는 무엇이었을까. 무엇이 나로 하여금 이런 고민을 하게 만드는걸까. 내 마음은 어째서 산처럼 묵묵히 자기 있을 곳을 알고 있지 못할까. 내 마음은 어째서 봄날 민들레처럼 얕은 바람에도 하늘로 불려 올라가는걸까…’

‘병에 걸린 모양이군.’

‘맞아, 병이라면 병이지. 나는 개라는 병에 걸린거야. 병은 이름 붙이는 순간 병이라네. 마음병이지. 마음에서 모든게 시작된다네. 저 늙은 사람의 소리는 단지 내 마음에 불을 켠 것 뿐일지도 모르지.’

또 며칠이 지났다. 늙은 녀석은 몇 번 숨을 헐떡이다가 조용히 눈을 감았다. 늙은 사람은 그 순간 내던 소리를 멈추고 늙은 녀석을 옆구리에 끼더니 자리를 떴다. 다시는 그를 볼 수 없었다.

나는 그 뒤로도 가끔 늙은 사람이 다시 이 동네를 찾을까 싶어서 예전 소리를 내던 장소를 찾곤 했다. 내가 그 장소를 찾을때마다 내 귀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건 사람의 소리도, 개의 소리도 아니었다. 꽃이 피는 소리였다. 꽃이 피는 소리라니! 개의 감각이 아무리 예민해도 그런 소리는 듣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분명히 꽃이 피는 소리였다. 어느 따뜻한 봄날에 하늘에 반짝이는 것으로부터 따뜻한 기운이 내려오는 소리와, 바람이 산을 움직이게 하는 소리와, 땅이 움직이다가 멎는 소리와, 온갖 살아 있는 것이 나이 먹는 소리와, 죽어가는 소리와, 태어나는 소리와…

나의 온 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Q : 개에게도 불성이 있습니까.

A : 개에게 물어보거라.

어쩐지

어쩐지, 그는 옛날부터 모든게 시시하게 느껴졌던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삶은 매우 느리게 그 자신의 가슴을 관통하고 있었지만 그것은 너무나 느려서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그런 느림이었고 그래서 단 한번도 실감을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어쩌면 그가 삶보다 더 느리게 운동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중요한 것은 항상 손끝보다 조금 더 먼 곳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 것도 잡히지 않았다.

그는 단지 조금 더 기다려 볼 참이었다. 이런 거대한 사기극이 애초에 어떻게 가능했는지, 또 언제까지 가능할 것인지 마치 타인이 된 것처럼 관찰해 볼 요량이었다. 그는 앞으로도 쇠털처럼 많은 날들을 살아내야 할 것이므로 생활이 조금 정체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철저히 방기하는 것은 그에겐 오히려 매우 바지런을 떠는 일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