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실대 국문과 82학번 박래전 열사 추모제 리플렛. 우리에겐 올 해도 이 모든 것을 부여잡고 견뎌야 할 의무가 있다.
처음엔 좀 더 강렬한 이미지로 작업하려고 했으나 (분신 현장 사진이라던가..), 너무 심하다는 의견이 많아서 절충했음.
내가 좋아하는 소리
함석 처마에 (요즘엔 함석 대신에 알루미늄을 쓰지만) 여린 비 내리는 소리.
슬림 어쿠스틱 기타 조용히 튕기는 소리.
새벽에 문자가 와서 ‘딩-동’ 하는 소리.
한 여름 아득하게 먼 곳에서 천둥이 치는 소리.
가을에 살며시 바람이 불어 낙옆이 소슬거리는 소리.
새벽에 엄마가 설거지 하면서 조용히 부르는 찬송가 소리.
이상한 밴드의 이상한 댄스음악
얼마 전에 MBC에서 일요일에 하는 진실 혹은 거짓인가.. 하는 프로에서
영국의 음악그룹인 ‘첨바왐바(Chumbawamba)’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었다.
귀에 익은 음악의 뒷편에 이런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니 놀랍기도 하고,
다시 한 번 손이 불끈 쥐어졌다. (그나저나 오락프로에서 이런 내용이 방영되다니
놀라울 뿐이다.)
관계의 최상급이 있다면 그건 아마도 내가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보는 것 – 역지사지 일
것이다. 영어의 숙어 가운데 ‘put yourself in the other person’s shoes’ 즉, ‘남의
신을 신어보다’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역지사지의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발에 잘 맞지도 않는 남의 신을 신어 본다는 것은 그만큼 역지사지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학생이 노동자의 입장이 되어 본다는 것, 영국인이 아닌 우리가 리버풀항만노동자들의
절규에 동참한다는 것, 천재지변에 신음하는 동남아시아 인민의 고통을 함께 느낀다는 것,
언제 폭격을 당해 죽을지도 모르는 중동 어린이의 불안함을 공유한다는 것은 모두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래, 가장 현명한 자가 있다면 그는 쇼펜하우어식의 천재일 것이다. 신적 직관을 인간의 몸에
담고 세계를 꿰뚫어 사물을 보편으로 경험하는 자. 그에게 세상은 이질적이고 불편한 대립자들로
가득찬 곳이 아니라, 대립을 넘어 하나의 전체인 세계이다.
그 아래 단계는 깊고 끈질긴 헤아림을 통해 동일성을 체득한 자 – 철학하는 자이다. 그에게는
물론 직관 같은 것은 없다. 그는, 그러나, 합일의 가능성을 믿는다. 근대의 사유, 차등하는 사유,
구분짓고 전체에서 ‘나’를 분리해 내고 ‘너’를 존재의 저편에 유기하는 사유가 있었다.
철학하는 자는 끝내 이 대립을 끝장내고 찟긴 ‘너’와 ‘나’를 하나로 기워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철학하는 자는 경험하지 않아도 대립의 본질을 이해한다.
그 다음으로는 경험을 통해서만 ‘아는’ 자가 있다. 고통받는 타인이 바로 자기임을, 그는 전혀
알지 못한다. 그에게 세계는 닫혀있으며, 어둠으로 가득차있다. 그러나 그런 그에게도 폭력의 세월은 닥쳐온다.
그는 자신이 영원히 주체로 남을 것으로 믿고 있지만, 타인에 의해서 언젠가 그는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런 후에야 그는 간신히 자신의 공간에 타인을 위한 공간을 마련한다.
마지막으로 경험해도 알지 못하는 자가 있다. 이 자가 아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무지함이 순수함을 의미한다면, 그래도 좋겠지만, 이 자의 무지함은 무자비한 폭력일 뿐이다.
신적 직관을 갖는 것은 극히 드문 일이므로 이런 경우는 논외로 한다고 하고, 숙고를 통해
하나됨에 이르는 철학하는 자의 길이 있다면, 아마도 그것이 우리에게 허락된 가장 강력한 무기일 것이다.
내가 비정규직이 아니더라도, 지진이나 태풍에 상처입지 않더라도, 전쟁의
참화로 인한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지 않더라도 그런 자리에 내가 있다면 나 또한 같은
고통을 받게 되리란 것은,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글로 알리지 않아도 당연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제 남은 일은 그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연대는 공감하는 것이다.
공감은 함께 행동하는 것이다. 함께 행동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세계을 회복시키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5 : 18
“작은 유리병에 담긴 채 섭씨 6도로 유지되는 냉장고에 12년 동안 방치된 올름이 한 마리 있었다. 나중에 꺼내보니 그것은
여전히 살아있었다. 해부를 해보니 소화계가 완전히 사라지고 말았다. 올름은 100년을 산다고 한다. 동굴의 차가운 물에서 거의
먹지도 않고 살아가는 동물이니 그럴 법도 하다. 하지만 바깥에 비가 내릴 때 흐름만 약간 바뀌는, 밤도 낮도 없는 영원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동물에게 백년, 즉 36,500일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피해야 할 적도 없으므로 거의 방해받지 않은 채 세월을
견디는 것일 뿐이다. 올름은 그저 멸종 대신 망각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경이로운 생명’ – 팀 플래너리
17 : 37
미안하다. 스크램블 에그하고 베이컨하고 토마토 구운거랑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비싼 커피를 마셨다. 요즘 돈이 너무 없어서 콩다방도 못간다. 그래서 인스턴트 커피를 프림이랑 설탕도 안넣고 옅게 타서 마시지. 간만에, 너무 맛있는 커피를 먹어서 염치 불구하고 석잔인가.. 넉잔을 연속으로 리필했지. 눈물이 날 뻔 했다.
봄인데도 너무 춥고, 마음이 시렵다. 따뜻한 커피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알아버렸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유서를 쓴다던가 마음에 공황이 온다던가 감정이 심하게 요동한다던가 그런건 전혀 없고, 대신에 자살의 방법만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돼요. 관자놀이에 느껴지는 총구의 서늘한 느낌, 아니면 손목을 긋는다던가, 약을 먹는 생각도 하고… 쓸데없이 디테일에 너무 집중하는건 아닌가 (웃음) 하지만 어떤 큰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이 없어요. 자살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의미한 것 같고…”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 지네…
“그런데 이미, 한 육개월 이상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 관계가 여전히 친구인건가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건 나중 얘기고… 나는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 댈 사람이 필요한거에요. (어, 그럼 나도 친구?) 아니. 당신은 묻기만 하고 자기 얘긴 안하잖아.”
—>
건물의 하수도 공사인가 뭔가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착암기 소리가 요란하다. 휴일은 좀 멈춰 주어도 좋으련만, 하루 반을 뜬 눈으로 지새고 술 한 잔을 마시고서 죽은 것처럼 잠들려던 계획이 소음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래도 나는 기어이 잠들고 만다. 신문지 맛이 나는 잠이다. 일을 하는 것 같은 잠. 잠깐 제주항공의 프로펠러 여객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16 : 14
When It rains – Brad Mehldau
Storms – Perry Blake
Conversation with a stone – Jan Garbarek
요즘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는 세 곡.
어디를 가는 중이었는데, 계속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가버렸다.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오는 도중에 비는 그쳤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네시 사십분, 사십 일분..
하늘은 흐리다. 명도가 높은 시야. 넓게 퍼진 들녘. 서쪽 끄트머리에서 번개가 치는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 아직 비는 오지 않는다. 아직. 갈 곳이 있는데, 그냥 여기 주저 앉아버리고 싶다.
인간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성을 최고로 사용하는 일이다.
자신에게 자신에 대해서 되묻는 다는 것. 그리고 되묻는 자신에 대해서 고민한다는 것.
이것만큼 완전히 목적인 일이 또 있을까?
어라?
홈페이지 방문자 수가 무려 40000번을 넘었군요. 어제 정돈 것 같은데…
와, 상상도 못 할 만큼 끔찍하게 많은 숫자입니다. 아니, 이걸 돈으로 계산하면 고작 4만원 아냐.. -_-;;
꿈
마지막으로 짐을 정리하며, 어머니는 내게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처연한 표정으로 만류했지만, 이미 내 마음의 절반은 우주에 가 있었다.
발사대로 향하기 전에 카메라 샾에 들러 카드로 300mm짜리 망원 렌즈를 구입했다.
예상 외로 발사대 근처는 한산했다. 군인들이 분주하게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발사 책임자가 나와 내 동료에게 다가와서 이상한 이야기를 했다.
“자, 결정을 내리세요. 오해가 있었는데, 당신들은 우주에 일주일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삼년을 머물게 됩니다. 원치 않으면 지금 그만 두셔도 괜찮습니다.”
내 동료는 그 말에 기겁하며 자기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상관없었다. 가겠다고 했다.
니콘 본사에서 내게 프로토 타입의 초망원 렌즈를 선물했다. 이거면 우주에서도 지표면을 상세히 볼 수 있다고 했다. 괜히 300mm짜리 렌즈를 샀나보다 하고 후회했다.
로켓이 진동하며 중력을 뿌리치고 대기권을 벗어나자,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지구의 동쪽, 그러나 우주에서 방향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에서 갑자기 태양이 떠올랐다. 평생 그렇게 밝은 태양은 처음이었다.
우주 정거장에 로켓이 도킹하고, 무중력 상태에서 정거장 안으로 들어갔다. 정거장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소리도 없고, 진동도 없는 우주. 나는 초속 몇 킬로미터 인가로 지구 정지 궤도를 돌고 있었지만, 움직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오랫동안 누구와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외로울 때마다 카메라로 지구를 관찰했다.
정거장은 지구의 밤 쪽에 떠 있었으므로, 내가 볼 수 있는 것은 지구의 야경 뿐이었다.
차들이 길게 늘어 서 있고, 아파트는 이빨 빠진 옥수수처럼 곳곳에 불이 꺼져 있었다.
더 메싸야 윌 컴 어게인
작게 웃으며
한 번 뒤를 돌아보더니
그,
어둠의 왕자 말이오,
그는 과거로 돌아가버렸소.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서 이야기했지만,
이번엔
내가 한 번 이야기 해보려 하오.
어떤 마을이 있었다오.
‘세상’이라고
사람들이 부르던 마을이었지.
아주 외롭고… 외로운 마을이었소.
그가 마을에 나타나기 전까진
그 마을은 슬픈 곳이었소.
그가 나타난 뒤에
사람들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차기 시작했지.
하지만 의심하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오.
불신하고,
조롱하기 시작했지.
그래서 그는 떠나가 버렸소.
그래서 이 마을은
어제보다 더
더, 더 슬퍼지게 되었다오.
나는 세상을 떠돌아 다니며
믿을 수 없는 일들을 목격했소.
하지만 믿을 수 밖에 없다오.
그가 언젠간 다시 돌아 올 것임을.
—>
그러고 보니 올 해로 30주년이구나. 추모식이라도 해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