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

오래전에 읽었던 어느 일본 SF소설가의 작품 가운데, 사람들이 너무 일에 중독되어 자신이 과로로 죽었는데도 죽은지 모르고 계속 살아갔더래는 이야기가 있다. 주인공은 속이 답답해 소화불량인줄 알고 병원에 갔더니만 의사가 어두운 얼굴로 “당신, 심장이 멎어있어요.” 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그러면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요즘 당신과 같은 증상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엊그제 봤던 (일본) 괴기만화에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있는데, 초자연적인 현상에 잘 엮이게 되는 주인공이 친구의 집을 방문한다. 친구는 주인공을 따로 불러 “우리 아빠한테 말 걸지마. 사실은 아빠가 며칠 전에 자살을 했는데, 하도 건망증이 심해서 자꾸만 집에 돌아오셔. 지금은 보통인 상태로 있지만, 어떤 계기로 자신의 죽음을 자각하게 되면 굉장히 난폭하게 변하거든.” 라고 말해준다. 그런데 알고보니 친구와 친구의 어머니도 죽어있었다. 연유인 즉슨, 친구 아버지가 정리해고로 인해 자책하다가 자신의 부인과 딸을 도끼로 살해하고 자신도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던 것이다.

일본에는 이런 식의 분위기같은 것이 널리 퍼져 있는 모양이다. 의외로 무섭지 않고 오히려 착잡한 기분이 된다.

오늘 아침, 어머니의 출근 모습이 꼭 그랬다. 그녀는 살아 있는 것일까? 어두운 복도를 걸어 올라가며 잠깐 내 쪽을 흘겨보는데, 그 무표정함이란. 냉정함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며, 그야말로 얼굴에서 표정이라 이름 붙일 만한 것들을 모조리 긁어다가 불태워버린 것 같았다. 그녀의 심장 언저리를 만져볼까 했다가, 혹시라도 심장이 뛰지 않고 있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스쳐 지나가서 결국 그러지 못하고 보냈다.

그러면서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어서 가족이 과연 어떤 것으로 전락해버렸는가, 에 대해서도 잠깐 생각해봤다. 경제적으로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정한 거처에서 함께 밥을 먹는 사람들? 모두는 날마다 삶도 아니고 생활도 아니고 그저 ‘내일도 살아있기’ 위해서 돈을 벌러 나갔다가 밤늦게 귀가한다. 이것이 매일, 매주, 매달, 매년 반복된다.

아버지가 (어디선가 이제 아버지 얘기 안하겠다고 했던 것 같지만) 매주 직장 동료들과 천원씩 모아서 로또를 사 오신다. 내게 번호를 맞춰보라는 것이다. 나는 그게 사실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아버지는 막연하게 ‘로또에 당첨되기 위해’ 당신의 돈으로 오천원 어치 로또를 사오시는 것이다. 직장 동료들과의 재미로 하는거야 내가 뭐라 할 것이 못되지만, 아버지 스스로가 자신의 돈으로 로또를 사오신다는 것 자체가 내겐 큰 충격이다. 심지어는 주유소에서 주는 무슨 응모권이나 과자를 먹고 나오는 이벤트 안내 종이까지 다 가져오신다. 왜? 타워팰리스에 가기 위해서?

설마. ㅎㅎ.

일기

이틀전인가… 우연하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매운음식 자꾸 먹게 되는 것처럼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에 자꾸만 그만 보려고 해도 멈출 수가 없어서 끝내 백갠가가 넘는 이야기를 다 보았다. 십오년만에 무서워서 잠이 잘 안왔다.

무서운 이야기를 보면서, 화알짝 열어 놓은 창문 밖에 백열등에 의해 생긴 기묘한 음영들이 자꾸만 나를 지켜보는 것 같았다. 까놓고 얘기해서, 중간에 창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너무 무서워서.

물론 이틀 정도 지나고 나니까, 다시 모든 것에 무덤덤해졌다. 오늘의 창밖은 어둡다. 가을 바람이 나뭇잎을 흔들고 간다.

모든게 뒤죽박죽이 된 십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온전하게 서 있을 수 있는 어떠한 임계점이 있다면, 그 이전도 그 이후도 아닌 딱 그 점에 서 있는 경우가 최악이다. 유리컵에 조금씩 물을 붓다 보면 어느 순간 표면장력에 의해 컵 높이 이상으로 물이 ‘쌓이게’ 된다. 저 물은 과연 언제 쏟아질 것인가, 뭐 이런 얘기다. 나는 아마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심약한 정신. 어렸을 때 나는 내가 미치지 않는 것을 굉장히 다행스럽게 생각했다. 내 ‘정신’을 두고 보면, 나는 지하 십팔층 감옥에서 온 몸에 팔뚝만한 쇠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을 상상한다. 쇠사슬은 단단하게 벽에 고정되어 있어서, 그는 결코 몸을 바닥에 뉘일 수 없다. 그래도 미치지 않는게 다행일까? 이제 그냥 이거 놔버리고 싶은데.
문제는 정말 없다. 나는 좋은 가족과 좋은 친구들, 경제적으로도 당장 굶을 정도로 가난하지도 않고 대학도 다니고 키도 약간 큰 편이고 생긴 것도 뭐 이만하면 됐다, 고 생각하며 연애도 한 번 해봤고… 일반적으로 이것을 두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한다. 딱 어제 오후 두시에서 세시경의 하늘 같은 상황이다. 요즘같으면 저녁 여덟시에서 아홉시가 제일 견디기 어렵다.
그런데 나는 이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그냥 느낌이다. 뭘 잘 설명할 수도 없는데, 예를 들어서 가장 확연하며 거부할 수 없는 수학적 진리, 즉 1+1 = 2 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세계가 어딘지 모르게 조금씩 흔들리는 것 같고… 내가 나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모든걸 다 포용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아무 것도 담을 수가 없다. 그러니까 힘들면 웃음이 나고, 기쁘면 우울해지거나 한다. 나는 그 상반된 감정을 잘 구분할 수가 없다… 갑자기 Scatterbrain이 듣고 싶으면서, 산양젖을 마시고 싶다. 머리가 아파. 몸이 아프면, 희안하게 정신이 물리적으로 느껴지는 것 같다. 내가, 확연하게, 만져진다.

자, 헛소리는 이제 그만하고.
2학기 복학하려고 한다. 복학은 이미 했고, 수강신청도 일단은 마쳤고. 깡 좋게 한번 듣다가 실패했던 형이상학을 다시 신청했다. 선생님도 같은 분. 미쳤다, 나. 아마 그거 열심히 듣다 보면 나 돌아버릴지도 몰라, 진짜로.

talk to cat

어느 날 밤늦게 담배를 사러 간다. 길을 걷다 모퉁이, 쓰레기더미 사이에서 늦은 저녁을 해결하려는 검은 고양이 한마리를 만났다. 고된 식사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 까치발로 살금살금 돌아가려는데, 그만 슬리퍼가 아스팔트에 길게 끌리는 바람에 고양이가 흘끔 나를 돌아본다.

“저, 나는 그냥 담배사러 가는 길이니까 그냥 계속 먹어도 돼. 장난치지 않을게.”

고양이는 내 말의 진위를 따져보려는 듯이 날 한참 노려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식사에 열중한다. 가끔 딱딱한 뼈다귀라도 씹는지 우드득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모퉁이를 돌아간다.

“모든 사람이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으련만.”

“뭐라고?”

고양이가 말을 했다.

“너만큼만 조심했으면 좋겠다고.”

“네가 말한거야?”

“그럼 여기 나 말고 누가 있는데?”

“분명히 니코틴 금단현상일꺼야. 빨리 담배를 사러 가야지…”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서 후다닥 슈퍼로 뛰어가 디스플러스를 샀다. 가게를 나오자마자 담배를 한 대 빼어 물고 불을 붙였다.

“아무래도 요즘 너무 무리하는걸까.”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간다.

“이봐, 놀란거야?”

흠칫.

“뭘 이런걸로 놀라고 그래. 로켓을 쏴서 화성까지 보내는 시댄데, 고양이가 말 좀 한다고 해서 놀라 후다닥 뛰어갈 필요는 없잖아?”

쓰레기 봉투 위에 얌전히 앉아 있는 고양이.

“이리 와 봐. 사람은 안잡아먹어.”

나는 홀린듯이 고양이에게로 다가간다.

“담배 산거야? 뭐 샀어? 디스플러스?”

“..으, 응.”

“한 대 줘봐. 식후땡.”

불을 붙여 담배를 건냈다. 저 고양이발로 과연 담배를 집을 수 있을까 싶었는데, 뭐 어떻게 잘 피우고 있다.

“다음부턴 레종 피워. 그거 한 갑 피우면 우리 고양이들한테 1퍼센트씩 모델료가 떨어지거든.”

“그건 좀 비싼데…”

“시끄럽고, 피우라면 피워. 알겠어?”

“응. -_-;;”

“너 저 위에 화평빌라 다동에 사는 애지? 맨날 밤새도록 불켜놓고 있는.”

“응.”

“애들이 가끔 네 얘기 하더라. 너 언젠가 네 창문가 지나가는 고양이한테 먹을거 줬다면서?”

“몇 번.”

“네 마음은 잘 알겠는데, 우리 고양이들도 프라이드란게 있다구. 우린 스스로 구하지 않은 먹이는 먹으면 안돼.”

“그 고양이는 잘 먹던데.”

“그때 걘 임신중이어서 뭐든 질 좋은걸 먹어야 했으니까 어쩔 수 없는거였고, 아무튼 주지 말라면 주지 마.”

“있잖아,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고양이들이 쓰레기봉투를 다 찢어놔서 맨날 아줌마들이 골치아파한데.”

“어쩔 수 없잖아. 그렇게 꽁꽁 싸매놓은걸 이 손으로 어떻게 풀란 말야. 인간들은 참 웃기다. 어차피 버릴꺼, 뭘 그렇게 매듭을 지어 놓는거야? 버리는건 편하게 버리라구. 거기서 우리가 먹을 수 있는건 다 먹어치울테니까, 나머진 새벽에 쓰레기 치우는 사람들이 가져가겠지.”

“사람들은 그걸 예의라고 생각해. 쓰레기봉투를 꽉 매듭지어 놓는거.”

“정말 예의를 지켜야 할때나 지키라고 해. 나는 인간들이 쓰는 글자를 읽을 줄 모르는데, 이 골목 고양이 대장은 오래 살아서 그런지 신문인가 하는걸 읽더라구. 대장이 그러는데, 니들은 정말 필요할 때엔 무신경하고 불필요할때에만 열심이라고 하더군.”

“할 말은 없다.”

“그래. 그렇게 말하는게 예의야.”

“너는 이름이 뭐야?”

“고양이는 이름이 없어. 그냥 고양이지.”

“너는 다른 ‘너희’들과 어떻게 네 자신을 구분하니, 그럼?”

“왜 구분을 해?”

“불편하잖아, 그런건… 누굴 불러야 할때도 그렇고.”

“누굴 불러야 하면 그 녀석한테 직접 가서 이야기하면 돼.”

“아무리 그래도…”

“우리 고양이는, 하나하나가 모두 고양이면서 총체적으로도 모두 고양이야. 부분과 전체가 통일되어 있는거지. 우리는 집단적으로 하나의 공동체면서, 존중받는 개체들이기 때문에 그 가치는 어디에서나 같아.”

“밤에 자지 않고 있으면 너희들도 꽤 싸우던데…”

“발정은 우리도 어쩔 수 없다구.”

“발정.”

“그래, 발. 정.”

담배를 다 피워서, 고양이는 꽁초를 땅에 그냥 버리더니 발로 능숙하게 비벼 껐다.

“안뜨거워?”

“뜨거워.”

“대단하시군.”

“뭐, 별로.”

바람이 불자, 나무가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었다.

“다음에 또 이렇게 이야기 할 수 있어?”

“내가 내키면.”

“있잖아, 언제라도 배가 고프면 내 방 창가로 와서 먹이를 구해가.”

“누가 주는건 안먹는대도.”

“나는 그냥 버릴테니까, 그 뒤는 알아서 하라구.”

“너 이자식, 머리 쓰는거냐?”

당황.

“아니, 난 그냥…”

“심심하면 놀러갈께. 먹이 따윈 내가 다 알아서 하니까 괜히 걱정해줄 필요 없어.”

“그래, 그럼.”

“이제 가.”

“알았어. 잘 지내.”

“너도.”

두서너 걸음 걷다 말고 뒤를 돌아봤더니, 이미 고양이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아주 무거운 상상

원래 이 글은 전혀 다른 제목으로,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쓰다가 만 글인데, 다시 수정해서 올리려다가 왠지 기분이 묘해서 다 지워버리고 다시 쓰고 있다.
제목은 ‘아주 즐거운 상상’이었다. 야한 얘기는 안나온다. 요새 곧잘 혼잣말을 한다. 대개는 ‘아 씨발 이거 왜 이래’, ‘대체 뭐가 문제야’, ‘졸라!’ 등등이다. 그러다 정말 대개는 ‘역시’, ‘난 졸라 천재야’, ‘뭐 이런게 다 있어’ 등등으로 끝난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충돌, 수습. 뭐 그런거. 그런데 아주 예전엔 친구들하고 있을때나 욕을 섞어가며 얘길 했지, 퍼블릭 도메인에선 의식적으로 욕이 안나오도록 조심했다. 아,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후천성욕안하면입안에철조망돋힘증후군 같은거에 걸렸다고 생각하시면 안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거나, 그렇게 생각이 된다거나, 역시 넌 그랬구나 하고 생각하거나 말거나 나하곤 상관없지만, 어쨌든 그렇다는 얘기다. 아, 그러니까 요즘엔 안그런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다. 요즘엔,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부모님 앞에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물론 부모님을 향해서 하는건 아니고, 그냥 감탄사 대신에 욕이 나오는 정도다. 입 밖으로 욕이 튀어 나가면, 나도 깜짝 놀라고 (내색은 안하시지만) 부모님도 놀라는 것 같다. 내가 요즘 지극히 인간적인 수준을 벗어나 신인류로 변태하는 중이라서, 가급적이면 집안 누구도 나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는다. 건드리면 설금설금 돋던 날개가 떨어질지도 모르니 말이다. 부모님 앞에서 욕을 한다고 개만도 못한 놈이라거나 후레쉬자식이라던가 졸라 미친새끼라던가 하고 생각해도, 뭐 나하곤 상관없는 일이지만, 뭐 그렇다는 얘기다. 그리고 왜 무거운 상상이냐, 혹은 희망일까, 에 대해서 얘기하겠다. 작년인가에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 라는 아이슬란드 4인조 롹그룹을 알게 되었다. 한때, 잠깐 헤어나지 못할 정도로, 아주 야금야금 녹아버렸다. 물론 그 뒤로 에릭 크립튼 다시 듣기 프로젝트라던가, 자나깨나 재즈사랑 깨진파일 다시보자 운동 등으로 간신히 정상생활로 복귀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깜빡깜빡 생김새도 잊어버릴 것 같은 첫사랑, 그 희미한 기억처럼 묵묵하게 하드 속에 쟁여뒀던 그들이, 한창 뜨거운 여름이 발악해볼까 준비운동하는 지난 칠월 중순경 느닷없이 버스를 기다리려고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한겨레에 눈을 팔고 있던 내 귓가를 울려버렸다. 사실 운건 내 마음이었다. 마음이 울자 귀가 따라 운 것 뿐이다. 그러니까 머리카락군이 귀야 왜 울어, 같이 울까? 하고 위로해주는 바람에 그 광경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내 눈도, 그만 울어버렸다. 뜨거운 여름에. 버스 정류장에서. 미쳐 버스가 당도하기도 전에. 아스팔트가 미쳐,
녹아버리기도 전에,
말이다.

어딘가에서 시규어 로스의 리뷰를 읽은 것 같다. 그들은 완전한 異세계의 롹커들이다. 톨킨이 지구를 잠시 떠나서 집필활동에 전념할 때에, 그는 완전히 비현실적인 현실세계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심지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종족의 언어까지 만들어낸다. 인터넷에선 이 언어로 쓰고 읽는 연습을 위한 사이트까지 등장했다.
시규어 로스는 그들의 음악을 위해 그들만의 언어를 만들었고 그 언어로 노래를 부른다. 기묘한 이 언어는, 희안하게도 전세계, 민족, 국경, 언어, 경제력, 피부색, 성별, 나이, 장애, 신분, 계급, 식습관, 성적취향, 욕의 구사능력을 떠나서 공평하게 같은 메세지로 이해된다. 그 메세지를 여기에서 소개하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일이거니와, 소개하려면 나도 그 언어를 배워야겠는데, 아무래도 그 언어는 말만 있고 문자기호는 없는, 칠백만년전에 인간이 아직 졸라 미개할 때 인간의 형제를 자처하여 지상에 강림했다는 라엘리안들이 사용했던 언어인 것 같다. 그들은 그 언어를 ‘희망어’라고 부른다, 라는 대목이 갑자기 버스 정류장에서 떠올랐다. 희망어. 희망어. 이 무수한 족쇄들아. 나를 단단히 감아다오.
희망어로 부르는 롹은, 그러나 깊푸른 심연의 색이다. 철저하게 정리되고 검증하고 반드시 희망이어야 할 것, 들로만 이뤄진 인공의 냄새가 난다. 아니, 어쩌면 그건 희망어가 아니라 일상어인지도 모른다. 공기만큼 가볍고 투명한 언어가 일만미터 심해에서 억만겁을 살아내야 하는 괴어처럼 경쾌하면서도 무겁게 흔들리다니.
희망이 무거워, 너무 무거워. 내겐 가벼움이 너무 무거워. 무거움은 너무 가볍지. 너흰 이걸 이해 할 수 있니? 왜 아침 산에 놀러 온 구름이 소스라치게 하늘로 돌아가는지, 상상 할 수 있니? 어떻게 사십오억년동안 파도가 해안으로만 밀려왔는지, 감당할 수 있니? 아주 작은건, 아주 작은 걸로 끝나지. 넓게 봐. 인간을 전체로 봐. 나는 이제 이 말이 들려. 어느 누군가, 가 아닌 인간이 내는 소리가 들려. 인간을 전체로 봐. 어느 누군가가 아냐. 전체야.

다시 아주 기분이 좋아졌다. 심지어 입꼬리가 재밌게 흔들렸다. 웃음이 나오려는 징조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이 말했다. 내 안에 있는 것들아, 서로 사랑하라.

천구백구십오년.

천구백구십팔년.

이천삼년.

이천오십사년.

삼만 칠천칠십년.

이십오역육천만년.

태양이 지금의 두배로 부풀어 오름.

칠십억년, 쯤.

태양의 지름이 지구와의 거리에 반.
지구에서 보는 태양은, 천구의 반을 가린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기 시작한다.

백오십억년.

뻥! 쾅! 우르릉!
거짓말. 거긴 소리가 안나요. 아무 소리도 안나요. 그냥 빛이 번쩍, 하다가 서서히 사그라들어요.

엔딩 크레딧 종료.

The END.

갑자기 막이 열리며 감독 등장.

인간 여러분. 즐거우셨습니까? (네!) 이렇게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이것은 굉장히 무거운 주제였지만, 전체적으로는 매우 가벼운 톤으로 읽히도록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아무쪼록 가시는 길 무사히 되밟아 가시길 바랍니다.
출구는 왼쪽입니다.
간혹 오른쪽으로 가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거긴 화장실입니다.
다시 한 번, 이 오랜 시간동안 끝까지 죽지 않고 버텨준 인간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 전해드립니다.

ok마트 아저씨 & 오늘

낮에 우리집 특별식, 냉국수를 해먹기 위해서 냉면육수를 사러 ok마트에 갔다. 날은 어느때보다도 투명했지만, 전체적으로 어딘가에서 거대한 난로를 켜 놓은 것처럼 뜨거웠다. 구름이 나무처럼 자라난다. 하늘은 파랬다.

주섬주섬 냉면육수와, 9V짜리 배터리를 계산대에 올려 놓고 담배도 사려고 하는데 주인 아저씨는 계속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나는 그의 통화가 기다릴때까지 잠시 기다린다.

“… 신한은행이라니까. 입금 안됐어? 몰라 있다 다시 해. 손님왔어, 지금.”

“디스 플러스도 한 갑 주세요.”

문득 그의 핸드폰이 낯익다는걸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그 희귀하다는 … 내 핸드폰과 동일한 모델이었다. (나는 내 핸드폰 모델명도 모른다.) 지금 사용중인 핸드폰을 사용한지가 거의 일년 반이 넘어가는데, 같은 모델을 사용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어랏? 저하고 똑같은 핸드폰 쓰시는 분 처음 봤어요.”

“네? 아.. 으하하. 그렇네요, 저도 처음 봤어요.”

“이거 괜찮죠?”

“네, 싸고 그냥저냥 쓰기엔 딱 좋더라구요, 근데 배터리가 빨리 달아서 바꾸려고…”

“엇, 저도 최근에 들어서 이상하게 배터리가 빨리 닳던데?”

“그래요? 저도 괜찮다가 요금에 그러더라구요. 얼마나 쓰셨어요?”

“한 일년 반?”

“저도 그래요. 이 모델이 아마 그때쯤 나왔던 것 같아요. 일년 반 지나면 배터리가 다 그렇게 되나봐요.”

하고 대화를 나눴다. 생각해보니까 최근 몇 달 간, 잘 모르는 사람과 잡담을 나눈게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검은 비닐봉지에 냉면육수 4개와 배터리, 담배를 넣어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면서 까닭없이 서글퍼졌다. 자꾸 내가 물리적으로 닳아서 없어지는 것 같다. 어제는 오른쪽 새끼 발가락이, 오늘은 엉덩이가, 하는 식으로.
후줄근한 내 자신을 상상하는건 정말 자신이 없지만, 가끔 꿈에서,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모습이 보이곤 하는데, 나는 어느 무더운 여름날 노랗게 땀에 절은 반팔 와이셔츠에 검은 양복바지를 입고 연신 얼굴에서 땀을 훔쳐내며 짜증나는 것도 아니고 화가 나는 것도 아니면서도 전체적으로 구겨진 표정을 하고 누군가에게 짜증내는 것도 아니고 화를 내는 것도 아니면서 전체적으로 모난 투로 말을 건내는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는 심하게 축약된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서, ‘그것이 인생’ 이라는 말로 얼버무린다면, 그건 또 그것대로 괜찮아 보인다. 하지만 그건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 그렇다면 ‘삶은, 의미인가’. 그건 아무도 모른다. 나는 의미이기를 바란다. 어쩌면, 피아졸라의 센트럴 파크 공연 실황 앨범 가운데, ‘astor’s speech‘라는 트랙을 들으면 확실히, 삶이 의미라는데 동의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꿈 속에서 길을 잃다.

어제 갑자기 일하다가 죽을것처럼 졸려워졌다. 이런 일은 간만이었는데, 마우스에 걸쳐 있는 손가락에도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아서 나는 그만 조용히 뒷일은 생각도 안하고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웠다.

두번에 걸쳐 꿈을 꾸었다.

첫번째 꿈은 이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번째 꿈은 버스에서 내려보니 전혀 낯선 곳이라는 것부터 시작한다. 아마도 술을 마시고 집에 가다가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모양이다. 그러나 (이미 숱하게 종점까지 가 본 나로서는) 이 곳이 너무나도 낯설다. 내가 버스를 잘못 탄건가? 일단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정류장에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본다. 건달들, 학교에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여고생들, 아줌마, 회사원… 누군가에게 여기가 어딘지를 물어야 했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왜 그런 마음을 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건달들에게 다가가 “저 아저씨, 여기가 어딘가요? 제가 술을 마시고 내려야 할 곳을 지나친 모양인데…”. 그들은 건달식 전문용어로, 걸걸하게 웃으며 X니 Y니 거센 말을 내뱉는다. 그러다 ‘형님’으로 보이는 이가 “여긴 경포대요, 경포대.”. 젠장. 뭔 버스를 탔길래 서울에서 경포대까지 온건지 정신이 혼란스럽다. “저 그럼 저희집 쪽으로 가려면…?” 하니까 형님이 길 반대편을 가리킨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 한 다음에 천천히 그가 가리킨 방향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정신을 차려보니, 보안등이 껌뻑이며 아침을 맞는 어느 산동네의 어귀에 다다랐다. 하늘이 한쪽으로부터 푸르게 밝아오고 가끔 잠이 깬 개가 컹컹이며 짖는다. 또 하루의 노동을 준비하는, 부지런한 집들의 창문엔 하얀 형광등빛이 밝았다. 그러다 허름한 문방구 앞을 지난다. 새벽인데도 벌써부터 문을 열어 놓았는데, 열린 미닫이 유리문 사이로 문방구에 달린 조그만 단칸방의 내부가 보인다. 잠에서 덜 깬 아이는 칭얼대며 이불을 껴안고, 아버지는 까치집 지은 머리로 아침뉴스가 나오는 티븨를 본다. 제일 바쁜건 엄만데, 벌써부터 부엌에서 밥을 짓는다 애들을 깨운다 정신이 없다.
바람이 시원하다. 왠지 그 아이가 낯이 익다. 십년 전엔 우리집도 문방구를 했는데, 하는 기억이 잠깐 머리를 스쳤다.
그렇게 길을 따라 걷다 어느 지점에 이르자, 산동네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집들이 바위에 붙은 따개비처럼 조밀하게 들어서 있다. 오른쪽으론 이제 막 해가 뜨려고 하는 수평선이 보인다.

그러다 산 밑으로부터 무엇인가를 들고 올라오는 아주머니가 보인다. 나는 아주머니가 걱정하지 않도록 최대한 멋적은 표정을 지으며 길을 묻는다. “아주머니, 죄송한데요 저 이상한 사람 아니구… 제가 버스에서 잘못 내려서 여기까지 왔는데, 저희집까지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주머니는 처음엔 날 경계하다가 길을 묻는 부분에 이르자, 걱정스런 표정으로 날 잡아 자기 집으로 이끈다. 영문도 모르고 난 그녀를 따라간다.
길 가에 난 나무 문을 열면 바로 백열등이 달린 부엌이고 그 부엌 안쪽에 시멘트로 만든 계단을 몇 개 더 오르면 서너평 정도의 방이 있는 그런 집이다. 아주머니는 그 방으로 올라가 아이들을 깨운다. 아주머니를 따라 집안까지 들어가기가 그래서 잠시 문 밖에서 기다리다가, 바다쪽을 보았는데 옅은 분홍빛 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고깃배들이 평화롭게 정박해 있는 모습이 보인다. 모든 것이 순간 아득하게 빛났다. 가슴이 두근거렸고 눈물이 났다. 이미 그 곳은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이었거나, 어머니의 땅이거나, 극락세계가 되었다. 너무나 광경에 압도되어 감동이 생기지도 않았다. 마음이 티끌도 없이 무한하게 비워졌고 비워진 만큼 계속해서 분홍빛 안개가 채워졌다.
이윽고 아주머니가 세숫대야를 들고 방에서 나온다.

“왜 울었어?”
“그냥요… 그냥 모든게…”
“조용히 해…”

아주머니는 세숫대야에 담긴 물로 정성스럽게 내 눈을 닦아준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런데도 계속 아주머니가 내 눈을 닦아주는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계속 눈물이 났다.

여기서 잠이 깼다. 일어났더니 정말 자는 동안 울었는지, 눈꼽이 많이 껴 있었다.

꿈이 너무 생생해서 잊지 않으려고 계속해서 꿈 내용을 머리 속에 떠올렸다. 그 신선한 풍경들을 그림으로 옮기고 싶었는데, 막상 머리 속에선 그렇게 선명하던 풍경들이 종이를 앞에 두고는 조금도 풀려 나오지 않았다.

오늘 낮에 너무 졸려서 잠깐 잤는데, 세상에서 제일 끔찍하다는 ‘이등병부터 다시 군대생활 시작하기’ 꿈을 꿨다. 꿈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의 내장 안을 옮겨다니며 생활하는 기생충이었다. 아우 끔직해..

이 노래가 생각났다.
꿈과 너무도 잘 어울리는 노래.

Jorge Drexler – Al Otro Lado Del Rio ‘모터 싸이클 다이어리 OST 가운데’

덥다

…는 것은 거의 우주적으로 명백하게 사실이다. 게다가 올해는 이상하게 더 덥다. 나는 두시간 전에 혹시 윗 집에서 미친척하고 난방을 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공포스런 추측까지 해봤다. 태양에 던져 넣어도 녹을 것 같지 않은 가공할 냉커피와 물을 내내 들이킨다. 여전히 덥다.

샤워를 했다. 십분도 지나지 않아 슬슬 불쾌해진다. 덥다. 모니터에서 열기가 아닌 냉기가 나왔으면, 하고 바란다.

뭘 찾으려고 검색하다가 ‘인기검색어’ 라는 한줄짜리 안내메시지에 여름을 시원하게 나는 법이라던가 열대야를 극복하는 법이라던가 하는 검색어가 상위에 랭크되어 있다고 나오길래, 클릭해볼까 생각했다. 새벽 네시에 그 링크를 클릭해서 어째어째 주절주절 뭔가 아이디어를 알았다고 해도 딱히 실행에 옮길만한 상황이 아닌걸. 해서 그냥 참기로 한다.

까짓게 더워봤자 체열보단 낮다.

사막에서 행방불명된 어떤 사람에게서 수신자 부담으로 걸려 온 전화를 통해 얻은 소식에 의하면, 사막의 중심 (이 경우 사막의 중심은 지리적 중심이 아니라 정신적, 육체적 한계상황에 도달한 인간의 상징적인 중심을 의미한다, 고 한다.) 은 그림자가 없다고 한다. 빛과 열기가 그림자를 태워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새로운 행방불명자가 중심에 들어서면 다들 그의 그림자가 사라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그늘에서 쉬기 위해 아귀처럼 모여든다. 한때 한 명 분의 그림자에 1ms의 시간 동안 구천팔백칠십두명이 들어 온 적이 있는데, 그게 지난 10년간의 최고 기록이었다.

그에게 파라솔을 보내줄까 하며 주소를 물으려는데, 그만
잠에서 깨고 말았다.

Life without love is no life at all

방금 동생이 들어와서 “형 맨날 뭐 먹고 그냥 두지 마, 냉장고에 좀 넣어 놔. 그래야 시원해지지.” (이 글만 보곤 왠지 좋은 동생같아 보여서 좀 구역질 나긴 하지만) 하고 돌아간다. 녀석은 조금 있으면 우체국에 아르바이트 하러 갈 것이다. 얼마전 다친 오른손 가운데 손가락엔 여전히 기브스가 되어 있다. 녀석은 요즘 집에 잘 안들어오거나 굉장히 늦게 들어온다. 엄마의 표현을 빌자면 ‘딴살림 차린’ 것 같다.
매번 자기가 얼마나 힘든지 가족들이 잘 알아주지 않는다며 성을 내는 녀석. 동생 흉은 여기까지.

사랑 없는 인생은 더 이상 인생이 아니다. 라고 어떤 블로그의 시작 페이지에 있는 문구를 인용해본다. 또 그 문구가 얼마나 잔인한 것인가, 하고 생각해본다. 내 자신이 사랑에 대해 선천적 기형인 상태로 태어났다면.
어제는 어느 어린 샴 쌍둥이의 분리수술 후 사진을 보았는데, 뭔가 언밸런스한 것을 느꼈다. 그러니까 평생 자신의 오른쪽에서 살아 왔던 아이가 분리 후 왼쪽에, 왼쪽에서 살아 왔던 아이가 오른쪽에 유모차를 타고 앉아 있던 것이다. 몸은 둘이었어도 다리도 두쌍은 아니었기 때문에 알아 볼 수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이었지만, 자신이 아닌 존재의 반대편을 본 아이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나로부터 가장 먼 곳은 바로 내 뒷모습, 즉 다시 자기 자신.

더워서 그런지 식욕이 없어서 가뜩이나 적은 식사량이 더욱 줄어버렸다.

오늘 이야긴 여기서 끝.

what’s going on?

영화 ‘파니핑크’ OST – 12. What’s going on?

나는 날마다 배가 고프지.
엄마는 그렇게 굶다간 죽는다고 해.
하지만 난 아무 것도 먹을 수 없어.
그래서 날마다 배가 고프지.

날마다 가벼워져, 나뭇잎 같은 바람에 떠 다닐 수 있을까.
먹기 위해 살거나 살기 위해 먹거나
둘 다 비참하긴 마찬가지잖아.

그래서 어금니를 꽉 깨물고 굶지.
그래서 배가 고파.

이제 자야겠어.
깨우는 사람도 없이
천년쯤 자게 될꺼야. 깨어나면
하얀꽃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으면 좋겠어.

간만에 폭주

저, 그러니까 걔가 누구냐.. 내 큰외삼촌의 아들이니까 그냥 동생이지. 그래, 그 녀석이 입대한지가 정말 엊그제 같은데 얼마전에 제대했단다. 집도 근처여서 오랫만에 외가쪽 식구들과 조인트 어쩌구 저쩌구를 했고 유황오린가 황토구인가 뭔가 하는걸 먹으러갔다. 왠지 어른들하고 술 마시면 거부하기 힘든 것도 있고 해서 오랫만에 폭주.  한 두병 반은 먹은 것 같다. 뒷부분은 잘 기억 안나서 생략. 덕분에 오늘 내내 토하고 누워서 낑낑대고 난리도 아니었다.
맞아, 좀 기억이 엉켜있다. 사실은 꿈이었는데, 현실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내가 어젯밤에 집에 오면서 게토레이를 사왔다고 한다. 엄마가 아침에 약 사올까 하는걸 됐다고 하고 있던 중에 게토레이가 엄청 먹고 싶었다. 몸을 움직일 힘은 전혀 없었고 징징대다가 어렵게 엄마한테 나 게토레이가 엄청 먹고 싶은데 움직일 힘이 없다. 좀 사줘. 했더니 이 미친것아, 너 어제 게토레이 사왔잖아. 하는거다. 냉장고에 가보니까 거짓말처럼 게토레이가 있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간만에 엄청 토했다. 토하면서 온통 붉은 물 밖에 안나오더군. 혹시 위장출혈이 아닐까 걱정했는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어제 마지막으로 수박을 엄청 먹었던거다. 그렇군. 이건 수박의 잔해로군 했다.
오후엔 일어나서 한빛안경랜드에서 생일축하한다고 우편으로 보내준 로또복권을 맞춰봤는데, 하나도 맞은게 없어서 좀 허탈했다. 하루종일 누워 있었더니 머리도 아프고… 이래저래 의미없이 보낸 주말.

저녁엔 조배준 녀석한테 수신자부담 전화가 걸려왔었고 일주일 후에 휴가를 나온다는 얘기를 했다. 우째, 잘 사냐, 했더니 담달이면 병장이야, 하고 우하하 웃는게 잘 사는듯 보인다.

뭐 좀 오해가 있었고 그건 아마도 꿈이었는가 싶었다.

저녁으로 갑자기 자장면이 먹고 싶어서 자장면을 시켰다. 놀랍게도 오분도 안되어서 배달원이 왔다. 이렇게 빨리 배달되는건 처음이다.

피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