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MS From a Loser In Somewhere

MMS From a Loser In Somewhere

Y, 나 좋은데 취직했어.
지금은 서초구 서래마을
팔레스 호텔 옆 빌라 2층에서 살아.
반지하, 매일 닦아도 닦아도 쌓이는 먼지와는 이제 안녕.
자동차는 포드 머스탱인데,
신형 컨버터블이야.

36개월 할부는 창피해서
그냥 일시불로 샀어.
얼마 하지도 않아, 한 오천?
일시불로 사니까 마티즈 크리에이티브 덤으로 주더라.
토요일 밤이면 자유로에서 드라이브를 해.

Y, 네 생각이 나.
신촌을 지날 때마다
어둑한 바에서 담배연기에 콜록이던 널 떠올리지.
이제는 ‘레너드 스키너드Lynyrd Skynyrd’의
심플맨Simple Man은 듣지 않아.
차라리 잘 된 것 같아.
내 아이폰엔 유럽풍의 품격있는 재즈만 가득해.

J형이 도미했을 때
난 거의 미쳐버리는 줄 알았어.
이야기 할 사람들이 필요해,
주소록에 저장된 연락처로 문자를 보냈지.
그런데 답장이 없거나 답장이 와도
퉁명스러운 대답 뿐이더군.
그래서 나도 그냥 살기로 했어.
이제 그냥 이렇게 사는게 편해.

Y, 그 날 엄청나게 취해서 실수를 한 이후 처음으로 행복한 것 같아.
우리가, 결국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찾으려 먼 곳을 헤매느라 낭비한 시간들을
지금 갖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헌책방을 하나 열고 싶어.
책은 절대 안팔고
그날 기분 따라 매일매일 아무 책의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읽어 내려가는거야.

그런데 Y, 내 처지를 솔직하게 말해줄까?
나, 회사에서 짤렸어.
그러니까 서래마을도 포드 머스탱도 거짓말이야.
그리고 있지,
사실은 이번달 카드값이랑 대출 이자 낼 돈이 당장 필요하거든.
Y, 난 다음달이나 되어야 새로 시작한 편의점 아르바이트 월급 80만원을 받을 수 있을꺼야.

하루

아주 긴, 긴 하루가 또 끝나려고 하고
청년은 퍼렇게 동트려 하는 창밖을 바라보며 잠들려고 노력한다
동트기 바로 직전이 가장 어둡다는 이야기는 좀 개소리라고 생각하고
언제나 그렇듯이,
자명한 것들은 너무 흔하게 알고 있는 것이어서 깨닫기가 쉽지 않다
고 어두운 손바닥에 쓴다
청년은 시시때때로 꿈을 꾼다
꿈 속에서의 청년은 애정넘치는 인간이다
꿈 속에서 그는 아주 가끔만 절망한다
스탠드에 팔꿈치를 얹고 콜라를 마신다
그는 궁금해졌다
과연 나만큼 어두운 꿈을 꾸는 사람이 있을까
그에겐 일생이 꿈일 것이다
백만년쯤 전에 지나온 꿈이다
그리고 피식 웃는다

—>

안녕 잔인한 세상아
난 이제 널 떠나려 하네
네가 뭐라고 해도
내 맘은
바뀌지 않아

—>

영원히 살면서
세상의 종말을 보고 싶다
그 이후에 이야기 해 줄 사람이 없더라도

엑스파일, 나는 믿고 싶다.

길은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곳에서 끝나는 것처럼 보였다. 사납게 휘몰아치는 눈보라 사이로 눈 쌓인 둔덕들이 자그마한 음영을 만들어 내다가 이내 흰 빛 속으로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걸었다.

저 멀리서 희미하게 차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흰색 포드 승용차가 보인다. 나는 멍하니 서서 그 차가 내 앞을 지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차는 나를 지나쳐 조금 더 달리다가 멈춰서더니, 다시 후진해 내게로 다가왔다.

“어디까지 갑니까?”
“그냥… 다음 마을에서 내려주시면 고맙겠어요.”


..

“멀더, 정말 그 신부의 말을 믿는거에요?”
“왜 믿지 못하죠, 스컬리? 그는 우리의 속임수를 단번에 알아차렸어요.”

멀더는 그 말을 마치더니 뒤를 돌아보며 내게 물었다.

“당신은 ‘영매’를 믿습니까? 그러니까… 초자연 현상 같은 것들을?”
“글쎄요… 적어도 내게 해를 끼치지 않는 현상들은 믿는 걸로 해두지요.”
“허, 참. 그런걸 어떻게 판단합니까? 왜 솔직하지 못하죠?”
“단지 난 그런 것들에 쉽게 빠져들지 못하는 것 뿐이에요. 그런 당신은 절대적으로 믿고 있나요?”
“멀더, 그만해요. 미안해요. 이 남자는 어딘가에 집중하기 시작하면 다른 것들은 전혀 보지 못하거든요.”
“괜찮습니다. 그런데, 이 근처에 무슨 일이라도 있는건가요? 갑자기 영매라니…”

멀더와 스컬리는 서로를 난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아니, 별 일은 아닙니다. 어떤 남자가 환영을 본다고 해서 말이죠.”
“계시 같은거 말이죠?”
“네.”

눈보라는 더 심해지기 시작했다. 우리는 침묵했고 엔진 소리만 요란했다.

“아주 오래 전에, 그러니까 내가 어렸을 적에 그런 드라마를 본 적이 있어요. 초자연 현상을 조사하는 수사관에 관한 이야기였죠. 외계인도 나오고 괴물도 나오고 유령도, 혹은 그 이상의 설명 불가한 사건도 나오는 그런 이야기였어요. 그런걸 보는걸 즐겨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니, 내가 그걸 수년간 계속 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흥밋꺼리 때문이 아니라 주인공인 두 수사관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 해 가면서 ‘믿음’ 그 자체를 믿는 모습에 감동했기 때문이란 사실을 깨닫게 되었죠. 사실 뭘 믿느냐는 중요한게 아닌 것 같아요. 우린 모두 서로의 믿음을 갖고 있고 또 그런 믿음들에 경의를 표해야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믿는다는 행위 그 자체인거죠. 나는 정말 끊임없이 희구하고 경탄하고 싸워서 지켜내며 소중하게 여길 만 한 어떤 것들을 갖고 있을까… 그렇게 자신에 대해서 계속 질문하기를 그만두지 않을 수 있을까… 온 세계가 나의 믿음에 대해 적대적일 때에도 나는 믿는 행위를 멈추지 않을 수 있을까… 멀더 그리고 스컬리, 그래서 말이죠.”

나는 잠시 호흡을 멈췄다.

“나는 당신들에게 너무 감사해요. 당신들은 지난 십년 간 수많은 멸시와 모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믿고 있군요. 멀더,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지지하고 있어요. 당신과 함께 믿기를 바래요. 스컬리, 나는 아직 자기의 꼬리를 무는 뱀을 기억해요. 피해자가 멀더를 의지하고 멀더가 당신을 의지한다면, 과연 당신은 누굴 의지하고 있나요?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서도 단 한 번 흔들리지 않았던 당신의 믿음 또한 나는 존경해요.”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윽고 길의 끝에서 마을이 나타났다.


..

“목적지까지 데려다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우린 여기서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괜찮습니다. 덕분에 따뜻하게 올 수 있었어요.”

우리는 서로를 멋적게 쳐다보았다.

“멀더, 할 말이 있어요. 핸드폰 잘 챙겨요. 무슨 일이 있으면 곧바로 스컬리에게 연락해야 해요. 그리고 스컬리. 포기하지 말아요. 나는 당신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나는 손을 흔들며 그들과 멀어져 갔다. 뱃 속에서부터 뜨거운 기운이 올라와서 길을 걷기가 수월해졌다.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눈보라가 조금씩 그치고 있었다.

—>

믿는 자들의 기록
스프는 있습니다. (김진혁PD)

아 더워2

선풍기를 거의 24시간 틀어 놓는 것 같다. 내 방 선풍기에게 너무 미안해서 낮에는 안방 선풍기를 켠다. 그러니까 2교대다. 이거 참 월급도 안주고 여름만 되면 이렇게 노동력을 착취해대는게 내 계급적 신념에 어울리지 않는 노릇이지만, ‘우리 다 힘들 시기인데, 조금씩만 양보해야 하지 않겠니, 선풍기야?’
아이고, 주여.

—>

에어컨은 나오는데 계속 땀이 흘렀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은걸까 하고,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퇴근 시간도 한참 지났는데 2호선 강남 어림쯤의 구간은 항상 이렇다. 자꾸 머리가 흘러내린다. 머리가 기니까 너무 간지럽다. 자꾸만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긴다. 그런데도 머리를 잘라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존나게, 죽어도 안잘라야지. 하도 머리가지고 뭐라 하는 인간들이 많아서 짜증이 나니까 오히려 오기가 생기는거다. 왜들 이렇게 책임지지도 사실은 관심도 없는 남 머리 모양가지고 저 지랄들인지. 이럴땐 차라리 내 머리를 보고 노골적으로 비웃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더 반갑다. 존나게, 평생 남 머리 모양가지고 왈가왈부하고 살아라.

불안은 나의 힘

기형도는 한동안 거리에서 시를 쓰며 그것은 고통이라고 적었다. 매일매일 만나는 흰 벽과 책상과 사람들, 소음들로부터 떨어져 생경한 거리의 벤치에 앉아 낯선 이들의 면면을 살피며 시를 적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우리는 본래적으로 낯선 것을 경계하는 습성이 있으므로, 그는 거리에서 우선 불안과 만났을 것이다. 불안. 정처 없음. 멈춰 있는 것으로부터 움직이는 것으로. 완전히 발현된 현사실성으로부터 가능성으로, 부족함과 비어 있음과 궁핍과 누추함으로 그는 걸어 들어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에게 주어진 미지의 낱말들을 만났을 것이다. 세계가 존재로 가득 차 있다면 거기엔 운동이 있을 수 없고, 핀에 고정된 박제된 나비와 같이, 거기서 의미는 완결될 뿐이다. 그러므로 가난한 시인은 무궁한 쓸 것을 만날 수 있다. 그는 그랬다. 고통이 쾌감으로 바뀌는 지점과 불안이 힘의 원동력이, 그러니까 말의 힘이 되는 그 지점을 발견했다.

나는 한동안 아무 것도 적지 못했다. 일신의 안위와 자족을 위해, 육신의 안정함을 위해 골몰하고 나태했던 나는 나를 완전히 비우지 못했다. 오히려 차곡차곡 채우고 있었다. 네이버 블로그를 쓸 적에 나는 매우 작은 나였다. 나는 불안했고 나의 맥박은 쉴 사이 없이 고동쳤다. 채우고 싶었지만 아무 것도 채울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때 쓴 글들을 나는 매우 좋아한다. 지금은 그 반대다. 현재 블로그에 쓴 내 글들은 전부 다 오물들이다.

지금 나는 낯선 곳에서 이 글을 쓴다. 나는 서른이고 나는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다. 나에겐 꿈이 없다. 나는 꿈 같은 것, 희망이나 행복을 믿지 않는다. 그런 것들은 쓸데없이 구체적으로 설명되기를 강요당한다.

엊그제 외삼촌을 만났다. 그는 내가 사고의 현실성에 익숙하지 않다고 했다. 이를테면 어떤 의미에서 그는 포스트 모더니스트다. 이성주의와 이념의 관념성에 질식한 자다. 나의 거의 두 배를 살아 온, 게다가 한때는 더없이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었으므로 나는 아무런 이의도 말하지 않았다. 그의 현실은 확고하며 미래는 현재와 맞-이어져 하루하루가 그 길의 위에 놓여져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 가장 무섭다. 이를테면 똑똑한 사람, 강력한 사람, 이루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이루는 사람. 그러나 그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지금 나는 낯선 곳이다. 창문은 열려 있고 집에서 듣기 힘든 굉음의 오토바이 소리, 자동차 경적… 동요하고 있다. 그릇에 물이 요동쳐 흘러 넘치고 있다. 나는 그 안에서 중심을 흩뜨리고 전복을 꾀한다. 불안하다. 심히 불안하다. 고정된 희망이 없으므로 불안하다. 기만적인 행복을 거부함으로 불안하다. 불안이 가득 차 있다. 나는 역동적으로 움직여야 하며 움직일 것이다. 나는 그 무엇도 되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 무엇도 될 수 있다. 나의 속성은 불안이다. 나는 불안을 이용할 것이다. 나는 불안과 입맞출 것이다. 내가 바로 불안이다.

불안은 나의 힘이다.

17 : 37

미안하다. 스크램블 에그하고 베이컨하고 토마토 구운거랑 아스파라거스를 먹고 비싼 커피를 마셨다. 요즘 돈이 너무 없어서 콩다방도 못간다. 그래서 인스턴트 커피를 프림이랑 설탕도 안넣고 옅게 타서 마시지. 간만에, 너무 맛있는 커피를 먹어서 염치 불구하고 석잔인가.. 넉잔을 연속으로 리필했지. 눈물이 날 뻔 했다.

봄인데도 너무 춥고, 마음이 시렵다. 따뜻한 커피같은 친구가 있었으면…

—>

길을 걸었지. 누군가 옆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난 알아버렸네…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때마다 유서를 쓴다던가 마음에 공황이 온다던가 감정이 심하게 요동한다던가 그런건 전혀 없고, 대신에 자살의 방법만 여러가지로 생각하게 돼요. 관자놀이에 느껴지는 총구의 서늘한 느낌, 아니면 손목을 긋는다던가, 약을 먹는 생각도 하고… 쓸데없이 디테일에 너무 집중하는건 아닌가 (웃음) 하지만 어떤 큰 그림을 그리는데 자신이 없어요. 자살에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무의미한 것 같고…”

이미 그대 떠난 후라는 걸 나는 혼자 걷고 있던 거지 갑자기 바람이 차가와 지네…

“그런데 이미, 한 육개월 이상 연락도 없고 만나지도 않는 관계가 여전히 친구인건가요?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잖아요.) 그건 나중 얘기고… 나는 지금 당장 내 옆에서 조잘조잘 떠들어 댈 사람이 필요한거에요. (어, 그럼 나도 친구?) 아니. 당신은 묻기만 하고 자기 얘긴 안하잖아.”

—>

건물의 하수도 공사인가 뭔가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착암기 소리가 요란하다. 휴일은 좀 멈춰 주어도 좋으련만, 하루 반을 뜬 눈으로 지새고 술 한 잔을 마시고서 죽은 것처럼 잠들려던 계획이 소음때문에 무산되었다.
그래도 나는 기어이 잠들고 만다. 신문지 맛이 나는 잠이다. 일을 하는 것 같은 잠. 잠깐 제주항공의 프로펠러 여객기가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주 멀리서 나는 것 같은데, 사실은 매우 가까운 곳에서 나는 소리였다.

16 : 14

When It rains – Brad Mehldau
Storms – Perry Blake
Conversation with a stone – Jan Garbarek

요즘 무한반복으로 듣고 있는 세 곡.

어디를 가는 중이었는데, 계속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서 내려야 할 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종점까지 가버렸다. 처음 와 보는 곳이다. 오는 도중에 비는 그쳤다.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보니 네시 사십분, 사십 일분..
하늘은 흐리다. 명도가 높은 시야. 넓게 퍼진 들녘. 서쪽 끄트머리에서 번개가 치는게 보인다. 그러나 여기까지, 아직 비는 오지 않는다. 아직. 갈 곳이 있는데, 그냥 여기 주저 앉아버리고 싶다.

오징어 튀김

언젠가 한 번 얘기 했던 것 같은데, 동네 노점으로 떡볶이며 오뎅이며 튀김 등등을 파는 할머니가 있다. 그다지 곱게 늙었다는 느낌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일을 할 정도로 얼굴에 굴곡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 그런 할머니.

언젠가 한 번 10개 한정의 특제 오징어 튀김을 가까스로 한 개 먹어 본 일이 있는데, 이게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그 어떤 오징어 튀김보다도 더 맛있었단 거다. 식어도 한참을 식었고, 게다가 할머니가 센스 완전 빵점이라 기름에 다시 데워줄 생각도 안하고 준 튀김이어서 이만큼 입이 튀어 나와 삐쭉거리다가 말을 잊게 만든 환상의 오징어 튀김. 그 이후로도 오랫동안 그 노점 앞을 지날때면 유심히 오징어 튀김이 있나 없나 살펴봤는데, 영 오징어 튀김을 꺼내 놓을 생각을 안하는거다. 그래서 한 번은 작정을 하고 떡볶이 천원 어치를 사면서 물어봤다.

“할머니, 전에 오징어 튀김 맛있던데 왜 안하세요?”
“맛있죠? 그거 내가 직접 시장에서 오징어 사다가 만든거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사가질 않아서 못하겠어. 그거 하면 남지도 않거든.”

신월동 인민들은 죄다 혓바닥이 돌로 변해버렸단 말인가! 그래놓고 일식당 가서 접시당 몇 만원씩 하는 튀김을 먹으면서 맛이 어떻고 저떻고를 논한다 이거지! 아무튼 그러다, 오늘 아침 훌쩍 학교 가느라 그 앞을 지나는데 오징어 튀김이 먹음직스럽게 가판 위에 놓여 있는게 아닌가… 아침 댓바람 부터 노점에서 오징어 튀김 깨작 거리기가 뭣해서 집에 오면서 꼭 먹어야지 하고, 결국은 또 다시 파랗게 식은 오징어 튀김 2천원 어치를 사서 집에 돌아왔다. 돈이 더 있었으면 있는 만큼 사고 싶었는데 수중엔 그것밖에 없었다. 역시나 녹슬지 않은 이 맛의 풍부함, 식어도 식감이 죽지 않는 노장의 노련함… 게다가 더 행복한 건, 지금 이 시간 (10시 반) 나는 슈퍼에 가서 맥주 천씨씨를 사왔고, 저녁에 먹다 만 오징어 튀김이 두개나 남았다는 것이다.

그 외에 나는 대체로 피곤했다. 오늘은 흐린 하늘만큼 머리 속이 멍했다. 바람이 심하게 불었는데, 우연히 과사에서 지석이형을 만나 커피 한 잔 할때를 제외하고는 내가 어딜 갔고 뭘 했고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아무 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술이 너무 마시고 싶었는데, 상철이랑 윤기는 약속이 있댔고 우현이는… 우현이는 그냥 집에 갔다. 거창하게 먹자는 것도 아니었는데… 집에 오면서도 몇 명의 사람들에게 전화를 했는데 다 안받았고, 나머지는 전화를 할까 하다가 말았다. 결국엔 동생한테까지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았다.

언젠가 돈을 많이 모으게 되면 국적을 포기하는거다. 그리고 조금 큰 배를 하나 사서 태평양에 나가는거다. 태양열로 담수를 만들고, 해초랑 고기를 낚아 음식을 해먹고 글을 쓰고 시규어 로스랑 레드 제플린, 에릭 크립튼을, 바하를, 비틀즈를, 로이 부캐넌과 레너드 스키너드와 라디오 헤드와 피아졸라와, 그리고 구레츠키를, 노찾사를, 전화 카드 한 장을, 청계천 8가를 십만번쯤 되풀이해 듣는거다. 운이 좋아서 십년쯤 지나도 살아 있다면, 그래서 우연히 마주친 배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게 될 때, 비행기 사고로 라디오 헤드 전원이 사망했다거나 대한민국이 통일 되었다거나 미국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 국가가 전복되어서 모두가 행복한 나라가 되었다거나, 외계인이 지구에 방문해서 요즘엔 길거리에서 외계인 보는게 자연스럽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으면 까무러치겠지? 아마 그때쯤이면 나는 배멀미의 달인이 되어 있을꺼다. 오랫동안 바다에서 생활한 뱃사람들은 육지에 오면 멀미를 한다던데, 나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혹시 흐르다 흐르다 보면 포우의 ‘아서 고든 핌의 모험’에서처럼 남극에 흘러 들어가 온 몸이 검은 원주민들을 만나서 죽다가 살아난 다음에 간신히 포로 한 명을 잡아 작은 카누에 몸을 싣고 남극점으로, 남극점으로 더 가는거다. 커튼같은 짙은 흰 안개 속에서, 그 잔잔한 수면 아래로부터 하얀 거인이 솟아 오르면 나는 까무러치겠지? 어쩌면 행복할지도 모르겠다. 아, 그러고보니 배에 탈때 포우는 꼭 가져가야겠다. 우울과 몽상 그 양장본은 꼭 사야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집에 왔단다. (작별인사) 안녕, 그리고 또 (만났을 때 인사) 안녕.

어느 날

… 버스를 타고 돌아오며 칸트의 논문을 뒤적이다가 살짝 잠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렸을 때, 하늘의 구름은 낮고 잔뜩 흐렸다. 공기는 맑았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흙 냄새가 났다. 거짓말처럼 이어폰에서 시규어 로스가 튀어 나왔다. 비둘기 두 마리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나는 희고, 다른 하나는 검었다. 순간 흐린 구름이 반으로 갈리며 빛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때맞춰 비둘기가 날아 올랐는데, 그 날개들은 쏟아지는 빛에 부딪혀 은빛으로 빛났다. 온 세상에 날갯짓 소리가 퍼졌다. 상승하는 것과 하강하는, 시규어 로스의 음악은 그랬다. 영원회귀란 말이지. 이 모든 것들은 언젠가 똑같이 반복한다는 것. 그건 절망도 아니고 권태도 아니었다. 내 모든 삶이 오늘, 바로 이 순간에 모이는 것이다.
오랫동안, 비둘기가 구름 사이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서서, 내게로 다가오는, 그리고 내게서 멀어지는 세계의 감각에 취해 있었다.

안녕, 순간이여.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