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

돈이 다 떨어졌다. 아니 조금 남아 있는데, 다음 달 공과금이며 나갈 돈이 없어서 손가락만 빨면서 하늘에서 돈비가 내리길 간절히 기도하던 차였다. 나는 신기하게 내 자신의 일에 대해서는 전전긍긍하면서도 상황을 타계하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 버릇이 있다. 그러다가 문득 한 1년을 붓고 있던 보험을 깰 생각을 했다. 이자도 붙지 않는 삼년짜리 환급보험을 왜 들어야 했는지 모르겠는데 (그것도 두개나), 아무튼 이 상황으로 봐서는 삼년이 지나기 전에 내가 중병에 걸려서 크게 한 탕 할 날이 올 것 같지는 않고, 게다가 묵묵히 보험회사 좋은 일만 시켜줘 잘 해 봤자 본전치기라 큰 맘 먹고 보험을 깰 생각을 했던 것이다. 아마 이 보험은, 기억하기로 내가 한 때 돈을 조금 벌때, 어머니 교회 아시는 분이 보험설계일을 시작하시면서 실적을 내지 못해 하는걸 두고 강제적으로 들었던 것 같다. 어쨌든.

온라인으로는 해약이 안된다고 해서 영등포 고객센터에 갔다.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이고, 어제 눈이 내렸다는데 그런 흔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고객센터에는 온갖 고객의 수발을 다 드느라 정신이 없는 센터직원이 하나 앉아 있었다. 먼저 응대하던 사람이 있어 나는 쇼파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왼쪽에서는 틀어 놓은 라디오 프로그램이, 오른쪽에서는 뭔가 상담하느라 이상한 보험용어들이 쏟아졌다. 그 어디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조금 더 가만히 있다가 한쪽 테이블에 놓인 고객용 커피를 타서 차근차근 마시기 시작했다.

갑자기 나는 왜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보험가입을 권유하기 위해 필요한 것인지 연구해 보기로 했다. 아마도 삶이 더 모호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빌딩에서 떨어지거나 차에 치일 일도 (거의) 없고, 자신의 머리 속에 담긴 낱말로 형용 불가능한 병과 만나면 그저 죽는 것이 ‘네 팔자’가 되어버리던 (돼지라도 한 마리 치던 집이라면 무당이라도 불러 굿이라도 해봤겠지만) ‘그때를 아십니까’ 시절,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오늘을 조금씩 저축하는 일은 상상 밖에 존재했을 것 같다. 아니 미래의 어떤 일을 위해 저축하게 될 오늘 일용할 양식은 곧 오늘의 배고픔과 같은 말이었겠지. 그런데 지금은 어떨까. ‘괴질’은 백혈병과 암과 심근경색과 고혈압과 동맥경화라는 사회적 교양언어로 바뀌었고, 자칫 잘못하면 엘리베이터가 추락하거나 지하철에 치이는 일도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미디어가 이 곳의 불안을 저 곳으로 퍼다 나르고 있다. 더 많이 알게 되고 더 구체화 되는 미래가, 오히려 더 모호하고 더 심란한 미래를 양산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지 않기 위해 계속 더 빠르게 페달을 밟는 것처럼,  미래를 더 세세히 구분해서 각각의 상황이 가져올 경제적 부담을 계산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아웃소싱해서 매달 구천구백원으로 안심하는 ‘베스트자녀사랑보험’같은 상품들을 만들어낸다. 아이의 미래를 위해 월 구천구백원이면 싸지 않나요? 이만큼 생각하니까 고객센터 복도에 커다랗게 붙어 있던 보험설계사의 월 실적표가 이해가 되었고,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업종에 투신하는지도 이해가 되었다. 불안을 돈으로 처방하는 것, 키에르케고르 형님이 조금만 더 늦게 태어났다면.

아무튼 나는 영등포로 나갔던 길만큼을 되밟아 다시 돌아왔다. 돌아오는 버스 안, 아크릴 창문이 온실처럼 열을 가두어 나른한 봄날 같았다. 나는 레드 제플린의 Ten years gone을 계속 반복해 들으며 눈을 감았다. 나는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미래로부터 과거로 날아가는 철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