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구글 크롬.. 그리고 우리 사는 이야기들

싸이월드의 학과 클럽에 술먹고 올린 글인데 블로그에도 옮겨봅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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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배준이가 엊그젠가 추석 안부 문자 보내면서 구글 크롬 좋냐고 물어보더라.

구글은 알지? 세계 최대의 검색엔진 업체. 오죽하면 ‘인터넷에서 검색하다’라는 의미의 신조어가 웹스터 사전에 이렇게 올라갔다지.
“Google (동사, 인터넷으로 검색하다.)”
그 동안 그렇게 구글 웹브라우져 개발 계획이 없다고 구라를 까더만, 역시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구글 속은 모른다니까.
아무튼 이번에 구글이 ‘크롬’이라는 이름의 웹브라우져를 새로 들고 나왔지롱. (이거 좋다. 엄청 빨라.)
하고 싶은 이야긴 크롬이 얼마나 좋으냐가 아니라…
사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웹브라우져’가 ‘인터넷 익스플로러’와 동의어로 사용되지.
마치 ‘컴퓨터’가 ‘마이크로소프트 윈도우즈’와 동의어처럼 사용되듯이. 그것 이외에 어떤 선택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처럼, 컴퓨터를 처음 사용할 때부터 깔려 있던게 윈도우즈고 인터넷 익스플로러니 ‘사용자 경험’은 거기서 굳어져 도저히 변화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게 문제냐고? 아니, 문제는 아냐. 내가 ‘담배’ 하면 디스 플러스 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것처럼 인터넷 익스플로러만이 머리에 박힌 것은 그저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의 현실을 반영할 뿐이거든. 이를테면, 기호야. 배기호나 기호논리학 할때 그 기호 말고 호불호 할때 그 기호. 한국에서 98퍼센트 이상의 사람들이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쓰는 것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진짜 이빌 엠파이어라서 숭악한 주술을 걸어 거기에 현혹된 사람들이 좀비처럼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는건 아니거든.
스타트 라인이 완전 차이가 나서 (왜냐하면 대한민국에서 컴퓨터를 처음 접한다는 사람들은 전부 다 윈도우즈를 쓰게 되니까) 대안적인 선택을 상상할 수 없는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책임은 아니잖아. 그리고 그냥 그게 그런 수준의 문제라면 딴지 걸고넘어질 정도의 심각함도 아니지.
몇 주 전에 (전에도 잠깐 이야기 한 것 같은데) 오픈웹이 걸었던 소송이 결국 패소하고 말았다. 그게 무슨 개뼉다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잠깐 쉽게 설명하자면… 인터넷 뱅킹 해 본 사람들 있지? 그거 하려면 ‘공인인증서’란걸 받아야 해. 예를 들어 내가 우리은행에서 인터넷 뱅킹을 통해 계좌이체를 하려고 한다고 하자. 그럼 난 우리은행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뭔가 팝업이 뜨면(공인인증서 창) 내가 사용하는 인증서를 선택하고 암호를 입력해야지만 로그인이 되는거야.
그럼 이 (공인) 인증서란게 뭘까? 이건 쉽게 이야기해서 ‘온라인에서 내가 정말 나인지 식별할 수 있도록 공신력 있는 기관에서 인증을 해 준 문서’ 정도로 이해하면 될꺼야. 내가 나의 공인인증서를 갖고 있고 이 인증서에 대한 암호를 알고 있다면, 은행에서는 아 이 공인인증서로 접속한 새끼가 이주헌이 맞구나 하고 넘어간다는거지.
이것 자체는 문제가 없어. (아니 사실 문제가 많지만 이건 좀 뒤에 이야기하기로 하고) 그런데 정작 문제는 이 공인인증서를 이용해서 사용자 인증 과정을 거치는 방식이 인터넷 익스플로러에서만 가능하다는거야.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공인인증서를 관리하고 내가 입력한 암호와 인증서의 암호를 비교해서 은행에 ‘아 이새끼 올바르게 암호 입력했어요. 얘는 걔 맞아요.’라고 신호를 보내는 프로그램이 윈도우즈에서만 돌아가.
대한민국에선 이정도만 해도 사실 거의 문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해. 왜냐하면 위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98퍼센트가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니까. 그런데 나머지 2퍼센트는 어떻게 하지? 걍 ‘윈도우즈 쓰세요 (고객센터에 전화하면 이따구로 밖에 답변 안함.)’ 하면 될까? 왜? 윈도우즈를 국가에서 전량 구매해서 국민에게 무료로 배포하는 것도 아니면서 왜 유료 프로그램을 사용하라고 강요할까?
아무튼 이런 문제를 갖고 오픈웹이라는 인터넷 모임에서 국가 (금융결제원) 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어. 현행 법상으로 그런 식으로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은 소수의 비윈도우즈, 비인터넷 익스플로러를 사용하는 사용자들의 선택권을 침해한게 아니냐구.
뭐 이 나라가 맨날 이 모양이듯이, 법원은 금융권의 손을 들어서 (내 머리에서 필터링 한 바에 의하면) 상업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리 기관이 그렇게 까지 빡시게 사용자를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결정했다지.
이게 뭐 어떻냐는 사람도 있을꺼야. 왜냐하면 익숙한 개념이 아니라서 그래. 자, 익숙한 개념으로 바꿔서 설명해볼께.
니가 차를 샀어. 쌍용 자동차에서 만든 대체 에너지 어쩌구 한 차를 산거지. 그건 나무를 태워서 연료로 삼는 그런 자동차라고 해.
기분이 한껏 들떠서 드라이브나 할까 하고 고속도로를 질주하려는데, 이거 입구에서 경찰이 막는거야.
‘무슨 문제 있나요?’
‘고속도로는 경유나 휘발류를 사용하지 않는 차는 진입할 수 없습니다.’
‘엥? 왜요?’
‘왜냐하면 경유나 휘발류를 사용하지 않으면 정유사의 수익이 줄어들고 유류세 수입도 줄어들어서 국가 경제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죠.’
‘아니 그럼 나무를 태워서 달리는 차도 유류세처럼 세금을 걷으면 될꺼 아니에요.’
‘앞으로 그럴 계획에 있습니다만, 한국도로공사 (고속도로들이 한국도로공사 소관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에서 결정한 대로만 따를 뿐입니다.’
‘그럼 세금을 내도 한국도로공사에서 인정하지 않으면 고속도로에 진입을 못한단 얘긴가요?’
‘네.’
이 뭐 병… 아니, 실제로 그렇게 판결을 내렸다니까. 기업 입장에서도 프로그램을 바꾸는건 일도 아냐. 물론 투자는 좀 해야겠지. 그래봐야 몇 억이야. (기관 입장에서는 이정돈 투자도 아니지..)
자, 이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고 있을까? 그건 우리가 윈도우즈와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야.
그럼 윈도우즈나 인터넷 익스플로러’만’ 사용하는건 잘못된걸까?
그건 아냐. 하지만 우린 알게 모르게 이런 부조리한 상황을 만드는데에 동참하고 있다는거지.
마치 인간의 현대 산업 문명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자체가 지구에 폐를 끼치는 것처럼.
이 ‘공인인증’이란 시스템 자체에 대해서 맹신하는 것도 문제야. 그게 아무리 온라인에서 ‘내가 나’임을 인증하는 것일지라 하더라도 본질적으로 은행에 접속한 ‘나’는 현실의 ‘내’가 아니라 ‘이주헌의 공인인증서를 가지고 있으며 비밀번호도 알고 있는 사람’일 뿐이지. 주민등록번호가 ‘내’가 아닌 것처럼.
자, 슬슬 결론이야.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건 뭘까?
조금 불편해도 구글 크롬이나 파이어폭스를 쓰는거? 아니. 절대 그럴 필요 없어. 걍 인터넷 익스플로러 써.
윈도우즈를 버리고 맥이나 리눅스, 기타 다른 운영체제를 사용하는거? 절대 권하지 않아. 걍 윈도우즈 써.
대신에 우리는 그거 이외에 다른 대안을 분명히 갖고 있어. 그것만 잊지 마. 그리고 나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사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게 충분히 납득할 만한 방식이라면 적극적으로 지지해줘. ‘미안해요. 난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없어서 .doc파일을 읽지 못하니까 그냥 텍스트 파일이나 pdf파일로 만들어서 다시 보내주세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여기지마. (어차피 니들도 다 불법 소프트웨어 쓰는거잖아. 참고로 윈도우즈 비스타하고 마이크로소프트 오피스를 돈주고 사려면 둘 다 합해서 아무리 싸게 사도 100만원이 넘어.)
교수님이 수업시간에 ‘레포트는 어쩌구 저쩌구 해서 아래아한글 파일로 보내세요.’라고 하면 실제로 니가 (불법 복제한) 아래아한글을 쓰고 있다고 해도 ‘선생님, 전 아래아한글이 없어서 그런데 pdf파일로 보내면 안될까요?’라고 말해.
괜히 밤늦게 말이 길었다. 읽느라 고생했다. 분명 코멘트로 ‘안읽었지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 ㅎㅎ
참, 나 이 글 구글 크롬으로 쓰고 있어. 아직까지 내 메인 웹브라우져는 파이어폭스지만 좀 더 개선만 되면
구글 크롬을 메인으로 쓸까 하고 생각하고 있어.